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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부동산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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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부동산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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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7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10)

 

 
(지난 호에 이어)


이와 같이 사복음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그분의 역할, 신분, 사역 및 속성을 통해 계시한다.


한편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까지(23권)는 성령님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계시한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언약에 따라 오순절 때 성령님께서 강림하셔서 성령님을 통해 교회를 건립하여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교회의 형성과 문제와 그리고 이단과의 싸움과 끝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잃지 말것을 당부하며 요한계시록은 전무후무한 책으로 마지막 현상들과 심판을 통한 주님의 왕권의 확립을 계시한다. 


"마케도니아에서 실리와 디모데가 내려올 때에 바울이 말씀에 붙잡혀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유대인들에게 증언 하셨다." (사도행전 18:5)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여러 가지를 약속 하셨다. 첫째, 성령세례를 약속 하셨다. 둘째, 복음은 땅 끝까지 전파한다고 약속 하셨다. 셋째, 종말에 다시 오신다고 약속 하셨다. 첫 번째 약속은 실천 하셨다. 두 번째 약속은 진행 중이다. 세 번째 약속은 종말에 다시 오심으로 실천 하실 것이다.


로마서부터 빌레몬서까지(13권)는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시고 사도 바울을 보내시고 성령님을 통해 교회를 관리하시면서 메시아라는 것을 계시 하셨다. 히브리서부터 유다서까지(8권)는 오직 복음만이 진리이며 생명의 원천이라는 것을 증언한다. 또한 이단에 대한 경고를 한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교회를 도우셔서 사단을 물리치고 최후 승리를 약속하신다. 최후 승리 후엔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온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 나시고 구약의 삼대 언약을 속죄를 통하여 완전히 성취시키셨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 교회를 건립하시고 양육하시고 진리로 무장시키고 사단을 물리치게 하셨다. 하나님은 참으로 언약을 지키는 여호와이시다. 

 

제3장 기독교 신관


제2장에서는 기독교 성경관을 살펴보았다. 성경관을 본 후 신관을 토의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려면 성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기독교 신관추이를 보면 일정지역의 언어, 문화, 전통, 교육수준 등에 따라 다양한 기독교 신관이 등장했다. 


이유는 하나님을 인간의 체험 및 철학적 접근으로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즉 공통된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장에서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하나님의 속성이 무엇이지 그리고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를 알아본다.


 3.1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삼위일체(Trinity)와 예수님에 대한 교의(Christology)를 검토해야 한다. 삼위일체에 대한 교의는 가장 힘든 교의 중의 하나다.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자. 


제 4세기 전의 기독교는 이단이 많았던 시대다. 당시 성경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아 소수의 학자 혹은 신학자들이 논의했다. 기독교는 성부, 성자 및 성령 세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초기나 지금이나 분명하다. 문제는 이 세분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삼위일체 교의의 토의 대상이다. 


제 4세기 전에는 도세티즘(Docetism) 및 아리우스(Arius) 교의가 지배했다. 이들 교의에 따르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육체적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느냐?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다. 혹은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도 아니다. 이 외에도 예수님의 신성 및 인성을 놓고 의심하는 이단이 있었다.


이러한 토의는 예수님의 이중적(인성, 신성) 본질에 대해서는 합의가 보편화되었으나 세분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서는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간의 차이는 줄이지 못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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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9)

 

 
(지난 호에 이어)
다니엘서는 유다왕국이 멸망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민의 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을 예언한다. 나머지 선지서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죄의 대가를 예언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구약의 역사서(12권), 시가서(5권) 및 선지서(17권)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담 및 그의 후손에게 준 언약을 성취하는 기록이라고 보면 된다. 삼대언약은 다윗왕국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다윗왕국은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하나님 나라의 성취의 그림자일 뿐이다.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전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들,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과 시편에서 나에 대한 기록된 모든 것들이 성취되어야 한다.’ 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라고 하셨다.(누가복음 24:44) 


