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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의 군시절 - 옮겨온 글 4
lakepurity
2009-01-25
월간조선- 나의 훈련소 시절 1] 입대는 또 다른 출가(出家)
지장(地藏·남산 대원정사 주지)
‘나의 훈련소 시절’ 무쇠라도 삼키면 소화할 것 같았던 질풍노도의 시대. 이 나라의 사나이라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곳이 군대요, 그 첫 관문이 훈련소다. 어떤 상황보다 어렵고 힘들고 배고프고 외로웠던 훈련소 시절을 이겨낸 대한민국의 사나이라면 외환위기, 그보다 더 심각한 어떤 위기라도 두려울 것이 없다. 그 고난의 시절을 되새기며 희망과 용기를 다져 보자.
1970년 충북 청주 출생(속명 金孝俊). 세광고·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조계종 승려로 출가, 군종(軍宗) 장교로 공군에서 9년 복무(소령 전역). 초의차명상원 개원(2005). 저서: <차명상> <스님도 군대 가나요> <행복한 생활명상> 등.
나는 승려다. 그리고 아직 젊은 승려라 예비군 훈련을 받고 있다. 몇 번만 더 받으면 그것도 드디어 끝난다. 훈련 간다고 군복(軍服)으로 갈아입을 때면 나의 모습에 놀라 주위 사람들의 두 눈과 입이 절로 커진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 적응될 만도 한데 또 잊어버린 건지 “나도 군대 갔다 왔다”는 해명을 연례행사처럼 재방송해 준다.
설명을 들은 그들은 다시 한 번 나의 계급에 놀란다. 놀라기보다는 의구심을 갖는다고 할까. ‘공군 소령?’ 그들은 잘 매치되지 않는 ‘스님’과 ‘공군 소령’ 이미지를 번갈아 떠올리며 나름대로 여러 장면들을 상상하곤 한다. 전역 후 처음 예비군훈련장에 갔을 때, 일단 주의를 받는 것으로 나의 훈련은 시작됐다.
어설프게 소령 계급장이 달린 예비군복을 입고 나타난 빡빡머리 청년에게 “다음부터 삼촌 옷 입고 오지 말고 본인 옷 입고 오라”는 교관의 ‘친절한’ 경고는 예비군 훈련 중에 겪게 될 일들의 예시(豫示)에 불과하다. 다음날 아침, 내 옆에서 잠을 잤던 한 훈련 참가자가 묻는다. “스님도 코를 고나요?”
그 후 입안에 맴돌고 있던 승려들에 대한 궁금증이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스님도 진짜로 군대 가나요?” “스님도 애인한테 편지 받나요?” “면회는 누가 오나요?” “스님은 휴가 나가서 뭐하고 노세요?” “뭐 땜에 말뚝 박았나요?” 터지는 플래시만 없다 뿐이지 마치 무슨 기자회견장 같은 기분이다.
이런 계기를 통해 나의 군대 훈련소 시절,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 대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정리되기 시작했다. 나의 입영 전야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이미 출가(出家)한다고 세속의 인연을 정리하고 절에 들어왔기에 입대를 위해 뭘 정리하거나 유난스럽게 준비할 것도 없었다. 그저 또 다른 출가생활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절 떠나와 버스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큰 스님께 큰절하고 일주문을 나설 때/ 가슴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부처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도반들아 군대가면 면회 꼭 와다오/ 그대들과 함께 먹던 자장면 잊지 않게/ 버스시간 다가올 때 등 떠밀던 야속함/ 경적소리 멀어지자 안 보이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고생이여//짧게 자란 내 머리가 처음에는 어색하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웃음진다 마음까지/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절이 보일는지/ 나팔소리 서글프게 밤하늘에 퍼지면/ 훈련중의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스님, 신부, 목사가 훈련소 동기입영 전날 김광석씨의 <이등병의 편지>를 듣다가 나의 처지를 상상해 보며 내용을 바꿔보았다. 보통 승려가 될 때는 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하다 절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승려 신분으로 군대에 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만약 입대하게 되면 두 가지 경우 중에 하나다. 그냥 일반 兵(병)으로 다녀오는 경우와 나와 같이 軍宗(군종) 장교로 다녀오는 경우다.
군종 장교가 되기 위해 ‘우리’는 먼저 3사관학교에서 기본적인 군사훈련을 받았다. 여기서 ‘우리’는 스님들뿐 아니라 훈련 동기가 된 목사님들과 신부님들이다. 군에 다녀와서 예비군까지 마쳤지만 군 신부 직분으로 복무하기 위해 다시 불려온 큰형님 같은 신부님들. 산뜻한 신사 양복 정장의 목사님들.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에 흰 고무신. 잿빛 두루마기를 휘날리는 스님들.
