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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福泉) 칼럼

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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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인
(리치몬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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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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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6
주검의 소리

 
 
먹은 돈이 많고 적음에 목숨을 던진 것 아니다. 나는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안면 몰수는 하지 않겠다는 결단과 각오를 스스로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를 실수로 챙겼지만, 평소 주장하며 소신을 피력했던 나의 역동적 삶의 모습에 진흙을 발라야만 하느냐고 반문하며 나는 내 몸을 던졌다. 


민의를 대변한다는 정치인들이여! 내 주검의 소리가 들리는가? 정치바닥에 혀를 날름거리는 경제단체 핵심 인물들이여! 치맛자락이라도 붙들어 사리사욕에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기회주의자들이여, 내 죽어가는 영혼의 소리를 들어라. 이제라도 무엇으로 이 나라의 불의를 뿌리뽑고 정의롭게 세상을 밝혀갈 것인가. 자신이 없는 자들이여, 내 뒤를 따르라. 


수백 년 조선 민족성의 나약하고 무모함에 과감하게 반기를 든 그의 창연한 성품은 양심의 빛과 그림자를 펼쳐 보인 것이다. 그의 영혼의 울부짖음으로 이 혼탁한 한국 정치, 경제, 교육계를 망라한 모든 영역에 횃불이 밝혀지려나.


구태의연한 헌정 질서와 사회전반에 널려있는 쓰레기 같은 악습을 타파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태우던 한 정치인의 죽음의 소리에 온 나라가 비통함과 안타까움, 애끓는 통탄함이 몇 주일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귀하고 값진 목숨을 버리면서 병들어 썩어가는 조국의 현실을 통탄해하며 4천만 원의 돈다발을 시궁창에 던졌다. 칼날 같은 성품과 비단결 같은 그의 양심으로, 몇 천만 원의 뇌물을 챙기는 것보다 떳떳했을 것이다.


수 억원 정치자금을 받고서도 눈빛을 흘겨 뜨며 수갑을 차고도 거짓말이 입술에 발려있는 정치인들의 몰지각한 행태와, 불합리하게 변질된 사회적 온갖 비리들의 온상을 뒤엎을 수 없다는 실망과 회의가, 던져버리자 이 한 몸, 노회찬 국회의원의 주검의 소리가 메아리 되어 한반도를 울리고 있다.


아니 그의 버린 생명이 파란 하늘빛으로 동녘이 밝아오는 듯 희망을 태동 시킬까? 빛 좋은 이상을 꿈꿔본다.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살신성인의 대열에 과감히 뛰어든 그의 영혼의 소리를 이 사회가 외면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까짓 4천만 원이 아니다. ‘탈무드’의 자손 유대인 친구들의 생활철학을 곁에서 봤다. 함께 길을 걷다가 땅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다. 호주머니에 넣겠지, 왠걸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둔다.


놀라워라, 아니 네 것이 아닌가? 묻는 내가 한심할뿐더러 몹시 부끄러웠다. “내 것이 아니란다” 주인이 나타날까? 아니란다. 누가 주워가도 내 맘이 편하단다. 탈무드의 교육일까? 지혜의 산물일까? 


그는 교육자다. 그에게 교육받고 자란 이곳 캐나다의 자녀들, 무슨 선물을 받든 한국 아이들처럼 “이게 진짜예요?”라고 묻지 않는다. “탱큐” 만이 입에서 함박웃음으로 감사를 표한다. 뿐인가. 장애인들을 위한 자동화된 문을 아빠가 사용하는 걸 보고, 아들이 말한다. “아빠는 장애인이 아니면서 왜 그 버튼을 누르세요”라는 것이다.


단군의 자손들은 뭘 보고 배웠나. 탈무드가 도덕책으로 정규교육을 시켜도 될성 싶은데.


 노회찬 의원, 그의 손으로 만진 별것 아니라는 떡값의 실체는 드루킹이란 요상한 범행이 법적으로 증명되리라 믿으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젊음을 불태웠던 그의 탁월한 신념과 의지력으로 한국 정치사에 변화와 희망을 접목시키려 했던 투쟁의 불꽃이 다시 되살아나야 할 것을, 그의 주검의 소리가 영원히 온 국민들의 귓가를 울려주길 소망해 본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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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2
금고지기들의 환란

 


 
 해킹(hacking)이라는 도둑을 맞았다. 방심은 금물이라는데, 금고지기들의 근무태만이 빚은 결과로 수십 명이 일자리를 잃어버린 이야기다. 요즘엔 인터넷 네트워크의 연결로 방안에 앉아서 은행출입을 대신하는 편안하고 요긴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Online banking의 편리함을 더 이상 말해 뭐하랴. 줄 서서 행원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를 줄여 주었고, 왔다 갔다 운전시간 절약은 물론 기름값마저 절감하는 편리함으로, 모든 입출금 관리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세상을 누리고 사는 세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잔고확인을 하는 중에 지난 3일 동안에 몇만 불이 빠져나갔다. 식은땀은 물론 눈앞이 캄캄했다. 태어나 처음 당해보는 청천 벽력같은 놀라움에 가슴이 철렁했다.


 이럴 수가? 체킹어카운트가 부족하니 저축계좌 금액이 자동으로 이체되어 몇만 불이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실수라면 저축계좌에서 자동이체 되도록 해두었다는, 편리하리라고 믿어 방치해둔 것이 실수였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럴 수가 없었다. 구좌를 개설할 때 개인 사인을 철저히 보강해 두었기에 한두 장의 가짜 수표는 금세 대조 식별하는 은행원들의 대처를 항상 믿고 있었다.


