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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의 세계(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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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착취재] 조종사의 세계 “비행기는 후진 못해… 강제로 시도하면 엔진 망가져” 보잉·에어버스, 제조사 별로 운항법 달라 면허도 따로 # 신정선 기자 [email protected] 입력 : 2007.10.12 23:58 / 수정 : 2007.10.13 13:35 # * 하늘을 나는 조종사의 세계는 어떨까. 조종사들의 직업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기자가 비행기 조종석에 동승했다. 아시아나항공 사이판행(行) A330. 지난 5일 저녁 8시10분 출발 비행기였다. 기 장과 부기장의 조합은 한 달 전 정해지는 비행 일정에 따른다. 신입 기장을 고참 부기장과 짝을 지우는 등 조종사의 경력과 운항 기종 등을 고려해 짝을 만든다. 기자가 탄 비행기의 운항을 맡은 김승회 기장은 “같은 항공사를 다녀도 퇴직할 때까지 한 번도 같이 조종석에 앉아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종사의 근무는 비행 1시간30분 전 ‘운항 브리핑’으로 시작한다. 오늘 날아갈 항로와 기상 상태에 대한 최종 점검 과정이다. 김 기장이 받아든 차트에는 비행기가 날아갈 ‘하늘 길’이 형광펜으로 표시돼 있다. 비행의 최대의 적(敵)은 바람과 기온. 운항관리팀은 만일의 상황에 대비, 회항해야 할 항로와 확보할 연료량을 치밀하게 계산한다. 최악의 경우 불시착할 인근 공항의 날씨도 미리 알아둬야 한다. 비 행기는 후진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으나 “원칙적으로 안 된다”는 게 조종사들의 한결같은 답변이다. 강제로 후진을 시도할 수는 있으나 수백억원짜리 엔진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서 비행기를 활주로로 밀 때에는 따로 ‘푸쉬백 카트’라는 장비가 동원된다. 비행 1시간을 앞두고 조종사 2명과 승무원 12명이 비행기에 올랐다. 이들이 비행기 내외부에 대한 최종 점검과 준비를 마쳐야 승객들의 탑승이 시작된다. 기술·정비팀원과 승무원들이 바쁘게 오가며 음식을 싣고, 청소하고, 정리한다. 정신없이 분주한 듯 보였지만, 각자 임무에 따라 톱니바퀴처럼 돌아간다. * * ▲ 지난 5일 밤 사이판으로 떠나기 직전 A330 기내 조종실에서 아시아나항공 김승회 기장(왼쪽)과 김광석 부기장이 안전운항을 다짐하며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이고 있다. /허영한 기자 [email protected] * 조종실 문은 방탄·방폭처리 조종실 내에는 테러에 대비한 특별한 장비는 없다. 대신, 조종실에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다. 방탄·방폭처리가 된 조종실 문은 안쪽에서 열어줘야만 들어갈 수 있다. 부득이한 경우 비밀번호를 누르고 출입할 수 있다. 조종실은 예상보다 좁았다. 허리를 숙이고 몸을 구부려야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 왼쪽에는 기장, 오른쪽에 부기장이 앉는다. 그 뒤에 보조석이 하나 있다. 보조석은 훈련연습생 등이 탔을 경우에 사용한다. 두 조종사 앞의 계기판에는 기상 상태와 비행 고도 등을 표시할 6개의 스크린이 있다. 머리 위에는 스위치 100여개가 달려 있다. 통과하는 지점의 날씨 정보를 수시로 출력할 수 있는 간이 프린터도 설치돼 있다. 조 종실의 전자시계는 런던표준시(GMT)에 맞춰 있다. 세계 모든 도시의 관제소와 교신하기 위해 통일된 시간을 쓴다. 비행 직전, 생수 두 병과 오렌지 주스, 땅콩, 손을 닦을 물수건 대여섯장이 조종실로 배달됐다. 당연히 술은 안 된다. 밥 먹으면서 조종한다 승 객들에게 식사가 들어갈 무렵, 조종사들도 밥을 먹는다. 기장과 부기장은 반드시 다른 음식을 먹어야 한다. 혹시나 상한 음식을 먹어 이상이 생기더라도 한 사람은 무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장과 부기장의 음식은 따로 구분되지는 않고, 알아서 나눠먹으면 된다. 조종사가 미리 개인적으로 주문하지는 않는다. 