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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福泉) 칼럼

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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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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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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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초원의 향기, 골프의 계절

 

 반가운 초원의 향연이 올해도 즐거운 삶을 전해준다. 기다렸던 잔디의 그리움이 어느 누구와 약속만 해도 가슴이 뛰고 손목에 힘이 간다. 약속만 해도 피곤하고 무료했던 심신의 괴로움이 말끔히 물러가는 신비스런 운동 골프.  


 꿈결에도 18홀까지 가슴 뛰며 돌고, 친구들과 최소 4시간을 즐거움 속에 전신 운동을 한다. 바야흐로 골프의 계절이다. 지치도록 기다려온 잔디의 풍경, 이를 천국에 비할까. 


 힘을 빼야 한다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첫 번째 친 볼이 빗나가 숲속을 더듬게 한다. 잃어버린 공을 찾아 헤매는 풍경은 그토록 흥분으로 가슴 태우던 라운딩의 비애다.


 예의와 인격을 중시하고 또한 나를 다스리는 운동, 실수를 해도 인내하며 남에게 티를 내지 않아야 하는 운동이 바로 골프다. 룰에 철저히 복종해야 한다. 두번 세번 실수해도 옆사람이 모르게 가슴을 쓸어 내리며 심호흡으로 다음 샷을 가다듬어야 하는 특별한 운동.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 한번 잘못 쳐도 다음 홀 시원한 샷에 말끔히 화가 가시니, 골프라는 마력에 지칠 줄 모른다.


 4시간씩이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만 두기 싫은 운동이기 때문에 스스로 나의 실수를 숨김없이 양심의 도화지에 표시해야 하는 예술가적 운동이기도 하다. 이겨야 한다는 집착과 강박관념에 아직도 못 버린 성깔이 눈빛을 바꾸기도 한다. 그게 골프란 운동이다. 신비스런 유혹이 꼼짝없이 흔들어댄다.


 나보다 못 친다고 레슨을 하려 드니, 가난한 이웃에게 적선하는 것보다 더하고 싶은 자선운동이 또한 골프다. 100을 넘는 핸디맨은 2-3홀부터 가르치려 한다. 100에 가까운 핸디맨은 9홀부터, 90 정도 치는 분들은 대여섯홀 남겨놓고 가르치고 싶어 하고, 80이 넘는 분들은 3홀 남겨두고 가르치려 드는데, 70 대를 마크한 분들은 끝나고도 입을 닫고 있기에, 좀 가르쳐 달라면 30분에 75불이란다. 


 짜릿하고 감미로운 흥분… 모처럼 파란 잔디와 신선하고 상쾌함으로 산천초목이 함박웃음으로 나를 반긴다. 잘 다듬어진 18홀과 세심하게 조화를 이뤄낸 체력의 단련장이다. 열심을 다해 걷고 최선을 다해 그간 갈고 연마한 몸놀림에 순응하는 운동을 맘껏 펼쳐, 내 것으로 소화시켜야 하는 값지고 소중한 운동이다. 


 넓고넓은 골프장에 어찌 그리 인색하게 홀은 작게 뚫어둔 걸까? 옛날 목동들의 자치기 노름이던 것이 전설적으로 수백 년을 이어오는 마법 같은 운동으로 국제화되었다.

다른 것들은 많이도 근대화되고 개발되었건만, 작은 홀을 더 넓혀야 한다는 골프 이론은 아직 없다. 


 평생직업이라고 연습벌레로 열정을 쏟아낸 PGA, LPGA선수들, 그들도 한 홀에서 5~6개를 오버하는 운동이 골프다. 나를 다스리는 운동이기에 화를 잠재우고, 0.1 m에 홀을 놓쳤다고 하늘 보고 악을 쓰고 퍼터를 던져 속풀이를 하는 대신, 바나나 반개를 더 먹었다면 틀림없이 들어갔으련만, 힘과 자신감이 부족했음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두 번 세 번 칩샷이 실수로 연결된다면 어깨리듬으로 클럽을 리드할 것을 손으로만 냅다 서둘렀으니... 어깨에 팔에 손이 느슨해야 하지만, 그립에 의존한 악력은 손톱 밑에 핏기가 보이지 않도록 부드러워야 하리.


 깔끔하게 차려입은 내 모습에 골프 좀 못쳤다 할지라도 그게 무슨 부끄러움인가. 신선하고 멋진 골프장 풍경에 유산소 운동을 심호흡으로 하면서, 골프 옷 가게를 뒤져 골라 입은 패션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 그래서 골프장엘 더 자주 간다. 부모님 산소보다 더…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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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
“쵝오다, 쵝오야(?)”

 
 
 “쵝오다, 쵝오야” 스케이팅의 여왕 이상화 선수가 함께 참가한 동료선수들의 피말리는 투쟁을 힘찬 박수와 함께 격려와 사랑으로 극찬한 표현이다. 들고 있는 응원피켓의 표현이 순발력과 재치있는 세 글자의 묘미로 얼음판에 펼쳐 쏟아부은 것이다. 


그 여왕이 달성한 으뜸의 영광, 으뜸이 되려면 하고 싶은 것, 꿈꾸던 희망들, 모든 역량을 완벽하게 달성하는 의지와 노력의 결과가 최상이어야 얻어지는 월계관이 될 것이다.


