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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김용출/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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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문협회장

 

오랜만에 C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지낸다고 했다. 그리 반갑지도, 그 반대도 아닌 덤덤한 말이었다. 처음에는 싱거운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마디 안부를 더 묻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그냥 지낸다’는 말에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다. 나도 그냥 지내고 있다. 특별히 할 일도 없고, 뛰고 구를 일도 없다. 하루하루 세월이 가는대로 지낸다. 때 되면 먹고, 때 되면 잔다. 때로는 멍때리는 시간도 있고, 소파에서 TV나 보면서 뒹구는 시간도 있다.

그래서 심심하던 차에 ‘그냥’에 대한 글을 찾아보았다. 몇 시인의 ‘그냥’이라는 시가 있었다. 나태주 시인의 ‘그냥’은 이랬다. <어떻게 살았어? 그냥요, 어떻게 살거야? 그냥요, 그냥 살기도 그냥 되는 것만은 아니다>. 문삼석 시인의 ‘그냥’에서는 <엄만 내가 왜 좋아? 그냥, 넌 엄마가 왜 좋아? 그냥> 이것은 아이와 엄마의 대화다. 배창환 시인의 ‘그냥 그대로 흘렀으면 좋겠네’는 개발은 그만하고 자연 그대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함의의 시였다.

 

어떤 스님이야기에서는 '어떤 스님'이 아닌 ‘그냥 스님'이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어떤 스님‘이 된다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갑자기 어떤 사람보다는 ’그냥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연쇄반응이 되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떤 대단한 사람이 못된 것이 때로는 자신에게 미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냥 살면 되지. 그러나 세상은 사람을 그냥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과학이 말이다. 과학의 진보가 인간에게 많은 편리를 제공해서 좋다. 하지만 때로는 덜 발달한 옛날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수많은 새로운 숙제를 발생시키는 것이 과학 진보의 결과이기도 하다. 편리에 따른 경제적 부담의 증가와 함께 자본주의의 민낯도 드러난다. 자본과 동떨어진 현대문명은 없다. 셀폰 안에 장착된 그 많은 기능이 꼭 필요한 소용일까. 집전화 하나면 충분한 나에게는 번잡하고 불편할 뿐이다. 편리 대신에 머리 아픈 일도 동시에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드시 그냥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아파트 입주민들이 공사에 하자가 많아 수리를 제대로 하고 입주했으면 좋겠다고 시공사 측에 항의를 했다. 그랬더니 시공사 측에서는 ‘그냥 사세요’ 했다. 입주민들이 뿔이 났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냥 사는 쪽에 방점을 찍고 싶다. 아파트 이야기는 빼고 말이다.

류시화 시인이 영화배우 김혜자와 함께 네팔로 여행을 갔다가 경험한 이야기를 쓴 글을 읽었다. 수도 카트만두 외곽에 있는 유적지를 방문했을 때 겪은 일화였다. 긴 이야기를 요약하면 김혜자가 장신구를 파는 여자의 옆을 지나다 울고 있는 여자를 보고 그 옆에 앉아서 같이 울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혜자는 팔찌 하나를 사고 300달러를 그 여자 손에 쥐어주고 일어났다. 300달러는 그 여자가 한 달 동안 벌어도 만져보기 힘든 큰돈이었다. 나중에 류시화가 김혜자에게 물었다. 왜 그 노점상 여인에게 그런 큰돈을 줬느냐고. 그랬더니 김혜자는 ‘누구나 한 번쯤은 횡재를 하고 싶지 않겠어요?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들잖아요.’라고 했단다. 그래서 그냥 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장사가 안 되어 울고 있는 여인이 불쌍해서 주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유 없이 그냥 줄 때 그래서 상대방이 행복할 때 그 행복은 곧 준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이 행복의 원리라는 이야기였다.

 

그냥 살고 싶다. 삶에의 의미, 이유나 가치, 왜 죽어야 하는지의 이유, 따지고 물으면 끝이 없다. 수많은 철학자, 사상가, 종교인들이 묻고 또 물은 질문이다. 초월도, 황홀경도, 신선도, 무릉도원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본래부터 없었던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그 많은 이론들을 다 내려놓고 살고 싶은 것이 지금의 내 심정이다. 삶도 죽음도 본능적인 것, 가장 자연스러운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힘든 죽음도 많기에 하는 말이다.

십 년 면벽 수련후 세상을 떠난 성철 스님의 마지막 설법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였다. 유명한 스님이 한 말이니 다 같은 말인데도 유명해져서 그 이후 그 말은 장삼이사도 읊조리는 말이 되었단다. 성철 스님이 진작 그것을 몰랐을까. 알았지만 깨달음이 오기까지에는 많은 번민의 시간이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 말이다. 그것들은 천 년 전에도 거기에 그냥 그렇게 있었고 거기에서 그렇게 흘렀다. 지금도 그렇게 서 있고 그렇게 흐르고 있다. 그것이 자연이고 진리이다. 자연과 진리는 변함이 없고 변하는 것은 인생뿐이다.

 

나는 나에게 타이른다. 그냥 살아라. 네가 무슨 대단한 업적을 이룰 일도 없고 또 이루어 본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대수냐. 그럴 능력도 없지만 격식을 갖추고 번거롭게 살지 말고 그냥 살아라. 그래서 요즘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구름이 흘러가듯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산다. 나 자신을 닦달하지 않는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잔다. 있으면 있는 대로 살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 어딜 가고 싶으면 가고 머물고 싶으면 머문다. 글도 쓰고 싶으면 쓰고 쓰기 싫으면 안 쓴다. 아프면 아픈 대로 살고 안 아프면 안 아픈 대로 산다. 친구나 지인들로 부터 알림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본래 그랬던 것이다. 잠시 알다가 끝난 것 뿐이다. 그러다가 저들도 모르게 조용히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다. 죽음조차도 자연의 이치대로 그냥 죽고 싶다. 그 이치대로 죽을 수 있다면 최선일 것이다. 뒷일도 염려할 바 아니다. 계산할 그 무엇도 없다. 공수래공수거이다. 그냥 왔다가 그냥 가는 것이 인생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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