김 기장은 두부김치덮밥, 김광석 부기장은 생선찜을 선택했다. 빵 두 개와 샐러드, 김치도 함께 나왔다. * * ▲ 이륙 직전 김승회 기장이 기체의 안전 유무를 최종 점검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 조종사들은 밥을 먹으면서 조종한다. 밥을 떠서 입에 넣으면서도 시선은 계속 창 밖과 계기판을 향해 있다. 첨단항법 장치 덕분에 여유가 있다지만, 식사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일기예보에는 잡히지 않는 구름이 언제 나타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밤비행을 맡게 된 조종사들은 초저녁에 2~3시간 정도 자고 나온다. 수시로 커피와 녹차를 마신다. 조종사들끼리 대화도 잠을 쫓는 데 도움이 된다. 조종사들에게 ‘하늘’은 어떻게 다를까. 밤하늘은 긴장과 자극의 대상이지만, 낮에 보는 하늘의 풍경은 조종사이기에 누릴 수 있는 조물주의 선물이다. “일 본을 지나가는 데 후지산 봉우리 위에 구름이 걸려있었지요. 어찌나 아름답던지…. 혹시나 승객들이 그 장면을 놓칠까봐 일부러 기내 방송도 했어요. ‘여러분 오른쪽으로 보이는 후지산은…’ 제가 관광버스 기사가 된 기분이었죠.” 김 부기장은 “일출도 아름답지만 하늘에서만 볼 수 있는 동그란 무지개가 특히 예쁘다”고 말했다. 컴퓨터가 전하는 기상 상황에 따라 조종실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 찔한 순간도 없을 수 없다. 5년 전, 김 기장이 제주를 떠나 김포로 가는 항공기를 운항할 때의 일이다. 파랗게 질린 여승무원이 조종실로 급하게 달려왔다. 20대 여성이 수면제를 먹고 의식불명 상태였다. 문제의 승객은 알약을 삼킨 직후 승무원을 호출했다. “저, 수면제 80알 삼켰어요.” 김 기장의 등에 땀이 흘렀다. 회항할 것인가, 그대로 날아갈 것인가. 항로와 거리를 점검한 김 기장은 김포로 그대로 가기로 결단을 내렸다. 승객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조 종사들에게는 영어는 공기와 같다. 김 기장도 “한국인과 함께 비행하는 것은 두 달반만이다”고 할 정도로 외국인 조종사와의 동승도 잦을 뿐 아니라, 외국 관제탑과 교신할 때도 영어를 써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꾸준히 영어 실력을 닦는다. 사내 사이버 영어강좌를 챙겨 듣거나 필요한 책을 갖고 다니며 공부를 한다. * * ▲ 승객들이 탑승하기 전, 김승회 기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승무원들에게 날씨와 주의사항 등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맨 왼쪽이 김광석 부기장. /허영한 기자 * 비행 12시간 전부터 음주 금지 그들에게 지상의 휴식은 하늘의 삶을 위한 준비과정이다. 사이판에 내린 김 기장과 김 부기장은 각각 헬스와 골프로 몸을 풀며 재충전에 나섰다. 조 종사들의 비행 스케줄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비행시간의 2배 이상을 쉬도록 짜여 있다. 여기에 비행기 운항 간격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 운항 일정이 결정된다. 아시아나의 경우, 비행시간이 8시간 정도인 인도 델리로 가는 경우에는 3박4일, 혹은 4박5일 동안 머무르게 된다. 매일 운항되는 대한항공 LA노선의 경우, 3박4일이 기준. 운항횟수가 적은 노선은 4박 5일 또는 5박6일 쉬게 된다. 쉬는 요령은 따로 없다. 최상의 몸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면 된다. 단, 비행 12시간 전부터는 술은 금지다. 살찐 기장은 없다 조종사는 1년에 두 번 정기검진을 받는다. 검진 후에는 ‘화이트 카드’라고 불리는 일종의 건강검진통과증을 반드시 지녀야 한다. 안경을 쓰거나, 특정 약을 복용하고 있을 경우에는 따로 표시가 된다. 안경을 착용할 경우에는 하나가 깨질 경우를 대비해 반드시 2개를 갖고 다녀야 한다. 조종사들이 즐기는 대표적인 운동은 골프와 등산. 최적의 몸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헬스클럽에서 몸 만들기에 열중하는 조종사도 적지 않다. 복부 비만도 조심해야 한다. 고혈압은 돌연사를 유발할 수도 있다. 과다 체중일 경우 의사가 1차 경고를 한다. 의사의 경고 후에는 수시로 진행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선 호하는 공항이나 기피하는 공항이 있을까. 