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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극치(광우병소동을 보면서)-옮겨온글
lakepurity
2008-05-09
[에디터칼럼] 아예 “미국 여행 금지”를 외쳐라 [중앙일보] [2008년도] 에디터 칼럼 지난 에디터 칼럼 보기 07년 2월 3일 나는 바로 이 자리에 ‘뼛조각은 억지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손톱보다 작은 뼈를 이 잡듯 잡아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고 있던 노무현 정부의 억지를 비판한 칼럼이었다. 그로부터 1년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정치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권력의 추가 좌에서 우로 이동한 것이다. 앞 정권은 X선 검사기도 못 찾아내는 뼈를 문제삼아 미국을 괴롭혔지만 지금은 특정위험물질(SRM)만 제거하면 모든 쇠고기를 들여올 수 있도록 했다. 광우병 괴담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저 아직 15년밖에 못 살았어요.” 어린 여학생들이 이런 피켓을 들고 서울 청계천 촛불시위에 나왔다. 미국 쇠고기의 수입 재개가 곧 죽음이라는 말이다. 이쯤 되면 사형수에게 미국 쇠고기를 먹이자는 말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한 연예인 팬 사이트에는 ‘우리의 오빠들을 광우병으로부터 지켜내자’는 격문이 나붙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광우병 마루타(실험 대상)’라는 구호도 들린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발견된 광우병 소는 세 마리다. 한 마리는 캐나다에서 건너온 것이고, 둘은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 두 마리도 1997년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 이전에 태어난 소다. 그 이후는 없었다. 그래서 공인 국제기구도 ‘미국이 광우병을 잘 통제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문제가 복잡할 땐 확률을 따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미국 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몇십 억분의 1이라고 말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가 주변에 널려있는데, 이 정도라면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다. 3억 명의 미국인이 오늘도 쇠고기를 즐겨먹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이렇게 쓰니 벌써 광우병의 ㄱ자도 모르는 놈이라는 아우성이 들려온다. 그 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주둥아리를 놀리고 있구나 하고. 잠복 기간이 10년, 20년, 아니 그보다 훨씬 길 수도 있는데, 어디 지금이 문제냐고. 아닌 게 아니라 어린 학생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엉터리 논리도 바로 이거다. 문제의 고기를 지금 먹어도 발병은 성인이 된 뒤라는 것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주장이 특정 세력의 머리에서 나와 손가락을 타고 인터넷의 바다를 유린했다. 인터넷은 속성상 그렇다 치더라도 일부 방송의 무책임한 보도는 설명할 길도 없다. 괴담의 기폭제가 된 MBC ‘PD수첩’은 문제 논문의 저자를 사전에 만났는지도 궁금하다. 논문은 한국인의 유전자와 광우병 발병과는 연관이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광우병 보도를 쏟아내면서 걷지 못하는 미국 소의 모습을 수없이 틀어댔다. 그러나 이 장면은 미국의 한 동물 보호단체가 동물 학대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미국 고기가 그렇게 위험하다면 그들은 지금 당장 “전 국민의 미국 여행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광우병으로 과거 여러 명의 희생자가 났던 영국으로의 여행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바로 감옥에라도 집어넣어야 한다. 한 해 거의 1000만 명이 미국과 유럽, 일본으로 여행가는데 이것부터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왜 하지 않는가. ‘광우병 발병 가능성에 유념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과 ‘미국 소는 미친 소’라는 주장은 전혀 다른 것이다. 국민 보건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포장된 사기일 뿐이다. 국민 건강을 그렇게 걱정한다면 바이러스로 확산되는 조류인플루엔자(AI)를 더 무서워해야 한다. 지금까지 전 세계 희생자도 AI가 더 많다. 특정 세력은 왜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가. 좌파 세력은 대선과 총선에서 잇따라 참패했다. 지난 10년간 닦은 기반을 다시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들을 조여 왔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마침내 그런 기회가 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쇠고기란 호재를 던져준 것이다. 이들은 광우병으로 머잖아 온 나라 국민의 머리에 구멍이 송송 뚫린다는 공포를 연출했고, 연약한 사회는 휘청거렸다. 좌파 세력들이 반미 운동의 놀이터 마련에 성공한 것이다. 그들은 이번에 한 건 잘 우려먹었다고 할지 모르나 남은 건 역풍뿐이다.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한국과학기술원(KIST) 관계자들은 “한국인이 인간광우병에 취약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말하고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도 9일 “광우병 괴담으로 알려진 내용들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잘못된 사실”이라고 못 박았다. 그런데도 전교조는 15일부터 미국 쇠고기의 학교 급식 반대 운동을 편다고 밝혔다. ‘쇠귀에 경 읽기’란 속담이 있다. 이젠 ‘광우병 걸린 소의 귀에 경 읽기’로 바꿔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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