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계정 찾기 다시 시도 아이디 또는 비밀번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동렬 수필

leed2017
E3A9A155-AC35-420D-8D87-22D555FB6917
58119
Y
메뉴 닫기
오늘 방문자 수: 13
,
전체: 15,355
이동렬 수필
메뉴 열기
leed2017
leed2017
67175
9216
2018-08-17
진화심리학에서 바라본 행복(1)

 

 몇 주 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어느 음악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한 사람이 무대에 나와서 청중에게 인사를 하고 활[bow]을 막 바이올린에 대려는 순간, 어디서 "삐르르르, 삐르르르. " 하고 핸드폰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순간 이 갑작스러운 '사건'에 놀란 바이올리니스트는 활을 내리고 "아줌마 빨리 전화 받으세요. " 하는 말을 내던지고는 무대 옆으로 휙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화가 나도 몹시 난 것이 틀림없다.


 지난해 8월 한국에 와서 이삿짐을 풀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이 핸드폰이라는 문명의 이기였다. 이 요물은 실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전철, 버스, 기차는 말할 것도 없고 식당, 강의실, 극장, 화장실, 목욕탕, 어디 한 군데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공중장소에서 고막이 터질 듯 큰소리로 통화를 하는데(특히 경상도 아줌마 아저씨들 제발 좀 봐주셔요) 놀라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내버스에서 핸드폰으로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목이 터져라고 "냉장고 쪼꼬마한 냄비 안에 있는 콩나물국 뎁혀 머거레이" 하고 소리치는 어머니의 애정 어린 지시를 들으면 그런 고성능 전파를 타고 오는 어머니의 보살핌 한 번 받아보질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데 대한 억울함 비슷한 것도 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핸드폰같이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 긴밀하고 가깝게 만들어 주는 데 도움이 될까 안될까, 더 길게는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아닐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텔레비전을 생각해보면 행복을 증진하는데 방해는 되지 않지만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들어주기 보다는 따로따로 떼어놓는 반(反)사회적 행동을 부채질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텔레비전은 사람들을 안방에 가두어 두고 여름밤 이웃집 아저씨와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친(親)사회적인 행동을 막는다. 동네 아이들도 집 밖에 나와서 저희끼리 와와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모습은 점점 줄어가고 텔레비전, 아니면 컴퓨터 앞에 혼자 앉아 있는 외로운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지 않을까.


 텔레비전과 비교해서 핸드폰은 어떨까? 약간 길을 벗어난 이야기가 되겠지마는 일반적으로 진화 심리학에서는 동굴 속에서 살던 우리 조상들의 원시 태곳적 생활환경과 현대 환경의 엄청난 차이 때문에 현대인이 행복감을 느끼는데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진화심리학이란 오늘날 현대인들이 가진 모든 특성은 동굴 생활을 하던 원시 태곳적 환경에서 시작해서 수수만년을 내려오는 동안 정직성이나 책임감 같은 다른 모든 심리적 특성이 생리적 특성과 마찬가지로 생식과 번식에 필요한 진화 과정을 통해서 살아남은 진화의 마지막 결정체로 본다. 


 이런 심리적 특성들은 처음 원시.태곳적 환경에서 맹수나 천재지변과 질병에 시달리고, 다른 부족과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으나 현대생활에서 행복을 성취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견해이다.


 예로, 질투심이 그렇다. 질투심이란 태곳적 환경에서는 자기의 종자번식에 절대 필요한 성(性)적 파트너를 남에게 빼앗기거나 자기의 파트너가 몰래 남의 아이를 잉태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 생긴 특성이었다. 그런데 이 질투심은 자기 파트너들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던 사람들이 자기의 성적 파트너를 남에게 빼앗기거나 남의 아이를 잉태했어도 별로 놀라지 않았던 사람들을 종족 보존 경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아직까지 하나의 잔재로 남아 있는 특성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인은 그 질투심 때문에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거나 잠 못 이루는 밤의 고통을 겪는 수가 있다.


 이것 말고도 태곳적 환경과 현대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현대인의 행복감을 방해하는 경우는 실로 많다. 예로, 태고 원시적 환경에서는 보통 50명, 100명의 혈육으로 얽힌 소규모 집단으로 살았으니 성(性)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상대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다르다. 10만, 100만의 무수한 사람들이 거대한 공간에 퍼져 살고 있고 성(性)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후보자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성관계는 늘어가는 반면 깊고 긴밀한 성관계를 줄어든다. 여기서 오는 정서적인 공허감도 현대인의 행복감을 방해하는 무시 못할 요소이다.


 게다가 텔레비전을 비롯한 각종 매스 미디어는 날마다 세계 정상급 미남 미녀, 정상급 운동선수, 정상급 음악가, 정상급 댄서 등 그야말로 한 나라 혹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정상급 음악가, 정상급 댄서 등 그야말로 한 나라 혹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정상급에 대한 사람들의 소개를 쏟아 놓는다. 원시 태곳적 환경에서는 우리 마을에서 ‘내가 제일 힘센 사람’이나 ‘얼굴이 제일 예쁜 사람’은 이제 그 나라 혹은 세계의 정상급과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될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나는 유능한 사람’이라는 뿌듯한 자신감에서 오는 행복감을 유지하기는 더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원시 태곳적 환경과 현대 생활환경의 차이 때문에 행복감이 방해를 받는다면 그에 대한 ‘대책’ 같은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을 늘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자주 해서 외로움을 덜게 함으로써 원시 태곳적 환경과의 차이를 좁히는 것일 것이다. 이 점에서 핸드폰은 크게 공헌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사람이 이제 몇 발짝만 더 가면 어디쯤 도착할 것 같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편리한 세상에서는 대화도 많고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좌우간 소위 핸드폰같이 문명의 이기라는 것도 알고 보면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바꾸어 놓는데 한몫하고 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인간이 무엇인가?”에 명쾌한 대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어떤 사람이 공자(孔子)를 보고 “선생님,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공자 “야 이 사람아, 내가 삶[生]도 모르는데 죽음[死]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대답했다 하지 않는가.


 삶과 죽음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승의 삶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 행복은 나 이외 다른 인간과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써 가장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 없이 내 행복은 어려워진다. (2000. 3)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d2017
leed2017
67107
9216
2018-08-12
논다는 것

 
 학생들에게 이번 방학에 무얼 하느냐?고 물어본다. 대부분이 영어 강습소를 다녀 영어 실력을 올리겠다는 대답이다. 나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든지, 소설이나 보며 집에서 실컷 놀기나 하라고 권한다. 생각해 보면 사람이 놀 수 있는 때가 그리 많지 않은데, 그때는 바로 학창 시절, 그것도 방학 때일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학생들은 여행은 참 좋은 생각이지만. 하고 뒤끝을 흐린다. 아마도 여행할 돈이 없기보다는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뒤로 물려놓고 여행을 쉽게 갈 수 있겠느냐는 것 같다. 요새 학생들은 이런 의미에서 참 불쌍하다. 웬 학생이 해야 할 일이 그렇게도 많은지!