2) 성경은 언약 성취를 확실하게 보여 준다


구약 성경에서는 오직 물질적 언약-실현 관계가 성립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아직 성령님이 각 사람에게 안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셔서 영적 언약-성취로 완성 하시고 오순절 때에 오신 성령님께서 교회를 세우셨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Messiah, 기름 부음 받은 분)라는 것을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교회에게 증명하는 것이다. 증명은 신약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오직 이것들을 기록하는 것은 너희들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20: 31)


많은 사람들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 각각 무엇을 증거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우리는 다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복음서들을 통하여 무엇을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지를 알아본다. 마태복음에서는 직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임을 증거하신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이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께서 태어나셨다." (마태복음 1:16)


예수님의 세 직임(Threefold office)은 선지자직, 왕직 및 제사장직이다. 이 세가지 직임을 가지고 계신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신분 중심으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버림받은 자가 되었다가 다시 영광스러운 신분의 소유자가 되셨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 하셨다. 


예수께서는 침묵하시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이 다시 그분에게 말하기를 “네가 찬송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하니 예수께서 말 하셨다. “내가 그 이다. 너희는 인자가 권능자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마가복음 14:61-62)


누가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사역섭리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사역의 핵심은 타락한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속죄주 되심을 보여주시고 속죄주로서의 임무 수행, 완료에 대한 증거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 어리석은 자들아,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들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당하고서 자신의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하시고 (누가복음 24: 25-26)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본성으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계시하시면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하나님의 신성 그 자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신성을 가지고 계신 사실을 증거하셨다.


유대인들이 그분을 에워싸고 말하기를 “당신이 언제까지 우리의 마음을 의심하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 하소서”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 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 하였으나 너희가 믿지 않았다. 내가 내 아버지 이름으로 행하는 이 일들이 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으나. ” (요한복음 10:24-25)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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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5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8)

 

 
(지난 호에 이어)


2.3 성경의 내용


현 기독교 위기 극복은 기독교의 원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계시의 은총을 깨달으면서 영적으로 거듭난다. 구약하면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이야기로 생각하고, 신약하면 예수님의 신분과 행하심을 생각한다. 실은 성경의 내용은 단순한 역사 책이 아니다. 성경만이 기독교의 원형을 보여 준다. 


1)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셨다. “나는 여호와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인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가나안 땅, 곧 그들이 나그네로 살던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 했는데 이제 내가 이집트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듣고 내 언약을 기억한다." (출애굽기 6:2-5)


구약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로 나타나시고 언약을 하시고 반드시 이루신다. 창세기에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자손의 번창, 땅의 정복 및 나라 언약을 하셨다. 하나님의 세가지 언약과 성취는 창세기에서 에스더까지 잘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 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고 그것을 정복하라. 그리고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 위에 움직이는 모든 짐승을 다스리라” 하셨다. (창세기 1:28)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곧바로 복을 주셨다. 그들이 선한 일을 했기 때문에 복을 주신 것이 아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먹었다. 


하지만 자비스러운 하나님은 아담에게 하신 언약을 취소하지 아니하셨다. 이 아담은 첫째 아담으로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언약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아브람(나중에 아브라함이라 함)에게 우르 땅을 떠나 가족과 함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가나안 땅)으로 가서 정착하라고 명 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바닷가의 모래알, 하늘의 별 같이 많은 자손을 언약하시고 왕국을 언약 하셨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예수님이 언약을 완전히 성취 할 것을 계시한 것이다. 즉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물질적 언약이었으나 이것은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영적 언약성취의 그림자 이었다. 


한편 아담의 타락 전의 언약과 그의 타락 후의 언약은 다르다. 타락 전 언약은 죄가 없는 완벽한 사람에게 준 언약이라면 타락 후의 언약은 하나님의 자비로 죄인 인간에 주는 언약이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및 신명기에는 하나님께서 하신 자손번성의 언약을 성취 하셨다. 여호수아 및 사사기에는 땅에 대한 언약의 성취가 기록되어 있다. 룻기부터 에스더 까지(10권)는 나라 통치에 대한 언약의 성취가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구약의 창세기부터 에스더까지는 하나님의 삼대 언약과 그 언약을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성취해 가시는 이야기다.


