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인터뷰]교육심리.철학자 김보경 교수(전 온타리오 정신건강센터 선임임상심리학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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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가 아니라 ‘정년’(定年)…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좀 쉰다는 말 뜻 그대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약간의 휴식이라 생각하며, 무엇에라도 도전해 보고자 합니다”

 


?김보경(金寶敬) 교수 : 경북대학교 교육학과 학사 및 석사/캐나다 토론토대학교 교육학석사 및 철학박사(특수교육 전공, 정신의학 부전공)/캐나다 온타리오주 전문심리학자 면허 소지(Registered Psychologist)/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상담전문가/캐나다 온타리오 주정부 산하 정신건강센터 선임임상심리학자(15년 근무)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객원교수/한국과학기술원 초빙교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정년 퇴임)/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경주분교) 불교상담학과 객원교수. ▶저서: 禪과 파블로프의 개(교육과학사, 2001), 대한민국 학술원 2002년도 우수도서로 수상, <무념치유> 등   

 

 본보는 교육심리학자요, 철학자인 김보경 전 경북대 교수와 인터뷰를 나눴다. 경북대 사범대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대, 토론토대학교 등에서 교육학, 심리학, 교육철학, 특수교육, 정신의학 등을 전공한 김 교수는 온타리오 Smith Falls에 있는 임상심리치료연구소에서 수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 등을 지내다 정년 퇴임, 지난해 11월 토론토에 정착했으며, 한인청소년 및 부모를 위한 심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 교수는 특히 오래 전부터 불교에 심취하여 어떻게 하면 서양 행동주의 심리학의 이론과 불교의 총괄적 가르침을 접목하여 더 나은 스트레스 해소방법과 자기치료를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연구해왔다.  

 

-질문(본보 이용우 사장): 교수님, 학계은퇴 후에 요즘은 어떻게 지나시는지요?


▶김보경 교수: 제가 경북대학교에서 은퇴하기는 2002년도였으니까 그간 이미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네요. 저와 같이 인문사회계 교수들은 은퇴를 한다고 해도 일반 사회직장에서 은퇴하는 경우 와 같이 평생 동안 하던 일을 하루아침에 그만 두게 되는 것과 같은 허탈감이나 단절감을 느끼지는 않아요. 물론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대학들은 은퇴하는 날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연구실을 즉시 비우라는 통지를 보내기도 하고 은퇴 후 1, 2년이 지나서는 어떤 강의도 그 대학에서 맡지 못하게 하는 법칙도 만들어 배신감 비슷한 것을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인문사회계 교수들은 연구실을 대학에서 집으로 옮긴 것 정도로 마음만 먹으면 이전의 연구를 어디서든 계속할 수 있게 되니까요. 


 저도 은퇴 후 책을 세 권이나 썼고 그 책들은 모두 대학에 재직하고 있을 동안에 생각해서 쓰기 시작했던 것들이었기 때문에 은퇴는 오히려 내가 하려던 일에 집중하게 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좋았습니다. 지금 여기 캐나다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에 있어서는 노트북 하나만 있어도 연구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은 나의 머리에 그대로 저장해 두었으니까요. 


 지식이란 이렇게 가지고 다니기가 편리한 물건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로 다시 떠나야 될지도 모른다는 유대인들은 언제나 무겁지 않게 가지고 떠날 수 있는 다이아몬드와 지식을 가장 가치 있는 재산으로 생각한다고 하더군요. 


 저의 일과는 보통 새벽 5시나 6시에 일어나면 커피 한 잔을 끓여 책상머리에 두고 마시면서 한국에서 온 이메일이 없는가 노트북을 열어 살펴보고 간단히 대답할 것은 그렇게 하고는 아침 산책을 나갑니다. 제가 사는 콘도 뒤에는 아주 아름다운 공원이 있습니다. 공헌에는 코요테, 여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사인도 붙어 있어요. 저는 한번도 보진 못했지만요. 


 산책길에 제가 하는 두 가지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사하기, 둘째는 산책길에서 발견하게 되는 빈 팰트병이나 아무렇게나 버린 커피 컵 또는 흩어져 있는 신문지 등을 주워 쓰레기통에 넣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무표정으로 인사를 하지 않아요. 물론 산책이란 본래 명상도 하면서 조용히 혼자 걷는 묘미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 사는 이곳에는 대부분 러시아계 유대인들의 습성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들은 어디서 만나더라도 너무 무뚝뚝한 표정이라서 내가 산책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만은 그들이 일부러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지 않는 한 내가 동양식으로 머리를 숙이고 미소를 지으면서 상냥한 어조로 “Good morning!"하는 것을 아침마다 반복해 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나만 보면 아주 반갑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점차 생겨나고 있습니다. 