 여행은 노는 것이다. 노는 것은 즐거운 것. 여행에서 밖으로 나타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비성 행사이다. 그런데 우리는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을 엄연히 구분한다. 책을 들여다보며 영어 단어라도 하나 더 외우려 할 때는 공부, 만화나 보고 낚시질을 가는 것은 노는 것이라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놀이는 일 않고 세월을 보내는 것이니까.


 '놀다'라는 말은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니 여가가 있어야 쓸 수 있는 행위이다. 옛날 옛적에는 놀이는 일과 함께 존재했다. 즉 놀이는 노동을 즐겁게 해주는 목적으로 있었다. 농사일을 하며 부르는 농요나 고기를 낚으며 부르는 뱃노래를 보면 알 수 있다. 


 고인돌을 운반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무거운 돌을 움직이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어떤 사람은 술을 마셨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노래를 흥얼거렸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풋잠을 잤을 것이다. 모두 다 다음 차례릐 힘든 노동을 준비하기 위해서 제각기 다른 놀이를 한 것이다.


 한편 일은 힘들고 고단한 것이다. 옛날 옛날 그 옛날, 일과 놀이가 나뉘어지기 전에는 노는 꼴이나 노는 양도 사람들 사이에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계급 사회가 되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나타나면서 가진 자는 고된 노동을 적게 함으로써 시간적 여유가 더 많았고 놀 시간이 더 많아졌다.


 놀이에도 동서양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같이 집단주의 유교권 사회에서는 노는 데도 '건전하게', '점잖게', '신분에 맞게' 놀아야 한다. 그러니 서당깨나 다닌 사람은 여가에 난초를 치거나 서화나 창을 즐길 것이요, 놀이패 같은 것은 못 배운 사람이나 하는 놀이다. 놀이에 대한 경직성이 크고 여가선택의 폭도 극히 좁다. 예로, 봄이면 널 뛰고, 연 날리고, 윷판 벌리고 여름에는 그네나 씨름, 가을이면 강강수월래나 농악이 전부인 것이다. 


 그리고 놀이도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도박을 한다든지 버스간에서 춤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여가 사회학]이라는 책을 쓴 김문겸님 주장에 의하면 우리 놀이에는 TV나 술집, 바둑이나 장기처럼 자리를 뜨지 않고 "앉아서 깔고 뭉개는" 놀이가 많다고 한다. 땅을 떠나기 싫어하는 농경사회의 유물이 그대로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서구의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놀이가 사회 공익만 해치지 않고 자신에 기쁨만 주면 OK이다. 고로 여가문화도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민주주의 의식만큼 여러 가지여서 개인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그 자체가 여가이다. 여가의 범위는 여러 가지이다. 도박, 마약 등이 사회적으로 큰 거부감 없이 여가활동으로 수용된다는 것이 Godbey라는 사람의 주장이다.


 우리나라 같은 농경국가에서 출발한 나라의 놀이는 협동을 요구하거나 집단 단결을 유지하는 놀이, 예를 들면 줄다리기나 횃불싸움 같은 것이 많다고 한다. 우리는 좀처럼 혼자서 노래방이나 술집을 가지 않는다.


 그런데 요사이 놀이의 여왕벌로 뜨는 것이 하나 있으니 이는 다름 아닌 노래방이다. 노래방은 참으로 단군의 피를 받은 자손 적성에 맞는 놀이인 것 같다. 첫째 그것은 노래 중심이니 노래를 좋아하는 한국사람 취향에 꼭 맞는 것이요, 둘째 노래방은 여러 사람이 빙 둘러앉아서 제 신명나는 대로 하는 것이니 미리 정한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나이 많은 사람이 첫 번째 노래를 하는 사람으로 지목되는 경우가 있으나 이것도 알고 보면 어디까지나 나이 많은 사람을 빨리 잠재우고 젊은 사람들끼리 놀겠다는 속심이 있는 경우가 많다. 


 셋째,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노래를 잘 하거나 못 하거나는 큰 상관이 되질 않는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정말 노래를 잘못할 때는 응원군은 얼마든지 있다. 노래를 잘하고 잘못하고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노래방이 한국 사람의 놀이 문화에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는 크고 오래갈 것 같다.


 한국의 놀이문화는 굿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굿판에서는 흥을 잘 내든 못 내든 별 상관이 없고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대접을 받는다. 술을 마실 줄 모른다 해도 억지로 술을 권하는 것도 굿판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처럼 가진 자라 할까 지배계급의 놀이행사도 이중적으로 되어 있는 사회도 드물지 싶다. 우리나라에서 지배계급은 겉으로는 ‘건전’을 외치지만 뒤로 돌아서서는 ‘호박씨 까는’, 원색적인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볼 때가 많다. 건전을 외치던 지배계급이 은밀히 또 하나의 ‘사모님’을 두고 있다든지 원색적인 오락을 즐기고 있을 때가 많다는 말이다.


 오는 겨울방학에는 학생들이 뭐좀 달라졌겠지. 어떤 녀석은 소설을 많이 읽었을 테고, 또 어떤 녀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워 동해안 눈바람을 맞고 왔을 것이다. 이 모두가 어른이 되면 해 보기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쉽지 않은 놀이들이라는 것은 녀석들이 어른이 되어보면 알 일.