욥기부터 아가서까지(5권)는 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내용이다. 욥기에서는 인간의 선행과 악행에 따라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고 또는 벌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고 만사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찬양하고 있다. 


시편은 아름다운 시로 하나님의 신실함과 위대함과 섭리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잠언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무궁한 지혜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성을 기록한 책이다. 전도서는 지혜의 왕 솔로몬이 모든 것을 연구해본 결과 인간의 허무성을 알고 하나님의 영원성을 찬양하고 있다. 아가서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시적 표현이다.


한편 선지서(17권)의 내용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선지서는 이사야부터 말라기를 포함한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의 대가를 경고하며 또한 고치실 것을 언약하신다. 


예레미야도 이스라엘 민족의 죄의 대가를 경고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용서를 예언 한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로 인해 그들을 사방에 분산시킨 후 다시 모으신다는 것을 예언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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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7)

 

 
(지난 호에 이어)
반면에 특별 계시는 오직 성령의 조명에 의해 가르침을 받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예언은 언제나 사람의 뜻을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 후서 1: 21)


특별 계시는 구약과 신약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성스러운 섭리, 사람들의 경배, 선지자들의 예언, 예수님의 행하심, 제반 기적, 사도들의 업적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계시를 통해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배우고 알게 된다.


과거에 많은 철학가, 과학자, 신학자 심지어는 보통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실패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철학, 과학 혹은 상식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망 끝에 하나님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들이 볼 수 있던 것은 일반 계시이며 특별 계시가 아니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 인간은 지식을 통해 완벽하게 되고 싶어 한다. 이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에 의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지식의 지식이다. 우리는 자연과학 혹은 사회과학 지식이 있어도 이러한 지식은 오직 제한적이고 단편적 지식에 불과하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거룩하신 이를 아는 것이 명철이다." (잠언 9: 10)


2) 구원을 위해 성경이 필요하다


"너희는 성경을 자세히 살피는데, 이는 너희가 그 안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으나." (요한복음 5:39) 


기독교는 구원을 찾는 종교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권세와 사랑을 알 때 구원이 가능하다. 즉 구원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제로 한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계시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구원이 다양한 방법으로 성취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다. 하나님은 아벨(Abel)의 희생 재물을 받으셨다. 하나님은 노아(Noah)를 대홍수에서 구하셨다. 훗날에는 선지자들을 통해 계시 하셨다. 신약시대에는 인간 및 하나님으로서 계시 하셨다.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님의 인간으로서의 탄생, 속죄, 죽음, 부활 및 승천으로 완료 되었다. 그 후 하나님의 계시는 필요하지 않았다. 계시된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며 생명의 원천이다. 성경은 구원의 지혜를 제공하고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한다. 성경 속에서 영생을 얻는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동력이 있으며 어떤 양날 선 검보다 더 날카로워서, 혼과 영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해 낸다." (히브리서 5:12)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으니, 성경을 능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 (디모데 후서 3:15)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디모데 후서3:17)


"영생은 이것이니, 곧 유일한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를 아는 것과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요한복음 17:3)


기독교는 결국 지식의 종교다. 기독교는 장님 종교가 아니다. 구원은 장님 믿음에서 오지 않는다. 구원은 우리가 아는바 절대 하나님의 선물(Sola gratia/ by grace alone)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려면 특별 계시를 통해 알게 된다. 특별 계시를 보려면 성경을 배우고 믿어야 한다. 특별 계시를 알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지식이 있어야만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있어야 구원이 가능해지고 구원이 있어야 영생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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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6)

 

 
(지난 호에 이어)
사도신경은 주 후 325년의 The Nicene Creed 및 수정, Alexandria 주교 Athanasian 신조 및 주후 451년의 Chalcedon Creed 등을 통해 완성 되었고, 가장 보편화 되어 있는 신조다. 한편 사도신경을 기반으로 하지만 교단마다 교단교리에 맞는 신조를 마련했다. 


로마 카톨릭교는 1545년의 The Canon of Trent, 1560년의 Roman Catechism, 1564년의 The Creed of Pope Pius IV, 1870 년의 Pope Pius IX 의 신조 등을 통해 성당과 교황의 위치를 강화했다.


