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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배우는 기쁨(92)
chungheesoo
2020-10-01
(지난 호에 이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동일한 내용이다. 차이가 있다면 마가복음에서는 “네 힘을 다해”가 추가된다. 신약에서는 앞에서 본 사랑의 계명 외에도 사랑에 대한 구절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이 가운데 제일 큰 것이 사랑이다.”(고린도 전서 13:13)
어떻게 보면 성경 전체가 사랑의 계명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사랑의 계명은 기독교 신학 전체를 반영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랑의 계명은 다음의 특징을 보인다. 첫째 사랑 대상이 세 명이다: 하나님, 자신 및 이웃, 둘째, 제 1 차적 사랑 대상이 하나님이고 제 2차적 사랑 대상이 자신과 이웃이다. 이 특징은 매우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다. 칼빈의 해설(칼빈 2 공관 복음 II)을 보자.
“악하고 죄악스런 육신의 성향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모든 강점을 제어할 때만이 우리의 생활을 제자리에 찾을 것이라는 점은 밝혀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신앙의 첫 걸은이라는 점을 명시하도록 하자.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억지, 순종이 아닌 자발적인, 매이지 않는 예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 속에는 그분의 몫인 경외도 포함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모세는 생각(Mind)을 덧붙이지 않고 마음(Heart), 혼(Soul) 그리고 힘(Strength)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P.282)
“우리의 감정이 얼마나 허영에 기울고 있는가를 우리는 익히 알고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외형적인 성취의 표적을 만족하시는 것이 아니라 좋은 뿌리에 좋은 열매가 나듯이 주로 내면적인 성향을 살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했다.” (p.282)
칼빈의 이웃 사랑에 대한 해설을 요약한다.
“인간의 이웃에 대한 사랑이 둘째 자리에 오는 것이 첫 계명과 같다고 말하시는 것은, 그것이 첫 계명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P. 283)
“사랑은 모두 자아 중심적이라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결코 활기를 띠지 못할 것이다”(P. 283)
“사랑 자체는 이 세상의 자식들이 서로 이득을 보려고 밀착될때 탐욕으로 탈바꿈하기 마련이다.”(P. 283)
“한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 서로의 형제애가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P. 283)
“모세가 우리에게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말할 때 그는 우리가 자아에 우선권을 두어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다음에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P. 283)
이와 같이 칼빈의 이웃에 대한 해설의 핵심은 첫째 하나님에 대한 사랑 없이는 참다운 이웃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유는 인류 조상인 아담의 원죄로 인해 사람은 이기주의적 자기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웃 사랑은 결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같은 현상이다. 다만 하나님의 대한 사랑이 이웃사랑의 전제 조건이다. 둘째, 이웃을 사랑하려면 겸손해야 하고 자신이 이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8.4 하나님 대한 사랑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나? 사랑의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사랑은 일정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선 사랑대상을 알아야 한다.
둘째 사랑대상의 속성 및 특징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셋째 사랑대상이 원하는 것을 행동으로 실행해야 한다.
넷째 우리 일생생활 속에서 항상 하나님이 옆에 계신다는 것을 인식하고 느껴야 하고, 아울러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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