그것도 하루에 세 번씩이나 3일 동안에 10번을 남의 주머닐 털어갔던 일에, 시중은행은 무방비 상태였다면, 이거야 원, 도둑들이 활개를 치며 훔쳐가도록 뭣들하고 있었단 말인가.


10여 년이나 집 근처 은행창구를 이용했던 고객의 구좌내역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털어가도록 허술한 시스템을 어찌 그냥 방치해두었을까? 천만다행 3일만에 발각된 해킹의 실체는 수만 건의 대량 유출된 은행구좌의 무방비 노출이라는 허점이었음이 밝혀졌다.


유출된 액수야 이유 불문하고 전액 환원이 되었지만, 당황하며 안절부절 날강도에 된서리 맞은 후유증은 뭐로 달래주려나? 새롭게 개설해야 했던 모든 구좌들, 바꿔버린 구좌들의 내역을 관계부처와 통상거래처에 일일이 다시 연결해야 하는 번거로움, 신용카드며 데빗카드까지 모조리 비밀번호를 새롭게 바꿔야 하는 귀찮은 순서들, 부부가 연합으로 개설된 구좌들이었기에 함께 새롭게 설치해야 하는 이중적 고통의 피해자는 누군가? 


 구멍난 것 때워주면 그만이라는 구조의 난맥상, 언제까지 안일한 처리방식으로 땜질해야 하는가. 3개월 동안 특별지원 된 행원의 친절하고 세심한 보살핌이 있었기에 그나마 위로가 되였지만,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사실에 얼마나 긴장했던가. 


법적대응으로 환란의 책임과 정신적 고통과 혼란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변호인을 선임하련다는 피해자의 억울함에, 극구 자제해줄 것을 당부 또 당부하면서 거의 지점 전 직원이 손발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범벅이 된 상황은 은행업무처리 능력에 대한 실망이 컸다. 


대량 유출된 은행구좌들의 실체가 아직 공식 절차를 확인중이라기에, 합법적 공증변호인들의 법적 대응책에 중지를 모아야 함을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편리함의 최대한 보장은 물론 금고지기의 철저함이 완벽을 약속해줄 수 있다는 은행업무였기에 전 재산을 다 맡겨버리고 있었건만 이토록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고객정보의 도용을 눈감은 상태로 팽개쳐 버릴 수밖에 없다는 위험성을 어찌하려는지?


 대중을 매개체로 한 은행들의 사무착오는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거국적 차원에서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중차대한 사항이 아닌가!


Online banking의 취약점을 보다 더 철저하게 보강해야 함은 물론, 고객 보호 차원에서의 근본적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십여 년씩 몸담았던 행원들만 실업자로 전락시킨 은행의 인사관리 체제로만 해결을 모색하려 한다면, 또다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실수가 재연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연결된 구좌들의 자동이체 시스템의 허점들, 시급히 보완해야 될 과제임을 제고 해야 함은 물론, 자유롭고 믿음직스러운 고객들 편의를 철저하고 세부적인 운영의 묘를 구체적으로 체계화시켜야 할 것이다. 


사유재산 관리로 천문학적 이익을 창출하는 은행들의 역사가 몇 백년인가? 아직도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미숙함이 고객들의 잠결을 방해한다니 이거야 원. 금고지기들이여, 졸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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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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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6
특별 활동비

 

 

 태곳적부터 천재지변이 일어나 인종이 멸살되지 않는 한, 이세상은 도둑들과 공존해야 한다니, 참으로 서글프고 매우 신경 쓰여 고약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어쩌랴. 그런 세상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며 살아야 한다고 인간수양의 교육과 총명한 재치와 능력을 부여 받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려니 이해하며 포용하라는 성현의 말씀 앞에 고개를 떨구지만, 그러다가도 눈만 감았다 하면 코라도 베어갈 듯한 세상. 눈 똑바로 뜨고 볼 때 껄끄럽고 볼썽 사나운 환경을 결코 그냥 넘겨버릴 수 없다.


어떤 인종이라고 별 수 없다. 일등, 이등 국민 역시 훔치고 퍼가며 챙겨가는 도둑들의 등살에 고역을 치르며 험악한 세상이라고 악을 쓰지만, 근절될 수 없는 악종 중에 최악이 언제 없어질지. 종말이 오고야 끝장이 나리라.


가게를 했을 때의 일이다. 복권 판매대에 줄을 서 있으면서 무료하고 시장기를 달래야 하는 퇴근시간인지라 진열된 초코바며 먹음직스러운 것들을 훔쳐 먹으며 모른 척 복권만 계산하고 빠져나간 얼빠진 좀도둑들 한둘이 아니다


물론 먹은 후 빈 포장지를 내놓고 계산을 하는 자들이 있다지만 철면피 얄미운 도둑들이 훨씬 더 많다. 복권을 팔면서 긴장하고 세심한 촉각을 곤두세워 포켓에 집어넣고 모른 척 그냥 빠져나가는 도둑들 잡아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행운의 복을 구가하면서 천운을 꿈꾸는 그 순간에 못된 짖을 저지르고 무슨 복이 주어지길 바랄까! 


