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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 유감(有感)
leed2017

 

 우리집은 대대로 남인 계열의 집안이다 보니 과거(科擧)는 언제나 강 건너 불꽃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음보(蔭補)를 생각해 볼 수도 있었겠으나 음보 자리를 부탁할 배경도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전통이 오래 내려오다 보니 옛날 중국 동진 때 중앙정부의 고등관리가 지방에 왔을 때 옷을 차려 입고 나가서 인사드리기를 거부하며 “내가 어찌 쌀 다섯 말 때문에 그에게 허리를 굽힐소냐”며 사표를 집어던진 도연명의 기개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새는 남인도 없고 북인도 없는 세상. 실력과 관심만 있다면 벼슬자리에 대한 야망도 키워볼 수 있는 세상이다.

 나는 벼슬은 권력이란 말과 같은 뜻으로 쓸 정도로 가까운 말로 본다. 대부분 사람들은 권력이란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싫어한다고 말한다. 천만에. 겉으로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벼슬을 탐내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는 것을-.

 간혹 높은 벼슬아치가 하나 있는 집안 사람들이 벼슬아치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끝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을 보라.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벼슬은 더럽고 지저분한 것이라고 고개를 가로젓던 사람들 중에는 그것을 은근히 탐내고 부러워하는 마음이 역력하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때가 너무나 많다.

 요새는 벼슬 중에 가장 얻기가 쉽고도 어려운 것이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한다. 이 국회의원은 전통적인 벼슬아치들과는 차이가 있으나 권력을 거머쥔 사람으로 행세한다는 점에서는 벼슬아치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 중에는 백묵을 쥐던 서생, 교수, 판.검사, 신문기자, 영화배우, 깡패, 지방건달, 돈을 억수로 번 재벌 등 모두가 권력과 명예에 대한 갈증과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여 뛰쳐나온 사람들이다.

 조선시대 벼슬아치 대부분은 성리학 경전을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이니 당시의 시대 상황을 감안하면 요새 관리나 벼슬아치들과는 상대가 되질 않는다.

 요새 정치를 하는 사람, 특히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투표로 뽑힌 사람들. 선량(選良)들이라는 자부심 만큼은 대단하다. 그들의 권력을 행사할 국민들에 의해서 선거로 뽑혔으니 오죽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하겠는가.

 요새 정치인들이 조선시대의 고등관리들 보다 절대적으로 우세한 면이 있다면 그것은 곧 다른 민족,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나라 안의 일만 잘 처리한다면 정치가로서의 자질이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던 옛날에 비해서 요사이 정치가는 나라 밖의 일, 그러니까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깊어야 한다.

 조선시대의 정치인들은 누가 누구의 손자가 되고 누가 누구의 사돈이 되는가 하는 혈연관계나 인맥에 대한 지식, 소위 보학(譜學)에 밝아야 한다. 그러나 현대 정치인은 보학보다는 정보 수집과 그 수립된 정보의 판독과 전파에 뛰어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주군(主君)에 대한 충성심과 의리만 돈독하면 그만이던 시대는 끝난지 오래다. 오늘과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는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올바른 결정이라고 믿는 것을 과감하게 밀고 나갈 추진력과 그 결정이 미칠 파장을 생각해 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요새 정치인들은 당에 대한 피끓는 사랑과 충성심 하나로만 되는 게아니다. 그렇다고 아는 게 많은 석학이라고 되는 것도 아니다. 국민들과 소통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자기 자신을 내보일 때 카멜레온(Chameleon) 처럼 이렇게도 보일 수 있고 저렇게도 보일 수 있는, 다시 말하면 환경에 따라 자기 제시(self-presentation)를 다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예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J. Carter)가 대통령 후보 시절에 어느 방송기자와 인터뷰에서 “나 같은 땅콩 장수가…” 하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말이 땅콩 장수이지 그는 땅콩 몇 푸대 싣고 소매상을 돌아다니는 장수꾼이 아니다. 카터를 땅콩 장수라고 한다면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왕이라 불리는 포드(H. Ford)는 자동차 정비공, 한국 서울의 이병철은 ‘설탕 장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정치가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제시를 융통성있게 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들이 이 지구상에 무리를 지어 살고 있는 한 권력을 손에 쥐려고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애써 그것에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권력을 잡아보려고 평생을 뛰어다니던 사람도, 권력을 뜬구름 보듯 하던 사람도 이  세상을 하직할 날이 가까워 오면서 권력이니 벼슬이니 뭐니 하는 것이 모두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허무한 것이 어찌 권력과 명예뿐이랴. 사람이 산다는 삶 그 자체가 허무하다는 생각이 뼛속까지 스며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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