 1주만 있으면 겨울방학이다. 신난다. 나에게 시작되는 영원한 겨울방학, 즉 은퇴가 내년으로 성큼 다가왔다. 나는 은퇴하면 무엇을 할까?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그것도 쓸데없는 일. 10분만 보면 눈이 어른거려 책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는 색소폰이나 부- 부- 불어보고 싶지만 그럴 기운이 있겠는가.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에 큰 저수지가 있으니 낚시질이나 갈까. (2004. 12. 7)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d2017
leed2017
66974
9216
2018-07-28
순발력

 

 미국 닉슨(Nixon0 대통령 시절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워터게이트(Watergate)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의 참모습을 알아보기 위한 공청회 자리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 하와이 상원의원 이노우에씨가 어느 증인에 대한 질문을 끝낸 바로 뒤 마이크가 열려 있는 줄 모르고 "What a liar(거짓말쟁이!)"라고 혼자 중얼거린 것이 그대로 방송되어 버렸다. 분명 이노우에 의원의 실수였다. "증인에게 질문을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궁지에 몰리자 이노우에 의원은 자기는 그 증인이 묻는 말에 하도 척척 대답을 잘해서 감탄하여 "What a lawyer(대단한 변호사군!)" 하고 중얼거렸노라고 우겼다. Lawyer와 liar는 그 의미는 다르지마는 발음이 비슷하여 들어서 똑 떨어지게 구별이 가지 않는 말이다. 이노우에 상원의원의 이 같은 즉흥적 변명을 순발력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게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서양 이야기고 우리나라 예는 어릴 때 아버님에게서 들은 다음과 같은 일화 한 토막이 생각난다. 즉, 대원군이 권력을 잡고 난 후였다. 어느 젊은 선비 한 사람이 대원군을 찾아갔다. 대원군에게 넙죽 절을 올렸으나 대원군은 일에 바쁜지 본체만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진 이 선비는 한 번 더 절을 했다. 이때 모르는 척 하던 대원군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예끼, 이놈 내가 죽은 사람도 아닌데 절을 두 번 하다니." 당황한 이 선비는 "첫 번째 절은 왔다는 인사이고 두 번째 절은 소인 물러간다는 절이옵니다"고 임기웅변을 하였다. 이 기막힌 순발력에 대원군도 놀랐고 나중에 이 선비에게 큰 벼술을 주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순발력이 없는 사람이다. 네가 옳으니 그르니 하는 논쟁같은 것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그 장면을 마음속으로 다시 생각해 보는 버릇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왜 그때 그 말을 못했던고." "그 때 이 말을 했더라면 상대방이 옴짝달싹 못했을 텐데" 하는 때늦은 후회를 해 본다. "나는 참 둔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버스 지나간 뒤에 손 든다"는 말과 같다고 할까.


 이것도 순발력과 관계된 것일까, 나는 사람이 여럿 모인 데서 갑자기 몇 마디 하라고 하면 꾸며댈 말이 없어서 쩔쩔맨다. 이런 경우 준비해 온 것처럼 마이크를 잡고 거침없이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참 부럽다. 이런 사람은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며 기도하는 버릇을 들였던 사람들인 것 같다.


[국어 대사전]을 보니 순발력이란 “한 순간에 집중ㅇ적으로 내는 힘”이다. 그런데 언어에 대한 순발력은 이것 말고도 꾀라 할까 지혜가 있어야 되지 단순히 머리가 좋고 나쁜 것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 아내의 절친한 친구 중에 뛰어난 수재로 알려진 K씨가 있다. K씨 당사자가 수재일 뿐 아니라 K씨 집안이 온통 수재 덩어리다. 그런데 아내 말에 따르면 K씨는 순발력은 영점인 천진고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K씨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 단순히 꾀가 그다지 많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순발력이 그다지 없어도 순발력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쓸 때가 많다. 그런데 순발력이 워낙 없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쓸 때가 많다. 그런데 순발력이 워낙 없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행동을 하는 것도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학생들은 몇 해 전에 내가 한(재치 있게 보이는) 농담을 해가 바뀌어도 그대로 써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 같다. 큰일이다.


 나도 순발력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순발력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부럽던 순발력이 점점 부럽지 않게 되어간다. “내 생긴 대로 살자”는 말을 따르는 것이 좋고 “지금 와서 순발력이 많은들 무엇하리”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늙으면 늙은 대로 살아가고 생긴 대로 살아가는 것이 지족안분(知足安分)이 주는 교훈이 아닌가? 순발력 없는 사람이 지금 와서 순발력 많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도 지나친 욕심이라면 욕심이다.


 남의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주제에 순발력까지 바란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꿈이요, 허영이요, 욕심이 아닐까.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d2017
leed2017
66877
9216
2018-07-20
울음

 

 우리는 여러 가지 일로 운다. 배우자를 잃었을 때는 물론, 자신이 서러운 일을 당하거나 남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도 운다. 흘러간 옛 노래가 나오는 [가요무대]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비 내리는 고모령"이나 "불효자는 웁니다" 같은 애조 띤 노래가 나오면 금시 손수건을 찾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꼭 슬픈 일을 당해서 우는 것만은 아니다. 로또 복권에 당첨이 된다든지, 결혼식장에서 부모에 드리는 인사에서도 신부 되는 사람은 울고(신부가 결혼식장에서 좋아서 너무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것은 철따구니 없어 보인다) 고생고생해서 키운 딸이 신랑의 손을 잡고 손님들에게 인사를 올려도 부모 되는 사람은 눈물을 글썽인다.


 30년, 40년 떨어져 있던 가족을 다시 만나서도 울고, 자녀가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운다. 지금까지 쌓여온 정(情)과 한(恨), 원(怨)과 그리움, 이 모두가 하나로 용해되어 한 방울의 눈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250여 년 전에 태어난 박지원은 복잡한 심리실험실 없이도 이 사실을 스스로 알았다. 그가 중국에 다녀와서 쓴 [영하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사람들은 다만 안다는 것이 칠정(七情) 가운데 슬픈 감정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만 알았지…까지것 기쁘면 울 수도 있고,까지것 골이 나면 울 수도 있고, 까지것 울 수 있고, 까지것 사랑하면 울 수 있고, 까지것 미우면 울 수 있고…맺힌 감정은 한번 홀딱 푸는 데는 소리쳐 우는 것처럼 더 빠른 방법이 없다.”


 재미있는 것은, 그다지 울 일이 아닌데도 울음을 한번 시작하게 되면 자신의 구슬픈 소리, 자기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 뺨에 흘러내리는 축축한 물기 등이 모두 하나의 자극이 된다. 이 복합 자극 때문에 건성으로 시작한 울음은 점점 심각하게 되고 이렇게 울다 보면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로 내리막길 내려가듯이 나중에는 정말로 설움에 북받쳐 더 열심히 울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울음이 울음을 낳을 뿐 아니라 울음도 웃음처럼 전염이 된다. 사회심리학자들에 따라서는 기쁜 감정 때문에 숨이 가빠지고 맥박이 빨라지는 것이나, 성난 감정 때문에 숨이 가빠지고 맥박이 빨라지는 것은 생리적으로는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당사자가 그 현상이나 사건을 어떻게 이름 붙이느냐에 따라 기쁨도 되고 분노도 된다는 것, 기쁜 것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기쁨이, 억울하다는 이름을 붙이면 분노가 된다는 말이다.