우리 곁엔 꿈과 소망들을 당차게 이뤄 정상의 환호성에 흠뻑 취하여 으뜸의 기쁨을 누리며 후회없이 사신 분들이 많다. 온타리오주 보수당의 집권과 함께 동포사회의 정치인들이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다. 이 역시 “와우, 으뜸의 순간이 아닌가.”


우리말의 의미가 함몰되어가고 있다. 근세에 변화된 우리글 속에 남용되고 변질되어 오염돼버린 한글의 참뜻은 이미 상실되어 버린지 오래 되었다고 해도 슬프지만 결코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언어는 소통의 문화이기에 쉽고 간결함이 생명임에 틀림없으련만, 언론이며 문화계까지도 앞다퉈 외래어를 남용, 비빔밥처럼 얼버무려 우리글이 있는데도 외래어가 밀고 들어온 상황은 참으로 보통 일이 아니다.


수백 년 찬탈당한 조공정치의 역사며, 6.25 전쟁 때 중공군의 개입으로 부산까지 떠밀렸던 잊을 수 없는 서글픈 역사가 있었건만, 우리는 그들의 언어를 도용해 부끄럼 하나 없이 공용어처럼 사용하고 있다.


영문이야 중국어에 비하면 그래도 은혜로움을 갚기라도 해야겠기에, 5만여 명의 젊음을 희생시키면서 우리땅을 그나마 유지시켜준 동맹국이었기에, 그래서 수억 불씩 쏟아부어 첨단무기 구입의 일등국으로 눈물어린 관계를 유지해가야만 숨을 쉬는 국민들이 아닌가.


우리는 영어단어들마저 공용어로 분칠을 하고 멀쩡한 한글의 의미들을 먹칠해야 한다면, 그 애석함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길거리 간판들이며 각 신문 기사들마저도 무슨 연유에서인지 한글을 뒤로 미뤄가며 외래어의 사전처럼 고사성어나 사자성어로 도배하다시피 자꾸만 한글 정체성이 침몰되어 가고 있다.


심지어 한국문화계마저 국어사랑이라는 단체까지 활동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글의 기본과 실체가 흐물흐물 사라져가는 염려스러움이 안타깝다. 세계는 한글문자의 구성 요법이 배우기도 쉽고 쓰기 쉽고 표현력이 다양하다는 요지의 흥미로운 관심을 쏟아내고, 아프리카 몇 개국은 한글로 나라글을 하련다는 관심사가 얼마 전까지 신문기사를 장식하기도 했다.


세계는 열광하는데 한국은 나라말인 한글을 찬밥취급 하여, 영어며 중국어며 불어와 일본어까지, 합성어로 비벼 만든 글들. 과연 국민들 중 얼마가 그 외래어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코스프레, 트라우마, 포스트 모던, 네트웍크, 스타트업, 엔슬파트너스, 멘토단, 벤처스퀘어, 인사불성, 안하무인, 랑데뷰, 멜랑꼬리… 어찌 다 열거하리. 뭉뚱그려진 일본어들까지, 자존심도 없는가?


온갖 실력과 인격을 갖추었다는 우리 국민들 수준에, 저 정도의 외래어쯤은 ‘가갸거겨’ 같은 기본에 부합할 수 있다는 주장일까? 아는척 잘난척, 일반적으로 저 정도의 외래어쯤 알고 있어야 교육수준의 격상하는 모양새를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라면, 순수한 우리글의 기본적 혼은 어찌하란 말인가? 


인간적 내면의 깊이나 그들 영혼의 사상적 뿌리가 외래어로 평가기준이 책정되어야 한다면 아예 초등생의 교과 과정부터 짬뽕국어로 편성해야만이 국가관을 정립시킨다는 변화된 이론에 접합시킬 것을? 


 온갖 언론이 지향하는 조국땅의 정체성마저 언론계는 물론 문화계 모두 양판 비빔밥에 엉망이 되어가는 현실이 답답해서 낙서로 불평을 터트려 본다. 


한글 표현이 없어서라면 당연히 남의 나라 글로라도 소통해야겠지만, 우리글의 다양성과 감성적 표현들은 분명코 세계 언어사에 기록될 수 있는 으뜸의 경지라 믿어 의심치 않는데.


 ‘봄이 왔어요’ 우리말 글짓기대회 초등4학년 유한나 양의 수상작 중에 발췌한 몇 줄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나비, 아빠가 좋아하는 하늘, 제가 좋아하는 꽃이 다 보이네요."


북한에서 사용되는 화장품 용어들도 순수하고 맑은 때묻지 않은 순수 한국어들이다. 스킨-살결물, 선크림-햇볕방지용, 립스틱-입술연지, 아이브로-눈썹연필… 


 언문이 으뜸이다, 으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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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3
별스러운 날에 혼의 찬미

 
 
분명히 40불 개스값을 치르려고 50불짜리 지폐를 줬다. 계산서와 거스름 돈을 서둘러 운전석 옆에 던져두고 방향전환으로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빨리빨리의 적자 출신답게 숨가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라디오 뉴스에 귀를 기울이며 슈퍼마켓에 들러 필요한 먹고 마실 것을 사기 위해 주차를 하고 방금 던져두었던 옆자리 거스름돈을 챙겼다. 어! 그런데 20불짜리가 개스 영수증에 덮여 있지 않은가. 한쪽 귀에 전화기를 대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억양으로 톤을 높이던 캐쉬어의 실수였다. 10불이란 덤이 주어졌구나! 순간적으로 머리에 혼란이 왔다. 커피값이 덤으로 생겼네. 에잇 까짓 거 10불 갖고서 양심선언까지 할거야, 어찌할까? 다시 주요소로 돌아가야 하나? 