드디어 이들의 ‘무한도전’에 가까운 군사훈련이 시작되고 거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나게 됐다. 훈련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깨닫게 됐다. 사람의 가치는 그가 지닌 신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군에 오기 전 다들 존경 받는 성직자와 수행자들이었다. 그러나 역시 부족한 초코파이와 콜라 앞에서 시험에 들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었을 때 내 자신의 본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기에 앞서 기본체력을 측정하는 시간이 있었다. 체력 상태는 당사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측정자에게 달려있었다. 입담 좋은 목사님이 감독관의 주의를 끌고 나머지 사람들은 제각각 열심히 숫자를 뻥튀기해 주었다. 종교가 화합되면 한 번 한 것이 두 번, 세 번이 되는 기적(?)도 일어날 수 있다고 자신들의 행위에 과다한 의미를 부여한 탓인지 모두 통과됐다.
설마 성직자들이…. 다음으로 태권도 훈련이다. 장교로 임명 받으려면 1단을 따야 되는데 군에 다녀온 신부님들이 “내가 군생활 할 때는 전투화만 신으면 1단으로 인정해주고 출발했다”고 우기셨다. 시간이 가도 훈련이 진척되지 않자 지친 조교는 배꼽 위로 다리만 올라가면 1단을 주기로 양보했다. 그 이상 올라가면 사고 위험성이 있다는 우리들의 ‘협박성 건의’를 못 이기는 척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훈련 중 쉬는 시간은 서로 알고 싶어하는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기회다. 어느 목사님이 물으셨다. “우리는 결혼하여 괜찮은데 스님과 신부님은 기나긴 밤 혼자 어떻게 보내시나?” 신부님 왈 “모르겠어요. 매일 떡이 되도록 술 먹고 쓰러져 자니까.” 옆에 있는 스님 왈 “우리는 저녁을 안 먹기 때문에 배고프고 기운 빠져서 딴 거 할 생각도 못해요. 그냥 들어가 일찍 자야지.”
모두들 한바탕 웃어댄다. 그러면서 훈련 중에 쌓인 피로감은 눈 녹듯 사그라진다. 군종 장교는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전시(戰時)와 평시(平時) 무기를 휴대할 수 없다. 그러나 기본 군사훈련을 받을 때는 체험교육의 일환으로 무기 사용을 체험한다. 사격 훈련 시 당연히 내기가 따른다. 내기 상품은 베지밀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곳에서 실감한다. 총을 처음 다루다 보니 영점(零點) 조절이 잘되어 있는 총을 만나면 과녁 근처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과녁 종이가 항상 새 것인 채로 있어 ‘내 총알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있어야 한다.
말로만 들었던 행군시간이다. 엄청 힘들 것이라는 말에 모두들 휴대할 짐의 무게를 줄이느라 며칠 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군에 한 번 다녀온 신부님들에게 조언을 청한다. 방독면 속에는 저녁 부식으로 나왔던 빵을 모아 채워 두었다. 군장을 들고 멜 때 신음소리와 함께 표정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 군장검사를 받게 된다면 전원 쓰레기 분리수거장으로 향해야 되기 때문이다. 먼저 경험 많은 신부님의 시범이 있었고 모두들 무척 힘든 척 따라 했다.
웃음을 참는 것이 제일 어려운 난관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설마 성직자들이…. 다행히 교관님의 깊은 신앙심이 우리를 ‘구원’했다. 행군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할 때쯤은 출발할 때의 기상과 씩씩함은 온데간데 없고, 패잔병의 진짜 모습을 보는 듯하다.
입산(入山)과 입대(入隊)의 공통점
이렇게 시간이 흐르자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점점 군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최대한 게으름을 피워가며 훈련을 받았는데도 신체적인 변화가 뚜렷하다. 역시 인간은 환경의 동물인가 보다. 점점 쓰는 말에도 군사용어가 자연스럽게 섞여 나왔다. 훈련 기간은 고생을 같이 하고 있어서 그런지 종교나 종파 간 구별 없이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힘든 훈련과 재미난 훈련도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독도법(讀圖法) 훈련이다. 지도와 나침반, 각도기 같은 것을 나눠주고 주어진 좌표를 찾아가면 하얀 말뚝을 만나게 된다. 나는 서둘러 말뚝 다섯 개를 찾고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며 열심히 말뚝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신부님들이 산속 계곡 그늘 밑에서 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말뚝을 언제 찾을 것이냐”고 묻자 한 신부님이 짓궂게 웃으며 사실을 털어 놓았다. “요 계곡 위로 올라가면 한 할머니가 있어요. 그 할머니 거기서 훈련생들 상대로 몰래 음료수나 술 같은 거 팔고 계신데 음료수 한 개 살 때마다 말뚝 번호 알려줍니다. 하도 오랫동안 장사를 하시다 보니 좌표를 다 외우고 계세요. 고생하지 말고 한 번 찾아가 봐요.”
정보가 빠른 신부님들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좌표 찾는 게 꽤 재미가 있었고, 이 방법을 알아두면 나중에 등산이나 여행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굳이 할머니를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목적지가 있고, 그 목적지에 가까워진다는 기쁨에 힘든 것을 견딜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나의 군대생활을 회고해 보니 집을 떠나 고행의 길을 간다는 데서 입산(入山)과 입대(入隊)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자기 절제와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모르는 사람과 세상 속에서 자신을 알아가고 철들어간다는 것이 수행자인 나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었던 또 다른 출가생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