 울음은 스트레스를 없애기 위한 화학적 반응에 불과하다. 울음은 물, 염분, 단백질, 리피드(lipid)와 당분으로 구성된 눈물을 생산한다. 울음은 우리 신체가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한계가 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생화학자요 눈물박사로 알려진 미국 미네소타에 있는 흐레이(William Frey II) 교수에 의하면 울고 난 다음에 미국 여자들의 85%는 기분이 더 좋아지고 남자들은 이보다 적은 70% 정도가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우리나라에서는 통성기도를 하는 교회에 가서 목을 놓아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고 한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로는 “은혜 받았다”고 한다. 남자나 여자들이 12살 전에는 비슷한 정도로 울지만 18살 정도에 이르면 여자가 남자보다 1배 반 정도 더 자주 운다고 한다. 용감무쌍해야 할 사내가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나약한 행동의 노출이라는 문화적 세뇌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알기로 이 세상에 남자가 울어도 좋다는 것을 가르치는 사회는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우는 정도에도 문화적 차이가 있다. 북미보다는 구라파 사람들이 더 많이 울고, 구라파 사람들 중에서도 이태리 사람들이 더 많이 운다. 한국 사람들은 어떨까? 내 생각으로는 이태리 사람 못지않게 눈물과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인지 텔레비전을 보면 유난히 우는 장면과 먹는 장면이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는 데도 죽기 살기, 그야말로 젖먹는 힘을 다해서 운다. 가족 중에 사별(死別) 같은 갑작스런 비극을 당해서 우는 것을 보라. 옆에 두세 사람의 부축을 받으면서 우는 장본인은 그야말로 눈물 콧물이 뒤범벅이 되어(죄송하기 짝이 없는 말이지만) 악을 바락바락 써가며 운다.


 북미 사람들은 울 때도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2002년에 뉴욕에서 세계무역센터 비극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 유가족들이 우는 것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울어도 손수건만 눈에 갖다대고 흐느끼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워밍업(warming-up)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점잖은 말로 하면 신사적이고, 교양 있게 운다고 할까. 화끈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는 교양이고 신사적이고 모두 저리 가라다. 우리는 그야말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애절하고, 정성을 다해서 운다. 지진강도를 말해주는 리히터(Richter) 척도로 말하면 북미 사람들이 2.0이라면 우리는 0.9의 강진이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극과 극에 치우치는 경향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세계의 문화와 노력]이라는 책을 쓴 홉스테드(Hofstede)라는 사람의 주장을 따르면 불확실한 것을 잘 참는 사회가 있고, 불확실성을 잘 참지 못하는 사회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불확실한 것을 잘 참지 못하는 사회에 속한다고 한다.


 그런데 불확실한 것을 잘 참지 못하는 사회는 모든 것이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다는 것이다. 미국 템플대학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있는 최준식 교수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종교를 믿는 것을 보면 홉스테드가 말한 극으로 치닫는 현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믿는다는 것이다. 설교를 듣고 찬송 몇 곡 부르는 것만으로 직성이 풀리지 않아 울부짖으며 통성기도를 하고 방언(放言)을 한바탕 하고나야 속이 후련하고 은혜 받았다는 생각을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열심히 운다는 말은 그만큼 감정의 기폭이 넓다는 말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으로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어느 정도 감정 기폭이 있어야 “사는 맛”이 난다고 생각한다. 흥분한 일도, 슬퍼할 일도 없는 사회에서 산다고 가정해 보라. 춥고 더운 기온 변화가 없는 데서 사는 것 같아서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아닌 게 아니라 북미대륙에서 오래 산 우리 교민들을 보면, 좀 과장된 표현을 빌리면 방금 병석에서 일어난 환자처럼 맥이 풀려있다. 그러나 흥분할 일도 많고 슬프고 분한 일도 많은 한국 같은데 살면 늘 깨어있는 사람이 된다.


 웃음의 반대는 울음이고 울음의 반대는 웃음이다. 모든 사람들이 노산 이은상의 노래처럼 “마음에 색동옷 입혀 웃고 지내기”를 원한다.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한 세상 살아가는 데는 눈물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고. 가끔 아무도 없는 데 가서 혼자 실컷 울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2004. 11)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d2017
leed2017
66817
9216
2018-07-15
우리말과 우리글

 


 해마다 5월과 11월이 되면 대학가에서는 논문 심사에 바쁘다. 캐나다에 있을 때는 1년에 석사 논문 2, 3편에 가뭄에 콩 나기로 박사논문 1편 정도면 끝이 났지만, 여기는 대한민국, 한 학기에 10편 내지 15편을 심사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니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대충 일고 논문심사장에 들어가는, 실로 교수로서 양심에 가책을 받는 일을 마구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못 느끼는 낯 두꺼운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학생들이 논문에 쓰는 단어나 문장형식이다. 한 마디로 학생들은 알아듣기가 쉬운 단어나 문장보다는 무슨 무슨 적(的)이니 하는 단어에 외래어까지 보태가며 될 수 있는 대로 거창하고 어마어마하게 들리는 표현을 즐기는 버릇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 연구는. "하면 될 것을 "본(本) 연구는. " 하거나 "논문 요약" 대신에 "논문개요(論文槪要)" "이렇게 생각한다" 대신 "이러한 사고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연구는 OOO가 맨 처음 했다"는 능동형 대신 "이런 연구는 OOO에 의해 맨 처음 연구되어졌다"는 수동형, "이러한 생각을 했다"는 말 대신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같은 참으로 알 수 없는 표현들이다.


 논문 뿐 아니라 청중을 향한 말을 들어봐도 별로 다를 게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기에다가 외래어, 특히 영어의 범람은 우리 말과 글의 존재를 위협하는 독소가 되고 있다. 예로 이수열 님이 쓴 [우리말 바로 쓰기]에서 빌려온 E 대학 L 교수의 [문화의 비상등 켤 때]라는 글을 보자. ". 모든 사람이 문화를 산소처럼 호흡하고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게 하려면 문화를 이벤트화하여 감동을 나누고 멀티미디어 초고속 정보망을 통해서 . 문화 인프라라는 모뉴멘탈한 건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적 발상에서. 문화는 이미 만들어진 에르곤이 아니라 앞으로 창조해 나가는 에네르게이어야 한다. 문화네트워크에 새로운 콘텐츠를 부가하는 것이. " 한국 사람 몇 %가 이 말을 알아들을까?


