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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얼리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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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언니와 함께 강둑에 앉아 있었다. … 그때, 갑자기 분홍 빛 눈의 하얀 토끼 한 마리가 가까이 뛰어왔다. . 호기심에 불타서 토끼를 쫓아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 앨리스는 도대체 어떻게 다시 빠져 나올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토끼를 쫓아 굴로 뛰어들었다. … 일곱살 소녀 앨리스는 이렇게 이상한 나라로의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일찍이 아시아대륙의 동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수천년을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도 하고, “동방의 등불”이라고도 한다고 은근히 뿌듯해 하며 지금도 스스로 이 말을 즐겨 쓰고 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1882년 미국인 그리피스(W.E. Griffis)가 아시아의 동쪽 끝에 붙어 있는 이 나라를 소개하는 책 <은자의 나라, 코리아> (Corea, The Hermit Nation)에서 당시 국호인 <조선(朝鮮)>을 영어로 풀어서 “The Land of Morning Calm”이라고 번역하면서 처음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朝鮮의 영역은 “Beautiful(or Fresh) Morning”이 더 정확하지만, 저자는 의도적으로 “고울 선(鮮)”을 “고요할 선(禪)”으로 슬쩍 바꿔서 “Morning Calm”으로 번역한 듯하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이 후 여러 사람이 이 나라를 소개하는 책의 표제로 사용함으로써, 이 나라의 별칭으로 굳어졌다. 


이 번역은 얼핏 보기에 별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책 내용을 자세히 읽어 가면서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Sunrise Kingdom)” 일본과 대비되어 “조용히 맥없이 잠자고 있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저자의 의도를 눈치채고 나면 뒷맛이 썩 개운치 않다. 또 다른 책에 나오는 “…이 국호(조선)는 매우 시적인데, 현재의 조선사람들에게 알맞은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말로 그들의 선조인 고구려의 정열과 힘을 전적으로 상실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나면 스스로 이 말을 더 이상 쓰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 있던 1929년 3월 28일 일본을 방문 중이던 인도 시인 타고르가 우연히 동아일보 기자를 만났다. 그는 기자의 한국방문 요청에 일정상 방문이 어렵다고 하면서 네 줄짜리 메시지를 전했는데, 그 첫 부분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코리아는 그 등불을 밝혀 든 나라 중 하나였다(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bearers)…”로 시작된다. 정확히 말해서 “동방의 등불(THE lamp of the East)”이 아니라 “그 중 하나” 즉, ‘아시아의 여러 문명선도국 중 하나’라고 한 것이다. 


이 시라고도 하기 힘든 짧은 메모에 저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그의 다른 시(그의 시집 <기탄잘리> 35번째 작품)의 내용을 슬쩍 바꿔서 짜깁기한 누군가의 창작품이 우리가 흔히 보아온 저 “동방의 등불”의 원시(原詩)이다. 이런 내막을 알고 나면 얼굴이 화끈거려 더 이상 “동방의 등불”이란 말을 쓸 수 없으련만 저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저 왜곡 조작된 시가 한 때 교과서에까지 버젓이 실렸으니 말이다. 


알고 보면 이런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지만, 저들은 자신들을 가리키는 그 말들이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나왔으며, 무얼 뜻하는지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남들이 그렇게 얘기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 할 뿐 스스로 생각하고 따져보는 이는 많지 않다. 이 나라 사람들이 이상한 건 비단 이 것만이 아니다.


1559년부터 13년간에 걸쳐 이퇴계와 기대승간 편지왕래를 통해서 이뤄졌던 ‘사단칠정론’논쟁은 이 나라 학술사에 유례없는 논쟁이었다. 논쟁의 기간과 치열함도 그렇거니와 ‘장유유서’의 삼강오륜이 지상최고의 가치로 시퍼렇게 살아 있던 시절에 당대 최고의 원로학자와 26살이나 어린 젊은 학자간에 서로를 존중하며 이뤄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런 훌륭한 전통을 가진 저들이 500여 년이 지난 지금 서양의 최신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여 역사이래 가장 발전된 모습을 구가하면서도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청산할 대상으로 여기고,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쓴 책도 내용이 힘 있는 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판매를 금지시키거나 내용을 삭제하게 하고 벌을 준다.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이 아무렇지 않게 국회에 제출되기도 한다. 이런 일이 벌어져도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그들이 생각해서 머리에 넣어준 주장만 주문처럼 외우면서 박수를 친다.


 저들은 유사이래 가장 발전된 문명을 이뤄 풍족하게 잘 살면서도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헬조선’을 외친다. 누군가가 “너희는 불행한 거야.”라고 하면 “나는 불행해!”라고 할 뿐 “정말 그런가?”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따져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저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만난 토끼처럼 늘 "바쁘다. 바뻐!"를 외치며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없다. 세계 각지에서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며 따라 배워 보겠다고 사람들이 몰려와도 저들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혐오하며 온 나라가 분노와 증오로 가득하다. 


일찍이 현명한 지도자를 만나 세계역사상 유래가 없이 훌륭한 문자를 가졌지만, 그 후 500여 년이 지나도록 그 문자를 업신여기며 통용하지 않았다. 나라를 빼앗기고 자기 말과 글을 금지 당하는 혹독한 시련을 겪고 난 후 남의 힘으로 겨우 나라를 되찾고서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지 겨우 70여 년이 지난 지금 저들은 자기 말을 버리기에 여념이 없다. 자기 말도 채 익히기 전에 남의 말을 가르치지 못해 안달이다. 간판들도, 회사이름도, 쓰는 말도 온통 남의 말로 넘쳐난다. ‘말’은 ‘얼’을 담는 그릇이다. 말을 버리면 얼도 따라서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을 저들은 모르는 듯하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건 네 발로 걷지 않고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없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이 해놓은 생각의 지배를 받게 된다. 


저들은 이제 남들이 잘 짜맞춰서 머릿속에 넣어준 생각의 틀 안에서만 생각할 뿐 스스로 생각하는 ‘얼’이 없는 인간들을 손오공이 털을 뽑아 분신을 만들어내듯 대량으로 복제하는데 성공하여 일사불란하게 한 목소리를 내며 같이 움직인다. 나그네 쥐가 앞선 쥐를 따라가듯… 자기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른 채. 


[“너흰 그냥 카드 한 벌일 뿐이야.” 그러자 카드들이 모두 일어서더니 공중으로 솟구쳐 앨리스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앨리스는 무섭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비명을 지르며 그것들을 떨쳐내려 하였다. 그 순간 앨리스는 잠에서 깨어 자기가 언니의 무릎을 베고 강둑에 누워있다는 걸 깨달았다. 언니는 앨리스의 얼굴에서 한 두개씩 떨어져 내린 나뭇잎을 부드럽게 치워주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렇게 꿈에서 깨어났다. 저 이상한 나라의 ‘얼리스’들은 언제나 저 깊은 미몽에서 깨어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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