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 오늘 방문자 수: 17 전체: 98,676 )
서편제로 본 우리의 한풀이
yeodongwon

  

 서편제는 분명 한의 소리다. 창자에 소곡이 꽂히는 듯한 아픔의 소리다. 아니, 아픔을 달래는 소리다. 아니, 달래는 소리를 넘은 예술로 승화된 아름다움이다. 아니다.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소리다.


 한을 한으로 남기지 않고 지상에서 영원으로 끌어올린 종교에 가까운 소리다. 마치 흑인의 영가라는 영혼을 흔드는 재즈를 닮은 소리이듯한 이 판소리는 영혼이 토해내는 아픔을 이긴 소리다. 한을 모르고는, 한을 품어보지 못하고는 알 수 없는 소리다.


 그렇다. 우리는 한을 숙명처럼 품고 살아온 민족이기에 애간장을 녹이는 듯한 그 소리에 그렇게 취할 수가 있었다.


 분명 서편제는 우리의 영화다. 헐리우드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한을 가슴에 품어보지 못하고는 만들 수도 감상할 수도 없는 우리의 영화다. 이곳 서양에서 자란 우리 2세들은 그래서 이해가 불가능한 영화다.


 왜 눈이 멀어야 하고, 구걸로 떠돌아 다녀야 하는가를 모른다. 클래식과 팝송을 듣는 귀로는 애끓는 서편제의 가락을 이해 못한다. 


 왜 그렇게도 구성지게 넘겨야 하는가를, 하늘에 호소하듯 산골짝이 울리게 소리를 높였다가 갑자기 천근 무게로 가라앉을 듯 낮아지며 감치는 그 묘미의 소리를 모른다.


 한 많은 슬픈 사연을 통곡으로 토해내지 않고 판소리로 승화시켜 나오는 가락을 이해할 수가 없다.


 춘궁기에 먹어보는 나무뿌리의 그 씁쓸한 맛을 모르고는,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모르고는, 전쟁과 죽음과 헤어짐의 아픔을 모르고는, 권력의 노예, 반상의 차별, 칠거지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여인네들의 억울함을 모르고는, 풍요와 소비가 미덕이 되고, 쇼핑과 유행과 사치만을 아는 신세대 아이들은 모른다. 섹스와 폭력과 우주여행과 달콤한 사랑의 영화에 길들여진 오늘의 아이들은 모른다.


 한을 한이라 짧게 그리고 쉽게 말하지 말라. 한으로 표현된 예술만을 보고 한을 건방지게 논하지 말라. 행복한 자들의 넋두리처럼 들린다.


 한이 예술로 승화되기까지의 찢어지는 아픔과 슬픔과 눈물의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한을 말하지 말라. 결단코 그 세계를 모른다.


 한을 한으로 토해내 버리면 그것은 한이 아니라 통곡이고, 저항이고, 분노이다. 그러나 우리의 불쌍한 바닥 백성은 그 한과 눈물을 안으로 삭히고 소화시켜 다듬어 인고의 세월을 거쳐 판소리 예술로 승화시킨 천재의 놀이꾼이 된다.


 어쩌면 이 판소리는 비굴한 예술인지 모른다. 저항 한번 못해본,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에 한으로 맺힌 것을 서리서리 풀어낸 민초의 예술이다. 그러기에 더욱 애절한 소리다.


 "사람이 살면 몇 백 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 둥글둥글 사세" "아가동동 내 새끼야 젖 먹고 자거라 네 아버지 돈 벌려고 북만주 갔단다." 이하의 소리는 계속 "한 많은 미아리고개" "흥남부두"로 이어진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는 아무리 살펴봐도 화려한 밝은 색은 아니다. 슬픈 듯 맑고 깨끗한 비색이다. 그 흘러내린 선 또한 저항의 힘이나 예리한 날카로움이 아니라 여인의 가냘픈 허리춤의 부드러운 곡선이다. 순응의 선이다.


 우리 한옥의 선을 봐도 직선으로 된 양옥과는 달리 선녀의 치마폭 같은 하늘을 나는 듯한 곡선으로 표현되어 있듯 우리의 미학은 언제나 저항이 아니라 순응의 미학이다.


 새색시나 무당집과 궁궐에나 색깔이 보일 뿐 어디에도 색은 보이지 않았다. 배달민족의 옷은 흰색과 검정이고 초가지붕과 담장과 길은 온통 회색이고 벌거숭이 산 또한 푸르름이 보이지 않은 가난의 색이었다.


 이제 지금은 산천은 푸르름으로, 지붕은 양옥을 닮아 총천연색으로, 옷은 화사하다 못해 눈부시다.


 이제 가난의 한, 계급의 한은 민주자본사회라는 이름으로 사라지고 있긴 한데, 대신 그 자리에 돈의 위력이 갑질(甲質)이라는 탈을 쓰고 밉살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분단의 한이라는 비극은 민족의 숙제로 남아 있는 한 서편제로 본 한의 비극은 막을 내리지를 못하고 있다. 통일이여! 그래서도 어서 오라!


 그래서 이제 서편제 영화에서처럼 약물에 청산가루를 타서 일부러 눈을 멀게까지 해가며 창조해 내고자 하는 한의 예술을 접할 수 없다 해도 우리 민족에게서 한이라는 멍에가 영원히 사라져 주었으면..., 나는 진실로 어허 둥시리 춤을 추리라. 한은 슬픈 유산이지 결코 자랑일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