요즘 떠들썩한 한진그룹의 엄청난 도둑질들, 너무하지 않는가! 두 딸이며 엄마까지도 아니 사주(社主), 그 알량한 재벌의 한없이 불거지는 도둑질 말이다. 이제는 아들까지 대학 부정입학의 볼썽사나운 비리들로 한진그룹이 박살나기 일보전이다. 재벌들의 구린내가 어찌 한진 뿐일까?


또한 국회의원 삼백 명의 선택받은 선량들. 내놓고 버젓이 저지른 행패들은 어떤가! 보통활동은 무엇이고, 특수활동이란 오리무중인 그들의 활동무대는 무엇인가? 특수활동비는 국회의원들의 특별한 권력에 대한 위로금이었을까? 


뭐가 특별히 구분되는 그들의 임무였기에 해괴망측한 활동비를 남용하여 국민들의 피땀을 공공연히 훔치고 있느냐는 얘기다. 앞으로 ‘특별배설비’도 책정하고, 곁눈질하며 비서진들의 생김새에 눈독 드린 ‘특별눈독 처리비’도 곧 생겨날 것 같다. 


 수십 년 배불리던 특별활동비를 엊그제 새 국회의장이 들어서자마자 뜯어 고친다니 훔쳐먹은 근성을 다행스럽게도 양심의 저울로 재조정할 모양이다. 설마 ‘특별조정활동비’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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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3
동포사회를 빛낸 인물들

 

 

 조성준(Raymond Cho), 조성훈(Stan Cho), 조성용(Sonny Cho), 이 분들이야말로 온타리오와 토론토의 한인사회 위상을 크게 격상시키고 있다. 이제 동포사회의 힘들고 억울한 부분을 세심하게 보살펴줄 것이다. 


동방의 이민자 한인들이 이 분들의 이름 앞에서 희망을 봤고,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기둥이 세워지고 주춧돌이 마련된 것이다. 어찌 우리 이 기쁨을 가슴에 품지 않으랴.


 주류정치에 참여한 이 분들의 과감하고 탁월한 활동이 과연 기대를 충족할지는 안개 속에 희미하다지만, 허덕이던 이민의 삶 속에 빛을 향한 발걸음이 있었다면 그래도 10선이란 세월 동안 정치인으로 살아온 조성준 장관이 우리에게 행복을 채워 주었다고 하겠다.


 최근의 건강 걱정을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역량을 펼쳐주리라 기대한다.


 다른 성씨들은 모두들 뭐하고 있기에 한인사회는 조씨들만 있느냐고 유대인 친구가 내 곁에서 물어왔다. 그럴 수밖에. 흔한 김, 이, 박씨는 정치현장에 한사람도 보이지 않기에 외국인들마저 한인 커뮤니티엔 미스터 조가 많으냐고 물을 수밖에. 조씨 성은 열 번째도 안 되는데, 유달리 한인사회는 정치성향에 특출한 인물들이 조씨인 것 같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누가 해도 해야 할 일들, 우연히도 조씨 성 셋이 이 사회에 한인들의 위상을 격상해주고 있으니, 박수와 격려, 사랑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10선까지 훨훨 날아오른 노장 조성준 주의원으로서, 노인복지 장관으로서 그의 필살기는 신삼국지에 등재되어야 할 입지전적 인물임에 틀림없다. 이 세대가 낳아 스스로 외롭고 험한 길을, 히말라야 산등성을 기어오르듯 달성한 의지와 긍지를 어느 누가 흉내내며 이어갈 수 있을까? 지하광원으로 접시닦기로, 그의 투철한 입지전적 이민자로서의 투쟁사야말로 감히 어떤 정치인과 비교할까. 


 우리는 보고만 있었지만 그가 걸어온 발자취는 참으로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동포사회의 기념비적이고 역사적이기에 반세기 이민사에 화려하게 기록될 것이다. 


그를 따라 새로운 길을 파헤친 젊은 패기의 사나이 조성훈 주의원. 이민 2세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는 물론 많은 정치적 지략을 겸비한 신세대의 면모, 캄캄하고 암울했던 문을 두드리며, 새로움의 열정을 불길처럼 번지게 했다. 그의 강한 돌파력은 가가호호 유권자들 문을 열게 했다. 


 이 어찌 기적에 버금가는, 첫 번째 도전임에도 야무지게 쟁취한 것을 축하하지 않으랴. 이 불씨를 이어 그가 정치인의 면모를 어찌 펼칠지. 대선배인 조성준 장관의 소중한 조언과 그가 걸었던 과거사에서 교훈을 배워 이민의 땅 캐나다 정치현장의 획을 넓혀 나아갈 때, 스탠 조의 미래 역시 신선하고 알찬 새 세대의 역량으로 동포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연방의원 자유당 경선에 뛰어들었다가 열 손가락만큼 부족한 통한의 투표에 씁쓸하게 시름을 달래야 했던 조성용씨가 오는 10월 토론토시의원에 도전장을 냈다. 모두들 동참하여 힘을 보태야 하리라. 


윌로우데일 지역구 유권자인 동포들은 조성용 후보의 출중한 인품과 뛰어난 정치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함을 이미 증명했기에, 망설일 이유 없는 투표에 참여해 한인동포들 위상을 표출해내야 할 것이다.


 1.5세인 써니 조 역시 한국어 및 영어구사력은 물론 다년간 부동산업에 종사하여 동포사회에 이바지해왔다. 다시 웅지를 틀고 용트림하는 그의 도전에 지역 유권자들의 본격적 참여로 또 한사람인 조씨가 시정활동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한 표를 주저없이 보태야 할 것이다.


