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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영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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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영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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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8
생의 울림, 생의 진술

 
생의 울림, 생의 진술

 

 


                                                        
누구나의 우연적인 탄생은 필연적인 것이며  

 

인생은 언제나 본 게임이고 연습 게임은 없으며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은 후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이며  
자연을 아는 만큼 인간이 아는 만큼 능력이 발휘되며 
일별의 섬광이 아름다운 것은 침묵의 울림 때문이며 
고요한 강이 아름다운 것은  그 강에 잠긴 둥그런 달 때문이며  
한 줄의 시(詩)가 아름다운 것은 그 지성의 울림 때문이며 

 

새벽이 아름다운 것은 아침이 오는 맑은 울림 때문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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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그 빛의 목소리(4)

 

(지난 호에 이어)
나는 나도 모르게 아무런 저항 없이 그 무리에 속해버린 것이다. 나는 이미 그일, 소매치기-쓰리꾼, 그 일을 무작정 그만두려 했었고, 이젠 무엇을 할까도 생각하기 전에 나의 할 일이, 나의 갈 길이 주어진 것이다. 


숙소의 월세는 집주인에게 이미 주었고, 어제 밤 저녁과 아침식사에 음식은 다 먹었다.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은 조금 남은 소금과 침구와 옷가지 몇인데, 이제 직업이 신부 수업자로서 그 옷들은 안 입게 되었으니 잘된 일이라 생각되었다.


집 주인에게 편지로 이제 그 집에 그만 갈 것이라고 말하고, 침구나 옷가지들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면 집 주인은 그 일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사제가 되기 위한 나의 수업은 시작되었고, 진행되는 공부와 수련이 내가 마치 전에 한번 경험하고 잊었던 것을 다시 하는 것같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듯이 느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소매치기로서, 쓰리꾼으로서 남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생활하던 내가 이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현실에 그때 나는 놀라지 않고 있었다. 


 창 밖의 포도 위 낙엽 구르는 소리에서 그 아침, 그 광장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상당한 기간의 사제가 되는 수업이 끝나고 내가 한 교회로 발령 받아서 가기 전 날, 그날 아침 나를 호명하시고 가운을 주신 그 신부님께서 나를 그의 방으로 불러 말씀 하셨다. 


한달 후엔가 편지를 보냈다는 신부님한테 편지가 오기를 자기가 말한 그 청년이 갑작스런 사정으로 이곳에 올 수 없게 되어 그 청년은 사제 수업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며, 자기의 추천에 대하여 사과를 청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부님께서는 "알았다."는 답장을 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부님께서는, "자네는 좋은 신부님이 될꺼야."라고 말씀하시며 나를 안아 주셨고, 우리는 그때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한 사제로서의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돌아보건대, 내가 살아온 삶이란 소망과 결심과 행동 사이사이에서 일어나는 모순 같은 삶의 연속이었다. 한 일을 가지고도 이 관점에서 보면 옳은 것 같아도, 저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그물처럼 얽혀진 관계와 관계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전개되는 삶의 연속, 그리고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개인들의 상황관계로 이루어진 관점들 앞에서 내려야 하는 결정들. 그것이 내 개인의 것이었든, 상담해오는 신자들의 것이었든, 공동체의 것이었든 간에, 나와 관계한 삶이란 끊임없이 일어나는 소망에서, 끊임없이 망설이게 되는 결심 앞에서, 끊임없이 주춤거리는 행동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기준을 삼아서, 어떤 생각으로 결심하고 무엇을 행동으로 실천하여 왔었던가? 항상 망설임이었지만 그들 앞에서, 그들의 슬픔을 내 것처럼 진정으로 느꼈었던가? 


그들의 슬픔을 바라보고나 있었던가. 나의 진정한 의무는 무엇이었을까? 슬픔을 알아주고 달래주고 나누는 것 ㅡ 그것이 가능한가? 슬픔의 원인을 깨닫게 하고, 그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ㅡ 우리들 자신들이 그 원인이며, 우리들의 관계가 그 원인이며, 우리가 처해진 상황들이 그 원인을 소멸할 수 없는 상황일진데, 어떻게 그 슬픔을 소멸하며 벗어날 수 있을까?


