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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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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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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멋진 남자

 

최근 칼럼 ‘멋진 여자’를 읽고 몇몇 독자 분들이 "멋진 남자 이야기는 없느냐”는 이메일을 보내와 이 글을 쓴다. 여자들 앞에서 있는 척 거들먹거리며 돈을 뿌려대면, 멋진 남자일까? 아니면 고분고분 두 손 비비며 순종하는 척하는 아양 끼가 여자들에게 멋지게 보여질까? 연예인으로 무대 매너에 익숙하여 수없이 많은 팬들을 확보한 남자를 멋있다고 할까?


이 모두가 상식적인 바탕 위에서 인물평을 할 수 있겠지만, 결코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은 아닐 듯싶다. 연애 시절이야 간혹 그런 척 수줍고 다소곳한 데이트의 수준에 맞춰 남자들의 의미심장한 미소 속에 멋을 치장한 남성미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들과 함께 평생을 엮어가는 거친 항해 같은 삶 속에, 아내에게서 멋진 남자라는 말을 듣고 사는 남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근면, 성실함은 물론 행복함의 절정을 이뤄가는, 마치 신혼 같은 꿈속을 거니는 듯 환상적인 삶의 모습을 만끽하고 사는 꿀맛 같은 부부 말이다.


하지만 그런 믿음직한 관계로 남편이란 존재를 확고히 다져가는 부부가 결코 흔치 않다는 것, 참으로 안타까울지라도 모든 아내들이 소크라테스의 아내처럼 악처의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살기야 하겠는가. 어떤 종교에선 부부들의 만남은 악연의 시작이라고 설파했지 않았던가! 


아내에게서 멋진 남자라는 존경과 사랑을 받고 사는 남편들이 있다면, 그대야 말로 참 인간세상을 달관하고 있음을 기뻐할지어다. 


확고한 믿음 속에 멋진 남편을 확인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부엌 일에 헌신적이며, 집안 구석구석 청소하는 일이며, 냉장고 청소와 더불어 필요한 것이 뭔가? 시장까지 봐와서 식탁을 챙겨주는 일들, 세탁물을 살피고, 침대 커버들 손수 갈아 끼워 아늑한 잠자리를 마련하는 세세한 일들이며, 밖에 정원을 가꾸고 겨울엔 눈을 치우는 일들, 하나하나 모두를 말끔하게 책임지는 남편들, 이 정도면 멋진 남편이라 해도 과장되지 않는 삶의 모범이 아닌가.


행여 무거운 것 들고 계단을 오르다가 아내의 어깨, 팔뚝이며 무릎이라도 다칠까 봐 "여보! 내가 할게, 어디에 가져다 놓을까?" 세심하고 자상한 남편으로써의 자질이 넘쳐나는데, 분명코 "와우! 당신 멋지다. 고마워요" 남편에게 한마디 한다면 아내의 자존심에 두드러기가 생길까? 뭔가 손해 볼 것 같은 대화일까? 


열거한 기본적 집안일들, 남자들의 의무요 몫이기에, 그런 일 해놓고 무슨 생색이며, 뭐 그게 자랑거리냐고 반문해버리면, 남자의 자존심 따윈 진흙더미에 곤두박질이다.


연약하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여성의 체질이라 주어진 가정생활 패턴이 바로 그런 수순인걸, 뭘 그렇게 입에 바른 과시를 꼭 해야 하느냐고, 묵사발을 만들어 버린다면 이 또한 천하의 낭패다.


구걸하듯이 한마디, "여보! 수고하셨어요"라고 치사 받고 싶었던 마음을 빨리 쓸어 담아 버리고 싶어진다. 당연시 되는 집안일, 분명코 여성 체력의 한계를 남편이 돌봐야 하는 것, 가정생활의 기본 중에 첫 번째가 아닐까!


"내 그럴 줄 알았지!" 당신이 이런저런 일 해놓고 특별히 과시할 날이 있을걸 이미 알고 있었단다. 한마디로 내 몫, 네 몫을 가려내야 할 가정생활은 구분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아내의 나들이에 자동차 문을 열고 닫아주며, 고급식당 정찬을 자주 해야 하고, 로맨틱한 음악회나 명화감상, 영화를 함께 보는 여유로운 시간들, 자칭 문화인의 흉내를 모방하면 되는 것인가?


 꼭 교과서 같은 이론만은 아니리라. 멋들어진 데이트로 평범한 일상에서 새로운 분위기를 일구어내는 짜릿하고 곰살맞은, 더러는 좀 특별한 변화의 삶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혼자서 1인10역의 책임감에 찌들고 짜증에 겨웠던 사랑스런 아내에게 슬쩍 돌파구를 마련해 주며, 어깨를 토닥거려 주는 남편, "여보! 오늘 당신 참 멋지다" 연애하던 시절보다 더 묵직하고 믿음이 살아 숨쉬는 대화로 아내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여태껏 함께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치렀거늘 무슨 뚱딴지 같은 자존심인가. 단연코 멋을 품어내는 남편의 놀랍도록 변화된 모습임에 틀림 없으리라. 


몸이 불편해 의사들을 봐야 할 때마다 운전수 노릇을 충실히 담당해야 하는 것들, 허리, 어깨가 쑤시고 아프다면 마사지에 주무르기까지 총동원 해야 하는 일들, 참으로 멋진 남자라는 말 한마디 듣기가, 억지로 하려면, 하늘에 별따는 것보다 더 어렵다. 


모르는 척 묵묵히 천근보다 더 무거운 삶을 안고 사는 백년해로의 삶, 바로 그게 멋진 남자임에 틀림없지 않을까.


그래도 공치사라도 듣고 싶은 마음 어찌 없을까만, 아내의 습성이 그런걸, 탓해서 뭘 얻을 수 있으랴? 차라리 포기하고 살아야지, 그렇고 말고, 그때부터 집안은 안정된 온기가 한 겨울에 벽난로의 화력처럼 훈훈할 것을.


