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을 팽게치던 그 남자. 3월 23일 잠실학생체육관. 박근혜의원의 당대표 당선이 선언되는 순간 북쪽 출입구 일반석. 한중년신사가 스르륵 일어나면서 안경을 벗으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고 있네요. 그리고 그 신사는 속으로, "근혜야, 잘 됐다...정말 잘 됐어...이제야 30년전의 그 빛을...." 떠나갈듯한 장내의 환호성속에 아 대한민국이 울려 퍼질 때 그 신사가 소리없이 체육관을 떠나는 장면은 아무도 눈여겨 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꾸물한 봄날의 하오. 체육관밖의 그 신사는 ... 봄볕 아롱이는 먼 하늘을 쳐다 보면서 옛추억에 잠기지요. 1972년 11월 4일. 서울의 각대학교 학생들이 술렁이고 있네요. 유신철폐라는 프랑카드가 학교벽마다 자리잡고 거리는 망석모를 쓴 전투경찰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어 당연히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어요. 서강대 구내식당. 한 남학생이 식사를 하고 있는 한 여학생에게 다가서더니 난데없이 이렇게 소리치는 거네요. "야, 너는 이땅에서 나는 쌀로 밥해먹을 자격이 없어!" 영문을 모르는 듯 당황한 여학생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젓가락끝만 입속으로 빨고 있는데, 그 남학생은 "밥 먹지 말란 말이야!"하더니 여학생의 도시락을 바닥에 팽게치고 말았어요. 주위에서는 다른 학생들이 야단이 났어요. "우~~~ 철민이 잘한다" "맞어, 저 기지배는 밥먹을 자격이 없다구" "독재자의 딸도 밥먹고 사나?" "나아쁜 년" 하며 잠시의 소란이 계속되었나 하는 찰라에, 경호원인듯한 건장한 남자들이 뛰어 온것이였어요. 그리고는 날렵한 솜씨로 도시락을 팽게친 철민이란 학생과 그 동료들을 뒤로 꺽어 잡은 것이네요. 게중에 대장인듯한 경호원이.."이놈들 봐라, 너희들이 감히? 너희들 오늘 잘 걸렸다"고 하면서 교복입은 학생의 뺨을 올려 부쳤네요 그 순간, "아저씨!"하는 소리가 그 여학생의 입에서 나왔어요. "아저씨, 그 팔 놓으세요! 여기는 상아탑이란 말이네요. 당장 못 놔요?" 머쓱해진 경호원이 학생의 비틀었던 팔을 놓으면서 "아가씨..그래도 저놈들을..." 하고 말을 이으려고 하자, 그 여학생이 가로 막았어요. "아저씨, 어떠한 이유로도 폭력은 안되요. 그리고 여기는 신성한 학원이고요. 아시겠어요?" "네!" "그러면 돌아가세요, 저 이렇게 멀쩡하잖아요?" 머리를 글적이며 경호원들이 구내식당을 빠져 나가자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 모두가 조용해지지 않았겠어요 조용한 가운데 그 여학생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바닥에 팽게쳐진 도시락을 얌전하게 하나하나 주워담는 것이였어요. 이를 본 한 학생이 또 빈정거렸어요. "어? 대통령딸이 보리밥을....?" 그러자 다른 학생 또 하나가, "게다가 무짱아지까지....?" 그러나 이런한 광경을 아까 그 남학생, 철민이라는 애가 저만치고 보고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어요. 자기 자신이 엎질놓은 도시락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그리고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하얀보자기에 싸고 있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였어요. ? 그 사건 이후로 이상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여학생들이 하나둘씩 구내식당으로 몰려들어 박근혜학생옆에 앉는 거였어요. "얘, 청와대 무짱아찌 맛 좀 보자!"가 그 이유였어요. "얘, 그거 니네 엄마가 직접 담은 거니?" "예, 니네엄마 빠쁠텐데 집에서 직접 무짱아찌 담니? 설마?" 여학생들로서는 당연히 호기심이 일지 않을수가 없는거에요. 이나라 권력의 최중심에서 철권을 휘드르는 독재자. 그딸의 도시락이 보리밥에 무짱아찌라니... 그것을 손수 영부인께서 담근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였어요. 