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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필드를 만나다(6.끝)
leesangmook

 


 
(지난 호에 이어)
 그의 생일잔치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62년 3월 15일 저녁, 자그마치 2백여 명이나 된다. 한국인 친구, 서울에 거주하는 캐나다와 미국인 친구, 성경반 학생들, 그리고 유린보육원과 봉은보육원의 원아들이다.


 모여든 사람들을 보면 그의 삶이 투영된다. 한국인 친구들 중에는 흥국직업소년학교라는 사설학교에서 자원봉사 하던 대학생들도 있었다.


 학교를 갈 수 없는 3백여 명의 직업 소년들이 청량리 동사무소의 창고를 빌려 공부하는 것을 보고 스코필드는 당시 윤보선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곧 대통령의 방문이 이뤄졌고 금일봉은 학생들의 책상으로 바뀌었다.


 스코필드가 본 한국의 살길은 교육이었다. 캐나다와 미국의 지인들에게 애타게 헌금을 호소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헌금 중 50달러를 한 가난한 중학생의 입학금으로 대준 적도 있다. 그가 바로 나중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씨이다. 그 만이 아니다. 3.1운동 당시 한국은 더 암담했다. 민족지도자를 키워내려면 교육을 통해서라고 그는 믿었다. 


 이경지라는 여성은 이화학당을 나와 개성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배일사상이 있다고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녀를 동경에 유학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하지만 학비조달이 안 돼 상해에 가있다는 걸 안 것은 스코필드가 워싱턴을 방문하던 중이었다.


 한 교회에서 그는 ‘한국의 얼은 죽지 않았다’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한국이 독립하려면 앞장설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지도자를 육성하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호소에 청중들은 너도나도 지갑을 열었다. 


 모인 성금 2천 달러를 이경지에 송금해줬다. 그 돈으로 상해의 소주사범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고국에 돌아와 평생을 전쟁고아와 여성들의 교육에 헌신했다. 4.19 의거가 일어난 때만 해도 한국엔 10만 명의 고아들이 있었다. 


 유린보육원과 봉은보육원도 고아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봉은보육원은 이경지가 운영하고 있었다. 스코필드는 캐나다와 미국의 후원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보육원이 필요한 땅 3백 평을 구입하는데 5백 달러가 필요하오. 내가 모은 돈은 1백 달러요. 헌금을 보내주면 보육원에 닭장과 토끼장도 지을 수 있답니다.” 그의 편지를 받은 후원자들은 ‘스코필드 기금’에 기부금을 보냈다. 


 한국인들이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스코필드라면 중국인들이 잊을 수 없는 사람은 노먼 베쑨(Norman Bethune)이다. 중국에는 2년 정도 머물렀지만 중국 사람들치고 베쑨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에 대한 모택동의 추모사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중국 도처에 그의 동상을 세웠고 몬트리올에도 중국인들이 보낸 화강석 입상이 서 있다. 감사의 표시치곤 가히 대국다운 스케일이다. 캐나다정부도 그의 생가를 구입해서 기념관을 만들었다. 토론토 의대 교정에도 그의 동상이 있다. 


 1990년 그의 탄생 1백주년에는 중국과 캐나다에서 동시에 기념우표가 발행됐다. 온타리오의 그레이븐허스트에서 태어난 그는 토론토 의대를 나와 몬트리올 병원에서 일했다. 중국으로 건너간 것은 1938년 1월. 스코필드처럼 일본에 저항하는 중국 공산군을 돕기 위해서였다. 


 소련을 방문한 것은 그 이전인 1935년. 무상의료제도를 보고 캐나다로 돌아와 공산당에 가입했다. 중국에 도착해서도 모택동이 있는 연안까지는 4개월이 걸렸다. 촛불 하나 달랑 켜놓은 동굴 속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그로부터 약 2년간 베쑨은 최전방에 나가 부상병들을 치료했다. 심지어 O형인 자기 피를 뽑아 수혈을 해주기도 했다.


 그가 죽은 것은 부상병을 치료하다가 패혈증에 걸려서다. 국립묘지 격인 화북성 석가장의 혁명열사릉에 묻혔고 거대한 기념관이 세워졌다. 몬트리올에는 노먼 베쑨 소광장이 있다. 조각상도 거기에 서 있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 한 귀퉁이의 소광장(Square)이나 소공원(Parkette)에 스코필드의 이름을 붙이는 운동을 벌일 순 없을까. 토론토 동물원에 그의 동상이 있지만 너무 외져서 드는 생각이다. 몇 꼭지의 글을 마치며 소망의 불씨 하나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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