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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속의 군시절 - 옮겨온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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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나의 훈련소 시절2] "저는 기어코 옷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원 이정현(李貞鉉) 1958년 전남 곡성 출생. 광주 사레지오고·동국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제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 비례대표),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지원특별위원회, 한나라당 새만금특별위원회 위원. 1980년 6월 25일 논산 훈련소에 입소했다. 5·18 있고 한 달 뒤였다. 훈련소 조교들은 독이 잔뜩 올라 있었다. 5·18 기간 내내 비상상황이었다고 한다. 신발을 신고 잠을 자야 했고, 항상 출동대기 태세였다고 한다. 조교들은 감정이 묻어 있는 쉰소리가 많았다. 유난히 얼차레도 심했다. 훈련병들은 항상 긴장상태였다. 특히 취침점호는 하루 중 가장 넘기기 힘든 일과였다. 까다롭기 이를 데 없었다. 점호 중에 실수를 하거나 조금만 웃어도 곧바로 전체가 얼차레를 받았다. 훈련기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하루는 중대장이 직접 점호를 주관한다고 했다. 초저녁부터 바닥을 닦고, 관물대 각 잡고, 암기할 것 외우고…. 한마디로 야단법석이었다. 같은 내무반 훈련병끼리 서로 “실수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드디어 점호 시간이 되었다. 내무반장의 인원보고가 끝나자마자 중대장이 갑자기 큰 소리로 명령했다. “왼쪽 군화를 든다. 실시! 내려 놓는다. 실시! 든다. 실시!” “칫솔을 든다. 실시!” 이렇게 정신없이 몇 번을 반복하더니 갑자기 “신는다. 실시!” 하는 것이었다. 동작이 완료 되자 중대장은 바로 “오른 실내화를 든다. 실시! 놓는다. 실시!” 하고 이전과 똑같이 반복하더니 역시 “신는다. 실시”하는 것이다. 다음은 “철모 안의 화이바만 든다. 실시! 원 위치! 다시 든다. 실시!”를 반복하더니 “쓴다. 실시!”하는 것이었다. 취침 직전 여름이라 러닝 팬티 차림에 한쪽은 군화 한쪽은 고무신을 신고 화이바를 쓴 꼴은 쳐다보기만 해도 웃음보가 터질 희한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중대장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칫솔을 든다. 실시!” 하는 것이다. 그 모습으로 훈련병들을 침상 앞에 정렬시키더니 “앞에 총! 찔러 총! 받들어 총!”을 연속으로 시키는 것이었다. 침상 건너편 동료 훈련병이 높낮이가 맞지 않는 신발 때문에 기우뚱거리면서 그 작은 칫솔로 진지하게 ‘서서 쏴! 쪼그려 쏴!’ 자세를 취하는 모습은 포복절도 그 자체였다. 조교들이 “웃는 놈 침상 밑으로! 엎드려 뻗쳐!”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다녔지만 한번 터진 훈련병들의 웃음보는 수습이 불가능했다. 모두가 침상에서 배를 잡고 뒹굴고 난리가 났다. 그 동안 그렇게 무섭게 굴던 중대장과 내무반장 그리고 기간병들이 그때서야 비로소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그 동안 훈련 받느라고 수고 많았다”며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등을 두드려 주었다. 감격적이고 멋진 순간이었다. 그 동안의 모든 힘든 일들이 그 순간 다 잊혀졌고, 그날 밤 그 기분 좋은 점호 이야기를 하면서 남은 훈련 기간을 무사히 잘 마쳤다. 155mm 포병부대 졸병 시절의 뺑뺑이 피교육생들은 항상 이런저런 상상의 날개를 펴서 자기들만 가장 고생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피해를 보고 있다고 불평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 우리 중대장은 군대생활을 시작하는 훈련병들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해 처음에는 다소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고 군기(軍紀)도 확립했던 것 같다. 그러나 훈련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훈련병을 엄격하게 대하는 것이 결코 감정이나 사심(私心)에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멋진 아이디어를 짜낸 것 같았다. 그때 중대장은 초급 지휘관이지만 재치 있고, 리더십이 뛰어났던 것 같다. 