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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의 미학(6)-과정의 사회학
yeodongwon

 

(지난 호에 이어)
세상의 범죄는 대부분 과정이 귀찮은 목적지향적 행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깡패 도둑들은 일확천금에 목숨을 건다. 한 푼, 두 푼 모으는 재미와 보람은 째째하다. 벽돌 하나하나 쌓는 공과 정성은 답답하다. 줄 서서 자기차례 오기를 기다리는 인내는 한심한, 대인다운 짓이 아니라 깔본다. 


영웅호걸은 소인과 구별한다. 군자지대로행(君子之大路行)이라 큰소리친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대담성을 사내다운 배짱이라 미화한다. 골목을 빠져 나와야 큰길이 나온다는 이치를 외면한다. 물방울이 모여 개울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는 순서의 과정을 무시한다.


일단 목적이 설정되면 수단과 방법이 고려되지 않는다. 인륜, 윤리, 도덕, 사회규범 등 모든 양심의 기본 틀이 무시되고 밀어붙여 결과로 말하자고 한다. 되려 그들은 ‘평가는 역사에 맡기자’ 호기를 부린다.


역사는 결과만으로 쓰여지는 것일까? 동기유발이나 과정은 고려되지 않는 걸까? 과연 그럴까?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었는가의 과정으로 평가된 역사기록은 무의미한가? 


왜 우리네 사회는 깡패집단 같은 목적지향적 사람이 많아졌을까? 그런 사람이 많다 함은 사회가 정상적으로 굴러가지 못하고 불안하다는 징조가 아닌가. 주어진 일에 충실히 사는 사람이 우대받지 못하는 사회는 잘못된 사회다. 


아내가 사경을 헤매는데도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병원문을 열어주지 않았을 때 남편은 은행강도라는 선택의 유혹을 받게 된다. 정치가 추하면 쿠데타의 유혹을 받듯, 사회가 부조리하면 한탕주의가 만연하게 된다. 


아이들은 목적이 없다. 지금이라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어른들은 자꾸만 아이들에게 꿈과 야망을 가질 것을 주문하지만 아이들은 오늘을 배우며 자라는 티없이 맑은 현재진행형의 과정의 영혼이다. 


미래지향적 압박의 짐을 지우기보다 오늘을 밝게 자라도록 할 일이다. 내일 일은 엄마 아빠의 몫(책임)이다. 먹을 걱정, 잘 걱정, 입을 걱정은 부모 몫이다.


내세(來世)의 걱정은 하늘에 맡기고 신자(信者)는 그 하늘을 믿고 의지하여 오늘의 과정에 충실 하라고 종교들도 말한다.


궁극적으로 국가도 그러하다. 치료 걱정, 교육 걱정, 사회안녕 질서 걱정, 정년 노후 걱정, 이런 것들은 나라가 맡고 국민은 각자에 주어진 일에 충실히 살아가는 사회, 즉 목적설정은 국가가 맡고 국민 개개인은 능력과 정성을 드린 대가만큼 받으며 살수 있는 사회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무릉도원(지상낙원)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다행히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캐나다는 그런대로 무릉도원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보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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