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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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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친구와 뻐꾹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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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親舊)의 親자를 파자하면 ‘나무 위에 서서 보는 것.’ 즉 나무 위에서 지켜보아 주다가 어렵고 힘들 때 내게로 다가와 준다는 뜻이라 한다. 나무 위에서 지켜주는 친구라면 새(鳥)가 더 적격이 아닐까 상상해 본 것은 순전히 우리 집 뻐꾹 시계 때문이다. 


서울에서 대망의 올림픽대회가 개최되던 해, 친구 부부와 우리, 네 사람은 난생처음 구라파 여행으로 몹시 흥분해있었다. 토론토 한국여행사 ‘김’사장이 구라파 여행코스를 신설하고 선발팀으로 가게 된 것이다. 


현지 여행사 사장과 만나기로 한 암스테르담 공항엔 아무도 마중 나와 있지 않았다. 공항에서 합류하기로 한 다른 여행객도 전혀 없었다. 사장은 나타나지 않고 영어권이 아니니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불안하고 초조하여 툭 건드리면 눈물이 폭 쏟아질 지경이 되었다.


30여 분이 지나자 웬 한인남자 한 분이 텅 빈 청사로 들어섰다. 무조건 달려가 붙들었다. 그런데 말문도 열기 전에 “사장이 갑자기 출타해서 대신 오느라 늦었다”며 거듭 사과하는 것이었다. 와 준 것만도 감지덕지 구세주 같았다. 


독일 ‘뒤스버그’ 호텔에서 자고 난 다음날 그가 밝힌 자초지종을 듣고는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바로 독일 ‘유로파여행사’ ‘조’사장이었다. 뉴욕 손님 30여 명이 같은 기간에 열리는 서울올림픽 관광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며 며칠 전에 예약취소를 하였다 한다. 


4명으로는 그룹여행을 할 수 없고, 적당히 변상해서 돌려 보내려 했는데 막상 만나 보니 왜인지 친구가 되고 싶더라는 것이다. 아마도 너무 순진하고 가련해서였을 것이라며 웃었지만 분명한 것은 ‘김’사장의 바람 넣기만 아니었다면 구라파 여행이란 생각조차도 못했을 성품들이라는 사실이다. 


자기 봉고차에 식료품과 취사도구를 싣고 와서 여행 스케줄을 다시 짰다. 새벽6시에 기상하여 아침, 점심은 간략하게, 저녁만은 디너쇼나 전통쇼를 보면서 즐기기로 하였다. 수가 적어 기동력이 빠르고 현장 가이드를 구하기가 용이할뿐더러 관광지 입장이 아주 쉬웠다. 


될수록 많은 곳을 보여주겠다며 봄베이니 카타콤. 같은 보통 여정엔 없는 유적을 찾기도 하고, 큰 차로는 어림도 없는 산장호텔에서 청정한 숲속 공기를 마시며 민속풍경과 인심을 피부로 경험할 수 있었다. 


‘조’사장은 서라벌예대 연극과 출신으로 한때 자신이 주연한 ‘연산군’ 연극에서 폭군 연산의 대사를 큰 소리로 암송하기도 하고, 경유지의 민속노래를 들려주기도 하면서 가족처럼 즐겁게 안내해 주었다. 


뻐꾹시계를 살 수 있었던 것도 스위스 산골에 있는 시계 장인의 작업장을 직접 찾을 수 있은 때문이었다. 스위스 정밀공업은 얼마나 정교한지 독일 장인이 머리카락 1미리를 50등분한다면 스위스 장인은 잘린 머리카락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며 기염을 토하였다. 


기념으로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오두막집에 시, 분, 노래, 3개의 무쇠 솔방울 추가 달린 뻐꾹시계를 샀다. 30분에 뻐꾹~ 한번, 시간마다 시간수대로 뻐꾹~ 뻐꾹~ 울었다. 뻐꾹새가 톡 튀어나와 머리를 드는 동시에 앞마당이 돌아가며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산동네 어린이들이 손잡고 요들송을 부른다. 


여행이 끝났을 때 우리는 피곤한 중에도 여행의 충족감으로 생기가 넘쳐 흘렀지만 12일간이나 거친 길을 혼자 운전하며 안내역까지 도맡았던 ‘조’사장의 얼굴에선 비지땀이 흘렀다. 


금전적 손해는 말해 무엇하랴. ‘조’사장의 희생적 우정을 시작으로 거의 10여 차례의 구라파 여행을 하였다. 골샌님 같은 외곬의 우리 눈을 크게 떠서 보다 넓은 세계로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한 세계 문화와 문명의 깊이와 넓이와 길이를 탐사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뻐꾹시계 소리는 집안에 즐거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자칫 나태해지기 쉬운 일상에 시간 맞추어 몸과 마음을 다잡아주는 좋은 지킴이가 되어왔다.


 영어 FRIEND(친구)를 파자하면 Free 자유로울 수 있고, Remember 언제나 기억에 남으며, Idea 항상 생각할 수 있고, Enjoy 같이 있으면 즐거우며, Need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고, Defend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고귀한 존재라는 뜻이라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힘들 때, 위기의 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같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다. 나무 위에서 보다가 위기를 경고해주는 친구의 효율성을 달아본다. 새해들어 많은 단체들의 회장 선거가 게시되었다. 이합집산과 배신의 잡음이 없는 공정한 선거가 되기를 기원하다가 과연 ‘친구란 무엇인가’ 새삼스런 상념에 빠져든다.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잠언 한 절이 뇌리를 스친다.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많은 친구란 어떤 친구일까. 나무 위 새떼들은 공포 한방에도 제 먼저 달아난다는 것을 떠올리다가 문득 깨달았다. 수가 많다고 다 참 친구는 아니라는 것. 사랑이 끊이지 않고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그가 바로 참 형제보다 친밀한 어떤 친구라는 것을 알았다. 


 뻐꾹~. 뻐꾹시계가 운다. ‘때’를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로운 친구가 되라 한다. 사랑의 참 친구가 되라 한다. 나무에 달려서 한결같이 지켜주는 그 친구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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