멋진 남자란 의미는, 아내의 무딘 감정 따위를 억지로 깨워 주입시킨다거나, 헉헉거리며 집안일들하며 들춰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절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숨죽여 소리없이 온갖 얄궂은 일들 눈 딱 감고 돌보는 남자, 그게 바로 멋진 남편인걸, 글 쓰면서 이제야 알았다. 겨우 이제야.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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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6
기해년 새 아침에

 

기해년 새 아침에

 


 

(기) 기를 쓰고 달려들어 쟁취해낸 한해런가,
(해) 해와 달이 여느 때와 천지만물 여전한데,
(년) 년 전보다 풍요롭게 기대 또한 넘쳐나니

 

(황) 황금돼지 떼를 지어 우리 삶에 풍성하게
(금) 금은보화 넉넉하듯 식탁 위에 올려주리
(돼) 되로 주고 말로 준들 살찐 모습 닮아갈까
(지) 지금처럼 풍요로움 지난 세월 뿌리인걸 
(해) 해봅시다 행복하다 복스러운 말 한마디 

 

(복) 복에복이 따로있나 어허둥둥 춤을추면
(많) 많이많이 웃고즐겨 건강행복 넘칠것을
(이) 이리좋은 세상살이 어찌하려 투정하리 

 

(받) 받는 기쁨 베푼 축복 인생살이 달콤한데
(으) 의리 찾아 이웃친구 불러내어 한잔 하세 
(세) 세세연연 쌓은 추억 남은 인생 살찌울 걸
(요) 요즘처럼 값진 세월 할일마다 설렘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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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멋진 여자

 
 
날씬하게 예뻐서 넋이 나갈 듯한 여자 이야기가 아니다. 훤한 인물에 매력이 철철 넘치는 여인이 나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해서 이 글을 쓰는 것 또한 아니다. 그냥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다소곳한 중년 여인의 삶의 모습이 대단했기에, 오래 전에 겪었던 사연을 잊을 수가 없어 제목을 "멋진 여자" 라 붙였다.


그녀는 참 멋있었다. 차분하게 고분고분 천성적인 마음씨를 겸비한 여인이었다. 매우 소박한 성품에 별 치장도 않고 호박꽃처럼 순박한 시골 아낙네 같은 여인, 그녀는 아내의 둘도 없는 사랑스런 친구다. 그런 멋지게 가슴이 넉넉한 여인이 나의 아내 곁에 있어서 그런가? 영향력을 넓혀서였을까? 


이제까지 수십 년을 아내와 아웅다웅하면서도 부서지지 않고 살아왔음에, 그녀 에게는 물론 동행하신 인도자에게 감사할 뿐이다. 여학교 일년 선배라고 깎듯이 언니, 언니라고 존칭을 섞어 부르며 다정다감하게 평생우정을 다져가고 있다.


한핏줄 친형제보다 더 정겹고 따뜻한 마음씨를 여태껏 아마 평생을 끔찍하게 서로 아끼며 그렇게 오붓한 관계로 주위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어릴 적부터 이웃집에 살면서 친형제나 다름없이 앞뒷집을 서로 자기집처럼 흉허물이 없었다는 이야길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바로 그녀의 삶, 한편으로 멋지고 대견한 모습을 글에 담아보고 싶다. "여보!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다음엔 조심할게요." 이 정도의 대화 속엔 아무렴 폭군 같은 남편이라도 괴팍하고 요상한 표정은 감춰 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 부부가 으르렁거리며 다툼으로 그 순간을 망칠 수 있었겠는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아무것도 흠잡힐 일도 아니었는데 뭐가 그리도 자존심이 짓밟혔다고 눈알을 부라리고 핏대를 세우며 자식들 낳고 미주알고주알 평생을 함께 하는 아내를 그렇게도 허망하게 했을까? 그래 평소 아내의 잔소리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는 알 수 없지만 그 후유증이 폭발한 것일까?


하이웨이 진입로를 잘못 들었다고 한마디 거들던 순간, 까딱하다 만신창이 될뻔했던 아내 친구 남편의 볼썽사나운 행패가 참으로 상상할 수 없이 어이없는 순간이었다. 아니 Exit을 잘못 들어섰다는 아내의 염려스럽고 사랑스런 말 한마디였다. 그게 뭐 그리 빈정 상하고 자존심의 묵살이라고, 달리는 차를 멈춰 세우고는 "네가 운전해라." 하는지. 바로 뒷좌석에 몇 십년만에 찾아온 친구 앞에서 그게 무슨 꼴인가. 어이없어 아내와 나는 못들은 척 숨을 멎을 수밖에 없었다.


 바쁜 시간에 배웅을 서둘다 보니 짜증스런 불청객이라고 행여 속풀이가 그 정도였을까? 방문길을 멈춰 다시 되돌아가버릴까? 후회스러움에 안절부절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아이쿠야! 그렇네, 깜박하는 바람에 바로 지나버렸네, 다음길로 빠지면 될거야 미안미안, 어허! 나이 들어가니 순간적으로 실수들이 어디 한두가지라야지, 고마워 여보, 내 마누라가 최고야”


능히 이런 대화쯤 갖춰야 할 분위기로 마무리할 수 있는 유머러스한 평소 때의 인품은 어디로 실종돼버렸을까? 모처럼만에 먼길을 달려온 친구 부부를 맞아들인 판국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그 멋진 여인에게 어찌하여 그런 비상식적 몰지각한 성품을 지닌 남편인가? 뭐라 나무랄 상황이 아니었다. 고대했던 수년만의 만남이 너무 소중한 터에, 우리마저 왈가왈부 그 자리에 참견했다간 박살이 날뻔한 살벌함에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는 출중한 최고 학벌에 전교 일등을 독차지한 내노라한 개천의 용 같은 인물이다. 특출하고 탁월한 기백과 투지가 번뜩이는 사나이로, 뉴욕 유명한 상선회사의 부사장까지 역임한 자랑스런 풍운아였다. 


