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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이간(叩馬而諫)
namsukpark

 

 참다운 ‘법조인(法曹人)’이 되기를 소원하는 바람을 담아 “법을 평민에게는 엄격히 적용하고 권세와 돈 있는 사람에게 적당히 적용하면, 천하의 모든 사람이 법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法行于賤, 而屈于貴, 天下將不服)”라고 황제에게 상소(上疏)를 올렸다던 송(宋)나라 소철(蘇轍)의 글을 새삼스레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고마이간(叩馬而諫)”은 ‘말고삐를 당기며 한사코 간(諫)하다’라는 뜻으로 《사기(史記)》 卷61 <백이열전(伯夷列傳)>에 나온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북해(北海)가에서 은거(隱居)하다가 서주(西周) 문왕(文王)의 소문을 듣고 나왔다. 마침 문왕(文王)이 죽고 아들 무왕(武王)이 문왕(文王)의 신주(神主)를 싣고 상(商)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하려고 나서던 참이었다. 백이와 숙제는 출정(出征)을 앞둔 무왕(武王)의 말고삐를 당기며 신하로서 왕을 시해(弑害)하는 것은 인(仁)이 아니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운동이나 예능에도 타고난 소질(素質)이 있듯이 공부도 예외일 순 없을 것이다. 맹자 모친께서 맹자를 가르치기 위해 세 번 이사를 하셨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아이가 맹자였기에 가능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도 한다.

 사(私)교육에 투자해도 수능 등급(等級)을 바꿀 수가 없다는 얘기다. 누구나 재능이라는 선물을 받고 태어난다. 열심히 갈고 가꾸지 않으면 값진 선물조차도 자신에게 의미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재능(才能)만을 믿지 말고 빛날 때까지 등급을 올리는 것은 본인만이 할 수 있다는 값진 말씀이다.

 

 

 

요즘은 문서 작성을 대부분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서 하는 시대다. 아예 말만 하면 알아서 척척 글을 써주는 앱까지 있다고 한다. 용불용설(用不用說)에 따라 글쓰기도 퇴화하는 법. 아무리 디지털 시대일지나 글씨는 개성을 표현하고 소통에 중요한 수단이라는 판단에서다.

 어떤 문장을 눈으로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글로 써보면 기억에 오래 남고 사고력(思考力)이 길러진다. 볼펜과 연필을 꾹꾹 눌러 가면서 얻을 인내심은 덤이다. 글쓰기는 학생들의 인생을 바꾼 좋은 기억으로 평생 남을 것이라고 믿어마지않는 우리들이다.

 연예인과 재벌 걱정이 하릴없다손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걱정이라고 한다지요. 죽(粥)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묘수(妙手)와 꼼수는 짐짓 한 끗 차이’인 줄 인식했으면 오죽이겠다. <있으면 행복하게, 없으면 자유롭게> 하지만, 삶의 무게는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어이 헤아릴 길이 없는가보다. “뭣이 중한디!”라고 힘줘가며 되묻지 마시길.

 ‘한 집 건너 한 집’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포화상태인 한국 내 치킨시장에 국민 음식으로 불리는 치킨 가격이 치솟은 가운데 소비자의 불신과 경계심을 키워 소비 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견해가 비등(飛騰)해지고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들 하지만 소비자들이 터무니없는 가격 인상에 민감해져도 아랑곳하려들지 않는다니 거참이다. 이래저래 덩달아 가며 신바람이 나겠지만 모쪼록 ‘소비자들의 인심(人心)을 얻지 못하면 결과는 보잘것없는 것이 아닐까?’하는 뉘시라 귀기울여주지 않을 우려를 해본다.

 무더운 여름철 큼지막하니 잘 익은 수박의 시원한 맛을 손사래 칠 순 없을 줄 안다. 하지만 호불호(好不好)가 엇갈려 누군 없어서 못 먹는다하는 얼큰한 맛에 코가 뻥 뚫리는 숙성시킨 흑산도 홍어(洪魚)의 진미는 순서에 따라 ‘일 물코, 이 날개, 삼 꼬리’라 부르고, 홍어의 애(肝)는 맛이 너무 좋아 번호도 안 붙인다하니 기회가 닿으면 시식해봐야겠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굴비를 천정에 매단 자린고비도 뜻하지 않게 일이 꼬일라치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투덜거리길 마다치 않는 우리들이다.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치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일 경우도 없진 않다. 돈키호테처럼 기사(騎士)라는 망상에 빠진 나머지 풍차를 거인(巨人)으로 착각해서 돌진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墮甑誰能顧 虛舟進所如 无涯身世事 有味聖賢書/ 髮短猶禁櫛 圓荒可廢鋤 萊衣幸無恙 何必問其餘” - ‘떡시루를 떨어뜨리고 누가 돌아보나 / 빈 배는 가는 곳으로 나아가네. / 한 몸의 일에는 끝이 없지만 / 성현(聖賢)의 글에는 맛이 있도다. / 머리털 짧아 외려 빗질은 금하고 / 정원이 황폐하여 호미질 폐할만하지 / 노래자의 효도로 다행히 탈이 없는데 / 굳이 그 나머지를 물어야 할까.’ - [손개(孫介)/南宋, <야좌우성(夜坐偶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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