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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사인(sign)지
leed2017

 

 내가 한국 E여대에 가 있을 때였습니다. 안동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같은 반에 있던 권수명이를 E여대 후문 근처 어느 음식점에서 만났습니다. 수명이가 노인이 된 것을 보니 퍽 놀라왔습니다. 물론 나 자신은 노인이 된 것은 생각지도 않고.

 나는 E여대에 있는 동안 수명이와 가끔 만나 고향 안동 이야기도 하고 함께 학교에 다니던 동무들 이야기도 많이 했습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끝에 우리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 사인지 돌리던 얘기가 나왔습니다. 사인지 돌린다는 것은 동창생들이 이제 졸업하면 사방으로 흩어질텐데 헤어짐을 섭섭해 하며 노트북만한 크기의 흰 종이를 듬뿍 사서 학우들에게 돌립니다.

그 종이를 받은 아이들은 사인지를 준 아이에게 기념될 말 몇마디를 적어서 되돌려 주면 사인지 행사는 끝나는 것입니다.

 어떤 녀석은 자기와 가까운 동무 몇몇한테만 사인지를 돌리는가 하면 또 어떤 녀석은 친하던 친하지 않던 한해동안 말 한 번 안해본 학우들한테도 돌리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나도 남들이 다 하니까 사인지를 돌렸는데 몇 장을 돌렸는지 기억도 나질 않고 지금은 돌아온 사인지는 한 장도 가지고 있질 않습니다. 수명이 말로는 자기는 아직도 되돌려 받은 사인지는 전부 다 보관하고 있다네요.

 그 후 몇 주가 지났습니다. 수명이가 그가 받은 사인지를 아담한 책으로 엮어서 갖고 나왔습니다. 그 사인지를 보는 순간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듯 반가왔습니다.

나는 나의 50년 전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수명이의 사인지에 써놓은 글들은 너무나 청순하고 한가로우며 심각한 내용이나 전혀 심각하지 않고, 장난기 가득한 그때 우리가 벌써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나 싶은 것들이었습니다.

 내가 수명이 한테 써준 사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말을 썼는지 나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아 한참 웃었습니다. 내용도 별로 없는 것을 내깐에는 어렵게 쓰다보니 이런 문장이 되고 말았겠지요.

 “너는 무엇인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것이야 말로 우리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라고 적고 한 구석에는 “To know is might, Bacon”이라고 적어놨습니다. 뭘 두고 아는지 모르는지란 말입니까? “이것이야 말로”로 시작되는 이것이란 도대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요?

 아무리 중학교 3학년 때에 썼다는 사인지라 하더라도 말도 안되는 말을 적어놨으니 50년이 지난 오늘에 읽는다 해서 더 낫게 보일리가 있겠습니까? 60~70년 전의 그리움도 오늘의 부끄러움이 된 것 뿐입니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의미없는 말 적기는 나와 별차이는 없었습니다. 가장 많이 나온 말은 “큰 성공을 거두라”는 훈계였습니다. 몇 녀석이 적은 것을 볼까요? “벗이여 풍파 많은 세상을 길 조심하며 성공의 금자탑을 쌓을 때까지 일로 매진하기를(Y)” “군은 원대한 포부와 희망을 안고 부디 성공하여라(B)” “학우 권장군이시여 기울어져 가는 이 나라를 바로 잡아 성공해서 국회 석상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K)”

 바야흐로 사춘기 시절, 싹트기 시작한 이성(異性)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그 절정에 이르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으스름 달 속에 졸업을 슬퍼하는 귀여운 여학생, 그는 수명이의 사랑하는 애인 xx였던 것이다(K)” “수명아 이놈아 장가가거든 X를 너무 하지 말어라. 이 소리 하고 보니 내 P가 또 서는구려(K)” “오 벗이여 부디 좋은 마누라 만나서 수박같은 아들 낳고 탱자같은 딸 낳아서 내 아들과 교환하자(K)”

 또 어떤 녀석은 ‘채근담’이나 ‘명심보감’ 구절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도덕적이고 점잖게 들리는 말을 적은 아이도 있었습니다. “유수같은 세월은 늘 재촉하고 저 적막한 공동묘지는 너를 기다린다. 짧은 인생 값지게 살자(K)” “죄 많은 세상에 물들지 말고 오직 너의 깨끗한 마음 그대로 지키어 나가라(K)” “아름다운 장미는 가시가 있고 사랑에는 눈물이 많다(P)”

 사인지를 돌리던 아이들은 이제 모두 80을 넘은 노인들입니다. “청춘 소년들아 백발 노옹 웃지마라 / 공평한 하늘 아래 넨들 얼마 젊었으랴 / 우리도 소년행락이 어제런듯 하여라” 지은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 시조 한 수가 이토록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있겠습니까.

 맹호처럼 부르짖던 성공, 성공은 이제 사방으로 떠다니던 민들레 꽃씨 마냥 모두 어딘가에 가라앉았습니다. 한가지 후회가 있다면 그처럼 성공, 성공만 애절하게 부르짖지 말고 행복 행복을 부르짖었다면 좀더 여유있는 노인들이 되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80 고지를 넘어섰습니다. 이럴 땐 지금부터 88년 전 노산 이은상이 ‘동아일보’에 발표한 ‘가고파’의 다음 구절이 옛 친구처럼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처자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 아까와

 

 이제는 “처자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애비 된 사이”의 “애미와 애비”도 “할매와 할배”로 고쳐 넣어야겠습니다. (202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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