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kang39
캐나다 加人 강신봉
전 캐나다한인총연합회장, 전 토론토한인회장, 요크한국인학교 설립교장, 김치캐나다사장, 전 스코필드박사동상건립위원장,전 무궁화사랑모임창립회장, 토론토흥사단창립지부장, 대한민국국민훈장목련장, 역사문화원장

캐나다 문협회원.현 GTA한카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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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운(國運)은 하향길인가(5)
samkang39

 

(지난 호에 이어)
 (5)몽롱(朦朧)해진 국민의 안보의식 : 안보의식이란 곧 “나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의식”을 말한다. 모든 생물체의 세계에는 생존경쟁(生存競爭),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이 적용된다. 큰놈은 작은놈을 잡아먹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 기본법칙을 모르면 모든 생물체는 자연도태(自然淘汰)하게 되어있다. 이 또한 조물주의 법칙이다.


 이 법칙은 생물체에 적용되는 것이기에 우리 인간세계 속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개인이건 사회이건 국가이건 우리는 이 법칙 속에서 우리의 존재의식을 보존하기 위하여 안보의식을 갖고 노력하고 투쟁해야 하는 것이다. 쉬운 말로는 내집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어야 하고 침입해 들어오는 적을 막아내기 위하여 사주경계를 철저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에는 울타리를 잘 지키고 사주를 경계하겠다는 국민의식이, 이상하리 만큼, 아주 희박하게 변질되어 있다. 우리가 반만년 살면서 지켜온 자리, 이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어떻게 위험한 자리인가? 한반도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 소련이라는 강자들 틈에 끼어 있는 나라다. 강자들 틈에 끼어 있는 약자인 까닭에 우리나라는 반만년의 역사동안 무려 930여회의 침략을 받았고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침략을 받는 나라가 존재할 수 있는 철학은 침략의 나라와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부여한 생존의 법칙이 무엇이겠나? “사주경계요, 안보의식”이다.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이 약소국에게 이 두 가지 의식은 절대적이어야 한다. 아니면 먹히니까. 이미 수없이 경험하지 않았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소련이 땅덩어리가 크고 인구가 많아서 우리가 꼭 위험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부여된 사주경계의 법칙을 망각했을 때에 위험해 지는 것이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란 말이 있다. 전투를 할 때나 기업 경쟁을 할 때에 상대를 알고, 자기의 힘이나 능력을 잘 인식하고 있다면 상대방과 백번 싸워도 위험하지 않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적을 알고 자기를 알면 싸울 것이 아니라 그 답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 가지 계책을 명시하였다.


 첫째는 어떠한 계략을 써서 싸우지 않고 승리를 하는 것이 최선의 계책이라고 했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을 백전백승이라 하였다. 둘째로 적을 모르면서 자기의 힘만 내세워 싸우는 것은 십전오승(十戰五勝)이라고 했다. 어쩌면 이기고 어쩌면 진다는 말이다. 이런 싸움은 할 필요가 없는 싸움이다. 끝으로 적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면서 날뛰는 싸움은 곧 백전백패라 하였다. 문자 그대로 무식한 싸움이다. 과연 우리들과 이웃 나라인 일본 중국과의 관계는 어디쯤인가?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주적은 중국이나 일본이었다. 그러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것이 우리나라요 우리 민족이다. 먼저 일본을 보자. 1)일본은 한반도 보다 땅덩어리가 조금 크다. 2)일본의 인구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남북한 인구보다 곱절로 많다. 3)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리보다 먼저 신문명을 받아 들였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언뜻 보면 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이 더 많다. 우리와 일본, 우리와 중국을 대비하면서 생각을 해 보면 우리가 어떻게 처세를 해야 할 것인가 우리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다소의 답이 나온다. 