 한 번은 이화여대에서 어느 집단의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에 "한국 전통문화의 근대 체험과 새로운 모색"이라고 써서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학생들 10여 명에 물어봐도 아무도 대답할 사람이 없었다. 아직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왜 이렇게 어려운 말, 어려운 글을 좋아할까? 여기에 대한 답은 [세계문화와 조직]이라는 책을 쓴 Hofstede라는 사람의 주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Hofstede를 따르면 세계문화 중에는 불안을 잘 참고 견디는 문화, 즉 불안회피지수가 낮은 문화가 있고 불안을 잘 참지 못하고 이를 피해가려는 문화, 즉 불안회피지수가 높은 문화가 있는데 한국은 불안회피지수가 높은 문화에 속한다는 것이다. 불안회피 지수가 낮은 문화에서는 아무리 어려운 생각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이나 쉬운 문장으로 풀어서 쓰는 사람이 환영을 받는다는 것. 그러나 한국처럼 불안회피 지수가 높은 나라에서는 어렵고 어마어마하게 들리는 말과 글을 써야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다.


 학술논문에서도 쉽고 평이한 말을 쓰면 "학(學)적 무게가 없다"고 한다. 되도록 어렵고 어마어마하게 들려서 일반 사람은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어야 "공부를 많이 한 깊이 있는 학자"로 인정받는다 한다.


 이런 생각은 배웠다든지, 혹은 유식하다는 것이 그 어느 것보다도 존경받는 유교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종교학을 전공하고 이화여대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는 최준식 교수에 의하면 세계 여러 종교경전 중에 배울 학(學)자로 시작되는 종교는 유교밖에 없다고 한다. "밥은 굶어도 자식 공부는 시켜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처럼 공부, 공부하는 나라도 없지 싶다. 배움을 중요시하다보니 너무 배워버렸는가 우리는 어려운 단어와 문장을 늘어놓아야 자기가 유식하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것같이 생각한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말과 글이 이처럼 황폐한 쪽으로 변해가고 있을까? 우리말과 글이 이렇게 된 것은 대학강단에 서는 사람들, 특히 영어권 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이나 방송언론인들에게 그 일차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 같다. 상아탑을 지키는 교수들은 쉬운 글을 쓰면 자기 글의 권위가 떨어지는 줄 아는지 필요 없이 거창한 말과 글, 여기다가 어려운 외래어를 마구 써가며 우리 글을 황폐화하는데 앞장서 왔다. 전적으로 교수들의 책임이라고 돌리기는 어렵지마는 또 하나 슬픈 모습의 하나는 영어권 원주민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한국식 영어 표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예로 음식점 벽에 붙은 '물은 셀프(self)입니다' '멘트(ment)' 같은 아리달송한 말부터 '레이블(label)'을 '라벨'로, '프로파일(profile)'을 '프로필'로 잘못 발음하는 경우이다.


 구태여 말이 안 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우리에게는 껄끄러운 표현은 그 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리 만큼 많다. 이를테면 "좋은 주말 가지십시오" "멋진 시간 되시길 빕니다" 하는 따위의 영어식 표현은 듣기에 여간 껄끄러운 말이 아니나 무슨 유식의 상징인 양 마구 쓰고 있다. 한 번은 어느 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전자우편을 받았다. “. 근데 셤 결과 말이에여, 그게 맞는거에여? 이대로 가다간 전 쫓겨나겠어여, 섐에 대한 임프레션이 넘넘 좋았는데. 다시 할 수 있는거에여? 걱정되니 꼭 알려줘여. " 대학원 학생의 말이 '섐"은 선생님, '넘 넘'은 너무너무, '임프레션'은 인상, '. 거에여'는 요사이 젊은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지 결코 반말이나 존경의 의미가 빠진 말이 아니니 애교로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자 하나라도 줄여보려는 전자통신 사용자의 피눈물나는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말과 글은 한 문화의 정신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말과 글을 없애면 그 문화는 곧 죽고 만다. 캐나다에 가본 사람이라면 퀘백주에 사는 프랑스계 사람들이 퀘백주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영어는 알아듣고도 짐짓 못 알아듣는 척 불어를 고집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네들은 참으로 자기네 말과 글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자랑스러움과 애정을 느낀다.


 이대로 가다가는 100년 200년 후면 우리말은 오늘날 이 땅을 밟고 사는 한국사람들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괴상망칙한 언어가 되지 않을까 겁이 난다. 그 불행한 때는 토씨만 우리말로 되고 그 나머지는 외래어로 메우는 그런 불행한 시대가 아닐까 걱정된다. (2005, 4)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d2017
leed2017
66733
9216
2018-07-09
명당

 

 몇 해 전이다. 일간 신문을 뒤적이다 보니 '명당 판매'라는 큼지막한 글자로 한국의 묘소 명당 세일을 하니 다 팔리기 전에 빨리 계약하라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연락처는 경기도 양평에 있는 어느 풍수지리 연구소 지부(지부가 있으니 어디고 본부가 있겠지)로 몹시 권위 있어 보이는데 같았다. 명당 가격이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재고품이 얼마나 있는지는 적어놓았다.


 명당 보유 목록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 나올 자리 69개, 왕비 나올 자리 30개, 국무총리 90개, 장관 600개, 장군 600개, 국회의원 2000개, 판검사 600개, 안기부장 15개, 올림픽 위원장 1개, 월드컵 위원장 6개, 유엔 사무총장 4개, 기타 600개. 모두 3600개가 넘는 명당 터는 앞으로 1500년에 걸쳐 효력을 발휘할 자리로서 당대에 두 자리 이상은 나올 수 없다는 것.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불초소생이 30년 넘게 몸담고 있는 직업, 즉 교수는 눈에 뜨이지 않았다. 성희롱 하다가 잡혀 들어간 교수, 연구비를 떼먹다가 쇠고랑을 찬 교수, 그와 명예롭지 못한 이유로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교수들이 많아서 그럴까, 아니면 너무 흔해서 지천에 널려있는 것이 교수라 그럴까. 좌우간 원통하다. 내가 교수라는 직업이 이 영광스러운 대열에 끼이지 못해 원통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천직에 대한 이 불초 소생의 피 끓는 사랑과 프라이드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대통령이 나올 명당이라 해도 그 명당 효력은 명당매입문서에 도장을 찍은 날부터 15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사이 어느 때에 나타날 것이라 하니 그 때면 이 몸은 영혼조차도 미라가 되었을 때가 아닌가. 


 장관자리가 600개가 있다 하나 월요일에 들어와서 다음 월요일에 나가는 요새 같은 하루살이 벼슬자리를 두고 어찌 장관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기야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 묘소 명당 중에는 잘못하면 큰 도둑으로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끝내는 감옥살이로 패가망신을 할 위험이 있는 자리도 1000개가 넘는다.