 주춤거리며 양심의 저울대가 널뛰기 한다. 속이려는 것도 아니었고, 있다면 거스름돈을 받자마자 확인을 않고 ‘빨리빨리’의 한국적 습성이 지금도 남아 덤벙대는 모습 때문이다. 아직도 매사에 서둘러대는 고질적 모양새는 언제나 없애나. 


 주섬주섬 먹거리 쇼핑을 끝냈다. 이때까지도 돌려줘, 말어… 묵살이란 단어까지 요동치고 있었다. 그래도 진로를 북북서로 돌려라. 5분 정도의 지척인 주요소로 차를 몰았다. 밀리언 달러가 덤으로 생겼다면, 밤잠을 뒤척이며 혼란에 안절부절 할 수도 있으련만, 10불로 남자가 치사하게 졸장부 노릇에 휘말려야 쓰나! 종일 씁쓸할 터인데… 콧수염에 터번을 썼던 캐쉬어는 왠걸 30분 전에 퇴근한 뒤였다.


또 다른 갈등이 양심을 흔들었다. 그냥 나가버려 말아! 부부간일까? 남녀 두 사람이 캐슈어 앞에서 행운의 복권을 마크하고 있었다. 옆으로 끼여들어 10 불짜릴 카운터에 올렸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방금 퇴근한 사람의 실수라고 전해달라 했다.


복권을 구입하는 두 사람이 옆을 슬쩍 쳐다보며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와우! 와우! 판타스틱, 그레잇, 수펍” 야단법석이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아유 촤이니스?” 나를 중국인 취급한다. “노, 아임 코리언” 이때라도 당당해야지, 어깨가 으쓱했다. 국위선양이라도 하는 양 흐뭇한 가슴을 애써 진정했다. “My father was in Korea.” “What? 와우” 이제는 내 입에서 또 다른 놀라움이 터졌다.


참전용사의 자녀였던 것이다. 감사와 경외함이 그의 아버지를 향했기에 이 글 속에 어찌 그 얘기를 다 담으랴. 태연한 척 “It's only 10 bucks!” 


밖으로 나가려는데 캐쉬어가 포인트카드를 달란다. “For what?” Gifts를 준단다. “Are you sure?” “당신 같은 사람 별로 없었다”고 한다. 무려 2천 포인트나! 횡재다. 대박처럼 기분이 짱할 수밖에… 


 후련했다. 어깨마저 들썩이며 졸장부였던 가슴이 이제야 펴졌다. 훔친 것마냥 편치 않던 10불의 위력이 이토록 나를 자유롭게 하며 대단한 일이나 한 것처럼 우쭐하기까지 했다. 덤으로 선물포인트까지 얻어 챙겼으니, 10불짜리 돈의 위력이 새삼스럽게 심적 효소들을 낙하산에 태워 구름 속에 띄워준다. 나는 듯한 기분이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짜릿함이 온종일 계속될 것 같다.


시장에 왔기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려고 다른 곳을 향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비어스토어를 들렀다. 예사 비어스토어는 항상 붐비는 곳 아니던가. 28병 스페셜, 끙끙거리며 맥주를 트렁크에 싣는데 우연히 타이어에 시선이 멈췄다. 아니 이건 또 뭐야? 타이어에도 깔리고 주변에 코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있잖은가. 옆을 두리번거렸다. 누가 흘렸나? 날보고 주워담으라는 것들인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주섬주섬 양손이 바쁠 수밖에… 5, 10, 25센트는 물론 2불, 1불 코인들이 도합 거금 12불이나 됐다. 10불로 푸른 하늘 구름까지 태워주던 몇 분 전의 환희가 2불을 더 보태어 이젠 뭘 태워주려나? 맥주를 구입한 누군가가 주르르 흘리고 갔기에 이거야말로 임자 없는 코인들이다. 


경찰을 부를 수도 없겠고, 비어스토어에 줄 수도 없지, 만약 그렇다면 내가 정신 감정을 받아야할 테다. 참 이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일까? 언제 정신감정이라도 한번 받아봐야 하나. 이런 돈 주워도 되느냐고? 오늘은 참 별스러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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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5
“너무합니다”

 
 
“여보! 1, 2, 3 다 챙기셨지요?” 현관문을 잠그고 돌아서는 순간, 아내가 남편의 나들이에 필요한 것, 빠진 것은 없는가 확인시킨 것이다. 1은 운전면허, 2는 셀폰, 3은 전기스위치 등을 일컫는다.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설 때, 언제부턴가 측은하게 닥달하는 모습이 예삿일이 아니다. 까딱하다간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집을 떠나며 확인할게 한두 가진가.  주머니에 돈은 챙겼는가? 스토브에 얹혀져 있는 건 없나? 방방에 켜둔 불은 없는가? 건망증 세대에 접어든 서글픈 모습에 시시각각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미덥지 않아 아내의 염려와 배려가 깍듯이 함께 담긴 사랑의 표현이다. 지난해 여름, 주말 나들이를 하고 돌아올 때 지갑을 깜박하고 챙기지 못해 30 km를 되돌아가야 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젊음이 요동쳐 세상을 누비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20대 때는 40대 보고 저렇게 나이 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나는 늙음이란 절대 겪지 않을 것처럼 했었는데, 어느새 맥잃은 모습이 허무함으로 다가온다.