당연한 것 아니에요? 심지어 그중에 한 여학생은 "에이, 설마? 국민들한테 보리밥먹는다고 쑈 하는거 아니니? 아니면 무짱아찌 담아 먹는다고 쑈하는 거거나..." 그러자 그 옆의 한 학생이, "얘는...쑈라니? 근짱이 보리밥 한두번 가져와서 먹니? 우리가 일학년때부터 봐왔는데 그게 쑈니?" "허긴 또 그러네..." 학생들중에서도 긴가민가였어요. 믿는사람도 있고 안믿는 사람도 있고.... (근짱이란 근혜언니의 대학생때 별명_짱이란 개념이 요즈음의 개사소나 붙이는 짱이 아니라 당시에는 돈을 아끼며 쓰는 학생) 결국 그 와중에서 근짱이 내놓은 의견은 오늘은 오후강의는 딧치(ditch)하고 청와대에 직접가서 너희들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어떠냐...고 의견을 내 놓았어요. 당시 학생들로서는 청와대하면 사람죽이는데 인줄로 끔찍한 곳으로 알고 있었으니 선뜩 대답할 학생도 없었지요. 학생들의 망설임을 보자 근짱이 이렇게 말했데요. "얘들은 뭐 청와대가 사람죽이는덴지 아나보지? 거기도 사람사는데라구 너네들 집이나 하나도 다를 것 없어...하여튼 가서 실제로 너희들이 보라구... 궁금증이 풀어질테니까..." 유신시대에 박대통령일가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청와대별관 이층에 여학생 다섯이 모였지요. 호기심의 극치였을 것 아니에요? 대통령집은 어떻게 사나? 그 딸의 방은 얼마나 호화로운 장식이 되어있을까? 사방에 금붙이이고 사방에 옥장식....뭐 이런 생각만 해오던 여학생들에게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정말 믿어지지가 않은거에요. 특히 근짱의 공부하는 책상. 하얀테이불보를 벗기고 나니...그 초라함이란... 근짱이 여고이학년때인가 책상이 작다고 불평하니까 어느 일요일인가 박정희대통령께서 손수 만들어 주었다는 그 책상. 페인트칠도 안된 아직도 원목 그대로인 그 책상. 박대통령이 얼마나 조악한(?) 목수임을 단번에 보여주고 있었어요. 한 아이가 화장실에 갔다 오더니 불평을 하는거에요. "화장질 워시가 시원하게 안되잖아?"하는 거였어요. 화장실워시라는 말에 여학생들은 호호호, 까르르...웃는 것은 당연한것이에요. 일동의 웃음보가 좀 조용해지자 근짱은. "그래도 내려갈 것은 다 내려 가잖니?"하고 천연덕스럽게 내놓은 썰(?)에 모두가 또다시 한바탕 웃지 않을수가 없었어요. 그때 그중에서 호기심많기로 유명한 혜옥이(현재모화장품회사사장)라는 학생이 "청와대 물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가보다, 얘. 내가 좀 봐 보까?" 하면서 화장실로 들어갔어요. 그리곤 잠시후. "얘들아, 이리 좀 와 봐바. 이게 뭐니. 이게 뭐야?" 호들갑소리가 났어요. 일행이 전부 화장실로 쫓아 들어갔는데 "변기 화장실 수조속에 웬 벽돌이?...이게 뭐니, 뭐야?" "어머, 이게 뭐야. 이게 왜 여기 들어가 있니?" "어머머, 난 또 이런건 생전 첨 봐..." 그러자 근짱이 하는 말이, "그거 빼면 엄마한테 혼나...우리엄마가 너 놓은거야... 수돗물 아낀다고...너희들도 집에가면 물 아껴써... 지금 호남에는 가뭄이 들어서 모를 못낸다고 하잖니...?" 어머? 어머. 이럴수가? 그날 저녁 육여사가 손수만드신 수제비국을 먹고 청와대를 나오는 여학생 네명의 발걸음은 참 무거웠지요. 어머? 정말 이럴수가? 그중에 특히 혜옥이라는 학생은 얼굴만 빨게 진체로 터벅터벅 걸었다고 하지요. 그 사건이후 혜옥이라는 학생이 한국최고의 화장품회사사장이 되기까지 근짱의 근검, 절약정신에 먹은 쑈크가 바탕이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이야기가 좀 이상하게 흘렀네요. 하여튼 그날 이후, 도시락을 팽게친 철민이라는 학생의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남학생의 고민이니까 여학생의 고민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볼수가 있네요. "딸을 보고 애비를 알수 있을까...?" "사랑하는 딸에게 보리밥과 무짱이찌를 먹이며 자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박정희! 정말 이 인간 나쁜놈인가? 아니면 우리가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유, 민주 그리고 삶! 이 세가지를 놓고 고민한것이지요. 