 문제는 유엔 사무총장이다, 올림픽 위원장이다, 하는 권위와 영광이 차고 넘치는 자리를 왜 나라 안에서만 팔려고 하는지 이해가 잘 안간다. 이런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 수백만 명이 넘을 텐데 기왕이면 CNN 같은 방송을 통해서 광고를 하면 외화도 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명당 인기가 너무 좋은 날에는 돈이라면 지옥도 마다않는 장사꾼들에 의해 그린벨트(greenbelt)도 명당으로 팔려나가고, 결국에는 국토 전체가 공동묘지가 될 위험도 있지만.


 앞으로 이 묘소 명당 판매 사업이 번창하게 되면 요사이 한창 인기가 올라가는 납골당 사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또한 시신을 화장해서 납골당에 모시질 않고 그 재를 바람에 날리거나 강물에 흘려보내는 것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위원장, 유엔 사무총장 같은 고상하기 짝이 없고 국익을 가져 올 수 있는 그런 자리를 한 순간에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분명 비애국적이요 반민족적 행위다. 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겠다.


 그러나 속이 타는 사람은 소생이다. 비록 50년 후가 될지 500년, 1000년 후가 될지는 모르지만 불초소생의 피를 받은 후손이 장차 이 나라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엄청 놀라운 소식이다. 운명아 듣거라,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말이 있지 않느냐. 에헴, 소생의 가문에 대통령이.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내가 왜 구태여 권력의 맨 꼭대기인 대통령 자리를 탐을 내느냐는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 즉 좀더 고상한 말로 선비라 불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컨트롤 할줄 알며 세상 명예나 이익은 뜬구름 보듯 해야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 이씨 가문에 대통령이 나온다고 이렇게 좋아하니. 벼슬에 나가 감투를 써야 부모에 효도하는 것이고, 가문을 빛낸다는 그 욕망의 피가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도 내 핏줄 밑바닥 어디에 흐르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조선시대의 선비들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말로는 깨끗하고 의리 있는 말과 행동을 외치고, 돌아서서는 남을 모략중상하고 정치 패거리를 만들어 자기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몸부림 친 그 이중적인 피가 내게도 흘러서 그런 것은 아닐까? 


 지족안분(知足安分)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기억은 분명하지 않지만 언젠가 채근담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은 적이 생각난다. "권력이 더럽다, 더럽다 하는 사람은 그것을 속으로는 은근히 그리워하는 것이다. 진정 권력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말을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묘소 명당 세일 광고는 한번 본 후에 다시 보질 못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돌 지난 아이 어학연수 보내는 것도 마다 않는 한국부모의 극성을 생각하면 명당판매 사업이 시원치 않아서 회사가 부도를 맞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첫번 광고에 동이 난 모양이다. (2003. 4)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d2017
leed2017
66643
9216
2018-07-01
가슴

 

 사랑이 결혼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은 개인주의 사회인 서양에서 흘러들어온 생각이다. 이와 비슷하게 여성의 가슴이 단순히 유아 양육의 기능을 넘어서 성(性)적 의미에 더 치중하게 된 것 역시 서양에서 흘러들어온 생각이다.


 나는 가끔 KBS, MBC나 SBS 같은 한국의 주요 방송사 탤런트들이 아프리카나 남미, 인도네시아의 외딴곳에 가서 그곳 원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본다. [지구 탐험대] 같은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속으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사는구나" 하고 세계의 다른 구석에 사는 사람들의 참모습을 보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텔레비전으로 보여 주기 위하여 없던 것을 새로 만들고, 하지 않던 놀이를 마치 자기네들의 아직까지 내려오는 전통이요 관습인 것처럼 꾸며낸 하나의 연극에 불과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우리도 방송 프로그램에서 듣도 보도 못한 것을 꾸며내서 "지구 탐험대: 이것이 한국이다" 하고 보여주면(요사이 한국영화고 풍물기행이고 이런 종류가 점점 늘어 가는 것 같다) 처음 보는 외국 사람들은 '한국문화의 진수'를 보았다고 흐뭇해하지 않을까. 


 이것을 볼 때 가끔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 하나 있다. 즉 원주민 여인들의 가슴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적나라하게 노출시켜 방영하는 것이다. 북미 대륙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설사 보여준다고 해도 순간적이요 극히 미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국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그야말로 노골적이다.


 나는 이 사실, 즉 여성의 노출된 가슴을 오랜 시간 적나라하게 방영하는 것도 일종의 성희롱 내지 여성에 대한 집단적인 개념으로서 인격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본다. 이 말에 수긍이 가지 않는다면 다음을 가정해 보라. 즉, 외국 어느 방송사에서 한국 여성들의 가슴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촬영한 것을 자기 나라 전국 텔레비전망을 통해서 방영했다고 하자. 우리가 가만히 있을 것인가? 어떻게 보면 이것을 문화적 차별의식, 즉 그네 원주민들은 '미개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그네들은 가슴을 드러내놓고 사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가슴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인데,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그네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보여 주어야만 하는가?'는 것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고, 또한 그것을 방영하는 사람들의 '진지성'이랄까 진실성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문화 인류학자들이 보고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나 이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무슨 진기한 놀이 장면이나 되는 것처럼 극히 가벼운 코미디를 하는 마음자세로 보여주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성희롱이란 반드시 개인차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여성의 가슴을 드러내놓는 것이 공공연히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그것이 텔레비전 방영에 그친다고 해도 '여자는 어디까지나 성적 대상'이라는 생각이 쉽사리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생각해봄직하다.


 성희롱이니 성적 학대란 말은 내가 유학을 떠나던 1966년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말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남녀평등의 깃발이 높아지고 여권신장의 북소리가 점점 우렁차게 들리면서 성희롱이란 말도 활기를 띠었다.


 성희롱으로 고소를 당하는 사람들이 매일 신문사회면 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주로 가해자는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이다. 동물들도 성희롱이란 게 있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수놈 암놈이 둘로 갈려서 서로 밀고 당기고 으르렁대는 것은 동물 세계에서는 없는 것으로 안다. 성적 갈등이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닐까.