 나만 겪는 것도 아니고 세월이 잠식한 젊음인데, 누굴 붙들고 하소연 할건가. 세상살이 따지고 보면 다 겪고 늙어 운명의 물줄기 따라 흘러가듯 가련만 아쉽고 애태우는 내 모습이 초라하다. 어느 사이에 이토록 늙어가는 신세로 추락했는지.


 종교에서는 인간은 죽어도 혼의 세계를 넘나들고, 죽은 영이 다른 생명체로 태어난다 하는데, 그렇다면 밖에 나부끼는 미물들도 죽은 인간의 혼이 되살아났기에 저리 날아다니고 온갖 새들은 어떤 영이 환생하여 이른 새벽을 깨우며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는가. 혼이 살아 그렇다면 이 세상 살아 있는 우리들 의식으론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미물들의 날갯짓도, 노래도, 울음소리도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는가? 


 태곳적부터 수억이 죽은 채로 묻혀 썩고, 더러는 불길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인생인데, 그렇다면 그 수억 중에 신이 어쩌다 다시 살려낸 한 사람 쯤 누군가가 죽음의 세계를 증거하며 살아있는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까? 위대한 절대자의 각별한 긍휼을 베풀어 보여주시고, 이해시켜 줄 수도 있으련만, 그 분은 어찌 살아있는 인간에게 무정하고 야멸차단 말인가.


 태어나게 했다면 늙지 않게 해달라. 젊음을 환원해라. 어찌하여 인간의 숨통을 죄이는가? 늙은 것도 서러운데 기억력까지 거두시는가? 그리 젊음을 혹사 시키고도 하릴없어 주름살만 늘리시는가?


 숨을 거둔 나무토막 같은 모습이 과연 당신이 보고 즐기는 영역인가? 매정하고 야멸찬 신이여, 천국이 죽어야 허락되는 곳이라면 살아 생전이 지옥이란 말인가? 지옥 같은 세상을 헤치고 떠난 길이 분명 당신이 펼쳐둔 길인가?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당신은 너무합니다” 노래라도 불러야 속이 후련할 것 같다. 나약하고 연약한 잡초 같은 인생길, 태생의 뿌리부터 주검에 이르도록 간섭하시고 다스려준 고마움과 감사가 겨우 이렇게 ‘당신은 너무합니다’란 원망과 불평으로 눈감는 길이라면, 나의 혼은 무엇으로 다시 환생하리까. 


 애태우는 노년에1, 2, 3도 잊어먹고 허둥대고 발버둥친다. 나이는 기억력을 감퇴시킨 대신 통찰력을 겸비해준다는데 “여보 1, 2, 3 다 챙기셨지요?” 아직도 곱기만한 아내의 목소리가 나의 귓전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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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5
나의 잇몸 치료 경험

 

 

 그게 사실일까? 고개를 저으면서도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시작했다. 소주가 바로 곁에 있음을 확인하면서, 유튜브에 떠도는 잇몸 치료의 효능이란 뉴스를 보고서다. 인터넷 정보를 다 믿을 순 없지만 그래도 한번 해봐야지… 


알콜 농도가 짙은 소주를 반모금 정도 입에 물고 오물오물 2-3분 정도 하다가 뱉어내는 걸 아침저녁으로 하란다. 매일 반복해 3-4일간 정도면 치료가 된다는데 믿어 봐야지.


"이의 염증이 반복되는데 어찌해야지요?” 몇달 전 치과의사와의 대화였다. “어디 한번 봅시다.” 눈여겨 살펴본 치과의사는 “신경치료와 더불어 몇 번 오셔야 하겠네요.”라고 했다. 


낭패다. 돈도 돈이지만 몇 번씩이나. 정말 싫은 이빨 가는 소리 때문이다. 칫솔 역시 소금물에 담가두며 언제나 잇몸 마사지 등 위생관리에 최선을 다하는데도 어찌하여 입 속은 이리도 자주 탈이 생길까.


 사실 얼마나 혹사시키며 부려먹는 입인가? 웃고, 칭찬하고, 위로하고, 힘든 이웃에 함께 소리 내어 울어주며, 사랑해요, 미안해요, 용서해요, 입이 없다면 뭐로 표현할까. 위험할 때 소리 질러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야 입으로 표현하는 최대의 효과라지만, 짜증 부려 악을 쓰고, 억울하다 소리치며, 미워해서 험담 등 한둘인가.


한 4-5일 했나? 알콜 기운으로 혼을 흔들어댈 줄만 생각했던 소주의 효력은 성가시게 굴던 잇몸의 치료를 깔끔하게 마무리 해줬다. 신기하리만치 대단한 효과다. 벌써 일년이 다 된다. 염증이 다시 반복되지 않고 멀쩡하다.


 소주의 효과가 인종이나 남녀 차별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여성들 치은염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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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4
북녁땅에도 변신의 봄빛이?

 

 완연한 봄빛에 머리 들고 하늘을 향해 미소짓던 싺들이 엊그제였는데, 어느새 온누리가 푸르름으로 이 땅을 화려하게 장식해주고있다. 해마다 보았는데도 다시 새로움에 신비스럽고 황홀한 대자연의 멜로디에 감탄과 경이로움에 머리 숙여 감사할 뿐이다. 


 죽은 듯하던 나뭇가지에 꽃이 피고, 얼어 붙었던 땅에 떨어진 꽃씨며 움추린 뿌리들이 하늘을 향해 미소 짓는다. 온갖 새들의 지저귐 역시 지난 겨울의 우울하고 답답했던 움추림을 탈피했다는양 환호성친다. 