한편 루터교는 1530년의 The Augsburg Confession, 1537년의 Apolgy, 1529년의 The Larger and Smaller Catechism, 같은 해의 The Articles of Smalcald 및 1577년의 The Formula Concordice 등을 통해 루터교의 교리를 강화 시켰다. 


루터교리의 핵심은 인간의 구원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Sola fide, by faith alone)으로 말미암는다는 것과 주의 만찬(Eucharist)에 관한 것이며 포도주가 주님의 피로 변하고 떡은 주님의 몸으로 변한다는 주장이다.


칼빈교의 신조는 Five Solas에 중점을 둔다.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by Scripture alone, 오직 믿음 Sola fide, by Faith alone, 오직 은혜 Sola gratia, by Grace alone, 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 Christ alone,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i Deo Gloria, glory to God alone을 모토로 하며 또한 사도신경을 기초로 한다. 


1532년의 Confessio Tetrapolitana 신조, 1536 년의 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1562년의 The Heildelberg Confession, 1563년의 The 39 Articles of the Church of England, 1619년의 The Canon of the Synod of Dort (화란의 도시) 그리고 특히 1643-1649 기간에 작성된 유명한 The Confession and Catechism of the Westminster Assembly 등이 현 장로교의 신조 내용이다.


신조란 기독교인의 고백이다. 교단마다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어떤 교단은 죄에 중점을 둔다 하면 어떤 교단은 구원, 어떤 교단은 삼위일체의 관계, 어떤 교단은 성례식 특히 주의 만찬에 비중을 둔다. 성경이 중요한 이유는 과연 이러한 다양한 신조가 성경의 말씀을 제대로 반영 하느냐를 확인하는데 있다. 


2.2 성경의 필요성


성경의 필요성은 요한복음에서 볼 수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하는 것은 너희들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는 것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20: 31)


성경이 왜 필요한지 자세히 보자.


1) 성경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필요


인간은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보지 못함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다시 말 해서 우리는 불가지론 자다. 창세기 초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담의 불복종 때문에 인간은 타락하고 말았고 하나님과 분리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명령 하시기를 “그 동산의 나무에서 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네가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창세기 2: 16-17)


사람은 그 후 하나님을 직접 알 수 없게 되었다. 오직 특별계시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계시에는 두 개의 유형이 있다. 하나는 일반계시 또 하나는 특별계시다. 전자는 하나님의 피조물 통치를 통해 계시된다. 우주만물 즉 하늘, 해, 달, 별, 동물, 식물 등 모든 피조물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을 계시하신다. 이 계시는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세상 창조 때부터 그분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분께서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분명히 드러나 알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다."(로마서 1:20)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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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배우는 기쁨(5)

 

 
(지난 호에 이어)


신학의 유형을 보자.


(1) 카톨릭 신학


카톨릭신학은 진리의 원천으로서 성경 외에 외경(Apocryphal/Deutrocanonical)을 추가 한다. 성경과 외경과 교황의 가르침을 토대로 카톨릭 신학이 세워졌다.


(2) 인간중심 신학(Humanist Theology)


성경은 하나님 말씀의 일부분만 인정한다. 왜냐하면 66권의 책 중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비과학적 및 비논리적 부분으로 치부한다.


(3) 성경의 신비주의론


성경은 하나님 말씀 외의 성스러운 것이 있다. 성경은 코란 같이 성스러운 책이며 성경을 통해 기적이 일어난다. 이 설은 독일 및 미국의 복음주의에서 볼 수 있다.