 성차별이나 성에 대한 고정의식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그쳐서야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저 남미의 파라과이, 인도네시아의 밀림, 필리핀, 중국, 어디에서나 하루 바삐 사라져야 할 일이다. 바야흐로 세계화로 향하는 세상, 성차별이니 성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의식도 나라 안에만 국한하지 말고 좀 더 넓은 시야로 눈을 돌려야 한다. (2002, 2)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d2017
leed2017
66545
9216
2018-06-22
꽃 한송이

 

 작년 여름에 대구에서 내 강의를 들었던 Y로부터 몇 주 전에 긴 사연의 편지 한 장을 받았다. Y는 대구 시내 어느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선생님으로 석사과정을 마치느라 하계 학교에 와서 내 강의를 들었다. 선생님이자 동시에 학생 신분의 이중 역할을 감당하느라 일 년 내내 하루도 쉴 날 없이 바쁘게 보내는 사람이었다. 절후 안부를 묻자 다음과 같은 사연을 늘어놓았다.


 “. 올해 새 문교부 장관이 들어서고부터 교사들 촌지(寸志)를 받는 데 강한 쐐기를 박고 있어요. 일부 교사들이 문책을 받기도 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잘한다 싶어요. 저희 학교는 스승의 날에도 학생들에게 일절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하게 하고 가슴에 꽃 한 송이 달아주지 못하게 했습니다. 예년 같으면 학생들이 주는 자잘한 선물들을 집에 와서 하나씩 풀어보고 적힌 메모를 읽어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어제는 이런 재미는 없었어요. 그래도 작년에 담임했던 학생들이 교무실에 우르르 몰려와서 편지를 주고 가서 무척 고맙고 기뻐서 몇 번이고 읽었어요. ”


 나는 Y의 편지를 읽으면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서울이나 부산, 대구 같은 대도시 사람들 때문에 소도시나 농어촌 사람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는 아직은 대도시같이 금전과 치맛바람이 교실에서 활개를 치고 있지는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무난한 견해인 것 같다. 거기라고 금전이나 치맛바람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아직은 시골의 교육현장은 큰 도시처럼 오염이 된 곳이 아니다.


 대도시 몇 군데서 정도를 벗어난 교사와 학부모의 행위를 바로 잡는다고 스승의 날 선생님 가슴에 꽃 한 송이를 달아드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상식(常識)'에 어긋난, 그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의 어리석고 용렬한 짓이다.


 우리 사회가 썩었다지만 그 썩은 정도로 말하면 아직은 교육계가 가장 덜 썩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사 작은 도시와 농어촌이 큰 도시같이 금전과 치맛바람이 교정을 어지럽힌다고 해도 스승의 날에 꽃 한 송이를 허락하지 않는 그런 융통성 없는 시책으로 썩은 부분을 도려낼 수 있을까?


 부모 생일 날에 자식들이 선물한다. 그것을 받는 부모 마음은 선물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무한히 흐뭇하고 대견스러운 것이다. 말로는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니, 좀 낡은 말이지만 '사부(師父) 일체'를 내세우며 정작 스승의 날에는 꽃 한 송이도 선물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린 머리 속에 일어나는 한 가닥 의문의 꼬리는 어떤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 생각에는 아동에게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못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비정상적인 교육이 되기 쉽다고 본다. 아버지 생일이 가까워져 오면 엄마가 "이틀만 있으면 아빠 생일이다" 하며 넌지시 선물 준비할 것을 귓속말로 일러주면서 정작 스승의 날에는 꽃 하나, 감사의 쪽지 하나 선생님께 드리지 못하도록 한다면 우리는 어린이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교육이 썩었다, 교육이 썩었다 하는데 썩은 것은 교육이라기보다 어른사회인 것이다. 촌지(이 말이 무슨 말인가는 사전을 뒤져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를 주는 것도 어른이요, 받는 것도 어른이다. 가져온 선물을 받는 사람이 교사라고 해서 교육이 썩었다고 하면 좀 지나친 과장이 아닐까.


 내가 캐나다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사실로 크리스마스 때 어린 학생들이 선생님께 초콜릿 같은 선물을 가져오지 못하도록 한 학교가 있었다. 이유인 즉 선물의 단위가 점점 커지거나 초콜릿 상자 밑에 돈이 깔려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혼으로 자기를 낳은 엄마와 살지 않는 아이는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챙겨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긍정적인 결정이냐 하는 것은 시빗거리가 되겠으나 어디까지나 불우한 환경에 있는 어린이를 위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도 교육국에 따라 다른 것이지 "캐나다는 이렇게 한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몇몇 학교에서 촌지가 왔다 갔다 하므로 시골 학교에서 꽃 한 송이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독재가 아닐까?


 나는 속으로 이런 질문을 해본다. "스승의 날에 꽃 한 송이도 선물로 가져와서는 안 된다는 공문 대신에 그 날만큼은 선생님의 가슴에 큼직한 꽃 한 송이를 달아드리도록 하자는 권유를 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썩은 교육이 되는 것일까? (1985, 6)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d2017
leed2017
66489
9216
2018-06-17
저 하늘 미리내 건너 장모님은

 


나는 지난 9월 21일, 음력으로는 8월 초하룻날에 장모님을 잃었다. 지난해 내가 안식년으로 한국에 가 있을 때 장모님도 가셔서 몇 달을 함께 계셨는데, 캐나다로 돌아온 후에는 피곤하다며 자주 드러누우시곤 했다. 오랜 여행에서 쌓인 피로 때문이려니 생각하고 회복할 날만 기다렸는데 너무 오래 끄는 것이 이상해서 전문의를 찾았더니 폐암 말기라는 청천벼락이었다.

 

그때가 2월 말이었으니 사형선고를 받고 꼭 7개월이 지나서 저세상으로 가신 것이다. 폐암이라 해도 얼굴 한 번 찡그리는 아픔도 없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랄까,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는 혼수상태로 들어가 있다가 바로 옆에서 간호하고 있던 사람도 모르게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향년 일흔 네 살, 아무리 고희(古稀)를 넘겼다 해도 요새같이 살기 좋은 세상에는 억울한 천수(天壽)라는 생각이 든다.

 

장모님 윗대들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바로 그때부터 서울 종로 권농동에서만 살았다. 서울 사람 중의 서울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18살에 결혼하여 지금의 내 아내 하나를 놓고 26살 되던 해에 6.25가 터지자 장인은 난데없는 의용군이 되어 월북했다. 그 날부터 딸 하나와 시어른 내외분을 모시고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장모님의 고생이 시작되었다. 삯바느질, 뜨개질, 청과도매상 등 안 해본 것이 어디 있을까. 아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로 불려갔을 때 비로소 장모님의 재정적 책임이 끝났으니 홀몸으로 10년 넘게 시부모를 포함한 4식구를 먹여 살린 셈이다.

