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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의 미학(4)-정치와 과정
yeodongwon

 

(지난 호에 이어)
나보고 민주주의에 대해 정의를 내리라면 한마디로 “과정의 미학”이다. 그 “과정의 미학”을 만드는 기본이 선거이다. 그래서 선거하는 모습만으로도 그 나라의 정치가 보인다.


동구 공산국들이 붕괴되면서 첫 번째로 서둘러 시도한 것이 바로 자유선거였음을 볼 때, 선거가 민주정치의 기본임을 여실히 증명해 보인 것이다.


선거는 운동시합 같은 남과의 대결에서 이기겠다는 경쟁도 아니며, 더욱이 쟁취의 대상은 절대 아닌 유권자로부터 선택 받는 의식인 것이다. 경쟁이라 여기면 승리라는 결과만이 미화되고, 쟁취의 대상이라 여기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쟁과 같은 투쟁 일변도로 흘러 민주의 꽃은 쓰레기통에서 잠들 수밖에 없게 되지만, 선택 받는 의식이라 여기면 모든 과정이나 결과가 성스러워 보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곳의 선거 모습과 한국의 선거 모습을 대조해 보면 어느 쪽이 무엇을 어떻게 잘하고, 잘못하고 있는가가 보일 것이다. 과정이 우선이고 과정의 묘미가 가치기준이 되고 있는, 그래서 꼬리로부터 올라와 머리를 만드는 이곳 서양식의 선거가 우리의 선거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리가 먼저 생기고, 그 머리가 크게 부각되고, 꼬리들은 보일 듯 말 듯 무시되며, 절차와 방법 같은 것은 형식에 불과하고, 수단에 구애됨이 없이 당선만 되면 만사 OK이다. 당선자만이 별처럼 빛나고 낙선자는 그날로 이름도 빛도 없이 뒤안길로 사라진다.


고지점령이라는 목표달성(절대명령)에는 고지점령이라는 승리로 보답하는 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기어서 가던, 날아서 가던, 죽어서 가던, 살아서 가던, 고지에 깃발을 꽂는 최후의 승리만이 미화되는 전투식이다. 그런 전투식 선거에서는 패자의 변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 사회의 선거는 지나간 과거 모든 과정의 검증에 의해 선택 받는 의식이 아니라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수단쯤 좀 비굴해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무엇이 될까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한, 민주주의의 의미를 꿰뚫고 있다는 한 노 정치인은 말과는 달리 무엇이 되기 위해 4수에 도전 기어이 승리의 월계관을 쓴다. 


그때 그분은 4수를 위해 또 신당을 만들고서 “신당에 대해 말이 많으나 우리는 꼭 성공한다.”고 말을 했다. 절차쯤은 어떻든 성공으로 말하겠다는 식이다. 앞의 말과는 전혀 반대의 뜻이다. 앞의 말은 과정을 중시한 민주 의식인데 반해, 뒤의 말은 목적(최후의 승리)만이 미화되는 비민주적 전투식이다.


선거의 본래 뜻은 ‘나 아니면’이 아니라 ‘나 아니더라도’인데 후진국이나 독재국가 쪽으로 가보면 한 지도자가 등장, 나 아니면 안 된다며 마르고 닳도록 해먹으려고 한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잘 산다는 선진국 쪽으로 갈수록 정치가 조용함을 보이고 있다. 공자의 제자가 물었다. “정치를 어떻게 하면 잘 다스린다고 하겠습니까?” 공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정치가 없는 듯 다스리는 것이야” 


‘무소식이 희소식’ 이라는 말이 정치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후진국으로 갈수록 정치가 요란하고, 애국자가 많고, 구호가 현란한 것을 보면 과연 공자 말이 공자 말이구나 실감을 한다.


북한이 그 좋은 예다. 강한 전투적인 구호가 나라가 탄생된 이래 오늘까지 70년을 요란하게 강산을 뒤덮고 있다. 그 구호는 목적달성을 위해 과정을 무시한 다그침이고, 자의적이라기보다 끌어가겠다는 국가의지(國家意志)의 표현들이다.


이 구호의 효과가 과연 얼마나 되는 지는 의심스럽지만 120% 초과 달성이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는데도 세계에 구걸하는 거지나라가 되어 인민은 배가 고파 필사적으로 국외로 탈출하고 있는, 공산 70년 치적의 실패가 증명하듯 그 구호들은 통치수단 이외 효과가 없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 구호가 들리지 않는 서양자본주의사회는 어떤가? 안타깝게도 그대신 상품선전의 올가미에 홀려, 자본가의 꼭두각시놀음에 춤을 추는 노예를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냥 평범하게 과정에 충실하게 살게 두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후진국이 정치적 구호로, 선진국은 상품선전으로 사람의 의식을 바꾸어 놓으려는 노력은 일종의 세뇌 술이라는 방법에서는 피장파장이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국가와 자본가의 구호와 선전이라는 목적달성의 의지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이 어렵고 힘든 세계에 살고 있다. 이를 어떻게 풀까가 미래의 숙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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