학벌이며 사회활동 영역이 부부생활에 무슨 자격운운 할 수 있을까만, 그래도 그렇지. 매사에 상대편의 의중을 읽고 판단하는 성품과 인격이 그 정도뿐이라면, 머리 좋아 수능평가해봤자 가정생활 수준이 엉망인걸 뭐라 변명할 것인가.


멋진 여자의 재치있는 미덕으로 이 상황반전은 요행으로 험악한 남편 성격을 잠재웠다. 폭발적인 남편의 화약같은 성품을 훤히 뚫고 있는 아내의 여유로운 배려야말로 내 팔자려니 눈 딱 감고 부부싸움의 승리자임을 확인하던 순간이었다.


지는 자가 승리자란 성어가 증명되고도 남았다. 이해하며 양보와 포용의 미덕이 백년해로의 지름길이 아니던가. 그만큼 멋진 포용력을 겸비했기에 그런 남편의 곁에서도 세 아이를 훌륭하게 키웠으리라.


 멋진 여자의 멋진 품격, 바로 멋지다는 표현은 그녀를 위하여 예비된 어휘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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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
그리운 아버님, 어머님

 
 
그리운 부모님을 생각하면 한마디로 죄송함뿐이다. 후회스러움에 죄인인 듯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자식 노릇 올바로 했을까? 자책이 사무치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분명한 것은 좀더 잘해드렸었어야 할걸, 이제야 생각하니 아무리 먹고 살기에 허덕였다 하더라도, 부모님에 대한 예의와 의무만은 다소곳이 열정을 다 했었어야 했건만 너무 소홀했던 기억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야단스럽게 부모님 속을 썩혀드린 일이야 추호도 있을 수 없었다지만, 그런데도 소원했던 옛 추억을 더듬어 볼 때마다 더 좀 잘해드릴 수도 있으련만, 이제와 아쉬움에 후회가 밀려들어 가슴이 미어짐을 어찌 할거나! 무릎 꿇고 용서를 빌고 싶다.


부모님! 잘해드릴게요, 이제야 살아 오시라고 악을 쓸 수도 없는 일, 그토록 좋아하시던 것들, 지금도 기억해 볼 때마다 넉넉하고 정겹게 아들 할 일에 더 좀 충실치 못한 일들이 새록새록 가슴을 쥐어짠다.


노년에 이민봇짐을 싸들고 식솔들과 함께 새 터로 오시라고 가족 초청을 했었는데, 변변치 않게 사시다가 저 세상으로 떠나신 분들, 나의 부모님께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나이 들수록 이토록 가슴을 후벼댈 줄이야, 뒤늦게 철이 드는 이 모습, 어인 일일까?


자식들이 최선의 효도라고 바닥까지 전부 털어드린다 한들 어찌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까, 옛적이야 헐벗고 못살아 얼마나 한이 맺힌 삶이었던가. 그런 와중에도 자식들은 가르쳐야 한다는 탁월한 신념과 결단으로 전력을 다 쏟으셨던 부모님들, 1인당 국민소득 700불이었던 시절을 용케도 겪어내셨던 처절한 각오와 투지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유별난 세대 아니었던가.


그 곤욕스런 생활 속에도 애끓는 가족애로 최선을 다하여 실천하셨다. 가족애란 내리사랑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얼버무린 변명이나 핑계로써 부모에 대한 사랑을 대신한다면 철천지 불효인 것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육이오 전란의 시대를 겪은 청천벽력 같은 고행들은 자자손손 증언들로 그 전설 같은 산 역사를 어찌 우리 잊을고! 그 와중에도 새로운 역사는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는 1인당 국민소득 4만불을 향한 천문학적 변화의 세대들이 바로 그 시절의 뿌리로부터요, 혁명적인 국민성이었음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한이 맺힌 옛시절을 꼴사납다고 삶에서 도려내버리고 싶다는 이웃친구들이 많다. 너나 나나 모두 헐벗고 굶주렸기에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표현들로 과거를 잊어버리고 싶었을까. 


우리 아버님, 아직도 젊은 연세였던 61세에 세상 뜨신 생애, 그분이야말로 한에 맺혔던 세상이 근대화 시대로 물결치듯 변화했던 걸 하나도 모른 채 이 세상을 작별하신지 40년이 지났다. 40온스 위스키 한병 값이 10불도 안 되었던 시절, 40시간 주급이 60불 내외였던 그때였다. 캐나다에 입국하신 지 일년 만에 험한 교통사고를 당하여 눈을 감아 버리셨으니, 고생만을 짓궂은 운명처럼 하시다가 좋은 세상을 향하여 캐나다에 오셨건만, 풍요로운 복지를 누리지도 못하시고, 그렇게 숙명적인 죽음을 당하셨다.


왜 이렇게 오래 사나? 입버릇처럼 긴 삶이라고 투정하시던 우리 어머님, 97세로 최상의 삶을 누리셨던 어머님의 생애, 아버님이 놓고 가신 나머지 삶까지 덤으로 누리셨을까?


97 팔팔 114하셨던 어머님의 장수하신 초능력의 비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속이 더부룩하시다고 반에 반 공기의 흰 쌀밥만 꼭꼭 오래 오물거리신 식습관에, 아들 딸네가 온갖 채소죽을 마련해 드리면 아껴 드시던 철저한 건강요법이 장수의 비밀이 아니었을까? 일찍 잠자리에 드시고 새벽같이 일어나시어 집안을 싹싹 청소하시던 몸에 배인 습관성 체질로 장수를 누리셨을까?


 운명을 누가 어찌 점칠 수 있을까? 창조자의 유일한 소관인걸,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님께 더 잘해드리지 못한 세월들이 후회막급한 불효였다. 


이제와 변명이지만, 후세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훗날 미련 때문에 가슴 아파하지 말고, 부모님이 살아있을 때 잘해 드리라고, 효도라는 강박관념에서 부담스러워 말고,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하라고.