 봄이란 계절은 아예 숨겨버릴 것처럼 암담하고 드세었던 겨울도 물러갔다.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듯 따스한 봄바람에 맥을 놓아 버렸다. 사계절의 순환법칙 속에 온세상을 푸르름으로 채색하고 있다. 닫혔던 북녁땅에도 변신이 봄빛과 함께 꿈틀댄다. 


 삼대를 이어온 독재의 유훈을 받들어 세상을 변화시킬 줄 오판했다고 자백한 듯 다 내려놓겠다는 선언이 며칠이나 지났나. 굶주림에 허덕이는 인민에게 쌀밥 고깃국에 전념하련다는 고백이 세상을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속고 또속았던 정치판은 사계절의 변화처럼 북한의 변신이 또 언제 도질까, 두렵고 못 미더워 대책 마련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 


 김정은의  변신은 지난해 가을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마치 준비된 새봄을 완성하듯,  봄빛이 거두어 가버릴 풍계리 핵확산실험장 폐기도, 미국본토를 겨냥했다는 핵 장거리 미사일도 모두 다 땅속을 뚫고나온 대자연의 숨소리와 함께 평화와 번영을 일구어 내려고 폭파해 버리기로 했다.


 두번씩이나 중국 방문기를 연출했고, 폼페이오와의 미소의 의미를 함께 했던, 베일에 덮혀 있던 이북땅에 부디 사계절의 변화대로 순리를 따랐으면좋으련만. 녹음이 우거짐과 함께 그땅이 거짓과 해괴한 술수로 또다시 용트림하려는듯 낌새가 심상치 않다.


 미적분적 정치적 계산일까? 그의 말대로 순수한 경제적 변화만으로 회귀하려는 순수함일까? 잃어버린 국제적 신망을 되찾으려는 당차고 획기적인 꿈이 순수한 봄향기처럼 청순해야 할터인데, 그 땅에 언제또 폭풍우가 몰아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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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5
“꿈만 같던 그 시절의 부동산시장”

 
  
 부동산 마켓이 천정부지로 뛰어 온타리오주를 요동칠 때가 있었다. 마치 최근 몇년 동안 치솟았던 온타리오 주택 마켓처럼 주체할 수 없이 펄펄 끓던 지난 몇 년 동안 겪어보았던 것처럼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제질서가 아닐까.


 우리는 그 돌연변이처럼 요동치는 부동산 경기에 바짝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갑돌이 갑순이도 돌쇠도 무슨 돈을 짜내든 부동산의 마력에 흠뻑 빠져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80년대 초부터 근 7-8년간 집값은 상승할대로 올랐다. 오두막이든 빌딩이든 모텔이든 호텔이든 사기만 하면 뭉칫돈이 굴러들던 호황기였다. 백만장자들 별볼일 있나! 동포사회가 너나 할 것 없이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주머니에 몇 만불 있으니, 갑돌이네가 잘나간다고 몇 백만불씩 투자한 분들도 있었다. 어쩌다 타이밍을 놓쳐 기회손실을 면치 못한 분들도 더러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그 파도를 잘 타고 왔던 분들, 노년을 건실하고 넉넉하게 잘 살고 있음을 우리 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겉으로 봐선 과욕인가 싶은 투자자들, 승승장구 이리 튕기고, 저리 튕켜 부동산 투자 타이밍의 귀재들인 그들은 분명 재벌의 반열에 슬쩍 이름을 올려 두었겠다.

 


"2.5에이커 14개 가게 쇼핑 플라자
토론토에서 한시간 거리 10 % 리턴"

 


 ‘For sale’ 딱 두줄 짜리 광고가 토론토스타지에 실렸다. 물론 전화번호와 함께, 부랴부랴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부동산중개인이면서 플라자 주인이었던 사람의 광고였다.


숨가쁘게 어디에 몇 년 된 플라자며 빈 공간은 몇 가게나 되며 리스는 몇년씩이나 남았는가? 무슨 가게들이 있으며 이웃 플라자는 몇 개나 있으며, 인구 분포도는 어떤가? 투자가의 기본을 낱낱이 파헤쳐 봐야 함은 필수 상식과 기본이 아닌가.


운전하는 그에게 한시간을 함께 하며 대충 투자가치 평가를 산출해낼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 딱 한가지 질문을 심각하게 물었다. 어찌하여 이 플라자를 팔려느냐고?


부모에게서 받은 유산인데 관리하는데 부담스러워서 그렇단다. 젊고 패기가 넘치는 30대 중반의 눈빛이 총명한 남자였다.


 생김새 그대로라면 유산으로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고 굴러들어온 자산이었는데 귀찮아서 정리한단다. 복많은 자손이란 바로 이런 삶도 있구나! 부러움에 앞서 헐값에 팽개쳐 내던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번쩍 내 정신을 흔들어 깨웠다. 뭐가 그리도 속을 썩혀 관리하기가 불편하냐고 물었다.


부동산 에이전트로 폭주하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 짜증스러움이 엿보였다. 출렁이는 마켓이었기에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실상은 또 누가 알까? 더 좋은 곳에 재테크하려는 것일지도? 금덩이도 싫으면 던져버릴 수도 있겠지! 아니 금덩이 팔아 다이아몬드를 살려고 그럴 수도.