그때 그때마다 나는 어떻게 하여야 했던 것이었을까? 삶이란 결국은 모든 것이 슬픔의 자리로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닌가. 슬픔이 원천이었지 않은가. 우리는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던져진 존재가 아닌가? 사랑이다, 자비다, 다 엮어서 생각해 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남 자체가 홀로 설 수 없는 조건이 아니었던 것이 아닌가? 


보라, 삶을 갈망하면서도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을! 내 옆에서, 그리고 멀리서 죽어가는, 그리고 멀리서 죽어 갔었던 그들에게 나는 무엇이며 무엇이었단 말인가? 내게 주어진 이 세상에서 나의 의무는 무엇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얼마만큼인가? 그나마 어쩌다 있는 기쁨이라는 것도 슬픔이라는 본연적인 삶의 바람에 이는 잠시 일었다 사라지는 물결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과 나누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때마다 항상 어떤 울림이 내 마음에 있었다. 그것이, 그때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던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어제 내가 거닐던 숲에서 본 그 금빛이 또한 나를 깨우고 있다. 노란 나뭇잎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온 숲을 황금빛으로 비추어 자신들의 삶을 장식하고 있었다. 


우리들도 그렇게 서로서로 비추며 자신들을 밝히어 가며 산다면 그렇게 빛날 수 있을까? 그 빛의 근원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들도 스스로가 빛이며 빛의 근원일 수는 없는가?


창 밖 포도 위 바람에 구르는 낙엽 소리에서 그 아침, 그 광장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오늘의 빛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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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4
그 빛의 목소리(3)

 

(지난 호에 이어)
나는 다음날 아침, 애 업은 여인과 함께 그 가녀린 계집아이의 손을 잡고 그 광장을 가로질러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육중한 베드로 성당 문을 밀어 열어 주며 보았던 그 손, 그 날 그 문 앞, 눈부신 아침 햇살이 그 어린아이의 손에 비쳤을 때 본 화상 자국이 있는 손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전날 밤 내 숙소에서 그 아이가 귀여운 손짓하며 명랑하게 그 처음 보는 도시의 풍물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도 보지 못했던 손의 화상자국을 그 육중한 문을 밀어 들여보내며 잡은 손을 놓을 때 본 것이다. 그때 내 등에 가득히 내리는 햇살과 함께 종소리가 실려와 닿고 있었다.


영혼을 깨우는 그 종소리가 나를 깨우고 있었던 것인가. 나는 오늘 아침 하얀 사발에 담긴 수프를 쟁반에 받으며 깜짝 놀랐다. 그것을 떨어뜨릴뻔했다. 그 손이었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혹시 굵은 소금, 천일염이 있느냐고 그 부인에게 물었을 때, 마침 자기집에서 가져온 것이 조금 있다고 하였다. 혹시 누군가가 이 소금을 찾으면 줄려고 가져온 것이란다. 그러면서 그 부인은 굵은 소금 때문에 얽힌 아름다운 추억이 있노라고 말하였다.


창 밖의 포도 위 낙엽 구르는 소리에 그날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날 저녁, 내가 그들을 무료숙소 대신 내 숙소로 데려온 날, 우리들은 마치 가족처럼 저녁 식사를 하였다. 그들은 마치 나의 아내이며 어린애기이며 어린 딸처럼 느껴졌었다.


그 아이 엄마가 내가 내어준 오이를 가지런히 썰어서 하얀 접시 위에 올려놓고, 우리는 그것에 굵은 소금을 찍어 먹었다. 그 아이가 씹히는 굵은 소금에서 '바삭'하고 소리 내며 부서진다고 말하였으며, 그것이 우스워서 깔깔대고 웃었다. 어린 아기도 따라서 웃었고, 그들의 엄마도 웃었고, 나도 그들이 웃는 것이 재미있고 우스워서 웃었다.
그들과 같이 그렇게 웃고 있는 그 순간이 아름다웠던 것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군가와 그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 그 식탁에서 경험한 것이다. 


그 아이는 그렇게 웃으며 자기 아버지가 소금을 받아와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이야기할 때 그의 엄마가 가슴 가득히 사랑을 담은 얼굴로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그들의 동네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서 수도사들이 경영하는 염전에 가서 소금이 다 되었을 때 그 잘 다져진 갯벌에서 소금을 당그레로 모아서 가마니에 담아서 창고로 가져가는 일을 도와 주고 얻은 대가로 받은 소금을 동네에 가져와 노약자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었다. 


