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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2) -던다스 스트리트(Dundas St.)
kwangchul

 

 고대인들은 지구가 평평한 원반과 같으며, 하늘은 구리로 만든 큰 종과 같은 모양으로 육지를 덮고 있고, 해는 동쪽바다에서 올라와 서쪽바다로 가라앉으며, 그 너머에 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있다고 믿었다. 

하여튼, ‘바다 너머 저 끝이 세상의 끝이다. 저 너머로 가면 못 돌아온다’고 생각하였다.
고대 유럽문명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발생하고 성장해왔다. 초기의 배는 선원들이 노를 저어서 가는 크기가 작은 형태였다. 노를 저어서 가는 배로는 육지로부터 크게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당연히 지중해를 벗어나서 대서양의 넓은 바다로 나가볼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저 너머에 죽음의 벼랑 땅끝이 있기 때문에 나갈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기존의 개념과는 다르게 지구는 둥글고 세상은 그다지 크지 않으며, 바다 서쪽끝에는 낭떠러지가 아닌 다른 대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콜롬버스, 그는 이태리 제노바공화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주로 스페인에서 활동한 해양탐험가이다. 
 지도제작 일을 하고 있던 그는 지구는 둥굴고 바다 서쪽 끝에는 낭떠러지가 아닌 다른 대륙, 인도나 중국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1492년 8월3일, 콜럼버스는 스페인 "가디스"를 떠나 대서양을 서쪽방향으로 항해하여 10월12일 지금의 바하마제도에 상륙하게 된다.
 

 

그는 오랜 기간 유럽인들에게는 위인이자 영웅적인 모험가로서 추앙되어 왔다. 따라서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대륙에 터전을 일군 신생국가들은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콜롬버스의 항해에 관한 신화를 발굴하고 재창조하는데 엄청난 공을 들이게 된다. 
 하지만 콜롬버스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학살자요, 침략자일 뿐이다. 그리고 그 거대하고 광대한 아메리카대륙을 개간, 개척, 개발하는데 필요한 노동력의 동원에는 인륜을 무시한 잔인한 노예제도가 도입됐다. 콜롬버스의 아메리카대륙 발견은 서글픈 "조종"의 서곡이었다.  
 

 토론토시를 동서남북으로 가르는 블루어 스트리트와 영 스트리트 외에도 던다스 스트리트는 토론토 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거리이름이다. 토론토시 동쪽 끝에 있는 킹스턴 로드에서 시작해 427하이웨이를 지나 미시사가시까지 장장 23KM를 잇는다. 

 

 2년 전, 그 거리이름이 문제가 되어 시의회에서 호칭을 변경하기로 결정하였다.
던다스 스트리트는 1742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대영제국 내무장관과 국방장관을 역임한 ‘헨리 던다스’경의 이름을 경칭하기 위하여 1793년 당시 ‘심코’ 총독에 의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당시는 미합중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대영제국의 영향권 밖에 있던 시대로 노예판매제도가 활성화되어 있던 시기다. 허나 영국본토에서는 노예판매제도를 폐지하자는 운동이 일던 때였다.

 

 당시 영국 내각의 중책을 맡고 있던 헨리 던다스는 표면상으로는 노예트레이드를 반대하는 것에 찬성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가능한 한 노예판매폐지를 지연시키려 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그와 연분이 있는 많은 지인들이 영국령 캐리비안에서 거대한 규모의 사탕수수밭 대농장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장의 노동자들은 흑인노예들이었는데 가능한 한 노예트레이드 폐지를 지연시킴으로써 설사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잡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기존 노예들이 자손을 낳게 함으로서 대물린 노예를 유지하는데 시간을 벌게 하자는 계획이었다. 

 

 

 이미 토론토시의회에서 던다스 스트리트 명칭을 변경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이지만 그에 대한 반대의견이 지난 시장보궐선거에서 뜨거운 감자로서 떠올랐었다. 
 토론토시는 이미 극심한 교통난과 주택부족, 치안불안 등 당장 해결하여야 할 문제가 첩첩산중이다. 
 

 

 그 외에도 가장 큰 문제는 거리이름 변경에 드는 비용이다. 던다스 거리 주위로는 대략 9만 7천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4,500개의 상업용 비즈니스가 있다. 그 중 600여 개는 던다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단지 거리이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비용이 860만 달러라고 한다. 그 정도의 비용을 들일 바에는 차라리 흑인커뮤니티나 비즈니스에 그만큼 투자하자는 의견도 있다.
 

2019년 6월21일 몬트리올시는 대영제국장군 ‘제프리 암허스트’(Jeffery Amherst)의 이름을 경칭하기 위하여 지어진 거리이름 ‘암허스트’를 ‘아타테컨’(Atateken)으로 변경하였다. 모우학(Mohawk) 인디언어로 형제, 자매라는 뜻이다. 
 

 

 제프리 암허스트 장군은 1760년 영불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프랑스인에게 호의적이였던 인디언의 인구를 감소시키기 위해 천연두에 전염된 담요를 인디안들에게 공급한 장군으로서 현대 세균전쟁을 18세기에 이미 이용했다. 
 860만 달러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던다스가 인종적인 편견으로 그의 생애동안 노예시장에서 한 짓을 염두에 둔다면, 그에 의해서 상처받은 흑인노예들과 그 후손들을 생각한다면 그 돈의 액수는 절대 크다 할 수 없다.

 

  잊지말라! 식민지주의자들은 지신들의 행동이 항상 옳다고 여겨서 노예를 부리고 사고 파는 것을 그들의 특권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노예제도가 폐지된 현재에도 백인우월주의(White Supremacy)로 남아 있다.
 던다스 거리이름은 변경되어야 한다. 비극의 탄생은 희극으로 막이 내려져야 한다. (2023년 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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