 플라자 주위를 둘러보며 평방피트당 얼마나 여유로운 임대가 책정되었나? 몇 년씩이나 리스가 남아 있는가? 투자목적에 부합되는 실체를 섬세하게 파악하게 되었다.


 영업이 위축되어 곧 문 닫을 가게는 없는가? 3-4년이면 2/3의 소매상들이 종료되는 리스들이었다. 5분 거리의 길가에 여러 가게의 렌트가 평방피트당 8, 9 불인걸 보면 충분히 승산이 넉넉히 있었다. 평방피트당 5, 6불에 3, 4년씩 남은 리스였다.


절충안을 적정선에 맞추어 오퍼를 띄웠다. 요구가격보다 10% 다운시켜 변호사의 최종검토가 끝나는 2주 후에 최종 옵션을 끼웠다. 부동산 관리에 염증을 겪은 터라, 일사천리 부담없는 딜이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두 달 후 클로징이라 서둘러야 할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 번째 해야 될 기존 임차인들의 문제였다. 그들이 새로운 오너와의 관계 정립에 무슨 이의가 있는가 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임차인이라면 무조건 렌트가 유효적절해야 함은 당연하기에 우선 가게 주인들의 의향을 탐문했다. 두 가게는 눈을 치켜 뜨며 요즘 유행어로 갑질 버금가는 상투적 투박스러움에 매우 거슬렸다. 그들 역시 결국 새 리스를 울며 겨자먹기로 하면서도… 하지만 두 임차인은 적절한 리스를 다시 받고 싶어했다. 50%만 임대를 유지한다는 최하의 귀착점 만으로도 투자의 원칙엔 아무 하자가 없다는 기본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14 임차인들 리스에 2년마다 5%의 상승폭을 제외시켜 5년 텀으로 새로운 리스를 만들어 근접한 20% 리턴 재무구조를 역발상시켰다. 6개월이 소요되었다. 3~4년 남은 리스를 10년 리스로 확장해준 대신에 적정선으로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1년 후 투자금의 180 %를 환원할 수 있었던 호황기를 실감했던 시절이었다.


 단 두 줄 눈에 띈 광고로 쏟아지는 카지노의 #777 같은 대박을 엮어낸 것이다. 단 일년도 안되던 짧은 기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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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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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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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9
도보다리 아메리카노 커피타임

 

 

 바로 그거 아닌가. 당장 쳐죽일 것처럼 으르렁거렸던 옛일들 훌훌 털고, 뭐가 그리 철천지 원수였냐, 우리 이제 손잡고 "평화, 새로운 시작"을 그리도 쉽게할 수 있는데 말이다.


뻔히 눈뜨고도 코 큰 나라들 탁상공론에 피해자로 몰려 두동강난 한반도의 처절한 역사의 뒤안길을 헤매야 했던 수십 년, 다시는 휘말리지 말자고 두 손 꼭 잡고 "반갑습네다" 노래하며 악수하고 포옹하며 평화도 번영도 함께 누리자고 미소지으면 되는 것 아니냐 말이다.


발뿌리에 걸린 조잡스런 시멘트 경계선을 넘고 넘는 소꿉장난 같은 짓거리들, 어린아이들 땅 뛰기 장난과 뭐가 다르냔 말이다. 처절한 전쟁의 참상에 조국땅이 눈물의 한으로 엉켜 붙었던 오랜 세월을 어찌 우리 잊으랴. 통탄하며 가슴을 두들겼던 처참한 몰골들을… 할 줄 몰라, 무식해서, 돈이 없어, 굶주려서 이날까지 이토록 오래도록 방치해둔 책임은 누구 것이란 말인가? 


늦게나마 그마저도 뜨거운 눈물로 감동과 감격을 쏟아내게 할 줄 알았기에, 이제라도 우리 곁에 오시면 옥류관 냉면도 백두산 천지도 다 보여드릴 거예요. 남쪽에 오신다면 보여드릴 것 더 많이 있습니다. 와우! 그러셔요. 옛 친구였는데, 어디 있다 이제 왔나? 반가움과 그 친절은 어디에 숨겨뒀다 이제 퍼내는가? 그토록 간단명료한 순리와 진리를 어찌 그리도 오래도록 묵혀 두었을까? 무식해서였을까? 바보천치였을까?


2백 미터 계단만 내려가면 불통이었던11년이 와그르르 무너지며 평화가 열려 있었는데, 바로 그렇게 하면 된다는데 어찌 그렇게 불량아로, 불한당으로, 꼬마 로켓멘으로, 미친 코끼리로, 천둥 번갯불만 불러 모으려 앙탈을 부렸을고.  


 불신과 대결의 장이 막을 내린다. 판문점 외롭고 쓸쓸한 도보다리의 30분은 잃어버린 65년을 땜질한 순간이다. 화약연기로 둘러 쌓였던 역사의 현장을 봄이 오는 찬란함으로 새롭게 펼친 순간이었다.


수십 년간의 처녀림에 둘러싸였던 그곳에 평화의 산실을 마련한 것이다. 구더기가 무서워 간장을 담글 수 없다는 S대 ㄴ교수의 "문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서한" 대로라면 대화로의 설득이나 이해로는 북녘의 정치체제를 포용도 관용도 필요불가결이라는데, 그 서한의 이론대로라면 앞으로 언제까지 눈살 찌푸리며 인간멸시로 얼마나 더 악다구니를 쓰란 말인가?