그는 그 일을 매년 한 번씩 해왔는데 바로 엊그제 추수감사절 전에도 힘들여 가져온 소금을 동네 노약자 가족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그들의 아버지는 소금을 나누어 줄 때가 마치 그의 일생에서 제일 기쁜 날처럼 보였다. 그의 수고는 바로 그런 즐거운 순간을 위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 부인은 수프를 내게 건네주며, 소금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나와 함께한 그날 저녁도 포함 되었으리라고 나는 직감으로 알아 차렸다. 아~ 이럴 수가 있을까.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보고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날 저녁 내 숙소에서 식사를 같이하며 오이에 묻은 굵은 소금을 깨물어 먹으며, 굵은 소금이 '바삭'하는 소리가 재미나서 천진난만하게 깔깔깔 하고 웃던 그 어린이가, 그의 엄마와 동생과 함께 내가 고사리 같은 손을 꼭 쥐고 다음날 아침 베드로 광장을 같이 걸어가던 그가, 바로, 또 다른 아침 내게서 백팩을 돌려 받고 고맙다고 인사하며 그 광장을 가로질러 가던 그 소녀가, 오늘아침에 나에게 수프를 하얀 그릇에 떠준, 단아하고 편안하게 삶의 순간 순간을 맞이하며 사는 부인이란 말인가.


그렇다, 그 세 사람이 바로 그 부인, 그 한 사람인 것이다. 그녀의 손에서 희미하게, 사라질 듯이 아직 남아있는 그 화상자국, 그리고 그 부인의 소금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보건대 그는 틀림없이 그 사람인 것이다. 단아하고 편안하게 삶의 순간 순간을 맞이하며 사는 부인의 인상에서 나는 그 부인의 삶이 깊고 아름답게 무르익어감을 느꼈다. 


창 밖 포도 위에서 구르는 낙엽 소리에 그날 아침의 햇살 가득한 광장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밖의 소란스러운 소리에 나의 의식이 깨고, 내 앞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식하였다. 그렇지만 아까 내가 들었던 그 목소리는 뚜렷이 남아있다. 그 사람의 말이 분명한 문장으로서 내 의식에 뚜렷이 남아있다.


"아들아, 빛으로 오라. 구름 속에 태양이 항상 빛나고 있듯이 용서는 참회하는 자를 항상 기다리고 있다. 사랑은 저 종소리가 이르는 곳이면, 어디에나 이르고 있다."

 

나는 한 단어 한 단어를 되뇌어 보았다. 외우고 있어온 문장처럼 기억하기가 쉬웠다. 밖의 소란스러움에 이끌려 그 곳으로 갔다. 거기에는 사제가 되기 위한 수련기간 동안 입는 하얀 가운 같은 윗옷을 입고 있는 많은 청년들이 무리 지어 있었으며, 한 신부님께서 하얀 가운을 한 청년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앞에서 옷을 나누어 주시는 신부님이 나를 부르길래 다가 갔더니 내 이름을 묻는다. 내 이름을 말해 주었더니 신부님께서 명단의 맨 끝에 이름을 적으시며 말하신다. "어제 토마스 신부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어." 그리고 내게도 하얀 가운을 주셨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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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8
그 빛의 목소리(2)

 

(지난 호에 이어)
나는 내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흔들리는 걸음으로 그 소녀가 가로질러 걸어가던 그쪽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다. 내 주위를 가득히 감싸고 있는 태양의 빛 아래에서 내 심장을 흔드는 종소리는 내 가슴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내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그날 그 아이와 동생과 그 애 엄마를 데려다 준 그 교회의 육중한 문을 밀고 있었고, 그 문은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그 교회 안의 제대 앞 마루 위에 한 줄기 빛이 모아 떨어지고 있는 곳이 내가 가야 할 곳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 쏟아지는 빛 속에 엎드려 한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옷깃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반성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마루 위에 조용히 부딪치는 발자국 소리에 나의 의식이 집중 되었고, 그 발자국소리 주인의 두 발이 내 시선이 머무는 마루에 멈추어 섰다. 내가 고개를 들어 그를 천천히 바라보려 할 때에, 광휘의 빛 속에 선 그는,


"아들아, 내게로 오라, 구름 속에 태양이 항상 빛나고 있듯이 용서는 참회하는 자를 항상 기다리고 있다. 사랑은 저 종소리가 이르는 곳이면, 어디에나 이르고 있다." 