(4) 성경의 절대주의론(Sola Scriptura, by Scripture alone) 


성경의 말씀은 틀림없는(Non-errant) 말씀이다. 이 이론이 개신교의 전통적 신학이다. 신구약 66권의 책은 완벽하다(Perfect). 더 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나는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자에게 증언한다.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무엇을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 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할 그의 몫을 없애버리실 것이다." (요한 계시록 22: 18-19)


2) 신조를 위한 성경의 중요성


신조(Creed)는 성경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왜냐하면 성경의 해설에 따라 신조는 변할 수 있고 성경의 권위는 신조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잘못 해석하면 잘못된 신조가 형성될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 신학 발전 과정에서 다양한 성경 해설로 인해 다양한 신조가 채택되었다. 그러면 왜 다양한 성경 해석이 나타나게 되었나? 이유는 성령님의 도움 없이 인간의 뜻으로 성경을 해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한다. 곧 성경의 모든 예언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언은 언제나 사람의 뜻을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 한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 후서 1:20-21) 


종교개혁시대에 제대로 된 신조가 등장했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성경 해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독교 초기에는 성경이 보편화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을 제대로 해석을 못 하였다. 중세기를 암흑의 시대라 한다. 


교황 그레고리 1 세 때 성당 중심의 신조를 작성해 로마 카톨릭교 믿음의 기반을 마련했다. 당시 채택된 신조가 현 시점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이 신조는 11세기의 스콜라식 신학을 더욱 강화했다. 카톨릭 신조의 핵심은 성경적 신조와 인간 이성간의 조화를 제공하는 새로운 신조다. 


종교개혁 시절 루터 및 칼빈은 완전히 성경에 입각한 신조를 마련했으나 최근에 와서는 그 권위가 약화되는 추세다. 신조의 발전 추이를 요약한다.


기독교 신조의 역사를 보면 가장 오래된 신조가 사도신경이다. 이 신조는 6세기 전에 형성된 신조이며 저자가 누구인지를 모른다. 사도들이 쓴 것은 아니다. 다만 사도들이 가르치던 기독교 신학을 반영했기 때문에 사도를 연결했을 것이다. 


사도신경은 수많은 신조 중 가장 짧고 기독교 신학을 설득력 있게 요약한다. 이 신조에는 창조, 삼위일체, 예수님의 탄생, 속죄, 승천, 부활, 인간의 구원, 성도간의 관계, 주님의 재림과 심판 등이 들어있는 신조다. 


사도신경을 둘러싸고 활발한 토론이 있었다. 토론대상이 총독 빌라도와 관련 되었다. 한글판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로 번역하면 "Suffered by Pontius Pilate“ 가 된다. 그런데 영어판에는 ”under Pontius Pilate" 라고 되어 번역을 하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가 아니라 “본디오 빌라도 통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사” 라고 되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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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4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4)

 
 
(지난 호에 이어)


제 2장 기독교 성경관(Christian Doctrine of the Bible)


앞에서 현 기독교의 위기의 본질을 살펴보았다. 위기의 원인은 모든 진리의 원천인 성경을 떠난 신학과 믿음을 구상하는데 있다. 성경만이 진리의 기준이다. 이 기준을 경시한 신학은 방향 없는 신학이 될 것이다. 본 장에서는 성경의 중요성, 성경의 필요성 및 성경의 내용을 논의 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다. 마찬가지로 성경도 시간을 타지 않는다. 


2.1 성경의 중요성


성경과 기독교 신앙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참다운 믿음은 성경을 배우고 믿는 행위다. 그런데 성경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오늘의 기독교는 점점 형이상학적이고 인본주의적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성경을 오해 하는 경우가 있다. 성경의 역사적 중요성과 기독교 신조(Creed) 관련 중요성을 알아본다.


1)역사적 중요성


기독교 신학에는 지난 2 천년 동안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성경 계시에 어긋나는 변화도 있었다. 성경의 중요성은 잘못된 신학 변천을 평가하는데 기준이 된다. 


기독교 초기의 주요 관심사는 예수님의 인성(Manhood) 및 신성(Godhood)에 관련 되었다. 약 200년의 토론 후 주후 325년의 Nicaea 회의에서 예수님은 완벽한 인간이고 동시에 완벽한 신이라고 인정을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기독교의 핵심인 희생과 순종을 위해 인간으로 태어나셨다.


