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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인생] '행복'을 대출받아… 평생 빚갚는 시대
hyesarang_canada
2006-03-13
[할부인생] '행복'을 대출받아… 평생 빚갚는 시대
대학때부터 만기20년 학자금 빌려쓰고
주택자금도 당겨쓴 뒤 수십년동안 상환
중산층 직장인 ‘長期대출’ 새 흐름으로
‘4000만원까지 10년간 빌려 공부한 뒤 취직해서 10년에 걸쳐 갚아라.’
이런 취지로 올 1학기에 처음 나온 만기 20년짜리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에 전국에서 대학생 31만3800명이 모여들었다. 전체 재학생의 14%에 해당한다. 작년 2학기(만기 14년짜리) 학자금 대출 때 18만2000명이 신청했던 것보다 37% 늘어났다.
1학기 등록금 300만원을 내려 이 대출을 신청한 고려대 2년생 김모(22·경영학과)씨는 “퇴직한 부모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며 “대출을 받아 공부한 뒤 좋은 회사에 취직하면 이자를 쳐도 몇 배 수익이 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교육부 박성민 학자금 팀장은 “학생 본인 이름으로 대출받기 때문에 부모가 신용불량자라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은행과 저축은행 등의 일반 학자금 대출까지 합치면 대학생 10명 중 2명꼴로 빚을 내 학교를 다니는 것으로 박 팀장은 추정했다.
미국에선 절반 가량의 대학생이 학자금 대출을 이용하고 있다. 우리도 몇년 안에 미국과 비슷한 형태로 갈 것으로 교육부는 보고 있다.
빚을 내서 대학을 다니고, 차를 사고 집을 산 뒤 평생 그 빚을 갚으며 산다…. 선진국에는 일반화된 ‘가불(假拂) 인생’시대가 한국에도 왔다. 고령화 추세에다 퇴직을 빨리 맞아 자녀 부양 능력이 약해진 부모들이 점점 더 일찍 자식들을 ‘빚으로’ 독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관광회사에 다니는 손혜영(27)씨는 대학을 졸업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매달 8만원씩 학자금 대출금을 갚고 있다. 서울 K대학을 다니던 6년 전 5학기분 등록금과 생활비조로 빌린 돈인데, 앞으로 1년을 더 부어야 끝이 난다.
그런데 최근 갚을 빚 하나가 더 늘었다. 내 집을 사려고 남편과 함께 2억원의 주택 담보 대출을 신청한 것이다. 앞으로 20년 동안 매달 130만원씩 갚아 나갈 계획이다. 손씨는 “이렇게 되면 퇴직시기인 쉰 살 때까지 빚을 갚아야 한다”고 했다. 그의 남편은 자동차 할부금을 2년째 붓는 중이다.
두 자녀의 아버지 최해준(43·생명공학회사 연구원)씨도 2년 전 대출을 받아 서울 목동에 아파트를 장만했다. 월급의 3분의 1이 은행·저축은행의 대출금 갚는 데 들어간다. 앞으로 8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빚을 청산할 계획이다. 그는 “자식들 결혼시키고 퇴직하고 나면 남는 건 집 한 채뿐”이라며 “나중에 집을 팔아 필리핀에서 노후를 보낼까, 실버타운으로 들어갈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장기(長期) 대출 상품도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30년에 걸쳐 갚는 ‘주택 담보 대출’이며, 20년 만기 ‘학자금 대출’, 5년 만기 ‘자동차 할부’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지난 2월 초 주택금융공사가 30년짜리 고정금리 주택 담보 대출을 처음 내놓았는데 한 달 만에 93억원어치가 팔렸다.
최근의 ‘평생 대출’ 양상은 수년 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과거엔 주로 서민들이 생계를 위해 단기로 돈을 빌린 뒤 못 갚고 연장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부채가 장기화되는 ‘비(非)자발형’이었다. 반면 요즘은 중산층 직장인들이 미래에 누릴 ‘삶의 질’을 장기 할부로 미리 당겨다 누리려 하는 것이다.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쓰는 기간도 눈에 띄게 길어지고 있다. 시중 은행에서 10년 이상 장기 대출을 이용하는 비율은 작년 말 현재 48.8%로 2년 전보다 6배나 늘었다. 주택 담보 대출은 2년 전만 해도 ‘3년 만기 일시 상환’이 주를 이뤘는데, 지금은 신규 대출의 절반이 10년 이상 짜리다. 그만큼 가계 경제의 호흡이 길어졌다는 얘기다.
신한은행 한상언 재테크 팀장은 “좋건 싫건 평생 빚을 끼고 살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젊을 때 모기지론(장기 주택 대출)으로 집을 사서 평생 동안 갚고, 은퇴 후엔 역모기지론(집을 담보로 매달 생활비를 연금식으로 받는 대출)으로 생활하는 것이 평균적 중산층의 일생이 된다는 것이다.
신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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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03.13 18:44 36' / 수정 : 2006.03.14 02:34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