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울음 울 때만 해도 들릴 듯 말 듯 앳된 소리를 내던 매미는 남은 생이 그리 길지 않음을 아는지 여름이 깊어감에 따라 점점 더 목청을 높입니다. 매미소리가 아무리 드높아도 풀벌레소리는 촉촉하게 젖어 낮게 드리워집니다. 숲에서 들리는 소리는 한 줄기 바람처럼 가까워졌다 멀어지곤 해서 때로는 나무와 소리와 바람이 하나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없어 적막할 것 같아도 먹이와 짝을 찾는 뭇 생명들의 수선거림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바쁘게 종종걸음 치다가도 그 조화로움을 헤아리면 더위와 피로도 씻은 듯 사라지며 쉼표 같은 순간이 찾아듭니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잠시나마 일손을 놓고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여 봄 직합니다.
간편하게 준비하고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당길 때입니다. 주로 따뜻한 국물로 먹는 수제비를 비빔이나 냉수제비로 변화를 주면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덮밥처럼 짜장이나 카레 소스, 또는 볶음채소를 얹은 따뜻한 비빔수제비는 계절과 구분 없이 먹기 좋습니다. 생 채소를 곁들여 새콤달콤하게 비비거나 시원한 콩물에 띄워 차게 먹는 수제비는 여름 별미입니다. 기계로 뽑아낸 소면도 국물이나 고명을 잘 갖추면 나름의 깊은 맛이 있지만 쫄깃한 식감은 손국수만 못합니다. 무더운 여름에 먹을 때마다 밀어서 삶아내기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닙니다. 그럴 때면 뚝뚝 뜯어 넣어 끓일 수 있는 수제비가 대안입니다. 국수반죽보다 약간만 질게 해서 충분히 숙성시키면 차게 먹어도 말랑말랑하고 차진 식감으로 인해 먹는 재미가 더합니다.
통밀가루에 감자나 콩, 쌀, 보리, 채소류 등을 갈아 넣으면 수제비 자체만으로도 깊은 맛이 나고, 여러 가지 신선한 채소로 색감과 맛을 살려 비비면 일품요리로 손색이 없습니다. 국물로 먹을 때는 약간 투박하게 빚어도 거북하지 않지만 비빔은 얇게 뜯어 넣어 익혀야 부드럽고 채소와 같이 먹기도 좋습니다.
양념은 고추장을 새콤달콤하게, 그러나 지나치게 달지 않게 만들어 적당히 간이 스며든 수제비를 채소에 곁들여 먹게끔 버무립니다. 새콤달콤한 맛을 내려면 식초 양념이 필수입니다. 식초는 음식의 감칠맛을 더해 입맛을 돋우고 짜고 매운맛을 부드럽게 순화시켜주는 작용을 합니다. 살균력이 뛰어나고 보존성이 높아 식초에 절인 음식은 장기 저장이 용이하고, 여름철 음식에 활용하면 식중독을 예방하기에도 좋습니다. 반면 과하게 들어가면 전체적인 맛이 밋밋해질 수 있습니다.
식초를 약간 줄이고 신맛이 나는 매실즙으로 대체하면 음식 고유의 맛을 살리기도 좋고 여름철 건강관리에도 도움이 됩니다. 현대인들의 주방에서 매실즙(효소, 액기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풋매실을 매실과 동량의 설탕을 넣어 절였다가 일정 기간 숙성시켜 걸러낸 즙입니다. 그러나 먹는 방법이 잘못된 식재료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매실입니다. 고온다습한 일본은 예로부터 매실을 식품으로 애용해 왔지만, 우리는 이질ㆍ설사 등에 약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오매(烏梅)라는 약재를 만듭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검은색을 띠는 오매는 풋매실을 직불에 살짝 그을려 검게 만들거나 항아리에 담아 소금에 절여 검게 변하도록 밀봉했다가 즙을 내는 방법으로 만들어집니다.
풋매실처럼 덜 익은 열매에 담긴 미미한 독소는 식물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장치이며 먹는 방법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열을 가하거나 발효 과정을 거쳐야 독소가 사라지면서 식재료 본연의 맛과 향이 살아납니다. 설탕에 절여 숙성시킨 매실즙도 몸에 좋은 성분이 있긴 하지만 불에 굽거나 소금에 절이거나 말려서 만든 약재에 견주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몸에 좋다는 소문 때문인지 물에 희석해 음료로 마시는가 하면 음식 양념에 설탕 대신 활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산골에서는 고추장으로 담그는 동아장아찌에 소량 사용하고 비빔수제비처럼 여름철에 먹는 새콤달콤한 요리에 약간씩 넣습니다.