 그의 목소리가 광장의 종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내 가슴에 차있는 가득한 슬픔의 연기를 걷어내고 있었다. 그는 내게 "빛으로 오라"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서 나의 아픔과 내 먹이감이 되었던 많은 사람들의 아픔이 슬픔으로 살아 일어나고 있는 느낌을 느끼고 있었다. 화사하게 웃고 돌아서 광장을 가로질러 갔던 그 소녀의 미소에서 보았던 것이었을까, 그 어떤 것에 이끌려 나는 지금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인가. 그날 저녁에 보았던 그 아이의 손이 보이는 기억 때문인가.


나는 지금 수많았던 나의 먹이감들이 당하며 느꼈을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창 밖 포도 위 부는 바람, 낙엽 구르는 소리, 내 가슴에 있는 그 아픔이 우러나온다.


그 소녀를 만나지 못했던들, 아니 그 소녀가 나를 믿고 맡긴 그 돈 지갑이 든 백펙이 없었던들, 그 소녀의 화사한 미소가 양심의 기름을 내 가슴에 붇지 않았던들, 내 안에서 꺼져가는 양심의 불은 되살아날 수 있었을까? 그녀의 손을. 그 광장의 가득한 빛, 그 광장 가득히 울려 퍼지는 종소리.


내가 흘러 내리는 눈물을 소맷자락으로 닦으며, 교회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의식을 차려 그를 뚜렷이 보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거기에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높은 창문에서 비치는 한 줄기 강렬한 빛이 내가 앉은 마루를 향해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바로 내가 앉은 마루 위에, 그러니까 나의 온 몸을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이곳 실버타운에 와서 만난 한 친구가 내 맘에 들게 잘 다듬어준 나무 지팡이를 짚고 서서 창 밖 포도 위 낙엽 끌리는 소리에서 그 날 그 빛의 그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식당에서 그 부인의 손에 난 거의 없어져 가는 화상 자국을 보며 나는 내가 들고 있던 국 그릇을 올려놓은 쟁반을 마루 바닥에 떨어뜨릴 뻔 하였다. 그 부인의 그 손에 난 화상 자국은 그날, 그 광장을 가로질러 간 그 소녀의 손이었고, 그 손은 더 먼 과거에 내가 잡았던 그 아이의 아직 피어나려는 고사리 같은, 여리고 작은 손이었던 것이다.


더 먼 그 날, 그 광장에 석양 노을 가득히 흐르는 그날, 나는 이만하면 오늘 수입은 좋다 생각되어, 마ㅡ악 광장을 가로질러 숙소로 향하는 중에 만난 세 사람, 등에 업힌 아이와 엄마 그리고 엄마의 손을 잡은 계집아이. 그날 석양 하루의 일을 마치고 숙소로 가던 중 엄마는 애기 업고 손을 붙잡은 아이와 함께 길을 물으며 잃어버린 지갑에 대한 원망을 하였다. 무료 숙소를 묻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수입도 좋고 그때의 석양노을 때문에 기분도 좋아선지 그들에 대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추측하건대 이들은 분명히 나 같은 소매치기에 당한 것이다. 이 연약한 여인이 젖먹이와 또 한 어린애를 데리고 무료 숙소에서 잔다는 것은 안 되는 일이었다. 거기에는 게으르고 더러운 집 없는 이들이나 머무는 곳이다. 


할 일이 없어지니 집이 없어졌겠고, 집이 없으니 씻거나 세탁이 수월치 않아 자연 몸과 옷이 더러워지는 것일 것이다. 그곳은 좀도둑들이나 행려 병자들이 묵는 곳이다. 그들의 인생이 기구해서이든 어째서든지 간에 그들과 함께 이 가족이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가족이 그곳에 가 머물면서 무슨 병이 옮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밥과 아침밥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나는 그들을 내 숙소로 데려가고 있었다. 나의 숙소에 도착하였을 때, 그 여인이 업은 애기를 추스르며 여기가 무료 숙소인가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어느 풋내기 쓰리꾼이 이들을 친 것이다. 대강 짐작이 간다. 나는 풋내기 시절에도 노약자들이나 어린애들과 동행한 사람들은 절대로 치지 않았다.