 영생을 누리신다는 하늘나라, 있긴 있는지요? 아버지 어머니, 영원히 잠드셨나요? 아니면 천사들과 함께 하늘을 유람하고 계신가요?


 아버님께서 일찍 돌아가신 후, 3년도 넘게 눈물을 훔치셨던 어머님, 합장을 준비 했건만 싫다 하시고 따로 묻히셨던 우리 어머님, 이젠 아버님 곁에서 영생을 누리시는지요? 죄송합니다, 아버님,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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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yun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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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1
나를 닮은 사람이 있던가?

 
 
 묘한 존재 중에서 사람이란 대체 묘한 존재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우선 묘하고, 어디서부터 오고 가는지, 왜 사는지 모르는 것도 참 묘하고, 무슨 생각 하는지도 묘하고, 백인백색 성미가 다른 것이 또한 묘하다. 내가 만약 조물주였다면, 천지만물을 다 마련하였다 하더라도, 사람이란 묘한 것은 만들지 않았을텐데… 고 이희승 씨의 수필 한 구절이다. 


나를 닮은 사람 눈 씻고 봐도 절대 없다. 안약을 넣고 봐도 보이지 않는 것, 포기할 것 중에 하나 있다. 죽이 맞아 생각이 척척 들어맞고 하는 일들마다 어쩜 그렇게도 문고리 돌쩌귀 맞듯이 빈틈없이 뜻이 맞는 사람 말이다. 잊어가며 제쳐 버리면 마음에 평안이 솟는다.


밖에 나가려면 맨발로도 다니는 사람이 있겠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신발이 필요한데 슬리퍼냐, 운동화냐, 구두냐? 기본적 일상생활 그 평범한 일 하나만으로도 의견이 분분하잖은가. 있을 수도 없겠지만 만에 하나 있다 해도 과연 그들은 서로 만족스러울까? 그런데도 우리는 나와 똑같지 않다고 비방하고 험담하며 어려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함도, 미움도, 사랑도, 나누며 베풂까지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 평생을 함께 한다고 생각해보자. 똑같기에 편안함보다는 불편함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같은 생각이기에 서로 융합하고 절충하며 감싸안고 사랑하는 일들, 서로 같은 불평불만들까지도 함께 토해낸다면, 상대성 이론에 잘 적응이 되어갈까?


 상식적으로 이성문제 하나만 보자. 매력적인 여인과 멋진 남성을 서로 좋다고 차지하려 한다면 누가 누굴 양보하며 미소를 띄울까? 끔찍히 좋아하고 아껴주며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데 정말 요긴하고 친밀하게 쌍두마차처럼 굴러갈 수 있겠느냐는 상상을 해본다. 


한 뱃속에서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형제들도 얼굴모양만 같을 뿐, 하는 행동이며 생각의 차이가 생뚱맞게 엉뚱하다. 쌍둥이 부모인 주위 사람의 이야길 참고해 볼 때, 참으로 인간사 다양함으로 철저하고 오묘한 자연생태계의 이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삶 속에 가족은 물론 평생을 이웃과 친구들 함께 한다. 칭찬과 격려로 정겨운 기쁨 속에 서로 미소를 나누며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나름대로 약속이라도 하듯 열성을 다하고 살아간다. 그들이 나와 똑같은 인격체라면 능히 이겨낼 수 있을까? 저 사람 왜 저래? 왜 저 모양이야? 절망적 비극들이 연출되는 상황들을 피해 살 수 있을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적 특수성에 이렇게 해결될 수 없는 숙제를 안고 우리는 얼버무려 살아가고 있다. 의식이란 특수성을 분별할 수 있는 생명체라면 산 위에, 들녘에 산천초목처럼 그러려니 참아내고, 못 본 척 의젓하게 제자리를 지켜가고 있을 터인데 말이다.


물속을 휘젖고 사는 수백만의 물고기들, 천태만상이 아닌가. 고래가 참치 보고 나를 닮지 않았다고 비아냥거릴까? 새우가 랍스터를 비웃고 시샘하며 왜 그리 덩치가 크냐고 따지고 들까? 말이 소보고 뛰지도 못한다고 흉보며 비웃기라도 하던가?


 그러기에 못 본 척 들녘을 화려하게 장식한 자연의 생태계는 우리곁을 감싸주고 있다. 풍성한 산소를 뿜어대며 가지각색 모양으로 인간사를 말없이 향기롭게 부추기고 있다.


 순리에 적응치 못한 인간적 생태리듬은 묘한 상태로 꼬여있다 해도 절대 억설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와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으르렁거리며 푸념이 불만으로, 비방이 미움으로, 공격이 원수로, 삶을 애석하게 짓밟고 산다. 오죽해서 종교인의 고백 중에 "사랑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오는데 70년이 걸렸다”고 했을까.


 세상만물은 철저한 개성미로 본위주의적 완벽함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강과 바다도, 산과 들녘도, 인간과 동물들도, 특히 남편과 아내, 내집과 이웃 역시 절대 동질감으로 귀결점을 찾을 수 없는 존재다.


너와 나를 절대 합리화시킬 수 없는 문제들을 접어가며 어물어물 함께하고 있다. 그렇다고 눈을 부릅뜨고 주장하고 성토한다고, 의롭게 공동체란 정의를 표출해낼 수 있을까? 왜 나와 같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습성들 말이다.


우울하고 심란하다고 푹푹 속을 썩히며 가슴을 쳐가면서도 인간사 화합이라는 묘안이 있다. 포용하라는 진리가 가슴을 파고드는 피할 길이 분명 있다. 우리 혼을 정화시켜주는 인격적 여유로움 역시 따뜻한 가슴속에 꽉 차 있다. 더구나 다행인 것은 인간사에 만사를 해결할 수 있는 거룩한 사랑이 정겹게 존재하기에 나와 똑같지 않다고 비관만 하고 살기엔 너무 짧은 인생이 애닯지 않는가.