퇴소 후 나는 155mm 포병부대에 배치됐다. 1980년 초겨울이었다. 힘든 군생활을 ‘365×3’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1980년 6월 25일 군번인데 5·18 직후에 입대했고, 호남 출신,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다 온 이력 때문에 졸병 시절에는 어지간히 굴렀다. 우리 기수가 사회에서 데모를 하는 통에 고참들이 군에서 고생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군 생활은 울면서 시작해서 웃으면서 끝났다. 부대원들 모두 정이 넘쳤고, 그 무거운 155mm 포탄을 들고 유격훈련, ATT(대대훈련), 팀스피리트 등 고된 훈련을 거듭하는 동안 어느덧 정예 포병요원으로 거듭났다. 내게 있어 군 생활은 제2의 성장기였고 어른으로 가는 징검다리였다. 그때 사귀었던 전우들과 지금도 교류하며 지낸다. 지금은 대학교수가 된 당시의 포대장과 가끔씩 술도 한잔 한다. 군 생활은 축소된 사회였고, 또 단기 인생수업을 받는 또 다른 의미의 학교였다. 많은 교훈을 얻었고 체험을 했고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를 만들고 또 봐 왔다. 웃으면서 군생활을 하게 해 주었던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 하나가 생각난다.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 시절 서울에 사는 고향 여자 동창들이 한꺼번에 면회를 왔다. 심심하던 고참들이 이등병 외출 나간다고 전투화를 닦아 주고 옷을 다려 주고 유난히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그것은 친절이 아니라 고문의 시작이었다. “어이, 서무계! 이정현 이병 오늘 밤 보초 빼줘라!” 면회 온 여자 친구들은 서울로 돌아가고 혼자 부대 근처 여인숙 방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귀대를 했는데 난리가 났다. 나갈 때 그렇게 친절하게 해 주었던 고참들의 태도가 돌변해서 갑자기 내무반에 들어오자 마자 나에게 “앉아!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시키면서 혼을 빼놓았다. 이윽고 최고참이 근엄하게 “이 이병 지금부터 어제 위병소를 나간 순간부터 오늘 위병소를 통과하기까지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하라”고 말했다. 나는 “친구들이랑 이른 저녁을 먹고 친구들은 가고 나 혼자 맥주 한잔 하고 그냥 잤다”고 말했다. 그러자 고참들은 내 머리에 알밤 세례를 퍼붓고 “10초 내에 100m 왕복 달리기 실시!”를 시키는 등 야단이었다. 너무 귀찮고 고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나는 같이 장난을 쳤다. “네, 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밥을 먹고 여관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야! 거기서부터 천천히 말해. 그래서?” “저는 체면도 있고 그래서 참으려고 했습니다.”“야, 야, 그래서….” “그런데 저를 계속 괴롭혔습니다. 저는 정말 참으려고 했습니다.”“와~ 야! 정말로 너는 안 그러려고 했단 말이야? 그래서?”” “예, 어느 순간 도저히 더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까르르, 까르르… 그래서?” 고참들은 난리가 났다. “저는 기어코 옷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일을 저질렀고, 피를 봤습니다.” “야 임마! 좀 천천히 자세히 다시 말해 봐. 좀 더 구체적으로, 아 하하하….” 모두들 뒤집어졌다. “어이, 서무계! 이정현 이병 오늘 밤 보초 빼줘라! 그래서? 빨리 말해 봐. 그 다음에는?”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예, 이 한 마리가 겨드랑 밑에서 계속 저를 괴롭혀서 참으려고 참으려고 했는데 너무 괴롭혀서 옷을 벗어 손톱으로 콱 잡았더니 피가 팍 튀었습니다. 이상입니다.”그 뒤 상황은 말을 안 해도 뻔하다. 모두들 배를 잡고 웃다 웃다가 나를 꼬집고 비틀고 차는 등 내무반이 한바탕 뒤집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군생활 동안 웃고 즐기고 체력 단련해서 위장병도 고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제대하니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근무했던 그 부대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아들 같은 후배들 훈련 받고 식사하는 것, 공차고 내무생활 하는 것 한번 둘러보고 싶다. 그 시절이 그립고, 그때 그 전우들이 갑자기 무척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