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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오던 날"-이종학
yoon

첫눈 오는 날은 어쩐지 호기심에 찬 기다림에 젖는다. 옷장 깊이 숨겨 두었던 편지를 꺼내는 설렘도 묻어난다. 재회(再會)의 기쁨과 같은 상서로움을 잉태한 날로 예로부터 자리 메김이 된 듯한 느낌을 은연중에 가진. 첫눈이 오는 날 어디서, 몇 시에 만나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엄지손가락 도장을 몇 번이나 찍고 찍으며 굳게 약조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헤어진 사람들에게 첫눈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정호승 시인은 '첫눈 오는 날‘에서 이렇게 묻고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왜 첫눈이 오는 날/누군가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첫눈과 같은 세상이/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희망하기 때문일 것. 우리 교회 연만한 식구들이 점심 대접을 받고 밖으로 나왔더니 어는 새 자국이 날세라 조심스럽게 풋눈이 덮여 있었다. 모두 환한 미소를 머금는다. 첫눈에 반한 얼굴들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두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떠났다. 차는 시내를 뒤로 하고 2번 하이웨이를 따라 남서쪽을 향해 달렸다. 운전대를 잡은 장로(長老)는 이미 행선지를 정해 놓은 모양이다. 약 1시간 정도 달려서야 피전 레이크(Pigeon Lake)를 목적지로 삼고 있음을 알았다. 차가 하이웨이를 벗어나자 하얀 천지를 이룬 시야가 바람 한 점 없이 숙연한 침묵에 잠겨 있음을 더욱 깨닫게 했다. 차는 신천지를 개척하듯 살 눈에 첫 흔적을 남기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갔다. 첫눈 위에 첫 발자국을 찍으며 이제 곧 다가올 재회의 환희에 가슴 두근대는 사람들처럼 차 안의 노안(老眼)들도 살포시 흔들리는 듯했다. 첫눈에 대한 야릇한 감회가 전염병처럼 번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제의 화려했던 푸름을 추억의 갈피에 묻고 한 점의 부끄럼 없이 나목(裸木)의 대열에 선 숲길을 구비 돌아 오래지 않아 호숫가 별장마을로 알려진 웨스트로즈(Westrose)에 도착했다. 하늘과 땅의 구분이 없는 하얀 종이 위에 아련히 그려진 환상적인 모습으로 작은 마을은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간간이 벽난로에서 나무 타는 내음이 스며드는가 싶더니 여기저기 굴뚝에서 뽀얀 연기가 피어 오르며 첫눈에 이끌려 찾아 든 우리 일행을 맞는다. 오가는 사람도, 차량도 보이지 않지만, 솜털 같은 포근한 인정이 감지된다. 초행 시골 길을 걷다가 멀리서 하늘거리는 굴뚝 연기를 발견했을 때와 같은 반가움이 왈칵 밀려온다. 어디선가 갑자기 새끼 사슴이 깡충깡충 뛰어나올 것만 같은 화평이 동화 속에서처럼 펼쳐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호숫가로 나갔다. 22km⨯11km의 너른 피전 호수가 잔잔한 파란 물결로 첫눈을 포근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수면은 유리알처럼 맑다. 너무 맑고 깨끗하면 슬퍼진다는 사람도 있다. 피서객이 수없이 찾아와 북적거리던 얼마 전의 번화함은 간 데 없다. 모래 위의 어지러운 발자국도 깨끗이 지워지고 태고적 그대로인 듯이 고즈넉하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긴 휴면을 시작한 모습이 낭만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장엄하게 보인다. 첫눈 오는 날 호수를 바라보고 서 있어보기는 처음이다. 고독이 휘몰아치는 겨울 바다를 동경했던 때도 있었지만,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우리 노(老) 권사들도 목도리 자락을 휘날리며 먼 수평선에 가 있는 시선을 좀처럼 거두려 하지지 않는다. 혹시 첫눈에 얽힌 사연을 되새겨 보는 것일까? 어쩌면 갈리리 호수를 연상하고 발복(八福)을 읊조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첫눈과 호수의 유혹이 현란할지라도 감기에 약한 노구들이다. 호수 바람 앞에 오래 머무는 건 무리였다. 호숫가 가까이에 있는 데이시 맥린스(Daisy Mcreans)라는 찻집을 찾았다. 특별식 아이스크림으로 유명세를 자랑하는 집이란다. 천정서부터 바닥까지 완전히 통나무로 지은 찻집은 한국의 시골 다방처럼 아늑했다. 첫눈 오는 한적한 별장마을에 딱 어울리는 찻집이다. 이미 노부인 서넛이 차와 정담을 즐기고 있었다. 첫눈의 정취에 담뿍 취한 모습들이다. 우리 일행이 자리에 앉으니 홀이 꽉 차고 말았다. 셀프서비스다. 대부분이 따끈한 티를 선택한다. 유명세를 얻은 아이스크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자란 세대들도 아니지만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시원하다고 거듭 말하는 연만한 몸이 아니던가. 찻잔을 들고 가만히 미소 짓는 얼굴들이 더없이 평온해 보인다. 비우고 자기가 가진 것 모두를 포기하고 놓아 버린 바로 그런 얼굴이다. 꽃이 비록 아름답지만,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는다. 버림의 노년은 첫눈처럼, 석양의 노을처럼 더욱 아름답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첫눈 오는 날의 약속은 바로 이런 것이었나 보다 灘川 이종학/소설가,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한국문협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