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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늘 미리내 건너 장모님은
leed2017

 


나는 지난 9월 21일, 음력으로는 8월 초하룻날에 장모님을 잃었다. 지난해 내가 안식년으로 한국에 가 있을 때 장모님도 가셔서 몇 달을 함께 계셨는데, 캐나다로 돌아온 후에는 피곤하다며 자주 드러누우시곤 했다. 오랜 여행에서 쌓인 피로 때문이려니 생각하고 회복할 날만 기다렸는데 너무 오래 끄는 것이 이상해서 전문의를 찾았더니 폐암 말기라는 청천벼락이었다.

 

그때가 2월 말이었으니 사형선고를 받고 꼭 7개월이 지나서 저세상으로 가신 것이다. 폐암이라 해도 얼굴 한 번 찡그리는 아픔도 없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랄까,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는 혼수상태로 들어가 있다가 바로 옆에서 간호하고 있던 사람도 모르게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향년 일흔 네 살, 아무리 고희(古稀)를 넘겼다 해도 요새같이 살기 좋은 세상에는 억울한 천수(天壽)라는 생각이 든다.

 

장모님 윗대들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바로 그때부터 서울 종로 권농동에서만 살았다. 서울 사람 중의 서울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18살에 결혼하여 지금의 내 아내 하나를 놓고 26살 되던 해에 6.25가 터지자 장인은 난데없는 의용군이 되어 월북했다. 그 날부터 딸 하나와 시어른 내외분을 모시고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장모님의 고생이 시작되었다. 삯바느질, 뜨개질, 청과도매상 등 안 해본 것이 어디 있을까. 아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로 불려갔을 때 비로소 장모님의 재정적 책임이 끝났으니 홀몸으로 10년 넘게 시부모를 포함한 4식구를 먹여 살린 셈이다.

 

우리 내외는 장모님을 내가 캐나다 서부에 있는 노틀댐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시고 살았다. 햇수로 치면 꼭 25년, 한국에서 나를 낳으신 어머님보다 더 오래 한솥밥을 먹고 지낸 셈이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내외가 장모를 모시고 살았다기보다 장모님이 우리 두 젊은 사람들을 모시고 살았다는 말이 더 맞을 정도로 우리 집 살림을 일체 도맡아 살아주셨다.


노산(蘆山) 이은상 선생이 스무 살 된 동생을 잃고 쓴 [무상(無常)]이라고 제(題)한 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 한 토막이 적혀있다.

 

장자(莊子)가 초(楚)나라로 가던 길에 사람 죽은 두골을 보고 말채찍으로 두들기며 물어 가로되, "그대 삶을 탐하다 도리를 어기어 이같이 되었는가. 혹은 나라가 망할 때 죽음을 입어 이같이 되었는가. 혹은 악한 일을 행하고 추한 이름을 끼치기 부끄러워 이같이 되었는가. 혹은 얼고 주려 이같이 되었는가. 혹은 천명을 다하고 이같이 되었는가" 하고 두골을 끌어 베개 하고 누웠더니 밤중에 두골이 꿈에 나타나 말하되 "그대의 말은 모두 산 사람의 일이니 죽으면 이것이 다 없어지노라. 죽음이란 임금도 신하도 없고 사시(四時)도 없어 시원히 천지로써 역사로 삼는 것이니 저 제왕의 즐거움도 이보다 날 것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장자(莊子))는 믿지 아니하고 가로되 "내 저승왕에게 말하여 그대 형상을 다시 살려 그대 살던 곳으로 보내게 하려니 그대 가려는가?" 두골이 한참이나 궁리하고 가로되 "내 어찌 이 제왕의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사람이 될까 보랴" 하더라고 하였다. 

 

사실 죽음이 제와의 즐거움과 같다는 말도 맞지 않는 말. 죽으면 고통도 환희도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는 일체 무(無)의 세상이라 하지 않았는가.


공자는 일찍이 "삶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사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이가 어디 있으랴. 부처도 이를 알지 못하여 화엄경에 이르되 "어디에서 왔느냐(生從何處來), 어디메로 가는고(死向所處去)"라고 했다.

 

뒤주에 쌀 떨어지고는 살아도 가슴속에 정(情)떨어지고는 못 산다는 사바 세상, 우리 부부에게 폭포수 같은 사랑을 내리쏟던 장모님과 이승의 인연이 사그라진 마당에 어찌 못다 한 정(情)과 한(恨)이 없겠는가.

 

"꽃 피자 비바람 인생엔 이별(花發多風雨 人生足別離)"이라 탄식한 우무릉(于武陵)이란 시인이 있었다. 그렇다. 사람의 일평생이란 것도 눈 깜박하는 사이에 지나지 않는 것일진대 오래 살았다, 못살았다는 게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저승 가는 길에 노자는 눈물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있다. 옛날 자하(子夏)라는 사람은 자식을 잃고 하도 서럽게 울어 눈이 어두워졌다고 한다. 한편, 장자(莊子)는 아내가 죽었을 때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러 인생을 웃었다지 않는가.

 

장모님의 넋은 지금 가을 하늘에 한 조각 구름이 되어 떠가려니 생각하면 이승과 저승이란 것도 바로 옆에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려고 붓을 들었을 때는 자하처럼 정에 울었으나 이제 장자(莊子)를 닮아 인생을 웃어나 볼까. 그런데 장모님, 도대체 어디로 가셨습니까? (199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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