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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gungwhasarang
2024 09 10 총 무궁화 방문 기록
1111962 명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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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336 전체: 1,003,828 )
무궁화 전도사 김 병선
mugungwhasarang

 

 

   
‘봉사 마당발’ 김병선 무궁화사랑모임 회장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축복” 

사업실패 계기 ‘가슴’으로 하는 봉사 배워

‘무궁화동산’ 허가받으려 몇 년씩 공원청소
 

그는 ‘넉넉한’ 사람이다. 풍채가 그렇고,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그렇고,


마음씀씀이가 그렇다. 당최 잔꾀나 꼼수와는 담을 쌓은 것 같은 사람.

올해로 7년째 무궁화사랑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병선(64) 회장은 ‘
일복’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그 일감의 대부분은
‘돈 안 되는’, 보다 정확히는 ‘돈과 땀이 무척이나 드는’
숨은 봉사들이다.

오늘날 토론토의 유명공원에서, 다운타운 길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무궁화의 ‘거름’은 오롯이 그가 흘린 땀이었다. 내로라하는 시내공원
가운데 아직 무궁화가 심어지지 않은 곳은 하이파크 단 한 곳뿐이다.
제임스가든에 ‘무궁화동산’을 만들기 위해 몇 년씩이나 부부가 함께
 묵묵히 쓰레기를 주우며 ‘눈도장’을 찍은 그 진득함에, 까다로운

공무원들도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렇게 가톨릭묘지(홀리크로스)에도,

 이웃집 마당에도, 동네골프장에도 그가 심은 무궁화가 시나브로

 꽃을 피우고 있다.


아픈 경험이 봉사계기로


자식을 키우는 일이 그러하듯, 나무도 심어만 놓는다고 절로 무럭무럭
자라주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무궁화가 늘어날수록 그의 일손도 바빠질
 수밖에 없다. 생업 틈틈이 심어놓은 곳들을 돌며 김을 매고 거름을
 주고 가지를 쳐줘야 하기 때문이다.

결혼 이듬해인 74년 이민 온 그는 그동안 편의점을 15년,
샌드위치가게를 13년간 운영했다. 지난 6월 비즈니스를 정리한 뒤
모처럼 재충전의 시간을 만끽하는 중이지만 가게 일에 눈코 뜰
 새 없이 매달리면서도 교인 3천 명이 넘는 성김안드레아천주교회의
 사목회장을 거쳐 모든 장례를 총괄하는 연령회장을 9년째,
신학생 및 수도자들을 돕는 성소후원회장을 13년째 맡아오고 있다.

그가 봉사의 참맛에 눈을 뜨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개인적 아픔이
계기가 됐다. 90년대 말, 평생 일군 전 재산이나 다름없던 가게에서
손을 털고 나와야 했던 것. 다운타운의 오피스빌딩에 있던 카페테리아를
10년 전 30만 달러나 주고 산, 잘나가던 가게였다. 샌드위치를 만들면서도
‘흐트러지지 않으려’ 꼭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챙겨 입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고 장사도 순조로웠다. 하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입주업체였던 CP가
 캘거리로 이전해버리자 매상이 급전직하했다. 월세조차 버거웠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한 푼 건지지 못한 채 문을 닫고 말았다.

셔터를 내린 가게에서 마지막 정리를 돕던 딸은 아빠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 부모님이 자랑스럽다고.
 걱정 마시라고. 열심히 산 엄마아빠처럼 우리도 열심히 살겠노라고.

아들딸(1남1녀)은 그때의 다짐을 기억하며 훌륭하게 자라줬다.
대학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한 아들 천재(Sunny·37·CFA)씨는
월스트릿을 거쳐 미국 금융보안업체의 캐나다지사장으로, 범죄학을
공부한 딸 여숙(Sandy·36)씨는 국관세청(CCRA) 감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집착 버리니 길이...”


“세상엔 정말 인력으론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있구나 생각했죠.
 헌데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저희처럼 ‘힘든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몸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봉사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돈은 잃었지만 얻은 게
훨씬 많았던 경험이었습니다. 집착을 버리니 길이 보였다고나 할까요.”