 65년도 부족하다면 젖먹이 아이들한테 이런 수난의 고통을 넘겨주라는 건가? 예끼, 이 사람아, 이 무슨 망언인가. 화해와 용서가 뭔가? 세상만사 뒤틀림 대로만 살려면 사랑도 이해도 아예 국어사전에서 도려내 버려야 할 것 아닌가 말일세.


 목마른 자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다. 물을 준다는데 손사래칠 자 누군가? 물은 필요없고 그럼 뭘 달래서 목을 축일 수 있을까? 아니라면 언제까지 허기진 마른침을 삼켜가며 견뎌달란 말인가?


압박과 제제의 결과가 인민들의 목줄을 졸라댔다.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붙여 북녘의 정치 풍토를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냈다. 땜질하자는 협상이 아니고 그 동안 잘못 짚었던 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면서 몽땅 쓰레기통에 던진단다. 그런 것 모두 인정해주며 먹고 사는 것 보장해준다면, 2천5백만 북녘의 인민을 고깃국에 흰쌀밥 먹여 살린다는데, 그런다는데…


못 믿겠다고? 그럼 더 뭘 기다리자는 건가? 알량한 야당 정치인들이 일컬어 명명한 정치쇼를 구경하려고 3천여 명의 글로벌 매스컴들이 환호하며 박수 쳐대는 지구촌의 축제를, 온 세계의 정치력이 총동원되어 축배를 외치는 그 모습이 개그맨들의 쇼라니 망발도 그 정도면 치졸하기 그지없이 수준 미달인 행패다.


문을 열어야 들어갈 것이며, 땅속을 뒤져야 금덩어리를 파낼 것 아닌가. 대안이 뭔가? 한마디 못하는 민의의 대변인들, 정치 역량마저 묵살하며 상실해버린 해괴망측한 괴변의 반격치곤 저속하기 짝이 없이 한심한 망나니들의 몸살이다. 


국제적 이벤트로 지구촌이 열광인데 정치 쇼라는 한마디로 국민여론을 어찌 호도하려는고?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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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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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34
11090
2018-04-26
“사랑은 아무나 하나?"

 
 
 2150이라면 무슨 의미야? 주한미군들이 수립한 작전계획도 아닐텐데. 6×49 숫자 역시 아닐 거고. 한국 다문화증진협회 카페지기 자유게시판에 퍼올리고 띄운 영혼의 양식들, 밥그릇들의 숫자다. 


 마리화나 같은 세뇌의 글들도 많다. 엉뚱한 가짜 뉴스들, 판을 치는 사회관계망들이 오염투성이다. 잎도 뿌리도 없는 정신병자들의 낙서들이 죽어 썩어가는 나무토막이 뒹굴듯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추려내고 골라내고 도려내고 파내고도 묵살해버릴 사연들이 판을 친다. 세심하게 유념해서 친구와 이웃들의 시야를 진취적 방향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하면서, 혼자 읽고 검지 끝으로 밀고 제껴버릴 글들 가운데서 엄선하여 나누며 베풀고 싶었던 사랑의 씨앗들, 만남의 활성제들, 고통과 번민의 치료제요, 그리움의 손짓은 물론, 혼을 다스리는 영적 소염제들로 나누어 가졌던 글들로 공유한 숫자다.


 구운김 한 장의 구수함만큼 만이라도, 어느 누구의 영혼을 기쁘게 맛을 더할 수 있었다면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그냥 조건 없이 글들을 주고받으며, 계약 없는 이메일들의 벗이었기에, 공짜로 퍼 넘겨준 글들이 엄청난 숫자로 펼쳐져 깨우칠 영혼에 양식들, 함께 나누어 챙긴 것이다.


5 천만의 인구 중에 몇 천 명의 숫자는 조족지혈(鳥足之血- 새 발의 피)이라 비하할 사람들이 있다 한들 어쩌랴. ‘사랑은 아무나 하나!’ 컬컬한 목소리의 주인공 트로트 가수 태진아가 부른 유행가 제목이다. 내 곁에 다가온 글들 퍼 넘겨주는 것, 아무나 하는 일 아니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 할일 없이 빈둥거리다 이런 글들 공유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읽고 넘치는 귀한 감동이 사무쳤기에 그 감동에 혼자 취할 수만 없었기에, 어른거린 추억에 매달린 그리운 이들께 퍼 넘겨주며 옛정에 웅크린 기억들을 되살려 내고 싶은 것이다. 몸소 사랑은 누가 하냐고…


물결이 파도처럼 떠밀려 온갖 찌꺼기들 다 밀어내 버리고 새롭게 채워진 깨끗하고 청결한 모래사장으로 다시 열리는 해수욕장처럼, 그곳을 즐기는 수많은 인파들의 환호성이 기쁨과 감사로 넘쳐날 것 아닌가!


오직 진리만이 우리의 캄캄한 지적 눈을 뜨게 할 것이며, 엉성하던 삶의 미로를 밝혀줄 것이라는 소망을 담아, 삶의 지평이 내 곁을 지켜준다는 의미심장한 교훈들이 허수아비 같은 인간의 모습들 완전히 부숴버린 순간의 이정표. 바로 영적 소산이 풍성해지는 영역을 채워줄 것이라 믿으며...


언제 우리가 이토록 풍요로운 인터넷의 호황을 누렸나! 범람이 아니다. 풍성함의 극치요, 열매들의 산더미다. 이 시대를 풍미한 온갖 진리들 속에 허우적거리며 휘청대는 나의 영혼을 매달려본다.