분홍빛 해당화와 탐스런 빨간 봉숭아 꽃이 함께 정원에 빈틈없이 피었다. 내 뿌리 곁에 다른 뿌리가 뻗어 침범했는데도 불평 하나 없이 의젓하게도 화려함의 극치를 피워내며 서로 다른 꽃으로 참으로 아름답게 피었다. 인간들이여! 나를 보시라. 이 한 계절을 아무 투정도 모른 채 장엄하게 화려한 꽃으로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피워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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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95
11090
2018-12-02
미련들이 추억 속에

 


 이 계절의 골프장은 상처투성이로 막을 내렸다. 일년 내내 푸르던 잔디밭이 14개 뭉치 쇳덩이에 모질게 파헤쳐진 상처로 범벅이다. 쇠못에 밟혀가며 안절부절 수 많은 흔적들을 견뎌내야 했다.


이젠 찬서리 눈보라 친 한겨울을 이겨내야 할 혹독한 계절을 피할 수 없이 견뎌야 한다. 예년에 비해 몇 주 정도 서둘던 계절의 변화가 요동치는 바람에 폭설과 함께 일찌감치 온 대지가 몸살을 견뎌내야 한다.


4월 어느날부터 초원을 누비기 시작해 연말까지 그런대로 7개월 동안 체력과 취미활동을 허락해준 자연의 섭리에 감사할 뿐이다. 골퍼들에게 싱그러운 풀내음은 섭리대로 사는 맛을 덤으로 안겨준다. 


피곤과 시름을 달래며 전심을 다해 땀 속에 환희와 함께, 아쉬운 실망과 기쁨을 범벅해가며 자연을 마음껏 벗삼았다. 5시간 후에 오는 갖가지 회한과 새롭게 꿈틀거린 도전의 신비한 육체적 용트림은 지칠 줄 모르게 육신의 활력을 부추겼다.


3백 야드를 날렸는데 좌우 숲 속으로 휘어져버린 티샷. 한두 번이 아니고 젊어 펄펄 끓는 체력의 뒷받침으로 휘둘러대는 스윙은 곧장 공을 두쪽이라도 내버릴 기세로 후려댄 결과다. 


2백 파운드 체격에 근육질로 훈련된 그의 호칭은 뉴클리어맨(Nuclear man)이다. 핵무기를 쏘는 것에 버금가는 위력을 휘둘러대는 젊은 패기가 펄펄 넘친다. 날아간 공은 Hometown을 향해 휘어져 버렸다, 오랜만에 가끔 방문한 곳도 고향 아니던가. 숲 속으로 휘어진 공을 home town을 향했다고 위로했다. 그의 마음속은 타든지 말든지.


숲 속을 기어들어 곳곳을 휘젓고 다닌 모습이 옛 고향 들녘을 헤매는 듯 안타까움의 순간이다. Home town에서 얻어버린 벌점일지라도 울렁이는 마음을 달래며, 세 번째 샷을 기가 막히게 홀 옆에 붙였다. 기적같은 par를 이뤄낸 것이다. 효자(dutiful son) par를 한 것이다. 고향길을 밟고 나니 효자 노릇 톡톡히 한 것이다. 함께 하는 골퍼들의 환성이 요란하다. 불끈 쥔 주먹끼리 마주치며 효자 par를 축하해준다.


 다음 홀의 티박스, 후려친 공이 하늘을 뚫는다. 엄청난 구질로 놀라운 거리를 가른다. 280의 어마어마한 장타다. 미스터 죠오지 모운의 샷이다. 핸디캡 +3으로 스크래치 골퍼의 환상적인 플레이다.


샷마다 엄청난 위력의 골퍼, 그의 골프장 호칭은 매직 모운이다. 12살 때부터 골프장에서 파트타임으로 고학을 하며 터득한 기량을 갈고 닦아 PGA프로에 버금가는 철저하게 다듬어진 골퍼다. 


 그런데도 삐그덕 가끔 +2 더블보기를 하고는 붉으락 푸르락 클럽을 땅에 사정없이 내려꽂을 때가 있다. 잠시 후 슬쩍 옆을 접근하여 "클럽이 괜찮냐?”며  표정을 누그러뜨리려 그의 핏기를 달랜다.


태생적 골퍼들의 심술이지만 어쩌랴, 골프란 운동의 최대 약점인 그 버릇, 타이거 우즈도 달랠 수 없는 절망스런 비관적 순간들. 의사들 처방도 효력이 없는 병폐가 아닌가.


다음 샷의 골퍼, 드라이버 샷마다 후렸다 하면 페어웨이를 적중한다. 그의 호칭은 파이프 라인(pipe line)이다. 18홀의 골프장에서 한두 홀 삐걱거릴지라도 고향길이나 물속에 들어가는 공은 없다. 약간 휘어지는 파이프는 있을지라도 꺾여버린 파이프는 쓸모가 없잖은가. 


 그에겐 파이프 라인이란 호칭과 스카이 토커(Sky Talker) 둘이다. 어쩌다 실수를 저질렀을 땐, 하늘에 누가 있는 양 악을 쓰며 자초한 실수를 토해낸다. 지저스? 부다? 알라? 누가 위로해줄건가? 허둥대는 샷마다 하늘을 보고 하소연하는 고질적 습관성 병폐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병원에서도 치유할 수 없는 습관성의 괴팍한 병이다. 한뼘도 안 되는 퍼팅은 give, 바로 no charge다.


Gimmie의 억양은 Rule에 어긋난 선심 쓰는 뇌물 같은데, no charge는 정말 순수한 선물 같은 기쁨이 있다. 이 골프장의 홀 막대에는 50센티 마디마다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 거리엔 no charge다. 4시간의 라운딩을 재촉하라는 매니지먼트의 호의(?)란다. 