그들이 지닌 얼마간의 돈은 이곳에 오기 위하여 덜 먹고 덜 입고 한 푼 두 푼 몇 년을 애써 모은 것일 것이다. 그들은 이번 추수감사절을 이곳에서 맞이하려 시골에서 온 것이다. 이곳 교황님이 계신 로마에 와서 성 베드로 성당을 밖에서도 보고, 안에 들어가 미사에도 참석하며, 먼발치에서라도 교황님을 뵙는 것이 소원인 것이다. 


행운이 그들의 편이라면, 교황님의 손이라도 잡아볼 수 있으면, 약한 남편이 건실해질 것이며, 아이들의 잔병치레는 멈추고 건강하게 잘 자라날 것이며 그리고 농사가 잘되어 가을 추수는 아주 좋아질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이 로마에 온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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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5
그 빛의 목소리(1)

 
 

나는, 그날 아침, 햇살이 오늘처럼 비추던 그날 아침에도 저런 투명한 종소리를 그 광장에서 들었다. 나는 지금 투명한 창유리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며 이 창유리 너머 저쪽 언덕에 서 있는 교회의 종탑에서 흔들리며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있다.


창 밖 길 위에서 낙엽 구르는 소리에 그날 아침 그 광장의 그 종소리가 울려나는 듯 하다. 


그 날도 나는 여느 때처럼 아침 일을 시작하기 위하여 베드로광장의 한 모퉁이에 서성이며 먹이감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렇다. 먹이감. 그 시절 나는 나의 고객들을 "먹이감"이라고 불렀다. 상등 먹이감, 중등 먹이감, 그리고 하등 먹이감. 나의 직업은 소매치기 ㅡ 쓰리꾼이었다.


그 날 아침 그 아리따운 소녀가 백펙을 나에게 맡기고 화장실에 가며 잠시 보아달라고 할때 나는 그녀를 상등 먹이감으로 평가하고 친절히 그 백펙을 받아 들었다. 나의 작업은 시작되었다. 백펙의 지퍼를 내리고, 지갑을 찾아서 열어봤을 때 지갑 안에 들어있는 지폐를 보았다.


저만치 걸어가는 먹이감의 호주머니에 든 지갑도 내 것이라고 여기는데 하물며 내 손에 든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지폐야말로 내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순간 '내게 맡긴 지갑을 내가 훔쳐서야 되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믿고 맡긴 지갑을 내가 어떻게 훔칠 수 있겠는가 ㅡ 나는 내가 내 스스로에게 가진 의식에 대하여 깜짝 놀랐다. 나는 내가 내 자신에게 더욱 놀란 것은 내가 밖이 아닌, 즉 소매치기 작업을 하기 위해서 먹이감의 의식상태와 주위 환경 상태에 주워진 상황 관계를 파악하는 대신, 나는 내 자신 속에서 흐르는 나의 의식을 내가 들여다 보고 있음에 놀라고 있었다.


나는 나의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아주 민감하다. 그것은 나의 직업상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둑을 두는 이가 몇 수 앞을 읽을 수 있어야 하듯이, 나 역시 나의 작업을 위하여 먹이감을 고를 때 몇 수 앞을 훤히 볼 수 있어야 한다. ‘저 사람이 먹이감이다’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나와 그 고객과 그리고 주위 군중과 그곳에서 그 때에 엮어진 상황과 관계를 한 순간에 파악하고, 내 자신이 안전하게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으며, 그 고객이 내가 안전하게 그 상황에서 빠져 나갈 때까지 모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때 나는 그 고객의 관심거리와 그의 심리 상태를 내 경험과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읽어 보며 내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내가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그 고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나는 나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내 목적물을 내 손안에 들고 그 곳에서 멀어져 갈 때에도 나는 내 뒤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내 앞에서 보듯이 감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직업상 내 밖에서 일어나는, 그리고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에 대하여 항상 민감하게 감지하고 있어야 한다.