 꽃과 향기가 벌 나비들의 온상으로 그들을 맞이하려 마련된 것이다. 가슴을 위로해주고 영혼을 평안과 자유 함으로 정서적 영역을 한없이 넓혀주는 영적 활성제요, 혼의 찬가들. 인체의 리듬이 꼬르륵 소리나게 허기진 배를 채우기란 햄버거 하나로도 충분할 수 있다지만, 텅 비워져 메마른 생체리듬의 지적 효소들 뭐로 채워질 것인가. 


 소셜네트웍의 영적 세계사가 지배해버린 문학과 예술의 실체적 바탕을 송두리째 변화시켜 되돌려 버린 혁신적 역사의 현장이다. 요즈음 상처투성인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의 실망의 숨소리가 매스컴을 요란하게 흔들어대고 있다 할지라도…


 나는 내 곁에 이메일 친구인 2150 차례나 베풀고 나눔의 주인공인 그 넉넉한 손길과 함께 이 글을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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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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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15
11090
2018-04-20
겨울 바로 뒤엔 봄이 기다리는데…

 
 
 빼꼼히 하늘문 밖을 그리워하며 봄 새싹이 미소를 짓는데, 겨울은 모르는 척 잔뜩 화를 품은 듯이 뭘 더 쏟아내려는지 막무가내다. 안절부절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봄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맺혔나? 


초자연법칙의 역행이며 농단이 아닌가. 순리를 훼손하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 같다. 그 긴 겨울의 의미를 풍성하게 쏟아줬는데, 뭘 그리 줄게 또 있다고 이렇게 얼음 눈비까지 야멸차게 뿌려대는지… 


겨우내 심술부리듯 영하의 날씨로 꽁꽁 대지를 얼리며 뽐냈으면 충분하련만, 봄이 그렇게도 싫은가. 밀어낼까봐 미워 미워서, 어찌 그리도 뒤따르려고 용트림하며 준비하는걸 시기하는가. 몇 개월을 독재자의 혹독한 횡포 부리듯 군림했다면 이젠 얌전히 우주의 법칙대로 물러가야 할 터인데…


 눈덩이까지 예년의 4월은 이런 일 없었다. 날마다 진눈깨비에 찌푸린 하늘빛이 성난 자연의 표상처럼 이 겨울이 절대 물러설 것 같지 않다. 반세기를 이 땅에 발붙이며 살아왔지만 이런 겨울은 처음 본다. 멈춤도 없이 동장군의 질주다.


오죽하면 정월, 이월에 땅속 두더지 ‘돌리’가 잠깐 밖에 나와 엉덩이 돌아보는 것으로 점쟁이 두 손 모으듯, 봄빛 소망을 꾸려 엮어보는 처량한 캐네디언들일까! 


억지로 시영골프장들도 열어뒀고, 몇 군데 다른 곳도 골프 계절을 서둘러 맞을 준비가 되었다는데, 수은주 영하의 날씨를 오락가락 하니 언제 휘둘러볼 골프클럽일까, 안달하며 어깨에 힘을 줘본다.


봄을 맞으려고 정원수들 가지치기를 서둘렀다. 이미 가지마다 분명 봄이라고 알아차려 빨아들인 물줄기가 줄줄이 흐른다. 그것마저 ‘어이쿠’ 얼어붙어, 왜 아직도 겨울이냐며 호들갑이다. 


미안스러워도 어찌하랴. 이웃집 사이를 가려 있는 나무들도 베어내고, 파내어 비어있는 울타리 사이로 옮기려는데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악으로 삽질을 해보는데, 아직 땅들이 얼어있어 몇 삽을 뜨기에 힘들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부드럽다. 


악독했던 이 겨울을 견디느라 잔뜩 움츠렸던 나무뿌리들이 지난해에 뻗어났던 여린 뿌리들을 감춰두고 있음이 마치 부모들이 어린 자식들을 에워싼 듯 애처롭다. 조심스럽게 삽으로 뿌리 결을 들어내려니 2, 3년 전에 심은 나무가 왕성하게 깊이 뿌리를 내렸다. 


 봄은 언제나 올까? 시샘으로 가득한 이 겨울의 풍상이 참으로 험악하다. 4월 하순으로 접어드는데도 일기예보는 영하의 날씨가 계속된다니, 밖을 보니 얼음비가 오늘도 극성을 부린다. 뭣 때문에 내가 물러가야 하느냐고. 


온갖 심술을 다하기까지 이 겨울의 잔인함이 지구촌 어떤 곳의 인권유린에 버금 간다면 심한 비약일까? 오죽하면 글로써 투정을 쏟아낼까?


아무렴 어찌 하려고 한 두 주일 참노라면 고집스럽게 머물고 싶어도, 너는 필연코 꼬리를 감출 터인데, 내가 너무 서둘러 극성인가! 


 어디 보자. 탐스런 튤립의 왕성한 이파리가 고갤 쳐들고 있는데, 마늘뿌리도 힘차게 싹을 키워 하늘을 쳐다보는데, 잔디 역시도 정원에 숨겨진 파란 뿌리들이 땅속을 뚫고 여봐라 나를 보라는데, 누가 말릴까.


캐나다의 겨울이라고 별 수 있나. 물러서며 떠날 때, 봄기운이 맥을 으스러지게 비틀어 버릴 터인데, 그래서 캐나다의 겨울은 봄이 오는걸 이렇게 시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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