또한 연방의원에 도전해 불굴의 역량을 발휘하려는 한인여성 신윤주(Nelly Shin)씨의 출발에 어찌 우리 외면할 수 있으랴. 생소한 듯한 제2, 제3의 인물들이 언론에 등장하면서 그들의 정치적 소신이 동포들의 환호와 격려에 힘입어 활짝 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어느 정치인의 자서전에서 은퇴사 한 구절을 음미해 본다.


"정치를 감투라 생각할 때 그의 양심은 이미 정치인생을 끝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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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4
만남은 기쁨이어라

 

 

 꽃과 향기처럼 해야 함이 인사요, 꿀의 달콤함처럼 친절해야 함이 세상사는 방법이라 한다면 억설일까? 단연코 우리는 자연을 벗삼아 꽃과 꿀의 합창으로 아름다운 삶을 엮어가야 할 것이다.


만남의 첫 대면에 미소와 함께 정겨움으로 가슴을 열어 표현하는 포근한 인사 속에 향기 가득한 아름다운 꽃이 주어지고 향기로운 정겨움에 기분이 상쾌할 것이다. 오랜만의 만남일수록 간절함에 기분 좋은 격려와 사랑을 함께 엮어 청량제 같은 미소를 쏟아내는 모습이 아름답다.


바로 이것이 세상살이요, 교제요, 소통이다. 우리는 뭐가 어찌되었든 탐스러운 꽃의 향기와 함께 달콤한 꿀맛 같은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길 기대하며 하룻길을 가고 있다.


고통과 번민, 불편함과 괴로움, 외로움과 쓸쓸함, 그늘 밑만 서성인 것처럼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면 그 인생은 참으로 초라하고 측은할 수 밖에 없겠지만 그 역시 순간의 과정이고 지나고 생각하면 별스럽게 까다로운 일들도 모두 해결될 것이었기에 그 다음에 펼쳐질 그림은 결코 흠을 메우기 위한, 검은색으로만 덧칠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쨍 하고 해 뜨는 날이 날마다 계속되던가!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련다 작정하고 포용하며 유쾌하게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살겠다고 요구하지도 투정하지도 않았어도 덤으로 주어진 듯 베풀어진 우리들의 삶은 결코 비관적이며 따분하지도 않다.


인사하며 친절하리란 지극히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인간적인 행위에 우린 충실해야 하고 또한 의무를 다하고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란 속담이 예부터 우리 곁에 살아 진리를 터득하게 한다.


꽃과 꿀이란 합성어 같은 상대성 이론과 초자연적 생태적 리듬에 인간의 기초적 정서가 보다 더 친근함으로 펼쳐져야 할 것이다. 밤을 깨워 동이 트면 이 하루살이의 이런저런 만남들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취할 듯 향기로움에 탐스런 꽃처럼, 안녕하세요, 좋은 날씨네요, 건강미가 넘치시네요, 평안하신 모습 뵈니 기쁩니다, 활기가 넘치십니다, 참 상큼하고 멋지십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 하잖던가. 바쁘고 허덕이며 뛰고 달리며 허덕였던 삶 가운데 모쪼록 여유로운 만남의 첫 인사를 티없이 고운 표정 속에 분위기 있게 최상의 친근함으로 완전 탈바꿈 해버린 인사들로 채워주는 만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격려와 칭찬으로 기분이 상쾌한 인사에 무슨 수고와 돈 같은 것이 필요한가. 


많이 상하셨네요, 늙으셨네요, 흰머리가 많이 보이시네요, 힘들어 보이시네요, 편치 않아 보이시네요, 옷이 너무 크네요 등은 결단코 듣기 좋은 인사말이 아니잖은가.


듣는 상대편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껄끄럽고 쓴맛에 비위 상한 모습으로, 당신도 보기에 참 딱하구려! 상한 마음을 눈빛에 담았다면, 만남이 아니라 피했어야 할 안타까움이다.


행여 씁쓸하게 뒤틀린 감정의 화살이 꽂혀진다면 인사가 아니라 상식의 파괴요, 인격수양의 나락이다. 몰지각한 수준의 행패다. 면박도 그 정도라면 불량자들의 만행임을 어찌 부정하랴. 돌이킬 수 없는 미성숙이 아닌가. 품위도 고급스러움도 실종된 인간적 예의범절 역시 파괴돼버린 서글픈 상황이 불편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친근한 대화의 기본이 가족들의 안부일텐데 상식이 아닌가. 자식들의 상황이라든가, 생존해 계신 부모형제들의 근황, 이웃친지들의 잊혀져 가는 소식들, 만남 속에 갖춰져야 할 소박한 안부들 속에, 정겹게 엮어가야 할 매우 기초적 인간의 모습이 향기롭게 펼쳐져야 할 것이다.


눈과 눈이 마주했기에, 가는 세월의 흉터를 덮어주는 만남을 이뤄야 할 것이다. 반가움의 상황판단은 포옹과 껴안음의 상대적 반올림이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어야 했던 사랑하던 남녀간의 만남이라면 더욱 큰 황홀한 기쁨으로 승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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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5
잃어버렸던 인연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아 숨쉬면서도 30여 년을 나 몰라라 살아버린 친구 부부를 놀랍게 만났다. 나쁘게 헤어진 일도 없었다. 


