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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김용출/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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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十生子非吾子 財産與之? 他人勿犯

칠십생자비오자 재산여지서 타인물범

 

이 문장의 첫째 해석은 ‘칠십 노인이 아들을 얻었다. 칠십에 낳은 아들이니 그의 아들이 아니다. 재산을 사위에게 전하니 타인은 손대지 말라.’ 하는 것이었다. 사위의 해석이었다.

다른 해석은 ‘칠십에 낳은 아들이라고 어찌 아들이 아니랴, 재산을 전하니 사위는 타인이라, 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성장한 아들의 해석이었다.

어느 해석이 맞을까. 사건은 원님에게 올라갔고, 원님의 해석은 아들 편이었다. 원님은 칠십에 낳았어도 아들이라 인정하고 재산을 아들이 받도록 판결했다. 이런 경우를 말해서 ‘이현령비현령’이라 하기도 하고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한다고 해서 ‘아전인수’라 하기도 한다.

 

이렇게 글이나 말이 본래 말한 사람의 의도대로 해석되고 전달되기가 쉽지 않다. 해석에 따라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다툼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무릇 글이나 말은 그 뜻이 명확해야 한다. 그리고 글을 읽는 쪽에서도 자기의 주관적 생각만 앞세워서는 곤란하다.

 

경에도 방언에 대해 말하면서, 방언은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이므로 가능하다면 예언을 할 일이지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는 방언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교훈한다. ‘혹 저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저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니라’ 하였다.

 

시인 유안진의 소설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의 내용 가운데 경술국치 때의 이야기가 나온다.

영남 유림대표로 참석한 심 씨가 조일합방의 가부를 묻는 자리에서 ‘불가불가’라고 써내었다. 그런데 왜인들이 그것을 ‘불가불 가’로 해석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심 씨는 찬성하는 쪽이 되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영남 유림에서는 이런 회색분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분에 들끓어 처벌을 논하게 되었다. 심 씨 자기는 ‘불가불가’를 두 번 써내었다고 변명을 했다는 것이다. 즉 절대로 불가하다고 강조해서 쓴 것이 ‘불가불가’였다고.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심 씨는 식솔을 데리고 야반도주하였고, 유림에서는 분풀이로 심 씨 집에 불을 질러 버렸다. 왜인들의 교활함과 심 씨의 경박함이 심 씨 문중을 망치고 만 셈이었다. 망국에 비하면 작은 일이지만.

 

애매모호, 정말 반대할 뜻이었다면 불가라고 한 번만 쓰던지 아니면 ‘불가’를 띄어서 두 번 써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띄우지 않고 ‘불가불가’라고 했으니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불가불 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심 씨의 속뜻을 누가 알랴. 영남유림을 대표해서 갔으니 당연히 불가가 되어야 옳을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회의의 위압적 분위기에 눌려 자기신변의 위험을 감지한 심 씨가 감히 불가를 못하고 애매모호하게 ‘불가불 가’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랴. 말을 잘못하는 데서 오는 설화도, 글을 잘못 쓰는 데서 오는 필화도 알고 보면 너무 과격하거나 또는 애매모호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무슨 뜻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애매한 경우가 많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너무 되바라지게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함으로 인간관계가 경색되기도 하고 화목에 금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꼭 시비를 가려야 하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달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럴 때는 애매모호가 문제가 된다.

 

크든 작든 한 단체나 사회 혹은 나라의 지도자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많은 경우에 최종판단을 지도자 혼자서 해야 한다. 그래서 지도자는 외롭다. 굳이 헤리 트루만이 말했다는 ‘The buck stops here', '책임은 내가 진다’ 라는 거창한 용어를 동원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말이다.

 

때로는 지도자의 결정에 나라의 명운이 걸린 예는 허다하다. 그럴 때 지도자는 개인적 이권 문제에 천착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그가 속한 사회나 나라의 먼 장래를 볼 수 있는 혜안과 비전, 용기가 필요하다. 정직성, 창의성, 희생정신, 솔선수범은 모두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개인의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으면서 그러한 덕목들을 총동원해서 올바른 결정을 할 때 그 결과는 좋은 열매로 나타날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러한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잘못된 결정을 해서 나라가 패망한 일, 또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올바른 결정을 함으로 나라가 흥한 일들은 많다. 이렇게 전체가 흥하느냐 퇴보하느냐의 문제가 지도자의 결정에 달려 있다. 지도자의 결정이 때로는 반대와 반발을 불러 올 수도 있다. 공명정대가 쉽지 않다. 그래도 지도자는 사익을 떠나 올바른 결정을 했을 때 그 결과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필부들조차도 그의 생각이나 판단이 애매모호하면 가족을 고생시키고 자신이 고생을 한다. 애매모호가 무난한 삶을 보장해주는 방편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나이와 함께 요즘 나의 노년의 삶이 참 애매모호하다. 사는 것인지, 안 사는 것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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