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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빛의 목소리(4)
young2017

 

(지난 호에 이어)
나는 나도 모르게 아무런 저항 없이 그 무리에 속해버린 것이다. 나는 이미 그일, 소매치기-쓰리꾼, 그 일을 무작정 그만두려 했었고, 이젠 무엇을 할까도 생각하기 전에 나의 할 일이, 나의 갈 길이 주어진 것이다. 


숙소의 월세는 집주인에게 이미 주었고, 어제 밤 저녁과 아침식사에 음식은 다 먹었다.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은 조금 남은 소금과 침구와 옷가지 몇인데, 이제 직업이 신부 수업자로서 그 옷들은 안 입게 되었으니 잘된 일이라 생각되었다.


집 주인에게 편지로 이제 그 집에 그만 갈 것이라고 말하고, 침구나 옷가지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면 집 주인은 그 일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사제가 되기 위한 나의 수업은 시작되었고, 진행되는 공부와 수련이 내가 마치 전에 한번 경험하고 잊었던 것을 다시 하는 것같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듯이 느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소매치기로서, 쓰리꾼으로서 남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생활하던 내가 이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현실에 그때 나는 놀라지 않고 있었다. 


 창 밖의 포도 위 낙엽 구르는 소리에서 그 아침, 그 광장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상당한 기간의 사제가 되는 수업이 끝나고 내가 한 교회로 발령 받아서 가기 전 날, 그날 아침 나를 호명하시고 가운을 주신 그 신부님께서 나를 그의 방으로 불러 말씀 하셨다. 


한달 후엔가 편지를 보냈다는 신부님한테 편지가 오기를 자기가 말한 그 청년이 갑작스런 사정으로 이곳에 올 수 없게 되어 그 청년은 사제 수업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며, 자기의 추천에 대하여 사과를 청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부님께서는 "알았다."는 답장을 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부님께서는, "자네는 좋은 신부님이 될꺼야."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안아 주셨고, 우리는 그때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한 사제로서의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돌아보건대, 내가 살아온 삶이란 소망과 결심과 행동 사이사이에서 일어나는 모순 같은 삶의 연속이었다. 한 일을 가지고도 이 관점에서 보면 옳은 것 같아도, 저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그물처럼 얽혀진 관계와 관계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전개되는 삶의 연속, 그리고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개인들의 상황관계로 이루어진 관점들 앞에서 내려야 하는 결정들. 그것이 내 개인의 것이었든, 상담해오는 신자들의 것이었든, 공동체의 것이었든 간에, 나와 관계한 삶이란 끊임없이 일어나는 소망에서, 끊임없이 망설이게 되는 결심 앞에서, 끊임없이 주춤거리는 행동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기준을 삼아서, 어떤 생각으로 결심하고 무엇을 행동으로 실천하여 왔었던가? 항상 망설임이었지만 그들 앞에서, 그들의 슬픔을 내 것처럼 진정으로 느꼈었던가? 


그들의 슬픔을 바라보고나 있었던가. 나의 진정한 의무는 무엇이었을까? 슬픔을 알아주고 달래주고 나누는 것 ㅡ 그것이 가능한가? 슬픔의 원인을 깨닫게 하고, 그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ㅡ 우리들 자신들이 그 원인이며, 우리들의 관계가 그 원인이며, 우리가 처해진 상황들이 그 원인을 소멸할 수 없는 상황일진데, 어떻게 그 슬픔을 소멸하며 벗어날 수 있을까?


그때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하여야 했던 것이었을까? 삶이란 결국은 모든 것이 슬픔의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닌가. 슬픔이 원천이었지 않은가. 우리는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던져진 존재가 아닌가? 사랑이다, 자비다, 다 엮어서 생각해 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남 자체가 홀로 설 수 없는 조건이 아니었던 것이 아닌가? 


보라, 삶을 갈망하면서도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을! 내 옆에서, 그리고 멀리서 죽어가는, 그리고 멀리서 죽어 갔었던 그들에게 나는 무엇이며 무엇이었단 말인가? 내게 주어진 이 세상에서 나의 의무는 무엇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얼마만큼인가? 그나마 어쩌다 있는 기쁨이라는 것도 슬픔이라는 본연적인 삶의 바람에 이는 잠시 일었다 사라지는 물결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과 나누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때마다 항상 어떤 울림이 내 마음에 있었다. 그것이, 그때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던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어제 내가 거닐던 숲에서 본 그 금빛이 또한 나를 깨우고 있다. 노란 나뭇잎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온 숲을 황금빛으로 비추어 자신들의 삶을 장식하고 있었다. 


우리들도 그렇게 서로서로 비추며 자신들을 밝히어 가며 산다면 그렇게 빛날 수 있을까? 그 빛의 근원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들도 스스로가 빛이며 빛의 근원일 수는 없는가?


창 밖 포도 위 바람에 구르는 낙엽 소리에서 그 아침, 그 광장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늘의 빛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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