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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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자연의 모자이크를 따라서-봄을 기다리는 체르토사의 뒤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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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사이에 밀라노 기차역에 다섯 번을 들어섰다. 첫 번째만 남편과 함께였다. 그 후로는 나 혼자였다. 세 번째는, 얼떨결에 로마와 소렌토, 폼페이 등을 단체관광하고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밀라노 가리바르디 역에 내렸다. 

밀라노에서 한 교우를 만나 점심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건 진정 행운이었다. 나흘 만에 한국 사람을 만나 우리말로 이야기하며 밥과 국과 두부 반찬에 엽차까지 마시니 눈물이 날듯 즐거웠다. 그동안의 가슴 답답함과 피난열차같이 느린 기차여행의 지루함을 호소하면서 애인도 아닌 그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제발 내가 ‘Sono felice!(나는 행복해요!)’라고 맘껏 소리치게 해 주세요!” 외국생활을 오래 해온 그는 얼마든지 이해한다고 했고, 나는 몇 번 더 ‘Sono felice!’를 외쳤다. 우리말을 할 수 있는 그런 행복한 순간에 하필이면 이탈리어를 거듭 말하다니! 

미술가인 그 교우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쉴 수 있는 아름다운 수도원이 있다고 말했다. 안내해달라고 했더니 그곳에 들어간 수도사들은 살아선 나오지 못하는 곳이고, 원한다면 그곳에서 아주 쉴 수도 있다고 겁을 주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밀라노 남쪽으로 백리 못미처 티치노 강과 포 강이 만나는 지역의 파비아를 향해 버스를 탔다. 히포의 성자 아구스띤의 유골과 대리석 묘실을 세운 산 피에트로교회가 있는 파비아. ‘이탈리아의 옥스퍼드’로 불리는 대학도시인 파비아엔 유럽 3대 수도원의 하나인 체르토사 수도원(Certosa di Pavia)이 있다. 이 수도원은 밀라노 두오모를 건축한 비스콘티가 1396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다. 

1782년까지 약 사백년 동안 이어 온 수도원이 폐쇄된 후에도 시토회 수도승들이 1960년까지 머물렀다고 한다. 지금은 1866년에 지정된 국립기념관과 교회와 학교가 그 안에 있다. 세속에서 벗어난 이 봉쇄수도원은 정적, 가난, 명상의 삶을 열망하는 수도사들이 그리스도의 덕을 쌓으며 삶을 마친 집이다.

 체르토사 수도원의 정문은 활짝 열려있는데, 문 앞에 나지막한 두 개의 돌기둥 사이에 십자형 쇠사슬이 드리워져 있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이지만 한 번 작정하고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고행의 문임을 암시한다. 중문엔 쪽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보니 숨이 막히게 큰 영국식 궁전과 긴 회랑이 나오고 드넓은 마당의 푸른 잔디와 사철나무가 바람에 파도치는 듯 했다.

회랑 입구로부터 긴 복도를 따라 벽에 그린 라파엘로의 스승 피에드로 페루지노의 벽화가 발길을 붙든다. 파드레 에텐르노가 그를 둘러싼 열두 명의 아기 천사들의 찬양을 받으며 걸어 나오는 것 같다. 그 옆엔 성모님이 메시아를 낳게 되리라는 미카엘 천사의 메시지를 받는 장면이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모든 벽화들이 유난히 붉은 황토색을 띄고 있는 것은, 미리 구워 놓은 흙을 벽에 칠한 다음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테라코타 화법이기 때문이라고, 함께 간 미술가의 설명이다. 교회당 꼭대기에 십자가형의 종각이 고딕식으로 서 있다. 높이 매달린 수많은 원형의 창문들이 비바람 속에 서 있는 나그네를 향해 쏘아 보는 눈길 같아 으스스해진다. 더욱 놀란 것은 내 눈 높이에 한 뼘 직경의 원형 창살문 한 개와 마주 친 것. 그 작은 원형의 문은 수도사들의 식사를 넣어주던 창문이란다.

웅장한 건물을 피해 뒤뜰로 들어가 또 하나의 쪽문을 밀고 들어서니 두어 평 정도의 작은 마당이 나온다. 낙엽이 수북이 덮인 빈 마당, 옛날에 수도사들이 거닐던 곳이라고 한다. 수도사들이 잠자던 이층 건물에도 작은 창문들이 앙상한 갈잎나무 사이로 쓸쓸하게 박혀 있다. 마당을 한 바퀴 걸어 보며 그 외로운 창문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들은 여기서 서성거리며 봄을 기다렸으리라. 까마득히 먼 저편에서 손짓하는 절대고독을 이겨 내면서. 마음을 짓누르는 죄의식에서, 감옥 같은 고독에서 해방이 될 날을 기다렸겠지. 그리고 전쟁과 굶주림 속에 버려진 이들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를 간구했으리라. 

그들의 영혼은 문 앞의 쇠사슬을 풀고 이 수도원을 빠져나간 후에도 기도하고 있으리라. 아버지의 뜻을 따르며 살고자 하는 이들이 사회의 억압과 죄악에서 해방돼 마침내 사람답게 살날을 위해. 

이제 알 것 같다. 고독은 피하고 싶은 괴로운 것이 아니라, 높은 이의 뜻을 알며 고통을 이겨낸 후 누리는 기쁨임을. 그리고 진리의 볕을 쬐고자 하는 마음 없이 봄을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청록색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수도사들이 보내는 다정한 눈 빛 같다. 마치 정적의 터널을 빠져 나오듯 조용히 수도원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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