"너희 안에 이 믿음, 곧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라. 그 분께서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면서도 하나님과 동등 되심을 취하려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여 사람들과 같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 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다." (빌립보서 2:6-8)


중세기 이전의 토론은 교회론(Ecclesiology)이었다. 제 4세기에 황제 콘스탄틴(Constantine)이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면서 기독교(당시 카톨릭)는 급성장을 했으나 교회에 대한 논쟁은 더욱 활기를 얻었고 분쟁을 유발했다. 분쟁은 6세기까지 계속 되다가 교황 그레고리 1 세(Gregory 1st)가 교회론을 정리하게 되었다.


가장 주목할 내용은 교황이 기독교 바다(Sea of Christiandom)를 통치하게 되었다는데 있었다. 하지만 11세기에 와서 삼위일체(Economy of Godhead) 문제를 둘러싸고 카톨릭 교회는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분리되었다. 


토론내용의 추세를 보면 중세기 후반까지는 구원론이 주류였다. 당시 가장 권위 있는 스콜라식(Scholastic)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로마 교황의 권력을 강화하게 했다. 아퀴나스의 주장 중 가장 역사적 이론은 구원이 인간의 업적 (Deeds)에 따라 받는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은 카톨릭교 및 몇몇 개신교단이 지지하는 구원관이다. 하지만 칼빈교 및 루터교를 포함한 개신교의 구원관은 인간의 업적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절대은총(Sola gratia, by grace alone)으로 말미암는다고 주장한다. 즉 구원은 자비스러운 하나님이 선물이라는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니,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로마서 1:17)


종교개혁 시대는 성경이 교황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종교개혁 시절의 정열은 식어지고 성경의 권위는 떨어졌다. 심지어는 성경의 말씀조차 의심하게 되었다. 다양한 성경 해석이 등장했고 교회는 사방팔방으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이 시대에 기독교는 무속종교화 및 신비화가 되었다. 


자유신학(Liberal Theology)이 등장한 것이 이 때였다. 자유신학은 독일 신학자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가 헤겔리언(Hegelian)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발전시킨 신학이다. 이 신학의 핵심은 진리의 인식은 성경의 계시가 아니고 인간의 이성에 의존한다는데 있다. 그런데 문제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이성은 역시 죄 가운데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는 진리를 우리는 알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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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6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3)

  

(지난 호에 이어)


1.3 인본주의적 기독교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분에게서 너희가 그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라가는 것을 나는 이상하게 여긴다. 우리가 전에 말한 것처럼 지금도 내가 다시 말한다.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 (갈라디아서 1: 6, 9)

 


현 기독교의 또 하나의 문제가 인간 중심의 기독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 기독교는 종교 개혁자들이 바로 세운 참다운 기독교 원형과는 너무나 다른 상태에 있다. 
종교 개혁시대의 기독교는 완전한 하나님 중심의 기독교였다. 하나님 중심의 기독교는 오직 성경 말씀을 토대로 하는 종교이며 믿음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 중심의 기독교는 인간으로 하여금 계시된 하나님을 알고 경배하기 위한 것이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대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사람아, 참으로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박 하느냐? 지음을 받은 것이 지은 분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라고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같은 진흙 덩어리로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겠느냐?" (로마서 9:20-21) 


인본주의적 기독교는 인간 지성에 의존하고 세속적 행복을 추구하는 기독교다. 문제는 인간 이성은 인류 조상의 죄 때문에 타락한 이성이라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 놀라운 사실은 평소 전통 보수적 교파도 인본주의를 택한다는 것이다. 


인본주의는 결국 교회를 변질시키며 하나님 중심의 세계보다 인간 중심의 세계를 만들 것이다. 인본주의적 믿음은 인간의 허영과 과다한 자존심에서 온다. 바리세인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겸손한 세리를 택했다.


"바리세인은 서서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다른 사람들처럼 착취하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가 아니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은 것을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제가 얻은 모든 것들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향해 눈을 들지도 못하고 다만 자기 가슴을 치며 말하기를 ‘하나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저 바리세인보다 이 세리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 자기 집으로 내려갔다. 자신을 높이는 자마다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다.)(누가복음 18: 11-14)


기독교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위기는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보다 과학, 이성적 철학 및 첨단 기술 개발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산다는 것에 있다. 이들은 하나님을 역사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들은 우주 만물을 창조, 주관 및 보전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외면한다. 


