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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의 군시절 - 옮겨온글 2.
lakepurity
2009-01-25
[월간조선-나의 훈련소 시절7]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은 시간
김태호(金台鎬) 경상남도 도지사
경남 거창 출생. 거창농림고·서울대 농업교육과 졸업. 同 대학 교육학 석·박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 제6대 경남도의회 의원, 거창군수, 경상남도지사(32대) 역임. (사)환경실천연합 정책위원장, 부산·경남지역 지방자치학회 이사.
‘몸의 눈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마음의 눈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는 1933년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라는 에세이로 대공황(大恐慌)으로 암울했던 미국인들의 마음에 한줄기 빛을 주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것들이 그녀에게는 기적이었다. 그토록 소망하는 사흘간의 기적에 그녀가 하고자 한 일들은 너무나 소박하다. 첫째 날, 헬렌 켈러에게 그녀 자신의 가치를 일깨워 준 설리번 선생을 보고,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나뭇잎과 들꽃, 석양을 보고 싶다고 했다.
둘째 날은 ‘먼동이 트며 밤이 낮으로 바뀌는 장면’과 박물관, 그리고 밤하늘의 별이다. 마지막 날엔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극장을 찾아 인간의 희극적인 요소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라도 세상을 보았던 것에 대해 감사기도를 올리고 다시 영원한 밤으로 돌아가겠단다. 헬렌 켈러의 간절한 기적을 매일 누리는 우리가 무엇을 불평하며 무엇에 좌절하겠는가?나는 新兵(신병) 훈련소를 통해 일상의 소중한 가치를 조금이나마 알았다.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게 주위를 바라보고, 또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배워나가는 시간이었다. 관심 두지 않고, 그저 건성으로 스치면 제 아무리 귀한 보배를 쥐어주어도 보고 듣고 깨달을 것이 없으나, 눈여겨보고 마음을 기울이면 세상에 뜻깊지 않은 것이 없다는 인생의 소중한 진리를 각인시켜 나간 귀하디 귀한 기회였다.
8월 한여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나는 軍(군) 입대를 앞두고 고향 거창에 계시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애써 태연하게 부산 해운대에 있는 훈련소로 향했다. 워낙 늦게 입대를 하는 터라 벌써 군복무를 마친 죽마고우가 동행을 했다. 입소를 앞두고 훈련소 앞 이발소에 잠시 들러 머리를 깎는데, 옆에서 함께 온 친구가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그 친구가 왜 우는지 몰랐다. 당시 군대만 해도 구타와 얼차려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게다가 대학원까지 마친 늦깎이 훈련병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걱정이 많았다. 훈련소 동기들은 한참 나이가 적을 게 뻔했고, 조교들도 내 나이보다 두세 살 정도 어릴 것이었다.
맨 손으로 독사를 잡다
군대가 많이 변했다지만 예나 지금이나 입대를 앞둔 마음은 매한가지일 게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더위보단 오히려 온몸 구석구석이 한기를 느꼈던 훈련소 정문 앞. 솔직히 그때는 남아대장부가 마땅히 치러야 하는 조국의 부름, 신성한 의무라는 생각보다는 청춘기의 3년을 낭비한다는 생각, 군대를 다녀온 후의 앞날에 대한 막연한 불안 같은 것들이 나를 주눅 들게 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몸 조심하고, 고마 죽었다 생각하고 3년만 버텨라. 거꾸로 달아 놔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며 정겹게 위로해 주는 고향 친구를 뒤로한 채 모자를 깊게 눌러쓴 조교들이 기다리는 연병장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군복으로 갈아입지 않은 상태라 까까머리 훈련병들은 애써 긴장감을 감추며 낯선 동기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둔탁한 마이크 소리에 고개를 드는 순간, 고함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오른쪽 축구 골대를 돌아 선착순 10명, 원위치! 동작 봐라!” 정적을 깨는 그 소리는 추상같았으며, 힘든 훈련소 생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숨쉴 틈도 없이 연거푸 터져 나오는 호령에 금세 옷은 흙먼지에 엉망이 되었다. 그렇게 훈련소 생활이 시작됐다.
