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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사망, ‘골프황제’ 우즈의 눈물
lucasyun

부친 사망, ‘골프황제’ 우즈의 눈물 “아버지는 가장 좋은 친구였고 훌륭한 코치이자 스승이고 군인이었습니다.아버지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는 자신의 골프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아버지 얼 우즈가 암 투병 끝에 3일 사망하자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슬픔에 잠긴 자신의 마음을 털어 놓았다. 1986년 심장 수술을 받기도 했던 얼은 1998년 전립선 암을 선고받은 뒤에도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도 아들 타이거가 출전했던 대회에는 거의 빠짐없이 관전했다. 하지만 2004년 암이 재발하면서 암세포가 몸 전체로 퍼졌고, 아버지 병세의 심각함을 직감한 타이거는 3월에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연습라운드도 거르고 왕복 10시간이나 되는 길을 마다않고 병문안을 다녀왔다. 또 지난 달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서도 타이거는 "이제 아버지와 이별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며 심란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퍼트 난조로 중위권에 머물고 말았다. 이후 타이거는 6월에 열리는 US오픈대회 이전에는 경기에 나서지 않고 아버지가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시간을 보내겠다고 선언했지만 아들의 정성도 아버지의 몸 전체에 퍼진 암 세포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사실 타이거에게 얼은 아버지 이상이었다. 타이거가 1997년 마스터스에서 생애 첫 메이저타이틀을 거머 쥘 때에도 얼은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오거스타 경기장에 나와 퍼팅코치를 자처했고 작년 대회 때는 경기장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조지아주 오거스타까지 동행하는 열성을 보였다. 1932년 캔자스주 맨해튼에서 6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얼은 캔자스주립대 야구팀에서 포수를 맡아 명문대학들의 연맹인 `빅 에이트 콘퍼런스' 야구대회에 출전한 최초의 흑인 선수였고 그린베레로 베트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당시 전우였던 누엔 퐁의 별명을 따 아들의 이름을 `타이거'로 짓고 아들을 용맹스럽게 키우기로 결심한 듯 하다. 2000년 5월 AP통신과 인터뷰 때 얼은 "타이거가 태어난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며 아들을 자랑했고 "타이거가 2살 때부터 골프 스윙을 지도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은 아들을 결코 골프 챔피언으로만 만들려고 하지 않았고 골프와 인생 모두에서 승자가 되도록 가르쳤다고 강조했다. 얼은 "타이거가 학교 숙제를 끝내지 않으면 골프연습을 시키지 않았고 골프를 스스로 즐길 수 있도록 자유 시간을 많이 줬다"고 말했다. 경기를 따라다니면서 타이거의 스윙 도중 호주머니에 잔돈을 넣고 딸랑거리거나 갑자기 워터 해저드를 알려주는 방법으로 아들의 집중력을 키우기도 했다. 타이거는 이같은 아버지에 대해 간섭하는 사람이기 보다는 든든한 안내자였다고 말했다. 이제 `정신적인 지주'였던 아버지를 잃은 타이거가 슬픔을 딛고 필드에서 다시 용맹을 떨칠 수 있을 지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