기독교의 무속 종교화, 신비주의화 및 인본주의화의 부정적 파급효과는 심각하다. 이 파급효과는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리하고 믿음을 세속적 부귀영화의 수단으로 착각하고 교회생활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변질된 공동체로 전환시키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한국기독교의 비극은 바로 하나님 중심의 교회 생활이 아니고 인간 중심의 교회 생활이라는데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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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8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2)

  

(지난 호에 이어)


1.1 기독교의 무속종교화 (Shamanic Christianity)


오늘의 기독교는 전례 없는 혼란에 빠져있다. 심각한 문제는 기독교의 원칙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데 있다. 참다운 기독교 신앙은 오직 성경에서 오는 계시적 진리에 입각해야 한다. 성경적 계시에 따라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게 된다. 성경을 모르면 엉뚱한 것을 믿음의 대상으로 받아드릴 수 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 네가 지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하고,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므로 나도 네 자녀를 잊을 것이다.” (호세아 4:6) 


이 구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한편 우리가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은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세속적 욕망을 만족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러한 선물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알고 경배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무속종교에는 특징이 몇 개 있다. 첫째 만물이 믿음 대상이 된다. 해, 달, 나무, 돌, 바다 등 모든 것이 우상 대상이 된다. 둘째, 신이 없다. 신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의 계시가 없기 때문이다.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게 될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현상으로 바꾸었다.”(로마서 1:23)


셋째, 무속종교의 목적은 오직 인간의 세속적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다. 무속종교의 핵심은 무당이 알지 못하는 ‘신’과 사람 간의 중재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불행한 것은 최근 기독교인 일부분은 목회자가 무당 기능을 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하나님 및 목회자에 대한 치욕이다. 참다운 기독교인의 신앙 목적은 부귀영화 같은 세속적 욕심의 만족이 아니다. 구약의 삼대 언약 (민족, 국토, 통치)은 보기에 세속적 욕망 같이 보이지만 실은 신약에서의 영적 축복의 그림자다.


중요한 것은 참다운 기독교 신앙의 목적은 세속적 부귀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1.2 신비주의 적 기독교


신비라는 것은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기독교는 성경의 계시에 입각한다.


"곧 내가 이미 대략 기록한 대로 그 비밀이 계시를 따라 내게 알려지게 된 것이니 너희가 그것을 읽을 때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에배소서 3:3-4)


기독교도 신비에 기초를 둔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독교 신비는 숨어 있는 신비가 아니다. 그것은 계시된 신비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한 신비는 구약에서 예언했다. 성경에는 많은 신비 현상이 있다.


반면에 세속적 신비는 계시된 신비가 아니다. 마술, 최면, 속임수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신비주의는 참된 신비라고 할 수 없으며 이론적 혹은 신학적 근거가 없다.


불행한 것은 성경에 입각한 기독교 신비가 세속적 신비로 오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계시 신비 중 세속적 신비와 유사한 점이 있다. 하지만 기독교 신비는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독교 신비는 계시되어 있지만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이성과 마음으로 이해가 된다. 유감이 되는 것은 기독교인 중에 근거 없는 신비를 제작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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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5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1)

 

본보는 금주부터 정희수 교수의 새 칼럼 ‘하나님을 배우는 기쁨’  을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애독을 바랍니다- 편집자 주   

 

 

 서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개신교)는 위기에 처해있다고 염려한다. 한국의 기독교인 수는 1400 만 명에서 700 만 명으로 극감했다고 한다. 캐나다 인구의 80%가 크리스천(기독교 및 카톨릭교)인데 20% 정도가 성당 혹은 교회에 가서 미사 혹은 예배에 참석한다고 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 한다는데 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Loving)에는 지켜야 할 과정이 있다. 인간의 사랑의 과정을 보면 우선 상대방을 알아야(Knowing) 한다. 다음 단계는 상대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Accepting) 한다. 다음 단계는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발견해 존중하고 높이 평가하며 좋아하고 기쁘게 해주고 싶어 하고 도와주고 싶은 감정으로 발전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아야 된다. 기독교의 현 위기는 우리가 하나님을 잘 모른다는데 기인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아나? 우리는 하나님의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계시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과언하면 하나님을 알려면 성경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현 기독교 위기는 우리가 성경을 알지 못하거나 혹은 잘못 아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본 기고문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배우는데 목적이 있다. 필자는 목회자도 아니고 성경 전문가도 아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하나님의 사랑계명을 이해하려고 철학, 신학, 사회학 등을 살펴보았다. 이 기고문의 내용은 필자가 그 동안 느낀 것, 본 것, 들은 것 및 배운 것을 독자와 나누고자 하는데 있다.