 일본 사람들은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다른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모른다. 그 잘 모르는 무엇이 곧 우리가 공부해야 할 과제이다. 첫째로 일본에는 국교(國敎)가 있다. 물론 일본에도 우리와 같은 불교나 기독교가 있다. 하지만 일본에는 일반 종교가 아닌 자기들만의 다른 믿음이 있다. 황실이나 국가에 공로가 큰 사람들을 신으로 모시는 야스쿠니 신사(神社) 참배라는 종교가 있다. 약 240만명의 이름을 적어 놓고 사당을 차려 거기에 절을 한다. 그것이 일본의 국혼(國魂)을 모셔 놓은 신사참배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특유의 국가신앙(國家信仰)인 것이다. 그렇기에 일본의 관료들이 신사참배를 하는 것에 한국이나 중국은 늘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역사적 상징인 사당이 필요하다고 “단군왕검사당”을 마련하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이를 우상이라 하여 반대함에 모든 계획이 무산되었다. 


 둘째로 일본에는 일왕이 있다. 그들은 이를 천황(天皇)이라 칭하고 일본국 통치의 구심점으로 존경과 명예를 집결시키고 있다. 제2차 대전 이후 맥아더 장군이 이 왕권제도를 폐기했어야 하는데 당시 일본 정부의 대신들은 결사코 이 황제 폐하를 방어하고 오히려 자기들이 처형당했다. 천황에 대한 충성심은 그렇게 절대적이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임금은 무조건 충성심의 대상이었다. 허나 해방 이후 민주주의 제도를 택함에 반만년 역사의 상징인 왕족을 폐기 하였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무조건 충성심을 발휘하던 대상을 상실하였다. 왕권 폐기는 그리 잘한 일 같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국가관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박약하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로 일본 국민들은 무사도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조선조 500여년 동안 유교사상이 지배하였다. 문(文)을 우선시 하고 무(武)를 경시하는 정치제도였다. 허나 일본은 애당초부터 무사도 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나라다. 소위 ‘사무라이 정신’은 일본 역사의 상징이다. 한 예로 우리나라에서는 역적질을 한 신하에게 임금이 사약을 내려 자진케 하였지만, 일본에서는 ‘일본도’ 칼을 던져주며 할복자살토록 하였다. 


 무사도 정신이 강한 민족은 어느 면에서는 잔인하다. 이렇게 일본 민족은 국가관에서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 우리 민족이 일본과 공존하려면 그네들의 그러한 특수성을 잘 인지하고 안보의식을 대비해 나가지 아니 한다면 우리는 언제고 그들의 하수에서 시달림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숙지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중국인을 생각해 보자. 첫째로 우리 민족은 오랜 동안 중국을 대국으로 섬겨왔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우리나라는 영토적으로나 인구적으로 너무나 작은 나라다. 또한 육지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모든 면에서 영향력을 받게 되어있다. 정신적이건 무력적이건 상대가 안 되는 입장이다. 


 둘째로는 오랜 동안 문화적으로도 지배를 받아왔다. 중국은 지금도 우리나라를 변방국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미국의 트럼프와 중국의 시진핑이 정상회담을 할 때에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한 것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로 중국은 툭하면 무대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호간에 경우를 따지기에 앞서 엄포를 놓고 협박을 하는 습성이 있는 나라다. 나당연합군을 했을 때의 소정방, 임진왜란 때의 이여송이 부린 행패, 그리고 오늘날 사드 문제를 놓고 중국에 있는 롯데 상품을 마구 때려 부수는 꼴을 보니, 성미에 안 맞으면 그렇게 무대포 짓을 하기가 일수이다.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역사상 중국이 우리나라를 도와 준 것은 별로 없다. 항상 자만심속에서 우리 민족을 내려다보고 시비를 걸어 왔다. 중국은 변방국에게는 실로 믿을 수가 없게 행동을 하는 나라다. 


 다시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생각으로 돌아가자. 이상에서 열거해 본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를 보다 깊이 있게 연구하고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운명이다. 큰 나라의 상황을 숙지하지 아니하고 함부로 처신을 한다면 우리의 앞날은 캄캄할 뿐이다. 


 오늘날 남북이 갈라져서 미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의 손바닥 위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점쳐지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스라엘 국민들 같이, 모슬렘 국가들에 둘러쌓여 있으면서, 강력한 호국의식을 발휘하는 국민이 될 수는 없을까?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저 막연하게나마, 안보의식이 몽롱해진 조국의 동포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릴 뿐이다. (2017.05.08)

 

 (본 칼럼은 본보 편집방향과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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