하루라도 못 보면 눈에 가시가 돋듯 전화하고, 주말만 되면 이 친구 저 친구 불러내어 함께 살뜰히 살아왔던 그런 사이들이었는데, 어느날 언제부턴가, 안부 한 번도 없이 그렇게 헤어져 잃어버린 인연이 돼버렸다.


젊은 시절은 열정을 불태워 새터민의 삶을 개척해야 했기에 누굴 탓하랴. 만남이 이뤄진 건 하늘의 섭리라는데, 우리는 관계를 형성해가는 인간적 책임감을 너무나 허술하게 팽개치듯 살았던 것이다. 


 허덕이며 쫓기듯 중년의 삶을, 아이들 낳아 복되게 성장시켜 짝을 맞추어 손주들 안아보기까지 분명히 쉬운 삶은 아니었다. 팔팔하던 젊음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역경과 혼란 속이었지만 숙명적인 삶의 여정을 더러는 환한 기쁨 가운데서 엮어갈 수 있었다.


그들이 곁에 있었기에 세상이 주는 희비쌍곡선을 넘나들 수 있었고, 갈고 닦은 인륜의 온갖 지혜와 사랑을 함께 나누며 천둥, 번개, 비바람을 피해갈 수 있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캐나다에 정착하여 뭘 해야 먹고 살꼬? 걱정과 염려도 필요없이 어느 누가 일터에서 부르거나 예비된 것이 없었어도 밥 세끼는 마련되어 있던 캐나다 이민생활이었다.


공무원으로 연봉이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로라 하는 회사의 중역자리를 꾀여 찾는가. 결코 아니다. 이 사회에 발 딛고 삶을 적응하려면 소통의 원칙은 기본이었기에, 국가 장학금이 배당되어 말을 배워야 했고 생활비 조달까지 깍듯이 챙겨주는 이곳 이민의 나라 캐나다였다.


그래서 누군가가 젖과 꿀이 흐른 가나안의 정착지라 일컫지 않았나. 캐나다는 지금도 부정할 수 없는 복지정책이 야무진 최고의 국가라는데.


젊어 넘치는 패기와 열정이 용광로처럼 들끓던 시절에 함께 했던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숨가쁘게 겪은 세월의 흔적이 이곳 저곳에 흠뻑 배어 있었다. 온갖 풍파를 이겨내며 버텨냈던 지난 이야기들, 세월은 주름살로만 연륜을 덮어버린 게 아니었다.


세월호의 슬픔이나 천안함의 원통함이 물 건너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가치 없이 밀려드는 하세월은 지구촌 어디에나 고통과 절망으로 몸서리치게 찾아들고 있었다.


 숙명적이라 할지라도 유방암이란 살인병의 침범으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큰딸을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고, M형의 혈관수술에 심장병 후유증까지 버거운 건강의 위태로움에 속수무책 가는 세월은 참으로 야속했던 것이다. 


두 손주를 낳아놓고 싱싱한 젊음을 앗아가버린 조물주는 어찌 그리도 야속하단 말인가. 차라리 손발이 잘려나간 거라면 견뎌낼 수 있으련만, 생떼 같이 딸아이가 무슨 죄값을 치르면서 그런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을까?


하늘도 땅도 무너지고 꺼진들 부모의 고통과 슬픔에 무엇으로 견주며 치유받을 수 있을까? 가버린 세월이 그래도 위로와 희망을 안겨줬기에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와 정겨움에 시간 헤아릴 틈도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잃고 흘러가버린 관계 속에 못다 퍼낸 사연들, 이제는 한과 설움을 토해낼 수 있는 옛 친구를 다시 만나지 않았는가.


그대 이야기도, 내 이야기도 함께 퍼내며 찬란한 이 세월을 맞이하세. 못다한 이야기며 숨겨졌던 얘깃거리까지 죽기 전에 다 펼쳐내고 가야 할 것 아닌가. 잃어버렸던 30년의 주고받지 못했던 남은 정들 맘껏 퍼내고 살아가잔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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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나이야 가라!”

  

▲나이아가라온더레이크에서 펼쳐지는 ‘Shaw Festival 2018’ 공연 무대 

 

 

 

 위 제목은 ‘아버지날’에 딸이 카드에 써서 준 글귀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 나이만 가게 하소서. 그리고선 Niagara on the Lake 주말여행을 세심하게 주선해 2박3일 “나이여 가소서! 삶만을 즐기게 하소서. 제발 나이만 들지 않게 하소서!” 신비주의자들의 외침인 양 나들이의 목적을 향해 오랜만의 가족여행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곳엔 수억 톤이 쏟아지는 폭포만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곁에 있는 식물원과 박물관들만이 대표적 세계의 유명 관광지로 이제껏 자리매김했던 곳으로 겨우 알고 있었다. 빈약한 폭포 주변 환경에만 치중했던 수박 겉핥기 여행자의 섬세하지 못했던 관광자료 수집이었음을 돌이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국에서 친지들의 방문길에 빼놓을 수 없었던 곳이 바로 폭포의 우람하고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만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이아가라 다운타운에 위치한 문화적이고 전설적인 고장의 산 역사들, 또 다른 알차고 값진 교육학적 공연들로 가득했다. 


그 중에 하나, Shaw Festival 2018이란 생생한 공연현장은 스트라트포드 페스티벌 극장가에 비길 수 없는 음향시설과 조화로움에 라스베이가스에 버금가는 퍼포먼스로 매우 교육학적 뮤지컬들을 공연하고 있었다.