 앙상한 숲 속에 자연의 순리가 다음해의 기약들로 부산하게 한겨울을 그려가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추억의 멜로디처럼 미스터 매직 모운, 홈타운의 뉴클리어맨, 파이프 라인인 스카이 토커, 2018년의 골프시즌은 이렇게 추억을 남기며 마지막 잎새처럼 홀로 남은 12월의 달력은 밝아오는 새해를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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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5
그대여, 듣는가

 

그대여, 듣는가 

 

 

 

봄 여름의 배신자처럼 쓸쓸한 대지 위에 갈잎만이 뒹굴었지.
나 혼자라서 그럴까. 유달리 더 따분하고 외롭고 서글프다. 그래서 가을비는 그리도 구슬픈가봐.
진초록 무성하게 숲속을 이뤘던 풍성함이 한순간에 우수수 떨어져 버려 훌러덩 부끄럽고 초라하잖아.
실망과 포기까지도 함께 말이야. 
그래도 절망은 없다고 그대와 속삭이고 싶은걸.
무더위 땀방울이 소금기에 힘들어 할 때 그대를 불렀었지.
숲속에 향기로움이 가득한 곳에 여유로운 쉼터가 바로 그곳이라고, 
푸르른 잔디 결에 세상만사 의지했던 그대의 눈빛에 
거무스레 그슬렸던 살결의 의미를 깨우쳐 주기도 했었잖아.
찐하게도 물든 오색 창연하게 물결치는 자연의 향기를 심호흡하면서
그대랑 환호하며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었지.
함께 감사하자고 손짓도 하면서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 때
뜬구름이 우리를 반겨주며 내일을 기대하자고 약속해주었던 
있잖아, 황금 물결치는 결실의 열매들 그 무르익은 오곡백화 말이야. 
씨앗 뿌린 봄에 또한 무더위였던 여름 그러고 보니 
오돌토돌 우리 함께 여물었네, 탐스럽게도 그 열매들을 
우리 셋이 오순도순 다정하게 어깨동무 하고서
날 보고 글쎄 계절의 왕이란다.
봄이 시샘하고 여름이 투정할텐데 어찌할까
아니 그래서 겨울은 그토록 매서운 찬바람 눈보라를 쏟아내는가봐 
질투의 화신인가, 누가 왕이냐고 눈을 치켜 뜨며
그래 그래도 난 기죽지 않을래.
벌거벗은 이 모습 그대랑 나랑 함께 하기로, 
다음 봄엔 왕성한 새잎을 다시 띄울거야. 
환상적인 계절의 변화에 환하게 미소짓던 그 모습 기억하고 있거든 
그래서 나를 보고 왕이라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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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7
‘Sold’ 사인의 비결

 

 

 

 

집이고 땅이고 매물에 ‘Sold’ 사인이 붙었다는 것은, 그동안 애태웠던 땀의 대가 이려니와 분명 행운임에 틀림없다. 거기에 더하여 황금어장에 버금가는 부동산에 Sold 사인을 거는 것이야말로 천운에 비교할 수 있는 횡재요, 천금보다 귀한 마케팅의 성취다.


지난주 칼럼에 밝혔듯이 금 밭을 나에게 개발하라는 천금 같은 기회가 안겨진 것이다. ‘For sale’ 간판은 한시라도 서둘러 ‘sold’ 사인으로 바뀌어야 할 막중한 책무가 중개인에게 주어진다.


2년씩이나 별볼일 없이 허탕이었던 매물이 3주 만에 홈런을 친 비결이 어디 있을까? 이 이야기는 어떤 특출한 부동산업자들의 성공비결이라기보다 내 바로 주위의 끈끈하고 절실한 대인관계에서 이뤄낸 완성품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은 진리다. 손톱 밑에 가시 먼저 뽑아야 한다는 말과 상충한다. 바로 우리동네에 이사하려는 바이어를 찾는 일이 최우선이란 비법이 3주 만에 ‘sold’ 사인의 숨은 비결이다.


그는 매우 진지한 자신감과 함께 지난 수년 동안 나름대로의 지론에 충실했기에 남다른 금 밭을 발견하곤 한다는 것이다. 그 매물의 원초적 실체는 과거 ‘sold’ 사인의 그늘에서부터 드러난단다.


 그 그늘 밑에 서성이던 이웃들의 눈초리가 사인 색깔이 바랠 정도로 스쳐 지나가다 매물로 연결되는 행운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의심했던 중개인의 숨은 능력과 마케팅의 요술을 기대하는 집주인들의 공통적 관심사에 무엇으로 기대감을 안겨줄 것인가? 친분관계로 이어져 온 이웃 부동산업자들에게 매일 20~30통의 전화나 이메일을 띄운다는 것이다. 


 멀티플리스팅(MLS)에만 의존하며 두 손 비벼가며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새 매물을 홍보하는 전략이 바로 친분과 인연을 재확인하는 목소리와 손끝에 있단다.


그들 역시 연관된 매물들을 소개하는 기회로 공유함은 물론, 서로의 마켓을 분석하는 것을 일주일 이상을 반복한단다. 한 주일이면 150명 정도의 중개인들과 긴밀한 소통을 한다.


투망질을 한두 번 하고서 어찌 없는 고기 탓을 할건가? 열 번도 짜증스럽겠지만 계속 투망을 던졌을 때 뭔가 걸려 나오고, 그 중엔 월척의 기쁨으로 환성을 지를 때도 있을 것이다.

 

 만일 일주일이 8일이라도 부족할 판인데 어찌 다른 일에 신경을 빼앗길 수 있겠느냐는 매물 요리사의 철학이요 신념이다. 일주일이 9일이라면 하루 골프장에 갈 수 있을 거라는 그의 철저한 직업의식으로 2년 동안 묵혔던 폐광에서 금을 캐내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그의 지난 10여 년 부동산 전략은 초등학교 수준의 교과서에 실려있는 기본 이란다. 동네를 눈길로 살피는 고객들의 발걸음이 금 밭을 일구어내는 도구라는 것이다. 그 발걸음을 함께 동행하는 자가 바로 친분 있는 협력자들이란다. 


