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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날의 희비 쌍곡선
leehyungin

 

 

 분명 축제요, 경사임에 틀림없다. 온 식솔들이 함께하는 잔칫날의 풍경 말이다. 하지만 음식상을 마련하는 여인들은 죽는 날이다. 명절날이 그렇고 제삿날이 그렇다. 


시어머니 며느리가 함께 허리와 팔다리며 온몸이 쑤셔 거의 죽음 직전까지 숨을 헐떡이며 온 친인척 가족들의 환성을 불러 일으키려고 난리법석을 견뎌내야 하는 날이다.


 분명 기쁨의 날이고, 미풍양속의 대대손손 수백 년을 이어온 조선땅의 경사요, 세상 떠난 집안 어르신들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자랑스러워 하는 기념비적 풍습의 날이다.


그런데도 이날은 해롱해롱 잔치마당을 휩쓰는 남정네들의 술바가지 속에 넋두리와, 쭈그려 앉은 아낙네들 솥뚜껑의 기름냄새에 엉킨 땅 꺼지는 한숨 소리는 완전히 하늘과 땅 차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풍습의 일장 치고는 참으로 어허! 이럴 수가? 몇 백 년의 잔칫집, 이런 감당키 어려운 모습을 전설인양 마냥 방치해둔 우리네 일상들, 어느 정치사에 단 한번도 구습을 타파하자고 손드는 정치인들 못 봤다.


그냥 이렇게 여자들은 몸살을 겪어야 하고, 남정네들은 윷가락에 장구와 북소리에 핫바지가 내려간 줄도 모르고 게슴츠레 눈을 비벼가며 술독에 나뒹굴고 있는 날, 여자들이 죽어 넘어질 듯 하면서도 거창한 상차림에 전력을 쏟아 부어야만 하는 희한하고 얄궂은 제도가 사람 잡는 행사로 의젓한 듯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간신히 근세대에 들어 약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쩔건가? 명절 뒷감당일랑 드디어 정치 마당에서 법정까지 비화되기 시작했다. 이혼 숫자가 명절날의 부작용으로 곪고 곪아서 결국 터지고 마는 상황으로 점철된 것이다.


지지고 끓이고 볶아대는 태곳적부터 이어져 내려온 부엌문화가 이제야 폭발하여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여자들이 팔 걷어붙이고 잠자던 부엌문화의 인권을 부르짖는 것이다.


변화의 물결이 느림보처럼 그나마도 그 땅 잔칫상 위에 오르게 되었다면 이민의 천국, 이곳 캐나다 한국동포사회 역시 바꿔야 할 중차대한 잔칫상 차림이 있다.


 이민사 2세대, 3세대까지 이어져가는 새터민들의 뿌리가 박힌 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다. 그동안 원주민 같은 1세대 할아비 할미의 손과 발, 어깨들 다 멍들어 버렸다.


손주들과 증손주들까지 돌보며 지난 세월 속에 이제 남은 것, 한숨 속에 주름살뿐. 참으로 애처롭기 그지없는 할아비 할미들의 삶의 여정을, 지금도 혹사 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아직도 구부정한 허리로 가족행사인 잔칫상을 준비하도록 내맡기는 가족들, 우리 주위에 여전히 존재한다. 무엄하기 짝이 없는 혹사요, 불효다. 아니라면 가정교육의 실종이 아니겠는가.


온 가족들의 만남, 오랜만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모르고 지나온 각 집안들의 이야기들, 따사롭고 포근한 피붙이들의 애정어린 눈길들, 경사스러운 잔칫날, 가족이란 태생적 축복가운데 이뤄지는 모임이 아니던가. 


대가족 중심으로 오천만 남한 인구의 분포도, 그래도 인구 다변화에 못 미쳐 아이 낳기 캠페인이 정치사의 주를 이루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가족 이민사가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져 줄기줄기 주렁주렁, 오빠 동생 언니 형부, 씨앗처럼 뿌리내린 일가족 한번 모임에 얼른 보이는 머릿수 20, 30명의 대가족을 이룬다.


행복이 넘치도록 평안이 움트는 나라, 이 땅에 뿌리내려 풍성한 잔치마당의 축제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펼쳐 갈수 있도록 기원한다. 그러나 확실히 집고 넘길 일이 있다. 가족모임의 잔칫상, 이제는 할아비 할미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입히고 먹여가며 진자리 마른자리 보살펴 성년으로 발돋움시켰던 늙은 세대들의 애환들, 이제는 새순처럼 파릇파릇한 세대가 이어받을 효의 근본이 아닐까. 잔칫상의 음식 맛 역시 싱싱하고 맛깔스러움에 감칠맛이 더할 것이다.


대가족들의 화기애애한 모임 속에서, 세월에 찌들었던 늙은 세대들의 힘겨운 한숨 소리를, 이제는 웃음소리로 바꿔야 할 차례다. 지지고 볶아내고 끓이고 튀겨낸 잔칫상의 맛 속에, 주름살로 범벅이 된 할미 할아비들의 한숨 소리들 방관하며, 과연 허기진 뱃속만을 채울 것인가? 


일가 친척들의 모임, 어떤 모임이 이보다 더 화기애애한 모임이 있으랴. 활기찬 세대들의 준비된 가족애를 펼쳐 보여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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