 

우리 내외는 장모님을 내가 캐나다 서부에 있는 노틀댐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시고 살았다. 햇수로 치면 꼭 25년, 한국에서 나를 낳으신 어머님보다 더 오래 한솥밥을 먹고 지낸 셈이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내외가 장모를 모시고 살았다기보다 장모님이 우리 두 젊은 사람들을 모시고 살았다는 말이 더 맞을 정도로 우리 집 살림을 일체 도맡아 살아주셨다.


노산(蘆山) 이은상 선생이 스무 살 된 동생을 잃고 쓴 [무상(無常)]이라고 제(題)한 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 한 토막이 적혀있다.

 

장자(莊子)가 초(楚)나라로 가던 길에 사람 죽은 두골을 보고 말채찍으로 두들기며 물어 가로되, "그대 삶을 탐하다 도리를 어기어 이같이 되었는가. 혹은 나라가 망할 때 죽음을 입어 이같이 되었는가. 혹은 악한 일을 행하고 추한 이름을 끼치기 부끄러워 이같이 되었는가. 혹은 얼고 주려 이같이 되었는가. 혹은 천명을 다하고 이같이 되었는가" 하고 두골을 끌어 베개 하고 누웠더니 밤중에 두골이 꿈에 나타나 말하되 "그대의 말은 모두 산 사람의 일이니 죽으면 이것이 다 없어지노라. 죽음이란 임금도 신하도 없고 사시(四時)도 없어 시원히 천지로써 역사로 삼는 것이니 저 제왕의 즐거움도 이보다 날 것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장자(莊子))는 믿지 아니하고 가로되 "내 저승왕에게 말하여 그대 형상을 다시 살려 그대 살던 곳으로 보내게 하려니 그대 가려는가?" 두골이 한참이나 궁리하고 가로되 "내 어찌 이 제왕의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사람이 될까 보랴" 하더라고 하였다. 

 

사실 죽음이 제와의 즐거움과 같다는 말도 맞지 않는 말. 죽으면 고통도 환희도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는 일체 무(無)의 세상이라 하지 않았는가.


공자는 일찍이 "삶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사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이가 어디 있으랴. 부처도 이를 알지 못하여 화엄경에 이르되 "어디에서 왔느냐(生從何處來), 어디메로 가는고(死向所處去)"라고 했다.

 

뒤주에 쌀 떨어지고는 살아도 가슴속에 정(情)떨어지고는 못 산다는 사바 세상, 우리 부부에게 폭포수 같은 사랑을 내리쏟던 장모님과 이승의 인연이 사그라진 마당에 어찌 못다 한 정(情)과 한(恨)이 없겠는가.

 

"꽃 피자 비바람 인생엔 이별(花發多風雨 人生足別離)"이라 탄식한 우무릉(于武陵)이란 시인이 있었다. 그렇다. 사람의 일평생이란 것도 눈 깜박하는 사이에 지나지 않는 것일진대 오래 살았다, 못살았다는 게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저승 가는 길에 노자는 눈물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있다. 옛날 자하(子夏)라는 사람은 자식을 잃고 하도 서럽게 울어 눈이 어두워졌다고 한다. 한편, 장자(莊子)는 아내가 죽었을 때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러 인생을 웃었다지 않는가.

 

장모님의 넋은 지금 가을 하늘에 한 조각 구름이 되어 떠가려니 생각하면 이승과 저승이란 것도 바로 옆에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려고 붓을 들었을 때는 자하처럼 정에 울었으나 이제 장자(莊子)를 닮아 인생을 웃어나 볼까. 그런데 장모님, 도대체 어디로 가셨습니까? (1998.10.)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leed2017
leed2017
66085
9216
2018-05-22
여자는 다소곳해야 한다?

 

 몇 주 전 대통령이 전국 검사들을 대표한 40여 명의 검사와 면담을 한 적이 있다. 검찰에 대한 인사와 관련된 불평을 가라앉히기 위해 새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여성 후보 K 씨를 대동한 자리였다.


 그때 K 장관이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가 눈에 거슬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물론 이를 놓칠세라 텔레비전도 집중적으로 몇 번이나 K 씨의 앉은 자세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면담이 있고 나서 또 몇 주 지난 후 K 씨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어느 국회의원이 K씨가 검사들과 면담을 할 때 앉은 자세에 대해서 '공식적인 꾸지람'을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점잖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세가 무슨 그런 자세가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이 나라를 대표하는 '국회의원 중에는 참으로 한심스럽고 무식한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K 씨가 어떻게 앉는 것은 남이 참견할 성질이 아니다. K씨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 앞에 드러눕지 않는 이상 K씨 자세에 대한 불평이 청문회 자리에서 나왔을까?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여자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테두리를 무척 좁디 좁게 규정해 놓고 그 테두리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기만 해도 비난을 쏟아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치 종이를 돌돌 말아서 그 좁은 구멍을 통해서 세상만사를 내다보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까.


 술좌석에서나 몇 마디 오갈 수 있는 그런 말을 이 나라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장관의 자질을 알아보기 위한 청문회 자리에서 내놓았으니 국회의원들의 정신적 수준을 잘 보여주는 참으로 한심스러운 행동이다. 인사청문회 같은 자리에서는 후보로 지명된 사람이 일을 잘해나갈 수 있느냐 아니야 하는 직무수행능력에 대한 자격심의가 그 초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뒤로 미루다시피 하고 앉은 자세에 대해서, 입은 옷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아도 질이 낮은, 영어로 말하면 no class 인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행동은 남성과 비교해 볼 때 여성은 어느 면에서나 열등한 위치에 있고, 문화적으로 창조적이지 못하며 남성의 노리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성(性)에 대한 편견이랄까, 차별의식을 부채질하기 쉽다. 지금부터 64년 전 이 세상을 하직한, 정신분석학 주창자 후로이트(S. Freud)의 여자에 대한 편견을 벗어나지 못한 그야말로 낡고 무례한 행동이 아닐까?


 어둡고 뒤떨어진 사고방식을 가진 것은 비단 국회의원뿐이 아니다. 지성의 상징이니, 이 사회의 정신적 선도자니 하는 대학교도 남자와 여자 교수의 비율이 수십 년 간 100대 0 붙박이로 고정되어 있다 싶은 데가 있고, 많은 대학이 90대 10을 넘지 못하고 있다. K장관에게 청문회에서 앉는 자세가 나쁘다고 나무라던 사람들도 바로 이런 대학에서 4년을 수학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루면 비행기가 지구를 한바퀴 돌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연인들끼리 전자우편으로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듯 하는 세상에 아직도 이처럼 낡고 무식한 생각을 가진, 그것도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것을 보면 이 나라 남녀평등 의식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10년이면 산천도 변한다는데. (2002)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더보기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