그들의 눈길이 바로 sold sign의 주인공들이라는 것이다.


 협력자들은 경쟁자가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실수요를 충족시켜주는 부동산의 활기요, 용솟음치는 마케팅의 불씨인 것이다.


 떠벌려 소리소리 메아리쳐야 산울림이 되어 막혔던 숨통을 열어준다는 지론이 바로 그의 철학이다. 그런 전략이야말로 부동산의 첫걸음이라고 미소를 가득 담은 얼굴로 ‘sold’ 사인을 걸고 걸음을 재촉한다. 


 기쁨에 취할 틈도 없이 다음을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매우 활기차고 가뿐하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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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4
부동산 중개업자들과의 만남

 


 
 매물은 금광임에 틀림없다. 형편이 어찌되었건 부동산을 팔거나 산다는 인연들, 뭉칫돈이 몰려다니는 품세가 금광을 연상케 하는 희열이 넘친다. 특히 몇 년 전부터 요동치던 부동산 마켓, 이미 집을 가진 이들은 모두 금광에 안겼다.


금 밭을 일구어내는 듯 매물을 찾아서 온갖 열정을 쏟아내는 부동산 중개업자들, 합작품을 성사시킨 후일담은 금 밭을 뒹구는 횡재임에 틀림없다. 금 밭이 훤히 보이는데 어찌 게으름을 피울 여유가 있으랴. 부동산업자들의 번쩍이는 눈빛을 보노라면 활기가 돋는다.


성실, 근면, 열정, 패기, 그들이 추슬러 마켓에 대처하는 고객들의 자산이 바로 그 낱말들과 함께 숨고르기 상황대처를 절대 게을리 할 수 없는 관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두 해가 지났다. 매물을 마켓에 내놓으면서 부단한 생각들을 추스르며 구석구석 정리정돈에 정신을 쏟아내야 하는 강박관념이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그냥 아무나 붙들고 내 집 좀 팔아주세요, 한마디로 금광을 맡기려는 순간들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것이다.


몇 십 년 이 땅에 살면서 부동산 거래를 할 때마다 나의 자산을 들쑤셨던 부동산업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과 절묘한 마켓을 함께 했기에 자산증식이란 눈높이를 격상하는 기쁨이 금광 같은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 물론 폐광도 있었고, 반면에 요샛말로 대박을 친 만남으로 중개인들과의 인연이 각별하기도 했었다.


매물을 오래 전부터 소통해왔던 잘 나가는 중개인에게 리스팅을 했다. 잘 나간다는 표현은 곧 눈코 뜰새 없이 시간에 쪼들려 고객들과의 자상한 중개 역할을 원만하게 수행할 수 없었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그와의 3개월 리스팅은 물 건너 가버릴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금 밭을 발로 차버린 것이나 진배없이 시간만 잃어버렸다. 누가 바이어들을 끌어 들이겠지,. 기다려만 보는 듯, 본인의 열정이나 성실함이 보이질 않는 수수방관, 책임감의 부재다.


그토록 수년 동안 친분은 물론 신뢰와 믿음을 쌓아 두었건만 그마저도 뜬구름 잡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중에 그래도 맘을 확 끌어대는 중개인이 누굴까?


이리저리 둥글둥글 잠자리까지 불편을 겪어가며, 그래도 묶은김치 맛이 최고라는 옛말이 생각을 정리해 주었다.


오래 전에 깔끔하게 뒷처리까지 책임을 다해주었던 C라는 중개인에게 리스팅을 했겠다. 금 밭을 내어 맡긴 것이다. 이러이러한 조건을 붙여 서로 만족스럽지 않을 땐 계약취소를 하자고 조항을 삽입해 두기까지 했다.


그녀 역시 동서남북 일주일을 8일처럼 열정을 쏟아내는 중개자로 낙점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운이 다했을까? 결국 금덩이는 캐내지 못했다. 매물에 "for Sale" 간판이 오래 걸려있어 비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야말로 몇 달씩 또는 일년 이상 동네길을 장식하고 있다면 참으로 볼썽사납다.


집 근처에 다른 집이 몇 달 만에 ‘sold’ 사인이 붙었다. 아니 이럴 수가! 우리 집보다 더 낡고 허름한 모양새의 매물에서 금덩이들을 들춰낸 것이다. 부러우면서도 속이 부글거릴 수밖에. 아니 2년이나 출렁거린 ‘for sale’ 간판이 보기도 싫었다


팔려나간 집 리스팅 에이전트는 바로 집 근처에 있는 허름한 부동산 업자였다. 그는 일년 전에도 바로 근처에 1백만 달러가 넘는 금덩일 두 번이나 캐냈었다.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진작 그 에이전트와의 대면이 있었어야 할 것을 후회하면서 이제라도 그에게 리스팅을 했다.


3주 만에 5명에게 쇼잉 후 2년 이상 애태우며 기대했던 오퍼에 금덩이를 포장해 가져왔다. 금광이 터진 것이다. 모래알보다 수 많은 사람 중에 딱 금 한 덩이 같은 바이어를 찾아내어 합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야 가슴 조이던 ‘sold’ 사인을 걸었다.


 비결이 뭘까? 남들은 6개월 이상 허송세월하며 헤매었는데, 원 세상에나 3주 만에 금 밭을 발견하다니. 


 이 복덕방의 비결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분명 행운인 건 틀림없는데, 어찌 그리도 손쉽게 금 밭을 일궈냈을까? 능력일까? 수완일까? 흔히 말하는 운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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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2
호칭의 미학

 
 
사람마다 특성을 타고난다. 엿본다고, 부러워한다고, 닮을 수도 없는 것이 인간의 성품이 아닌가. 어쩌면 그렇게도 각별하고 특이한 개성을 갖춰 세상에 존재할까?


이민의 나라에 와서 쉽고도 편안함을 하나 손꼽으라면, 호칭을 이름 그대로 쉽게 부른다는 것이다. 이름도 쉽지만, 젊은이나 늙은이나, 선생이나 제자나 서로들 허물없이 털어놓고 이름을 부르며 친근함을 금세 드러낸다. 


