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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사와 함께한 동포 편의점
leehyungin

 

 ‘김씨네 편의점’이란 뮤지컬이 이젠 TV드라마로까지 방영되며 온통 축제다. 작품 역시 시대적 요청에 부합했을 뿐만 아니라, 소박하고 털털한 배역의 주인공들이 순수한 인간적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었기 때문이리라.

 

 

 


매우 창조적이요, 탁월한 예술적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의 제작진은 물론 연기자들께 이 기회를 통하여 감사한다. 나는 평론가도 작가도 아니기에 이민사 애환을 그려낸 훌륭한 문화적 작품을 언급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훌쩍 반세기 이 땅 이민사에, 한마디로 초창기는 물론 이날까지도 3천 개에 육박했던 편의점들이 동포경제 활성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그 근면성의 뿌리가 어디서부턴가, 들춰보고 싶을 뿐이다.
60년대 중반 코너가게들의 운영권은 거의가 유대인 민족이 운영하고 있었다. 어두컴컴하고 별로 쓸만한 상품들도 보기 힘든, 한마디로 원시적 초라한 구멍가게의 모형 그대로의 모습들로 골목가게의 형태를 면할 수가 없이 보였었다.
그때 얼마나 젊고 들끓는 열정이 넘쳐나는 세대였던가. 이 땅 이민의 선구자 역할로 개척했던 파독 산업 역군들. 노동의 실체를 온몸에 터득했던 강인함과 돌파력, 더더욱 1천 미터 석탄 굴속을 휘저으며 다져진 용단과 패기가 무슨 일인들 겁날까! 
두더지 땅굴을 뒤지며 통달한 노동력으로 이 땅에서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무슨 일인들 마다할까! 땅속만이 아닌 하늘밑이라면 무엇이라도 덤벼 성취할 수 있었다. 
가게들이 마켓에 즐비했다. 저렴한 값에 별볼일 없는 재고 역시 헐값에 인수할 수 있었다. 
유대인들 중엔 특별한 경제의 노하우가 태생적으로 몸에 배어있는 민족임을 역사는 증명한다. 우리는 그들이 펼쳐둔 기찻길로 달리기만 하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헐값에 매입할 수 있었던 가게였다.
거기다가 우리 민족은 누군가? 부지런함과 친절한 접근성이라면 어느 누가 뒤따를까. 헐값 매각에 우중충한 가게들을 인수하자마자 확 탈바꿈해버린 빨리빨리 습성이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컴컴하고 우중충했기에 불을 밝혔고, 구질구질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기에 역시 새롭게 신선하고 깔끔한 가게 모습으로 분위길 단장해버린 것이다.
넉넉하게 다양하고 신선하게 진열된 상품들과 “띵 호아”, “꼬메시타 아미고”, “띠까니시”, “비게잇츠”, “도부로 유트로…”
웃음이나 친절함엔 우는 애도 달래지만, 불만이나 불평도 모두 한순간에 녹아난다. 그러면서 열리는 것이 핸드백이며 지갑이다. 반사적 이익만이 7/11(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피곤을 달래줄 영양제였다.
따뜻하고 친근함으로 “하이! 케롤”, “하이! 폴” 이름을 기억하고 태어난 나라의 인사로 들어오는 손님들을 반겼는데, 뭔가 필요해서 밀고 들어온 가게에서 어느 누가 담배 한 값만 사갈까!
계산대 앞엔 ‘언제나 기뻐하라’ 성경구절 한마디와 거의 매일 편리하고 친절한 편의점을 찾아야 하는 고객들의 이름과 그들 나라의 인사말들을 빼곡히 기록해두고 매일 숙지하여 가게 문을 밀고 들어오는 이들의 피곤한 표정들을 미소로 해소해버리는 동네 편의점으로 거듭나야 했던 것이다. 
구멍가게의 틀을 벗어나 이젠 당당한 기업으로 실업인의 긍지를 펴야 할 것이다. 절망은 없다. 뛰는 자에겐 걷는 자의 속도가 느리다는 진리만이 보일 뿐이다.  
아직도 훤하게 밝혀진 희망의 길이 보인다. ‘덕 포드’의 실언이라 할지라도, 얼씨구, 편의점에 맥주판매권을 안겨준다 하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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