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yoon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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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맥켄지를 모르시나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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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산화한 선교사의 발자취를 찾아서


1.누가 이 맥켄지를 모르시나요?’

 한 운사가 지은 방송극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60년대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연속극 주제가였다. 우리 부부가 노바스코샤 여행을 하면서, 120년 전 조선 땅, 황해도 소래마을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젊은 나이에 소천한 윌리엄 존 맥켄지 목사의 생가를 찾느라 이 사람, 저 사람을 붙들고 ‘누가 이 맥켄지를 모르시나요?’ 묻고 돌아다닐 때 이 노래가 생각났다.

 

토론토의 유영식 교수님이 Elizabeth Mc Cully가 쓴 <한 알의 밀알>을 우리말로 옮기고, 주인공인 맥켄지를 그리며 여러 번 다녀온 길이건만 그의 생가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캔소해협을 건너 케이프 브레톤 섬에서 마블 마운틴으로 가는 시골길에  Mackenzie  Point Rd. 팻말이 번쩍 눈에 띄었다. 그 근방을 서성이다 드디어 맥킨지 선교사의 종손 남매를 차례로 만났다.

 

 (사진)맥켄지의 생가 터, 언덕에서 아이반과 유니스(Bras d'Or Lake with Ivan Mackenzie)/민석홍 장로와 브래도 강가에서 d'Or Lake)


 오솔길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보트 정비공장을 하는 사우어씨를 통해 맥켄지의 증손자 아이반씨를 만나게 해주었다. 클리브랜드 우체국에 들어가 ‘누가 이 맥켄지를 모르시나요?’ 하고 물었을 때, 텅 빈 시골 우체국 안에서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할머니 한 분이 반기며, 자기가 맥켄지의 증손녀 비벌리란다.

 

 즉 우리가 찾던 아이반의 친누나였다. 이런 우연과 행운이 또 있을까? 우리는 손을 마주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비벌리는 여러 해 전 은퇴했으나 그날따라 우체국 사정으로 임시로 나와 있었다는 것.

 

 우리는 27년 전 고향에 돌아온 아이반의 이층 통나무 집에서 환담을 나누고, 맥킨지 선교사의 생가터로 안내를 받았다.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체국에 다시 들렀더니, 비벌리는 Elizabeth Mc Cully가 쓴 맥켄지의 전기 <A Corn of Wheat>를 찾아 들고나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생전에 보물처럼 탐독하며 아끼다가 자기 결혼선물로 주셨다는 것. 책 장을 넘기기 조심스러울 정도로 나들나들해졌다. 

윌리엄 존 맥켄지(1861-1895)는 끈질기게도 청청한 소나무 같은 사람임에 틀림 없다. 푸른 솔잎 향기가 그가 태어난 브라도 호숫가의 솔밭 언덕에서, 또 그가 공부한 핼리팩스의 파인힐(Pine Hill) 신학교에서, 그리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고귀한 생을 마친 조선 황해도 소래마을(솔밭마을)에서 풍겨오는 듯했다.
 
 

 사도 바울이 선교여행 중에 마케도니아 사람이 ‘우리에게로 와 주시오’ 애원하는 환상을 따라 아시아를 포기하고 유럽으로 건너갔듯, 맥켄지는 ‘일본이나 중국이 아닌 미지의 땅 조선으로 가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따라 황해도 장연군 소래마을에서 오직 예수를 따라 가진 것 없이 살다간 사람이다. 
   
   그는 조선사람 옷을 입고 초가집에서 살며, 언더우드 박사 부인이 성탄선물로 보내준 서양음식 등을 손도 안 대고 마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줬다. 영양실조와 풍토병에 시달리다, 소래마을에서 채 2년이 안 되어 고귀한 삶을 마친 분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고통 가운데서도 서울에 있는 에비슨 박사에게 왕진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어머니와 친지들에게, 그리고 기포드 목사에게 그동안의 보고와 지원을 요청한 편지도 남겼는데, 이것이 그의 처절한 삶을 담은 유서처럼 되었다.   

 

 그러나, 그가 다닌 파인힐 신학교 채플에 붙여놓은 한국선교 파송 100주년기념 동판에는 맥켄지의 이름이 없다. 캐나다 장로교가 재정지원이 어려워 조선선교사를 파송하지 못 하자, 그는 독립 선교사(自備糧 자비량)로 자원해 떠났기 때문에 정식선교사에 들지 못한 것이다.
 
  잊혀진 맥켄지 선교사의 고향을 다시 방문할 계획에 우리는 마음이 부산하다. 척박한 조선 땅에 믿음의 씨앗을 심어준 그를 기리는 동판과 소래마을을 연상시키고 그의 생애를 기리는 소나무 34그루를 심어, 우리 후손들이 이곳에 찾아왔을 때 ‘누가 이 맥켄지를 모르시나요?’ 묻는 사람이 없어야 하므로, 길목에 안내표지판이라도 세워야겠다. 복음의 빚을 진 한국의 크리스찬들과 캐나다한국교회가 마땅히 보답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리라. 

 

  
  (사진)캐나다의 한국선교100주년기념동판앞에서 민석홍 장로

2. 파인힐의 트리오 선교사

  매킨지 선교사의 고향인 '뉴 스코틀랜드', 노바스코샤는 캐나다 땅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7개의 언덕이 있는 에딘버러성에 온 기분이었으며, 우리나라의 산천을 닮아 더 정답다. 하얀 돛단배들이 한가롭게 떠 있는 대서양 연안 소나무 언덕 위에 파인힐 신학교가 있다. 채플 벽면에 1998년에 제작해 붙여 놓은 한국선교 100주년 기념동판을 보고서야 ‘여기가 캐나다로구나’ 생각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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