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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대로 놀아라(Viva Las Vegas) (4.끝)
youngho2017

 청춘예찬(靑春禮讚) 시리즈(II)
 엘비스와 앤 마그렛의 청춘의 끼를 맘껏 발산한

 

 

 조지 시드니(George Sidney, 1916~2002) 감독은 진 켈리, 밴 헤플린, 라나 터너 등이 출연하는 '삼총사(The Three Musketeers•1948)'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 뉴욕 출신 감독이다. '멋대로 놀아라' 제작 2년 뒤인 1966년에 다시 앤 마그렛 주연의 '스윙어(The Swinger)'를 만들고, 다음해인 1967년 영국 뮤지컬 영화인 '하프 어 식스펜스(Half A Sixpence)'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후, 2002년 라스 베이거스에서 암합병증으로 85세로 타계했다. 


 앤 마그렛(Ann Margret•76)은 배우보다는 'Slowly', 'What Am I Supposed To Do', 'My Last Date', 'The Rock And Roll Waltz' 등 당시 뭇남성들에게 어필한, 달콤하고 서정적이고 섹시한 음색의 추억어린 노래를 부른 가수로 기억된다. 


 영화에는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포켓에 가득찬 행복(Pocketful of Miracle•1961)'에 당시 20세로 첫 데뷔했다. [註: 이 영화는 본보 2015년 12월18일에 소개되었으므로 참조 바람]


 특히 천부적인 춤꾼인 그녀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공연한 이 영화를 통해 실제 '화학반응'이 일어나 '여자 엘비스'로 불리며 가십 꾼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당시 엘비스의 약혼녀였던 노르웨이 출신 프리실라 보리외(Priscilla Beaulieu•72)는 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결국 둘은 1967년에 결혼했다. 하지만 5년 만에 파경을 맞는다. 둘 사이에 난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49)는 네 번 결혼했는데, 첫 배우자가 마이클 잭슨(1958~2009) 이었으므로 엘비스 프레슬리는 마이클 잭슨의 장인이기도 하였다. 

 

 


 이밖에 앤 마그렛에 대해 질투도 많았다. 이 영화의 촬영감독 조셉 F. 버로크(Joseph F. Biroc, 1903~1996)는 앤 마그렛의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을 여러 각도로 촬영했을 뿐만 아니라 각 장면마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필요 이상으로 그녀에게 초점을 맞췄다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물론 조지 시드니 감독의 지시를 따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앤 마그렛은 오토바이광으로 '스윙어'에도 등장했던 500cc짜리 'Triumph T100C Tiger'를 즐겨 탔는데, 2000년 59세에 미네소타주 시골길을 달리다 갈비뼈 3개와 어깨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 영화의 첫 시작부에 등장하는 스포츠카도 1958년형 'Triumph TR3A' 차종이고, 엘비스와 데이트를 할 때 오토바이 안장 위에 서서 타는 장면은 스턴트가 아닌 실제의 연기이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1935~1977)는 미국 미시시피 주의 투펄로(Tupelo)에서 태어나 13살때 테네시 주 멤피스(Memphis)로 이사를 갔다. 투펄로에는 그의 생가가 복원돼 있으며, 멤피스에는 '그레이스랜드 박물관'이 건립되어 있어 매년 65만 명의 방문객이 백악관 다음으로 많이 찾는 명소다. 


 엘비스는 1954년 데뷔 이래 총 18곡의 빌보드 넘버원 히트 싱글을 남겼으며, 영국의 비틀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약 2억8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1956년 1월, 엘비스는 RCA에서 발매한 첫 싱글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발표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하며 히트를 쳤다. 


 로큰롤, 가스펠, 록, 펑크, 팝 발라드, 컨트리, 블루스 등의 장르에 관계없이 이례적인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인기를 얻었고, TV 출연과 차트를 휩쓸었다. 특히 로큰롤을 새로운 인기있는 장르로 유행시켰다. 


 1956년 11월에는 22세에 로버트 D. 웹이 감독한 영화 '러브 미 텐더'에서 주연을 맡아 데뷔한 이후, 1969년까지 대부분 뮤지컬이거나 노래를 중요한 소재로 삼은 31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註: 그 후 2편이 더 있으나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1969년 8월에 발매한 싱글 'Suspicious Minds'는 엘비스의 18번째 넘버원 싱글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이 곡은 엘비스가 기록한 마지막 빌보드 넘버원 싱글곡이다.熹년 향년 42세의 나이에 약물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특히 1970년 12월21일, 검은색 벨벳 오버코트, 금도금 벨트, 검은색 가죽 부츠 등 특유의 화려한 의상을 입고, 당시 닉슨 대통령의 백악관 집무실에서 30여 분간 면담을 가진 엘비스가, 마약국 연방 요원 배지를 요구하였고, 닉슨 대통령은 이를 흔쾌히 수락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후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1950년대의 스탠더드 팝에서 탈피하여 로큰롤을 '청춘의 음악적 장르'로 대중화하여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구세대와 베이비붐 신세대 간의 갭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를 이루었다는 공로 때문이다. 


 끝으로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컬그룹들이 있다. 하나는 '클라임(The Climb)'을 부른 '쥬빌리 포(Jubilee Four)'라는 흑인 가스펠 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엘비스와 함께 했던 '조더네이어스(The Jordanaires)' 보컬그룹이다. 


 '쥬빌리 포'(youtube.com/watch?v=auxik3GdJ_I)는 처음에 4인조로 구성된 '골든게이트 4중창단'으로 등장했다가 리드 싱어인 빌 존슨이 빠지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특히 '클라임'에서 베이스인 조지 맥패든의 저음은 너무 맛깔스럽다.


 '조더네이어스'는 1948년에 결성된 남성 4인조 그룹으로 백인이면서 흑인들의 가스펠에 능숙한 실력을 발휘한 보컬그룹이다. 1956~1972년까지 엘비스 프레슬리의 백 코러스를 맡았고, 그밖에 리키 넬슨, 쟈니 캐쉬, 클리프 리처드, 링고 스타, 보비 베어, 돈 맥클린, 돌리 파튼, 시카고 등 톱스타들의 백 코러스를 도맡은 것으로 유명하다. 


 멤버는 계속 교체되어 왔으나, 그동안 제1 테너로 보컬그룹을 이끌어왔던 고든 스토커(1924~2013)가 88세로 사망하면서 남긴 유언에 따라, 조더네이어스는 2013년에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2017.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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