참 농업을 지향하며 바른 먹을거리를 선도하는 '태평농'에서는 자연이 주는 특효약을 독으로 만들어 몸속에 집어넣지 않기를 당부합니다. 덜 익은 매실을 계절의 구분 없이 지속적으로 먹으면 이질 같은 병에 대한 면역성이 약해져 병에 걸릴 확률이 높고, 한번 발병하면 빨리 낫지도 않거니와 식중독에 걸렸다고 매실을 먹어봐야 효과도 없다고 합니다. 평소 익지 않은 매실을 먹지 않아야 식중독에 걸렸을 때 치료제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직불에 살짝 그을려주면 좋고, 생 매실 그대로 설탕에 절이더라도 설탕 비율을 조금 낮추어 담그고 아무 때나 무분별하게 먹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신맛은 달콤한 양념과 궁합이 잘 맞지만 지나치게 달면 음식의 참신한 맛은 떨어지고 갈증이 나기 쉬우니 적당히 사용하고, 자극적인 단맛이 나는 설탕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채소가 주된 재료인 비빔요리 양념은 약간 묽게 만듭니다. 과일을 갈아 넣으면 농도도 묽어지
고 자연단맛도 좋아지는데, 과일이 마땅치 않으면 육수 또는 잘 숙성된 물김치 국물을 넣어도 됩니다. 비빔양념을 약간 싱겁고 좀 더 묽게 만들면 생 채소 샐러드 소스로도 그만입니다.
쌉쌀한 맛이 나는 상추와 양상추, 상추와 궁합이 잘 맞는 쑥갓, 달고 향긋한 오이, 적게 넣어도 음식의 풍미를 살려주는 양파, 이 외에도 지척에 있는 채소를 이용해 시원하고 맛깔스런 여름밥상을 준비해보세요.
재료 준비
갓끈동부 수제비반죽 150g, 적상추 12장, 양상추 3장, 쑥갓 약간, 오이 1/2개, 양파 1/4개, 삶은 달걀 1개, 고추장양념 5큰술(채소 크기에 따라 가감)
-비빔양념 : 고추장 4큰술, 식초 2큰술, 매실즙 1큰술, 조청 2큰술, 육수 1큰술, 통깨
-수제비 반죽 : 통밀가루 2컵, 삶은 갓끈동부 곱게 갈아서 1½컵, 소금 1작은술, 물 100cc
만드는 방법
1. 통밀가루, 삶아서 갈은 갓끈동부, 소금을 분량대로 넣고 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매끄럽게 치댄다. 공기가 통하지 않게 비닐팩으로 씌워 냉장고에서 1시간 이상 숙성시킨다.
2. 채소는 씻어 건져 물기를 털어낸다. 양파는 채 썰고 쑥갓은 양파 길이와 비슷하게, 오이는 반달썰기를 한다.
3. 고추장에 식초, 매실즙, 조청을 섞은 후 육수(또는 과일즙)를 넣어 고루 섞어가며 농도를 약간 묽게 만든다. 과일즙으로 대신하면 조청의 양을 줄여 넣는다.
4. 팔팔 끓는 물에 수제비 반죽을 얇게 뜯어 넣고, 부르르 끓어오르면 찬물을 약간 부어 가라앉히기를 두어 번 반복한다. 쫄깃하게 삶아진 수제비는 찬물에 헹구어 건진다.
5. 수제비에 고추장 양념과 통깨를 넣어 간이 배이게 잘 비벼준다.
6. 썰어놓은 채소를 넣고, 양상추와 적상추는 손으로 뜯어 넣는다. 가볍게 훌훌 섞어 접시에 담고 달걀을 4등분해 보기 좋게 꾸민다.
글을 쓴 자운(紫雲)은 강원도 횡성으로 귀농하여 무농약ㆍ무비료 농법으로 텃밭을 일구며 산다. 그녀 자신이 현대병으로 악화된 건강을 돌보고자 자연에 중심을 둔 태평농법 고방연구원을 찾아가 자급자족의 삶을 시작했던 것. 건강이 회복되면서 직접 가꾼 채소로 자연식 요리를 하는 그녀의 레시피는 블로그 상에서 인기만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