 THE ORCHARD by Sarena Parmar "My parents are from India, But l was born here. I wanted to fit in, be normal, and be Canadian”


복합문화를 지향하는 국가정책에 적응하려는 우리 세대의 이야기들을 코믹하고 눈물겹게 펼쳐 보이는 2시간이 넘는 공연은 바로 코리언캐네디언의 정착 과정과 다름없이, 같은 인간적 핏줄임을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오후 프로그램인 ‘그랜드호텔’이라는 또 하나의 방대하고 웅장한 뮤지컬의 무대 Jackie Maxwell Studio Theatre엔 인간으로서 펼쳐보일 수 있는 최상의 퍼포먼스가 최상의 관현악단인 섬세한 음률과 더불어 극장 안에 별세계를 공연한 축제가 아니었을까.


바다같은 온타리오 호수 주변으로 복합문화의 산실답게 온갖 맛깔스런 국제 식당들의 진미들은 매끼마다 입맛을 새롭게 돋구어 주었고, 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 근교엔 또 다른 세상을 보게 하는 눈으로 많은 것들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있었다. 


 늙지 않도록 나이야 가라! 이번 나이아가라 주말 여행으로 거듭난 젊음을 되찾을 것 같은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이토록 넘치는 풍성함으로 즐거운 삶을 부추기는 관광명소가 있었기에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여행은 나이만 가고, 늙지 않게 도와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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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초원의 향기, 골프의 계절

 

 반가운 초원의 향연이 올해도 즐거운 삶을 전해준다. 기다렸던 잔디의 그리움이 어느 누구와 약속만 해도 가슴이 뛰고 손목에 힘이 간다. 약속만 해도 피곤하고 무료했던 심신의 괴로움이 말끔히 물러가는 신비스런 운동 골프.  


 꿈결에도 18홀까지 가슴 뛰며 돌고, 친구들과 최소 4시간을 즐거움 속에 전신 운동을 한다. 바야흐로 골프의 계절이다. 지치도록 기다려온 잔디의 풍경, 이를 천국에 비할까. 


 힘을 빼야 한다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첫 번째 친 볼이 빗나가 숲속을 더듬게 한다. 잃어버린 공을 찾아 헤매는 풍경은 그토록 흥분으로 가슴 태우던 라운딩의 비애다.


 예의와 인격을 중시하고 또한 나를 다스리는 운동, 실수를 해도 인내하며 남에게 티를 내지 않아야 하는 운동이 바로 골프다. 룰에 철저히 복종해야 한다. 두번 세번 실수해도 옆사람이 모르게 가슴을 쓸어 내리며 심호흡으로 다음 샷을 가다듬어야 하는 특별한 운동.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 한번 잘못 쳐도 다음 홀 시원한 샷에 말끔히 화가 가시니, 골프라는 마력에 지칠 줄 모른다.


 4시간씩이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만 두기 싫은 운동이기 때문에 스스로 나의 실수를 숨김없이 양심의 도화지에 표시해야 하는 예술가적 운동이기도 하다. 이겨야 한다는 집착과 강박관념에 아직도 못 버린 성깔이 눈빛을 바꾸기도 한다. 그게 골프란 운동이다. 신비스런 유혹이 꼼짝없이 흔들어댄다.


 나보다 못 친다고 레슨을 하려 드니, 가난한 이웃에게 적선하는 것보다 더하고 싶은 자선운동이 또한 골프다. 100을 넘는 핸디맨은 2-3홀부터 가르치려 한다. 100에 가까운 핸디맨은 9홀부터, 90 정도 치는 분들은 대여섯홀 남겨놓고 가르치고 싶어 하고, 80이 넘는 분들은 3홀 남겨두고 가르치려 드는데, 70 대를 마크한 분들은 끝나고도 입을 닫고 있기에, 좀 가르쳐 달라면 30분에 75불이란다. 


 짜릿하고 감미로운 흥분… 모처럼 파란 잔디와 신선하고 상쾌함으로 산천초목이 함박웃음으로 나를 반긴다. 잘 다듬어진 18홀과 세심하게 조화를 이뤄낸 체력의 단련장이다. 열심을 다해 걷고 최선을 다해 그간 갈고 연마한 몸놀림에 순응하는 운동을 맘껏 펼쳐, 내 것으로 소화시켜야 하는 값지고 소중한 운동이다. 


 넓고넓은 골프장에 어찌 그리 인색하게 홀은 작게 뚫어둔 걸까? 옛날 목동들의 자치기 노름이던 것이 전설적으로 수백 년을 이어오는 마법 같은 운동으로 국제화되었다.

다른 것들은 많이도 근대화되고 개발되었건만, 작은 홀을 더 넓혀야 한다는 골프 이론은 아직 없다. 


 평생직업이라고 연습벌레로 열정을 쏟아낸 PGA, LPGA선수들, 그들도 한 홀에서 5~6개를 오버하는 운동이 골프다. 나를 다스리는 운동이기에 화를 잠재우고, 0.1 m에 홀을 놓쳤다고 하늘 보고 악을 쓰고 퍼터를 던져 속풀이를 하는 대신, 바나나 반개를 더 먹었다면 틀림없이 들어갔으련만, 힘과 자신감이 부족했음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두 번 세 번 칩샷이 실수로 연결된다면 어깨리듬으로 클럽을 리드할 것을 손으로만 냅다 서둘렀으니. 어깨에 팔에 손이 느슨해야 하지만, 그립에 의존한 악력은 손톱 밑에 핏기가 보이지 않도록 부드러워야 하리.


