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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過程)의 미학(1)
yeodongwon

 

 

(본보는 이번 호부터 토론토의 원로문인 여동원 선생의 <과정의 미학>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필자의 예리하고 기지 넘치는 문명비평을 많이 애독해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과정과 목적 


세계 위인전을 보면 목적 지향적 삶을 살은 것 같으나 실은 과정을 다루는 자질수완에서 결과가 만들어졌다 하겠다. 충무공이 왜란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 물리치겠다는 굳은 의지에서 나온 힘이었지 목적은 아니었다. 임란이란 과정에서 충무공이라는 인간됨이 빛을 발한 것이다.
능력은 자질에서 나오고, 취향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 자질과 취향이 사회적 요구에 부합될 때 돋보이게 된다. 더욱이 그 자질과 능력 바탕이 도덕률에 부합될 때 빛은 발한다.


우리말에 “하던 지랄도 멍석 깔면 안 한다”라는 프로이드 심리학을 뺨칠 멋진 속담이 있다. 과정과 목적의 의미를 담고 있는 우리 조상의 지혜가 번득인다. 그렇다. 스스로 하고 있는 지랄이라는 과정도 멍석이라는 목적을 깔아버리면 어색해지고 흥을 잃어버린다.


나는 책 읽기를 즐긴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했다는 말은 아니다. 책을 즐겨 읽는다 함은 나 스스로 하는 짓(과정)인데, 공부라는 부담의 멍석(목적)이 깔리면 흥이 달아나 몸이 비틀린다. 공부라는 이름으로 치르는 시험은 언제나 내게 지옥이었다.
 고등학교 때 소설책 한 권을 시험을 위해 읽은 적이 있다. 이건 할머니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맛이 아니라 지루한 할아버지 잔소리 같은 고문이었다. 이렇게 스스로 알아서 하는 지랄이라는 “과정”의 재미와 멍석을 까는 “목적”이라는 부담에 대해 정리해보자. 

 

우주와 과정


우주는 어떤 목적을 향해 부단히 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이며, 해가 뜨고 지는 것이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듯, 4계절의 변화 또한 그저 변화의 과정일 뿐이다. 낮이 지나니 밤이 오듯, 봄이 가니 여름이 오고, 가을인 듯 겨울이 되는, 한치 어긋남이 없는, 이 반복(변화)의 연속 그 어디에도 목적은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완벽한 질서에 의해 운행되는 우주자체가 본질적으로 바르고(眞), 착하며(善), 아름답다(美)라는 것만으로도 그 과정은 신비롭다.


만약 우주에 목적이 있다면 수단이 동원될 것이요, 그 수단은 십중팔구 속성상 무리수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도 그러하다. 이렇게 우주가 목적을 갖지 않는 과정의 순수함일진대, 우주의 일부로서의 인간도 그 질서에 순응함으로써만이 편안함을 얻으리라는 것은 진리다. 그래서 과정에 충실한 사람은 무리수를 모른다. 


아이는 목적을 몰라 순수하다. 한발한발 천리길을 가는 사람과 걷지 않고 천리 길을 가는 사람 중 누가 겸손하고 오만한가는 분명해진다. 
인간은 타 동물과는 달라 목적설정을 선호하는 속성(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악의 유혹에 약하다. 분명 과정에 살 수만 있다면 이상적일텐데 정치쪽과 종교쪽으로 갈수록 다분히 목적지향적임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쪽 동네는 회칠한 무덤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나는 산다는 것이, 아니 내세가 있다면 영생까지도 과정으로 여겨지는데, 특히 종교 쪽에서 삶을 내세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쯤으로 취급, 천당 지옥으로 가르고, 순교가 미화되고 있다. 


육체적, 정신적 극기같은 종교적 행위도 억지로 가져보겠다는 욕심 같으니, 억지로 버리겠다는 행위와 똑같이 순리를 거역하는 무리수로 보인다. 그런데도 종교 쪽에서는 욕심을 악의 근원으로 규정, 불가에서는 “욕심을 버려라”, 아니 더 나아가 “욕심을 버리겠다는 그 욕심까지도 버려라” 라고 말하고, 성경에서도 내일 일은 내일로 족하다 했고,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했다.


그렇다. 목적은 욕심을 낳고, 욕심은 무리수를 낳고, 무리수는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 무리의 반대는 순리다. 무리는 거슬러 가는 것이고, 순리는 따르는 것이다. 물 흐르듯 따르는 순리, 거기에 악이 깃들 틈이 없다. 


발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거슬리며 오늘의 인간문명의 극치를 이룩해냈다. 그 극치의 결과가 과연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자연을 거슬리고, 하늘을 거슬리고, 인간성을 거슬러 올라 도달한 21세기 찬란한 문명의 결과가 과연 무엇인가? 바로 황폐화가 아닌가. 자연의 황폐화, 인간성의 황폐화 말고 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자연을 거슬리는 동안 자연은 철저히 황폐화되었고, 하늘을 거슬리는 동안 하늘은 인간을 버렸다. 오만방자, 자기 중심적 우리 인간은 이기심(Ego)으로 뭉쳐 이제 누구도 못 말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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