지금도 그는 ‘소유’에 집착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가재도구조차 웬만해서는
 늘리지 않으려 한다. 갖는 대신 나누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다.
매년 봄이면 50~60개의 대형화분을 만들어 이웃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준다. 소리 없이 집 앞에 놔두고 오는 일도 많다.

그는 80년대 초반부터 20년 가까이 시영텃밭((마마틴그로브/에글린튼)을 가꿨다.
 “하루는 옆쪽 텃밭을 가꾸는 사람(비한인)이 ‘코리언 같은 사람이
채소들을 훔쳐가더라’고 귀띔을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따가라고
했으니 걱정 말라’고 말해줬죠. 실제로 내 손으로 땀 흘려 가꾼 것들이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간다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모으고 또 모으고


천성적으로 나누길 좋아하는 그는 공교롭게도 소문난 ‘수집광’이다.
 골프장 스코어카드, 낙첨된 복권에서부터 쓰지 않는 지폐, 각종 행사안내서에
이르기까지 흡사 개인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상당부분
분실되거나 폐기했다지만 그의 창고는 아직도 이런저런 자료들로 그득하다.

그의 컬렉션은 그야말로 입이 벌어질 정도다. 하키·야구카드만도 1만 장이
훌쩍 넘는다. 주류신문 기사들은 기본. 아들딸과 절친한 벗들로부터 수십
 년간 받은 각종 카드도 빠짐없이 모아두고 있다. 차곡차곡 모아온
 아버지날카드를 액자에 담아 결혼하는 딸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LPGA
개척자 박세리 관련기사는 지금까지 단 1개도 빠지지 않았다고 자신할 정도다.

한국일보와의 인연도 이민연륜만큼이나 깊다. 83년 주간한국 창간호부터
 인물사진이 실린 표지들을 스크랩해온 그는 사진의 주인공들이 관련된
경조사 때 이를 액자로 만들어 보내고 있다(그는 “주인을 찾아줬다”는
 표현을 썼다). 5년 전 장순채 전 한인회장의 장례식(연도)에서는 고인의
 한인회장 재직 시 사진이 실린 주간한국 창간호 액자를 선물해 유족들을
 감동시켰다.

2007년에는 그가 70년대 스토빌의 벼룩시장에서 10센트에 구입했던 한국전
 파병 캐나다군인들을 위한 안내서가 6·25 특집으로 본보에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캐나다인에게 비친 한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자의 발굴소식은
 모국언론에까지 기사화됐다.


동네선 ‘정원박사’


그는 아침 5시면 커피 한 잔을 내린 뒤 뒤뜰 패티오에 앉아 조간신문들을
 펼쳐놓고 명상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무슨 기도를 하는지 궁금했다.
“감사죠.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베풀 수 있다는 건 축복이거든요.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활자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날이 밝아온다. 신문읽기가
끝나면 뒤뜰과 옆집정원까지 물을 준다. 옆집사람들은 “탐(그의 영어이름)이
 이사 가면 우리도 따라갈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동네에서 ‘
정원박사’로 통하는 그의 집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자문을 구하려는
이웃들이 찾아온다.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는 지금도 원예·
화훼책을 사서 공부를 한다.


지금, 조금이라도 더


큰 성당에서 일어나는 조사(弔事) 일체를 책임지고 있는 탓에 그는 죽음·
이별과도 친숙하다. “병문안을 위해 병원에 가끔씩 들릅니다. 그곳에 계신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10명 중 9명은 ‘만약 삶이 다시 허락되기만
한다면 당신처럼 (남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들 하세요. 그런 말씀이 제겐
‘경종’이죠. 이제 봉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싶어 마음이 바빠집니다.
 눈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발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남과
나누고 도우라는 ‘그분’의 메시지로 들리니까요.”

부부라서 닮게 마련일까, 닮았기에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일까. 그의 ‘
마당발봉사’는 아내의 전폭적인 이해와 도움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80년대 연방통계청에 의해 ‘평균 이민여성’으로 뽑혀 본보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던 부인 최금선(63)씨는 늘 그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걸어온 동지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떠올린 부부의 사람 좋은 웃음은 ‘넉넉해서
나누는 게 아니라 나누니까 넉넉해지는 것’이라는 나눔의 역설을
새삼 생각하게 만들었다.

김원태 편집부국장

캐나다 한국일보
발행일 : 2011.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