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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에서 만난 시인 최서림
leesangmook

 

그 여자 /최서림

 

 

숫기 없어 놓쳐버렸다
가을 하늘 아래 곧장 붉어지는 홍옥,
엉겅퀴 같은 가난한
伊西國 수렵군의 딸임에 틀림없다
꽃자주색 T 입고 그냥 떠난 그 여자,
죽기 전에 꼭 만나보고 싶은, 막무가내
친정에라도 불쑥 찾아들고 싶게 하는 그 여자,
이서국 돌칼로 헤집고 들어오는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늙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여자,
내 마음에 잠자는 돌칼이 노루피를 부르면
무작정 고향 버스를 타게 한다
그녀 살던 마을, 이서국 도읍지 백곡 지날 때면
가을 들판 위로 둥둥둥 이서국 시퍼런 북소리,
肋骨 굽은 골짜기마다
돌칼 가는 소리.

 

 

 

 작년 봄 페이스북에 입문한 후 여러 시인들을 만났다. 대면조사를 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만나지 않아도 의식의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SNS의 미덕이다. 


 최서림 시인이 페북에 참여한 것은 촛불집회가 시작된 가을 언저리다. 그는 1993년 월간 ‘현대시’로 데뷔했고, 현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변방의 내가 같은 잡지에 두어 번 시를 올릴 즈음 그의 시를 접하게 됐다. 


 인용한 시는 1995년 발간된 그의 첫시집 ‘伊西國으로 들어가다’에서 이다.


으레 첫 시집의 출처는 고향이다. 그의 첫 시집도 예외는 아니다. 왜 굳이 고향인가. 무엇보다 원초적 체험 때문이 아닐까.


 태어나서 눈에 처음 인식되는 색깔의 경이, 귀에 처음 울리는 소리의 떨림은 지워지지 않는 고향의 DNA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첫사랑의 화살이다. 그 화살의 전율도 거의 고향에서 발생한다.


 최서림의 고향인 경북 청도군엔 신라 초기 이서국(伊西國)이라는 부족국가가 있었단다. 삼국사기에 겨우 한 두 줄의 기록뿐이지만 부지기수의 고인돌도 남아 있고 엉뚱한 곳에서 청동비파검이 발굴되기도 한다. 


 최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伊西國에서였다. 1993년 ‘현대시’ 잡지에서 난데없는 국가의 이름이 등장하는 그의 시가 발표되고 그로 인해 서림의 이름조차 물망초가 되고 만 것이다. 


 첫시집은 간혹 열정의 시행착오를 통과한다. 아내도 나오지만 첫사랑도 나온다. 죽기 전에 꼭 만나고 싶다고 감히 선포하는 ‘그 여자’를 인용하는 것은 그래서다. 이름에만 머물던 그가 손을 내민 건 의외였다. 


 20년도 넘은 첫시집을 구해서 캐나다까지 보내준 배려는 황감하다. 작년 12월 서울의 지하철 사당역에 내 시가 부착됐을 때 일부러 찾아가 사진을 찍어 보내는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伊西國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는 광화문광장에 나간 것일까.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래서 한 번 만난 적도 없고 세계의 외딴 곳에 사는 나에게조차 사랑의 온기를 전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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