한국식 민주주의가 과연 박정희의 독제를 연장하기 위한것만인가? 유신이란 무엇인가? 더욱이 철민이란 학생도 그가 고등학생이였던 60년대. 쌀대신 밀가루음식을 하루 세끼 먹으면서 변소에 가서 설사를 한 기억이 새로웠네요. 숱한 고민 끝에 철민이 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으로 살아온 지난 30년의 세월을 회상해 볼 때 학창시절에 자신의 반박을 외치던 그 용기가 용기가 아니라 그것은 만용이었다는 것은 느끼기 시작한것이지요. 그러니까 70년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받는 봉급은 일반적으로 4-5만원선이였다고 하네요.그러나 그 십분의 일인 오천원만 가져도 "느긋```!하게" 술한잔 마실수 있었다고 하네요. 운 좋으면 남자들이 좋아하는 그 영계(?)냄세도 맡아볼수 있고 말이에요. 봉급날이면 집에 들어가서 마누라앞에 개선장군과도 같이 행동할수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나 90년대 후반이후, 봉급은 삼십사십배가 올라도 봉급날 그렇게 초라해 질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허다못해 포장마차에서 쐬주한잔에 오뎅한접시도 느긋한 마음으로 먹을수 없는게 현실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에요. 상대성 빈곤이 바로 이것이네요. 어떤 사람은 자신의 봉급에 열배-열다섯배의 돈을 추석선물인줄알고 받는 세상에 자신의 봉급이 자랑스러울수가 없는것이에요. 시장갔다온 마누라가 오이값이 금값이니 감자값이 황금값이니 하면서 푸념을 늘어 놓을 때면 자신의 가슴을 치지 않을 남편이 없네요. 봉급쟁이 십수년만에 명태라는 죄목으로 몰려 나오고 그나마 퇴직금이 바닥이 난 사람들. 이제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죽음 바로 그것 아니에요? 저 도독놈들이 청와대 높은곳이 올라 앉아서 개혁과 참여를 부르짖고 있을 때 숱한 국민들은 희망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자살사이트나 찾아 다니고 있는 이 비참한 현실을 초래하기 위해서 나는 그렇게 반박을 외쳤던가? 유신철폐를 ... 그렇게 외쳤던가???? "나는 속았으무니이다" 문세광이 한 말이에요. 잘못 생각한 헤까닥의 군중심이 일국의 국모를 시해하고 자신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는 순간에 세상을 바로 본것이네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이상인지....를. 철민은 자신의 한 행동이 그렇게 부끄러울수가 없었어요. 그때 그 여학생. 자신이 팽게친 도시락을 입술을 깨물고 주워담고 있던 그 여학생의 분노를 어떻게 사과하면 좋은지.... 순간 철민은 자기의 아들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어요. 자기 자신의 반골(?)정신을 이어 받아 오늘도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선두에 나섰을 아들을... 철민은 결심을 하네요. 오늘은 집에 들어가서 회초리를 들더라도 아들의 잘못된 사회인식을 바로 잡아 주겠다고 말이지요. "근짱이 그날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 시켜 주어야 하겠고 나아가서, 신돈의 요설을 가진 마수에서 탈출시켜야 겠노라고 말이지요. "근혜야 부탁한다, 근혜야 부탁해!" 이 한마디의 말을 하지 않고서는 차마 잠실체육관을 등지고 걸을수가 없었어요. "근혜야, 조국을 부탁한다..." (펀글) 근혜 ! 당신 아버지는 배 고프던 시절에 저희들에게 배 고픔을 가시게했고 당신은 ! 이 어려운시기에 우리들 우리 자식들 앞에 오셨습니다. 400만이 넘는 신용 불량자 , 자살하는 가정 어저께 15세 소녀가장이 살기 힘들어 자살했다는 보도를 보았을때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동서 갈등에다 이제는 세대간에 갈등마져.. 아버지 닮은 강인 함으로 어머니 닮은 인자함으로 우리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 가소서.... 독재자의 딸이라고 아무리 비난해도 당신은 우리의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