몇 번 만남으로 곧바로 친근해져 버린다. 하이 쟌, 헤이 메리, 알고 난 이름들이 천리길을 함께 한 듯이 벌써 가까워져 버렸다. 갑도 을도 구분할 필요 없는 너나 나나 똑같이 땅 밟고 다닌 수평적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엘씨, 비씨, 케이 선생님, 회장님, 사장님, 두꺼운 철판대기가 눈앞을 가로막고서 언제 친근해지려나. 그렇잖아도 근세에 들어 갑의 을에 대한 횡포가 세상을 뒤집어버린 조국땅의 현실이 눈쌀을 찌푸리게 하지 않던가.


천만다행 약간의 사회적 변화를 재촉하고 있긴 하지만, 과연 언제쯤이나 근대화된 인간관계가 서구사회의 질서를 닮아갈 수 있을까? 


나의 처가 형제들의 별명들이 유별나게 특이하지만 의미 있고 정겹다. 큰처남의 별명은 두꺼비다. 본인의 작품인지, 누가 먼저 그런 별명을 붙였는지, 탄복할 정도로 잘 지어낸 별명이다. 뜸한 표정이며 눈을 끔벅거리는 모습이 확실히 두꺼비를 많이도 닮았다. 


두꺼비를 건드리면 건드는 사람이 손해를 당한다는 옛 속담이 있다. 쳐다보며 인색한 눈빛만 보여도 나에게 불이익을 초래한다니, 그것참 묘한 생물이다. 그래서 그럴까?

큰처남의 삶의 모습은 꼬이고 꼬여 역시 힘들게 사는 것도 같은데, 술술 뚜벅뚜벅 풀어 적응해내는 품세가 두꺼비를 많이도 닮았다. 


가끔 소원해질 이해관계가 눈에 뜨일 때도 있다. 그때마다 아예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산다. 건들면 내가 손해를 본다는데, 얼른 커피라도 먼저 사야 맘이 놓일 것을, 조심하며 몸을 사려야지 어쩔건가, 그래서 그런지 처남의 주변은 평탄하게 잘도 풀려가는 모습이 순조롭게 드러난다.


바로 여동생인 나의 아내의 별명은 부엉이다. 부엉이는 소쩍새와 올빼미와 같은 과에 속한 천연기념물이다. 영특하게 먹이를 잡아내어 나눠 먹을 줄 아는 희귀종인 새로 밝은 눈을 겸비한 날짐승의 일종이다. 


 나의 아내는 동양 여인의 보통 눈보다 좀 큰 눈을 갖고 태어났다. 아마 그래서 오빠가 즐겨 부른 부엉아! 여동생의 정다운 별명인가, 듣는 나 역시 별로 싫진 않다. 아빠가 지어 부른 큰 딸내미의 특출한 별명이란다, 아내 역시 싫은 표정을 내색하는 것 한번도 못 봤다.


남편인 나야 어찌 부엉아! 단 한번도 불러본 일 없지만 나와 동갑내기 아내의 오빠인 큰처남의 자랑스런 여동생의 호칭에 매우 호감이 가기도 한다. “부엉이냐, 오라비다.”


가족 사랑의 간절함이 절절히 묻어나는 표현이기에 듣는 이들조차 포근함으로 곁에 끼어든다. 하여간에 욕심이 많고 절대 손해보지 않는다는 조류의 으뜸이라는 부엉이, 토론토엔 미네르바의 부엉이 식당이 정평이 난 맛집이다. 이름이 특별해서 그럴까?


아내의 여동생인 처제의 별명은 호박이다. 역시 큰오빠는 만날 때마다 아이구 우리 호박 잘 있었냐? 절친함과 사랑이 함께 터져 나올 듯한 티없는 부름에 호박 역시 고마운 듯 흠뻑 미소를 가득 담고 “응 오빠아!”


푸짐하고 넉넉하게 노랗게 탐스런 이 시절 핼로윈 호박들이 시장통에 즐비하다. 품성이 호박처럼 둥글둥글 모나지 않는 처제의 다정스런 미소에 딱 어울리는 별명이다. 


형제들의 다정함 역시 노란 호박의 달고 깔끔한 맛 속에 가득 배어있다. 호박의 영양가의 실체는 채소의 왕이라 하잖은가. 결코 흔치 않는 형제들의 우애가 주위 친구들은 물론 이웃들의 부러움도 기쁨도 함께 불러 모은다. 


두꺼비, 부엉이, 호박, 뭐 하나도 세상을 얄궂게 물들인다거나, 눈살 찌푸릴 사연 하나도 없잖은가! 나에겐 형제들이 많았는데도, 뭐가 그리도 바빠서 별명 하나 못 부르며 지났을까? 그토록 재치 있는 유머마저도 가난했을까? 정겹고 사랑스런 별명으로 각별함을 담아내는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의 표현들을 왜 몰랐을까?


미숙하기도 했겠지만, 그 정도의 따사로운 정감을 이어주는 여유로움이 함께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이제야 형제들에게 미안하다.


부엉아! 호박이냐? 기왕이면 향기롭고 친근감이 배어있는 별명들 서로 불러가며 가족애를 격상시켜보는 세상살이, 보다 더 풍요롭고 정답게 살아가는데 향기로움이 더하지 않을까. 


비인간적이며 상식에 저촉되는, 때로는 자존의식을 내려놓아 스스로를 격하시키는 별명들이 많다. 본인들 앞에서 부를 수 없는 별명들로, 이웃들의 마음을 언짢게 하는 호칭들 말이다. “아! 그 짠돌이”, “응 그 대머리요”, “아니 그 입 큰 여자 말이요”, “아니 그 점박이요”. “와우 그 왕덩이요”. 이런 표현들로 향기로운 아메리카노 향기를 코앞에 놓고 노닥거린 날, 과연 그 기쁨은 영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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