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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가치관
yeodongwon

 

나는 탄생과 죽음 사이를, 하늘과 땅 사이를, 그리고 만물 만상 사이를 헤엄치듯 때로는 숨가쁘게, 때로는 신명 나게, 때로는 허둥대며 삶이라는 모양의 과정을 곡예 하듯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많고 적음, 크고 작음, 높고 낮음 사이를 때로는 삶의 활력으로, 때로는 부담으로 부스대며 살아간다. 삶은 죽음에 맞서있고, 선은 악에 의해 드러나고, 행복엔 슬픔이 동무처럼 다가와 있는 틈새 사이를 바둥대며 살아간다. 


꼴찌 없이 일등이 없고, 잘남이 있어 못나 보이는 상대가치에 해탈한 듯 모든 게 팔자려니 하는데도 내 존재가치에 웃고 울며 산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게 상대적이라며 충족절대치를 낮게 잡을수록 좋다는 말을 정답으로 여기며 사는데도 곤두선 신경을 다독이기 힘드니 삶이라는 문제는 간단치가 않다.


물론 그런 해탈의 삶을 산 이도 있다. 따뜻한 햇살이면 족한, 알랙산더 대왕의 부귀가 부럽지 않다고 제법 거드름을 피운 통속의 거지철인 디오게네스(Diognenes)가 바로 그렀다.


요즘 유행어로 고품격(upgrade), 참삶(wellbeing), 명품(brand name), 최고(best), 심신건강(healing) 이라는 삶의 가치에 초점을 맞춰 매달릴수록 부담감(stress)에 고달파지고, 도를 넘으면 되려 우울증이라는 병을 앓게 된다는 정신과의사의 충고를 그래서 귀담아 듣게 된다.


한데, 지극히 세속적인 나는 상대적 가치에의 적당한 도전을 삶의 맛이라며 타협 쪽으로 기우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산다. 그래서 ‘무소유’라는 고상한 말이 높은 가치로 여겨지면서도 기대치 한 점 없이 내일이 살아질 것 같지 않아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괴롭다, 불행하다 함도 기본바탕인 절대치의 충족이 미약하다고 느낄 때 오는 상대적이란 걸 모르는 건 아니나, 문제는 행복절대치 바탕을 낮게 잡는다는 게 엿장수 맘대로 쉽지 않으니 탈이다. 


기대치의 꿈을 삶의 진화를 위한 하늘이 준 은총이라며 살고 있는 지극히 세속적인 내겐, 비록 그 꿈이 개꿈(허상)일지라도 버리지 못하는 건 그게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라 여겨서다. 


가정을 꾸리고 사는 나는 부양할 임무가 있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물질이라는 매개 없인 불가능한 보통 사람이다. 지나침은 욕심이지만 기본은 갖추어야 할 책무를 게을리하는 것 또한 가장으로서의 직무유기라며 변명만 는다.


나는 죽음 문턱을 경험한 일이 있다. 그때 두 가지 생각이 걸렸다. 하나는 내 나이이고, 다른 하나는 내 어깨의 무게였다. 69세라는 나이, 요즘 기대나이로 치면 좀은 이른 감이 없진 않으나 옛날 같으면 장수 축에 낀다.


그리고 어깨의 무게인데, 이제 아이들도 제 몫을 하며 살고 있고, 아내가 좀 걸리기는 한데 어차피 누군가는 먼저 가게 되어있는 것, 충분치 못한 경제적 부담감이 미안스럽긴 하지만 그런대로 끼니걱정은 않을 것 같으니 내 어깨의 무게가 눈을 감기에 부담감을 줄만큼은 다행이 아닐 듯하니 마음이 편했었다면 위장 허세일까?  


만약 내 나이 젊어 아이들은 어리고, 그리고 돈을 억수로 많이 벌어 사업체를 크게 벌여놨다면 어깨가 무거워 눈을 감기가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거지철인 디오게네스의 어깨 무게와 청년대왕 알랙산더의 어깨 무게를 대조 상상해보면 쉽게 짐작이 될 것이다. 


부양의 부담이 없는 노인 디오게네스는 햇빛이면 족한 무소유자이니 어깨가 깃털처럼 가볍겠지만, 넓은 땅을 정복한 젊은 알랙산더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어깨가 태산을 짊어진 것 같은 무게였을 것이니 죽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집이 불이나 온 가족이 집 밖으로 나와 동동거리며 울부짖고 있는 광경을 구경하고 있는 거지 부자(父子)간의 대화 한토막 “아버지! 우린 집이 없으니 불이 날 걱정 없네요?”

“이게 다 이 아비 덕 아이가!” 


지극히 속물적인 무능한 내 입으로 무소유 가치관 어쩌고 하는 꼴이 마치 거지아비 같아 피식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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