본 기고문의 내용을 소개한다. 우선 현 기독교의 문제를 제기한다. (1)기독교의 변질을 설명하고자 한다. (2)필자가 믿는 성경관(Doctrine of the Bible)을 위해 성경의 중요성 및 필요성을 토의한다. 성경의 내용을 배운다. 특히 구약과 신약간의 연계성, 통일성 및 일관성을 배운다. 구약은 하나님의 삼대 언약 섭리를 기록한다면 신약은 언약의 성취 섭리를 보여준다는 것을 알아본다.


(3)신관 (Doctrine of God)에서는 하나님은 누구신가(Whoness) 및 무엇을 하셨나 (Whatness)를 토의한다. 삼위일체 (Trinity), 예수님의 신성 및 인성에 대한 역사적 토론, 하나님의 속성 및 업적을 배운다.

 

(4)기독교 인생관(Christian View of Humanism)에서는 타락 전 인간과 타락 후 인간을 비교한다. 타락된 인간이 어떻게 중생된 인간이 될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파악한다. 


(5)기독교 역사관(Christian View of History)에서는 기독교 역사관의 원리(유신론적 역사, 직선적 역사, 종말론적 역사) 그리고 기독교 역사관의 특성(역사섭리에 대한 주관성, 긍정성)을 알아본다. (6)기독교 세계관(Christian View of the World)에서는 세계의 구성과 본질(신적 섭리로 구성된 세계, 유한적 세계), 세계의 가치와 목적 등을 통해 하나님과 세계간의 관계를 배운다.


(7)교회관(Ecclesiology)에서는 교회의 정리, 특징 및 역할이 주요 토의 내용이 된다. 교회는 교인의 집합(보이는 교회)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집합(안 보이는 교회)이며 예수님의 몸이다. 교회는 4 개의 모형(조직, 공동체, 설교, 사회보급)이 있다. 교회는 성스럽고 통합적이고 전반적이다. 


(8)기독교의 삶(Christian Life)에서는 현시점에서 참다운 기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토의한다. 토의 내용은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및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 계명을 지키느냐 등을 포함한다.


필자의 신관을 정리하는데 많은 서적 및 신학자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인 저자 중 박용기 목사(성경적 기독교, 2010), 김규욱 목사(기독교 신앙의 원형 2008), 서구 신학자 중 William C. Placher (Essentials of Christian Theology, 2003), Owen C. Thomas (Introduction to Theology, 1983) 및 A.A. Hodge (Outline of Theology, 1999) 등의 책으로 도움을 받았다. 


박용기 목사 및 김규욱 목사는 필자의 기독교관을 정리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이 분들의 기독교관은 필자에게 강력한 영감을 주었다. 그분들에게 감사한다. 본 기고문이 독자들간에 기독교에 대한 생산적 토론이 있기를 바라며 아울러 신앙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제 1장: 기독교의 변질(Deterioration of Christianity)


시간은 변화를 초래한다. 기독교도 변했다. 종교 개혁자들이 교회 부패에서 탈출해 16세기의 종교개혁이라는 엄숙하고 위대한 일을 하여 인류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놨다. 종교개혁 후 5 세기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불행히도 루터 (Luther) 및 칼빈 (Calvin) 종교 개혁자들이 마련한 신학과 기독교 신앙은 세월 속에서 근본정신이 유지되지 못하고 변질되거나 약해지고 말았다. 기독교 신앙의 변질의 내용을 보면 무속종교화, 신비주의화 및 인본주의화라 할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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