 깔끔하게 차려입은 내 모습에 골프 좀 못쳤다 할지라도 그게 무슨 부끄러움인가. 신선하고 멋진 골프장 풍경에 유산소 운동을 심호흡으로 하면서, 골프 옷 가게를 뒤져 골라 입은 패션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그래서 골프장엘 더 자주 간다. 부모님 산소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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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
“쵝오다, 쵝오야(?)”

 
 
 “쵝오다, 쵝오야” 스케이팅의 여왕 이상화 선수가 함께 참가한 동료선수들의 피말리는 투쟁을 힘찬 박수와 함께 격려와 사랑으로 극찬한 표현이다. 들고 있는 응원피켓의 표현이 순발력과 재치있는 세 글자의 묘미로 얼음판에 펼쳐 쏟아부은 것이다. 


그 여왕이 달성한 으뜸의 영광, 으뜸이 되려면 하고 싶은 것, 꿈꾸던 희망들, 모든 역량을 완벽하게 달성하는 의지와 노력의 결과가 최상이어야 얻어지는 월계관이 될 것이다.


우리 곁엔 꿈과 소망들을 당차게 이뤄 정상의 환호성에 흠뻑 취하여 으뜸의 기쁨을 누리며 후회없이 사신 분들이 많다. 온타리오주 보수당의 집권과 함께 동포사회의 정치인들이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다. 이 역시 “와우, 으뜸의 순간이 아닌가.”


우리말의 의미가 함몰되어가고 있다. 근세에 변화된 우리글 속에 남용되고 변질되어 오염돼버린 한글의 참뜻은 이미 상실되어 버린지 오래 되었다고 해도 슬프지만 결코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언어는 소통의 문화이기에 쉽고 간결함이 생명임에 틀림없으련만, 언론이며 문화계까지도 앞다퉈 외래어를 남용, 비빔밥처럼 얼버무려 우리글이 있는데도 외래어가 밀고 들어온 상황은 참으로 보통 일이 아니다.


수백 년 찬탈당한 조공정치의 역사며, 6.25 전쟁 때 중공군의 개입으로 부산까지 떠밀렸던 잊을 수 없는 서글픈 역사가 있었건만, 우리는 그들의 언어를 도용해 부끄럼 하나 없이 공용어처럼 사용하고 있다.


영문이야 중국어에 비하면 그래도 은혜로움을 갚기라도 해야겠기에, 5만여 명의 젊음을 희생시키면서 우리땅을 그나마 유지시켜준 동맹국이었기에, 그래서 수억 불씩 쏟아부어 첨단무기 구입의 일등국으로 눈물어린 관계를 유지해가야만 숨을 쉬는 국민들이 아닌가.


우리는 영어단어들마저 공용어로 분칠을 하고 멀쩡한 한글의 의미들을 먹칠해야 한다면, 그 애석함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길거리 간판들이며 각 신문 기사들마저도 무슨 연유에서인지 한글을 뒤로 미뤄가며 외래어의 사전처럼 고사성어나 사자성어로 도배하다시피 자꾸만 한글 정체성이 침몰되어 가고 있다.


심지어 한국문화계마저 국어사랑이라는 단체까지 활동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글의 기본과 실체가 흐물흐물 사라져가는 염려스러움이 안타깝다. 세계는 한글문자의 구성 요법이 배우기도 쉽고 쓰기 쉽고 표현력이 다양하다는 요지의 흥미로운 관심을 쏟아내고, 아프리카 몇 개국은 한글로 나라글을 하련다는 관심사가 얼마 전까지 신문기사를 장식하기도 했다.


세계는 열광하는데 한국은 나라말인 한글을 찬밥취급 하여, 영어며 중국어며 불어와 일본어까지, 합성어로 비벼 만든 글들. 과연 국민들 중 얼마가 그 외래어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코스프레, 트라우마, 포스트 모던, 네트웍크, 스타트업, 엔슬파트너스, 멘토단, 벤처스퀘어, 인사불성, 안하무인, 랑데뷰, 멜랑꼬리… 어찌 다 열거하리. 뭉뚱그려진 일본어들까지, 자존심도 없는가?


온갖 실력과 인격을 갖추었다는 우리 국민들 수준에, 저 정도의 외래어쯤은 ‘가갸거겨’ 같은 기본에 부합할 수 있다는 주장일까? 아는척 잘난척, 일반적으로 저 정도의 외래어쯤 알고 있어야 교육수준의 격상하는 모양새를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라면, 순수한 우리글의 기본적 혼은 어찌하란 말인가? 


인간적 내면의 깊이나 그들 영혼의 사상적 뿌리가 외래어로 평가기준이 책정되어야 한다면 아예 초등생의 교과 과정부터 짬뽕국어로 편성해야만이 국가관을 정립시킨다는 변화된 이론에 접합시킬 것을? 


 온갖 언론이 지향하는 조국땅의 정체성마저 언론계는 물론 문화계 모두 양판 비빔밥에 엉망이 되어가는 현실이 답답해서 낙서로 불평을 터트려 본다. 


한글 표현이 없어서라면 당연히 남의 나라 글로라도 소통해야겠지만, 우리글의 다양성과 감성적 표현들은 분명코 세계 언어사에 기록될 수 있는 으뜸의 경지라 믿어 의심치 않는데.


 ‘봄이 왔어요’ 우리말 글짓기대회 초등4학년 유한나 양의 수상작 중에 발췌한 몇 줄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나비, 아빠가 좋아하는 하늘, 제가 좋아하는 꽃이 다 보이네요."