훈련병 중 키(185㎝)가 제일 크다 보니 대오의 선두에서 훈련병을 이끄는 향도병을 맡게 됐는데, 키가 크다는 게 오히려 불리한 게 많았다. 특히 여러 명이 큰 통나무를 들어 한쪽 어깨에서 반대쪽으로 번갈아 가면서 옮기는 목봉체조였다. 맨 앞줄에 서서 하루도 거르지 않는 목봉체조는 올릴 때 가장 많이 힘이 들지만, 쉴 때도 어깨에 하중을 많이 받아 피부가 해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워낙 군기가 바짝 든 상태라 얼차려 받을 때는 통증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하루는 각개전투 훈련을 위해 훈련장의 싸리나무를 베어내는 작업을 하는데 독사가 훈련병들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동료애 때문인지, 시골에서 자란 천성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잽싸게 군홧발로 밟아 맨손으로 뱀을 잡았다. 이 일을 계기로, 나이도 많고 대학원까지 졸업한 사람이라 어렵게 생각하던 동기들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밤 늦은 시간 불침번을 서다가 눈에 들어오는 해운대의 불빛들, 수많은 호텔들의 불야성을 보며 ‘저 안락한 곳에 잠을 자는 사람들은 누구일까?’라는 생각도 가졌으며, 화생방 훈련으로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뛰쳐나왔을 때 느꼈던 ‘공기’의 소중함, ‘살아 있다’는 것의 고마움을 온몸으로 체험한 시간이기도 했다.
퀴퀴한 모포 냄새, 땀 냄새
그렇게 2주일 정도가 지나 어느 정도 어깨에 군살이 돋아날 즈음 늦은 밤 화장실을 갔다 오다가, 휘영청 밝은 밤하늘의 달을 보니 가슴이 미어져 왔다. ‘부모님의 고마움을 이제껏 왜 몰랐을까’라는 탄식과 함께 훈련소에서 소포로 보내졌을 흙먼지 뿌옇게 묻은 사복을 받아 보시고는 눈물을 흘리고 계실 어머니, 그 옆에 땅이 꺼질 듯이 긴 한 한숨을 쉬고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 한 곳이 저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며칠 동안 장대비가 내려 야외훈련을 뒤로한 채 내무반에서 군인으로서 필수적으로 외워야 할 ‘암기사항’을 숙지했다. 조금이나마 쉴 수 있으려니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정자세로 앉아 있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코끝을 찌르는 퀴퀴한 모포 냄새와 훈련병들의 땀 냄새가 뒤엉켜 속이 메스꺼웠다. 불과 10명 남짓 누울 수 있는 비좁은 내무반에서 스물여섯 명이 서로 몸을 맞대고 있자니 다리는 저려 오고….
흔히 군대는 아무 생각 없이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내게는 이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으로 남아있다. 내 맨몸으로 내 땀으로 전우들과 부대끼며,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들을 알게 됐다. 내가 가진 것이 무척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한 시간이기도 했다.
6주간의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아 3년의 군복무기간이 끝나갈 무렵, 무거운 더블백을 메고 늦깎이 신병(新兵)이 왔다. 그 신병을 보는 순간, 갑자기 지난날 훈련소에 입대할 때 고향 친구가 말없이 흘리던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아마 고향 친구도 내가 안쓰럽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 신병이 슬픔보다 기쁨을,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란 책을 건네주었다.
얼마 전 새해를 맞아 인근의 새벽 인력시장과 어(魚)시장을 찾았다. 경제위기 한파를 가장 앞에 서서 맞고 있는 사람들이다.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찬 공기를 가르며 분주히 움직이는 데도 희망이 없다는 사람들, 그들 앞에서 도지사는 죄인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들을 위로해야 한다면 ‘충실히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하는 믿음이다. 언젠가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좋은 미래 계획이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상이 헬렌 켈러에게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기적 같은 날이다. 매일 매일이 축복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훈련소 시절, 그때의 전우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