즉, 나는 항상 밖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하여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에 습관화 되었는데, 오늘 아침에 나는 내가 내 안에서 일어나는 나의 의식을 바라보고 있는 것에 깜짝 놀라고 있는 것이다.


그 소녀는 조금 전에 화장실에 갈 때처럼 조급한 얼굴이 아닌 이 광장에 가득한 빛처럼 화사하고 안정된 얼굴로 내게 고맙다는 표정으로 전혀 의심치 않은 눈으로 내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이다. 나는 어설픈 동작으로 몸을 뒤로 돌리며 그러나 빠른 손동작으로 그녀가 볼 수 없는 동안에 지갑을 백펙 속에 도로 넣고 지퍼를 잠그고 돌아서며 그녀를 바라보며,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라고 하며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그녀는 내게서 돌려받은 백펙을 등에 지고 또 다시 화사한 얼굴에 고마움 가득한 얼굴로 내게 인사하고 있었다. 나는 백펙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그대로 ㅡ 전과 같이. 지폐가 들어있는 지갑이 든 백펙을 내가 갖지 않고 그대로 돌려 준 것이다. 


소매치기인 내가 아무 일없이 그 지갑에서 지폐만 훔치고 다른 것들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내 얼굴 표정을 잘 관리하며 그곳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상황이었는데도, 나는 그녀의 백펙을 그냥 그대로 돌려주어버린 것이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는 순간에 그녀의 손을 보았다. 어딘가에서 보았었다는 느낌이 드는 손을. 


나는 휑뎅그렁한 마음으로 멍하니 그 소녀가 태양이 가득히 내리는, 내 마음에 아침 햇살이 가득히 내리는 나의 일터 베드로 광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때 교회의 종소리가 광장 가득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내 두 눈에서, 가슴에서 주르르 흐르는 눈물 ㅡ 그 종소리는 내 마음 가득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다른 한 손이 내 기억에서 떠올랐다. 어느 날이었던가 내가 그 손을 잡고 성당의 육중한 문을 밀고 들여보낸 그 손이. 


그날, 그 울림의 종소리가 지금 창 밖의 포도 위에서 구르는 낙엽 끌리는 소리에 울어나는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일을 그만 두었다.


그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그날의 종소리는 내 마음에서 마-악 꺼져가려는 양심의 불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나는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이다. 후회하고 반성하는 내 삶에서 성찰이 시작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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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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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마고성(麻姑城)에서

 
마고성(麻姑城)에서 

 

 


                               
나의 빛이 그 빛과 함께 
나니는* 그 대지 위에 
시간이 왔었고 시간이 가는 것을 
내가 지켜보고 있었어 

 

눈이 왔었고 
비가 왔었고 
풀잎에 이슬이 맺혔었고 
바람이 불었었지 

 

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이슬이 
바람이 
내게서 나니는 것이었어 

 

바람이 이슬을 만나 웃는 환희 
서로 웃고 사라지는, 
그렇게 나니는 삶의 연속이었어 
그곳에서 나니는 것은 

 

어느날 아침 
침묵의 강에 흐르는 
안개 
바람의 발자국 소리가 
내 가슴에서 나니고 있었어 
나의 빛이 
그 빛과 함께 나니는 
그곳에서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가늠해보고 있었어 
그러나, 나의 상상으로도 
나는 
바람의 시원(始原)에 도달할 수 없었어 

 

그때, 나는 느꼈어 
시간과 공간이 하나라는 것을 
'지금 여기'에서.  

 

 

*나니는 ㅡ "나다(낳다, 일어나다, 살다), 날으다, 다니다"의 의미로 외적, 사실공간에서 또는 내적, 정신공간에서의 표현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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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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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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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3
사는 것이 경이롭지 아니한가?

 
사는 것이 경이롭지 아니한가? 

 

 


                                                
저기, 삶과 죽음이 있고, 그렇듯이 
소리와 정적이 있고, 그리고 
세상에는 말하기와 침묵이 있고,  

 

누군가는 이타심을 내세우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말하고  
누군가는 이기심을 감추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침묵한다.  

 

이런 위선이 만연하여  혼돈을 야기시키는 시대에 
누군가가 바르게 살아가려는 노력에 어떤 가치를 느낄 수 있을까?  