북한에서 사용되는 화장품 용어들도 순수하고 맑은 때묻지 않은 순수 한국어들이다. 스킨-살결물, 선크림-햇볕방지용, 립스틱-입술연지, 아이브로-눈썹연필… 


 언문이 으뜸이다, 으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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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3
별스러운 날에 혼의 찬미

 
 
분명히 40불 개스값을 치르려고 50불짜리 지폐를 줬다. 계산서와 거스름 돈을 서둘러 운전석 옆에 던져두고 방향전환으로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빨리빨리의 적자 출신답게 숨가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라디오 뉴스에 귀를 기울이며 슈퍼마켓에 들러 필요한 먹고 마실 것을 사기 위해 주차를 하고 방금 던져두었던 옆자리 거스름돈을 챙겼다. 어! 그런데 20불짜리가 개스 영수증에 덮여 있지 않은가. 한쪽 귀에 전화기를 대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억양으로 톤을 높이던 캐쉬어의 실수였다. 10불이란 덤이 주어졌구나! 순간적으로 머리에 혼란이 왔다. 커피값이 덤으로 생겼네. 에잇 까짓 거 10불 갖고서 양심선언까지 할거야, 어찌할까? 다시 주요소로 돌아가야 하나? 


 주춤거리며 양심의 저울대가 널뛰기 한다. 속이려는 것도 아니었고, 있다면 거스름돈을 받자마자 확인을 않고 ‘빨리빨리’의 한국적 습성이 지금도 남아 덤벙대는 모습 때문이다. 아직도 매사에 서둘러대는 고질적 모양새는 언제나 없애나. 


 주섬주섬 먹거리 쇼핑을 끝냈다. 이때까지도 돌려줘, 말어… 묵살이란 단어까지 요동치고 있었다. 그래도 진로를 북북서로 돌려라. 5분 정도의 지척인 주요소로 차를 몰았다. 밀리언 달러가 덤으로 생겼다면, 밤잠을 뒤척이며 혼란에 안절부절 할 수도 있으련만, 10불로 남자가 치사하게 졸장부 노릇에 휘말려야 쓰나! 종일 씁쓸할 터인데… 콧수염에 터번을 썼던 캐쉬어는 왠걸 30분 전에 퇴근한 뒤였다.


또 다른 갈등이 양심을 흔들었다. 그냥 나가버려 말아! 부부간일까? 남녀 두 사람이 캐슈어 앞에서 행운의 복권을 마크하고 있었다. 옆으로 끼여들어 10 불짜릴 카운터에 올렸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방금 퇴근한 사람의 실수라고 전해달라 했다.


복권을 구입하는 두 사람이 옆을 슬쩍 쳐다보며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와우! 와우! 판타스틱, 그레잇, 수펍” 야단법석이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아유 촤이니스?” 나를 중국인 취급한다. “노, 아임 코리언” 이때라도 당당해야지, 어깨가 으쓱했다. 국위선양이라도 하는 양 흐뭇한 가슴을 애써 진정했다. “My father was in Korea.” “What? 와우” 이제는 내 입에서 또 다른 놀라움이 터졌다.


참전용사의 자녀였던 것이다. 감사와 경외함이 그의 아버지를 향했기에 이 글 속에 어찌 그 얘기를 다 담으랴. 태연한 척 “It's only 10 bucks!” 


밖으로 나가려는데 캐쉬어가 포인트카드를 달란다. “For what?” Gifts를 준단다. “Are you sure?” “당신 같은 사람 별로 없었다”고 한다. 무려 2천 포인트나! 횡재다. 대박처럼 기분이 짱할 수밖에… 


 후련했다. 어깨마저 들썩이며 졸장부였던 가슴이 이제야 펴졌다. 훔친 것마냥 편치 않던 10불의 위력이 이토록 나를 자유롭게 하며 대단한 일이나 한 것처럼 우쭐하기까지 했다. 덤으로 선물포인트까지 얻어 챙겼으니, 10불짜리 돈의 위력이 새삼스럽게 심적 효소들을 낙하산에 태워 구름 속에 띄워준다. 나는 듯한 기분이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짜릿함이 온종일 계속될 것 같다.


시장에 왔기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려고 다른 곳을 향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비어스토어를 들렀다. 예사 비어스토어는 항상 붐비는 곳 아니던가. 28병 스페셜, 끙끙거리며 맥주를 트렁크에 싣는데 우연히 타이어에 시선이 멈췄다. 아니 이건 또 뭐야? 타이어에도 깔리고 주변에 코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있잖은가. 옆을 두리번거렸다. 누가 흘렸나? 날보고 주워담으라는 것들인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주섬주섬 양손이 바쁠 수밖에… 5, 10, 25센트는 물론 2불, 1불 코인들이 도합 거금 12불이나 됐다. 10불로 푸른 하늘 구름까지 태워주던 몇 분 전의 환희가 2불을 더 보태어 이젠 뭘 태워주려나? 맥주를 구입한 누군가가 주르르 흘리고 갔기에 이거야말로 임자 없는 코인들이다. 


경찰을 부를 수도 없겠고, 비어스토어에 줄 수도 없지, 만약 그렇다면 내가 정신 감정을 받아야할 테다. 참 이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일까? 언제 정신감정이라도 한번 받아봐야 하나. 이런 돈 주워도 되느냐고? 오늘은 참 별스러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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