 제가 인사하거나 쓰레기를 줍는 이유 이면에는 실로 심오한 뜻이 숨어 있습니다. 나는 지금 과학자들이 말하는 카오스(Chaos) 이론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카오스 이론을 단적으로 말하면, 북경에 있는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한 번 한 것이 누구도 예산할 수 없는 크고 작은 무진장의 파장을 일으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뉴욕 한복판에 폭풍우를 치게 할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제가 머리를 숙여 하는 인사나 허리를 굽혀 쓰레기 한 점을 줍는 행동이 북경의 나비 한 마리의 날개 짓보다는 더 크지 않을까요?! 그 결과가 바로 얼마 후 남북통일을 가져오게 할지 세계평화를 가져 오게 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방귀세라는 것을 들어 보셨습니까? 소들이 방귀를 뀌면 그것이 곧 이산화탄소가 되어 지구온난화를 촉진하게 된다고 하여 소의 수에 따라 목장주인들에게 매기는, 일종의 환경세입니다. 유럽의 에스토니아에서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금 후면 사람에게도 적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그까짓 것”하는 작은 사건들까지도 그냥 없어지지 않고 약간의 부닥침으로 유리병이 박살나게 되는 것처럼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김영배씨(왼쪽 세번째)댁에서 열린 친지들 모임에서

 


 예를 들어 어릴 때 부모나 친구들로부터 자신의 신체적 이미지에 대하여 놀림을 받은 사람들이 식사장애와 같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부정적 지각 때문에 오는 정서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농담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요즘 컴퓨터의 악풀이 자살로 이끈 사건들도 그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제가 근자에 하는 또 한 가지의 일은 무엇에나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는 습관을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음악을 듣고 있는 동안에는 그 음악에만 집중하고, 책을 읽을 때는 책에만 집중하고, 남과 대화하고 있을 때는 대화에만 집중하고 음식을 먹을 때는 먹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아서 어느 새 생각이 흩어져 망상에 빠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단지 소극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음악을 듣는 경우에는 내가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연주자가 되어 피아노의 근반을 내 손으로 직접 두드리거나 바이올린의 활을 잡거나 때로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지휘봉을 휘두르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면서 내가 빠지면 그 음악이 안 될 것 같은 열정을 가지고 그 음악과 내가 하나가 되도록 그렇게 열중해 보는 연습을 합니다. 새소리가 들리면 새소리와 하나가 되고, 가랑비가 내리면 가랑비와 내가 하나가 되고, 날이 더우면 더위와 하나가 되고, 날이 추우면 추위와 하나가 되도록 그렇게 말입니다. 


 잡념이 차단된,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 하는 이러한 태도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자기의 능력과 수행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는 심리적 태도가 되지만 저와 같은 노인들에게도 아주 필요한 습관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사람의 몸은 마치 자동차가 점차 낡아져 본래 바짝 조아놓았던 나사못들도 느슨해지고 운전대도 제 마음대로 흔들거리고 바퀴들도 제대로 돌지 못하게 되니 운전자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하지 않는 한 언제 자동차가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지게 될지 또는 대형 사고를 일으키게 될지 누구도 장담 못하게 되는 것과 같이 노인들의 몸도 그렇게 떠리고 흔들거리게 되는 것이므로 순간순간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하지 않게 되면 가다가 길을 잃거나 돌에 걸려 넘어지거나 음식을 먹다가 음식물이 기도(氣道)로 잘못 넘어가게 되는 것과 같은 황당한 일을 쉽게 당하게 됩니다.


 요즘은 은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정년(定年)이라는 말을 씁니다.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좀 쉰다는 말이지요. 서양에서는 단지 어떤 나이가 되었다고 해서 강제적으로라도 대학을 그만 두게 하는 한국과 같은 제도는 없지 않습니까? 사실 인문사회계 교수들은 나이를 더해 갈수록 연륜이라는 것이 쌓여 더 깊은 학문의 세계로 들어갈 수도 있지요. 저도 소위 은퇴교수는 되었지만 그것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약간의 휴식이라고 생각하면서 무엇에라도 도전해 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주목해 보아 주십시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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