 

간 밤 꿈에 이 생에 없는, 그리운 옛 친구가 찾아 왔습니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온 친구에게 술을 대접하기 위해 술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술은 집에 없었습니다. 
나는 술을 사러 밖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술을 사가지고 집에 오는 도중에 
나는 꿈에서 깨어버렸습니다. 

 

나는 어떻게 나를 기다리는 그 친구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 생에서  
그리워도 볼 수 없고  열망해도 할 수 없는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그런  삶이 
경이롭지 않은가요? 

 

*동영상: 사는 것이 경이롭지 아니한가? Isn't it a Wonder to Live? 
https://www.youtube.com/watch?v=OXBaodg4SG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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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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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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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9
유선사의 종(鐘)

 
유선사의 종(鐘) 

 

 


                                  
하늘이 닿는 두승산 꼭대기 
유선사
별들을 떠받든 큰나무 밑에서
옹달샘은 자신의 가슴에  
달의 침묵으로 바람의 노래로
도롱뇽을 키웠습니다 


 
나무가 생(生)을 다하여 하늘로 가는 날
옹달샘은 그가 키운 도롱뇽을
나무에 실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이 자신의 생(生)이 다하여
바람으로 날아가고 흙으로 스며드는 날
그 자리에
나무는 종각이 되어
도롱뇽은 종(鐘)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종(鐘)은 
달의 침묵으로 나니는 바람으로 
세상을 깨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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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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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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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9
두려움의 공포에서 갖는 희망의 꿈

 
두려움의 공포에서 갖는 희망의 꿈 

 

 

 

그것은 발견 했을 때부터 두려운 존재였고 
지금도 두려운 것 

 

우리는 그것을 알면 알수록 두려움에 쌓여가고,

 

우리는 그 두려움의 공포를 극복할만한 
실제적 방어 태세나 
마음의 준비조차 할 수 없이 지내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 도움이 우리의 마음에서 
공포를 극복할만큼의 도움이 되지 못하고,  

 

우리는 절망하거나 그 공포에 항복하며 산다. 

 

아 ㅡ 누군가가 말했지,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존재한다."* 라고. 


 
우리가 그런 것 같구나. 

 

삶이란 이런 것인가? 

 

감지하지 못했으면 덜 두려울까? 

 

동영상: 두려움의 공포에서 갖는 희망의 꿈 
https://www.youtube.com/watch?v=4BJEIWMRlsw&t=11s

 

 

*라깡(Lacan) 
161쪽 김형효 "라깡의 반 인간주의" 후기구조주의 윤호병 외 지음, 고려원 1996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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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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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900
9196
2017-11-05
손영호.이양배 님의 "강물 따라 역사는 흐르고" 출판기념을 축하하며

 
손영호.이양배 님의 
"강물 따라 역사는 흐르고" 출판기념을 축하하며

 

 


                                                                                                   
우리는 은하수 흐르는 강물 따라 달렸습니다. 
우리는 동백꽃 흐르는 길을 따라 달렸습니다. 

 

장구한 세월이 흐르는 이 길, 이 산천  
무궁한 세월과 함께 흐르는 우리의 아름다운  이 강산  
얼마나 많은 지고한 삶들의 이야기가 이 강물을 따라 흘러  갔을까요? 
얼마나 많은 축복과 사연들을 이 길은 알고 있을까요? 

 

아름다운 우리 강산, 축복이 흐르는 대지 
밤과 낮으로 흐르는 저 ㅡ 강,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의 순환과 함께 흐르는 우리의 역사,
바람에 묻힌 우리삶의 영혼들, 
얼마나 많은 귀중한 이야기들이 침묵의 역사에 잠겼을까요? 
말없이 흐르는 침묵의 강  
고귀한 삶과 죽음, 
그리고 절망과 희망의 "빛남"의 시간에서 
기록으로 침묵으로 흐르는 우리의 이야기들, 
이제, 침묵에 잠겼던 우리의 귀중한 역사를 되새기며 

 

우리는 희망의 염원이 흐르는 강을 달렸습니다. 
우리는 의식의 등불이 흐르는 강을 달렸습니다. 

 

세월의 바람으로 들려오는 그리움과 열망의 목소리를 맞으며
우리는 그 지고한 아름다움이 흐르는  산천의 강길을
지금도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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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의 건강과 사랑의 합심으로 이뤄낸 1000km 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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