김 기장은 “관제 시스템이 낙후된 공항이 힘들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겐트나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등은 아무래도 꺼려진다. “담당자들의 영어 발음도 영 안 좋고 라디오도 지지직거리고 레이더도 좋지 않거든요.” 인도는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고 좋아하지 않는 조종사도 있다. 한국 식당도 쉽게 찾기 어렵다고 한다. 반면, 오히려 이국적이라서 좋다는 조종사들도 있다. * * ▲ 조종사들이 기내에 반드시 들고 타야하는 운항지침서들. * 조종사는 두 개의 가방을 들고 다닌다. 열어보니 ‘베고 자도 되겠다’ 싶은 두꺼운 책이 네 권이나 들어있다. 항공운항지침서다. 수시로 새로운 자료를 끼워넣을 수 있도록 철이 된 이 책들은 운항 시에 반드시 갖고 타야 한다. 조종사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온갖 지도와 교신 약어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조종사의 가족들이 가장 귀를 기울이는 뉴스가 바로 ‘날씨’. 김승회 기장의 부인 A씨는 “태풍이 불 때는 아무래도 하늘을 자주 쳐다보게 된다”고 말했다. 기장이라고 아무 비행기나 몰지는 못한다 귀국 비행기는 B777기. 같이 타고만 가는 조종사를 ‘데드 크루(dead crew)’라고 부른다. 기장과 부기장이 데드 크루로 가는 경우, 기장은 1등석, 부기장은 비즈니스석에 타는 게 원칙이다. A330 면허를 가진 김 기장과 김 부기장이 데드 크루로 가다가, 만약의 경우 B777의 조종간을 잡을 수도 있을까.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로 안 된다. 비행기 제조사 별로 운항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항공기는 기종별로 면허제도가 있다. 조종사는 면허가 있는 기종의 조종간만 잡을 수 있다. 수술자국 있으면 기장 못 될까? 맹장 수술 등 수술자국이 결격 사유가 될까. 그렇지 않다. 수술자국에 대한 오해는 비행기 제작 기술이 낙후돼 기내외 기압조절 장치가 제대로 장치하지 않았던 옛날에 나왔다. 컴퓨터로 돌아가는 요즘 비행기를 조종하다 수술 자국이 터질 염려는 없다. 민항기 조종사는 어떻게 선발될까. 아시아나 항공의 경우 사업용조종사(COM) 자격증, 비행시간 250시간, 토익 700점 이상을 기본 자격으로 요구한다. 대한항공도 비행경력 1000시간 이상의 군 조종사나 비행학교 이수자를 대상으로 조종사를 뽑는다. 이들 중에서 항공상식, 영어, 시뮬레이터 심사, 면접과 신체검사 등을 거쳐 최종 인원이 결정된다. 기장 승격을 위해서는 지상·시뮬레이터 훈련을 거치며 항공안전본부 심사를 포함 서너차례의 심사를 거쳐 최종 선발된다. 기장은 총 비행시간이 4000시간이 넘어야 하며, 부기장 경력 4년 이상이 돼야 한다. 기장 1명이 탄생하기까지는 보통 9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장 연봉은 1억4000만원 선 연 봉은 어느 정도 될까. 아시아나의 경우 기장 1억4000만원, 부기장 9500만원 정도. 대한항공도 이와 유사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나 조종사들에게는 연 1회 부부항공권이 지원되며, 병가 중에도 최대 2년간 평상시 급여의 100%가 지원된다. 미국 포브스지가 발표한 미국에서 연봉을 많이 받는 직업 25가지 중에서 기장은 14위(평균 14만380달러)에 올랐다. 조 종사는 몇 명이나 될까. 아시아나 항공의 조종사는 모두 1000여명으로 외국인 조종사가 120여명이며, 여자 조종사도 5명이 있다. 대한항공의 조종사는 총 1900명 정도. 여성은 6명이다. 조종사들은 “승객들이 무사히 비행기에서 내리는 것을 볼 때 자부심을 느낀다”고 입을 모아 답한다. 아시아나항공 정진희(34) 부기장은 “뜨고 내릴 때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비행을 사랑한다”며 “소심하면 안 되고, 섬세하면서 와일드한 사람이 비행에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정답: 음식에 이상이 있을 경우 한 사람은 무사해야 하기 (때문에) * * 인천공항에서 본 사이판행 아시아나 항공기 이륙 전 조종사들의 준비과정. /허영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