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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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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변경선 동과 서(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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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이게 시련기야. 내가 굳건히 서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뚫고 나가지 않으면 나는 물론이고 내 가족은 한데 엉켜서 쓰러지고 말 것이다.” 


물위에 떠있는 빨간 찌가 크게 흔들렸다. 엉뚱한 생각들에 한참 몰입해 있었나 보다. 


“어디서 오셨지요?” 낚싯대주인이 말을 걸어왔다. 


반소매 면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밀짚모자를 푹 눌러쓴 건장한 체격이었다. 한 오십 정도 되었을까 사무실형의 중후한 인상이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아. 한국 사람을 여기서 친히 보다니 놀랍습니다.”


 한국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어떤 이유로 한국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놀랍게도 그는 6.25동란과 현재 한국정세, 그리고 36년간의 일제 침략과 광복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아빠가 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며 아주 흥미롭게 들어 주었다. 


“한국의 ‘엘리뜨’ 이군요.”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말했다. 


“더 많은 인재들이 와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여러 나라들이 도와주지만 스스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근처에 사는 사람이라고만 자기소개를 한 이 낚시꾼이 누구인지 아직도 모르지만 내 나라가 있어 고맙고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공부하는 목적과 보람이 인생행로에 밝고 분명하게 비쳐오던 감격의 순간이었다. 나의 조국은 나와 절대 불가분의 철옹성임을 가슴 깊이 각인하였다. 

 

토양의 차이 


6월 초에 ‘낸 시’는 둘째 아들 ‘그레고리’를 출산하였다. 선수는 닥터 ‘쏭’께 빼앗겼지만 자기네도 두 아들이 있다며 웃음 가득 자랑하였다. 그저 ‘현’ 때문에 ‘수지’가 힘들어 하는 줄 안 그들은 농장피크닉에 온 가족을 초대하였다. 이번에는 엉거주춤한 메뚜기차를 운전하며 뒤 따라갔다. 


지난 5월에 한번 다녀갔다는 농장은 깨끗하였다. 200에이커의 넓은 땅이 연두색 풀 냄새를 내뿜으며 끝간 데를 모르게 펼쳐 있었다.


‘제프리’와 ‘영’은 무얼 하는지 가끔 떠들고 웃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오고 ‘숙’과 ‘낸 시’는 애기를 돌보느라 침실과 거실을 들락거렸다. 밖에서 바비큐를 하여 부엌의 식탁에 둘러앉아 맥주와 콜라를 마시며 이야기에 꽃을 피웠다.


 ‘게일’은 무녀 독남. ‘쏭’과 똑같은 처지였다. 작고하신 아버님은 치과의사였고, 어머님이 홀로 근처에 사실뿐 친척도 별로 없었다. 


버펄로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네소타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친 후 내과전문의로 남아 있었다. 해군성지원연구프로젝트, 호흡 순환계생리연구를 위해 닥터 ‘팔 히’와 닥터 ‘라 안’이 버펄로로 불러왔고 한국에서 닥터 ‘쏭’을 불러온 것이다. 


'게일‘이 닥터 ‘쏭’을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낸 시’에게 여러 번 들었다. 처음 버펄로에 왔을 때 그의 집에서 거의 한달 간이나 지냈던 일을 떠올리면 빈 말은 아니었다. ‘쏭’이 동생 같다고 주위에서 놀리기도 하지만 둘은 오히려 그런 평을 즐기면서 잘 지냈다. 


닥터 ‘게일’은 8월말에 ‘벌티모어’로 이사를 갈 계획이다. ‘존스 홉킨스(JOHNS HOPKINS) 의과대학에 조교수로 부임하기 때문이다. ‘쏭’도 함께 갈 수 있는 분야이며 위치였다. 같은 의사로서 함께 연구를 하였지만 그는 ‘존스 홉킨스’에 갈 수 있고 자신은 뒤처지는 서러움이 잠시 밀려왔다. 


절대로 민족적 열등감은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이 땅은 그들의 나라이고 나는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는 사람. 아니면 언제까지나 의붓자식의 신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약간 비감해지는 기분이었다. 


능력이 같고 기회가 균등한데 ‘신(神)앞에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는 제한된 땅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인디언들을 없애고 노예들을 잡아다 일군 나라, 아직도 그들의 흘린 눈물과 한숨이 곳곳에서 요동치며 충돌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바로 백악관 뒤 블록에서도 폭발물이 터지고 화재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의 요구를 현세의 미국인들이 다 갚아줄 수야 없지만 미국인들은 지금 과거에 그들 조상이 저지른 모든 불의를 되받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었다. 


결코 융합할 수 없는 종족들을 단지 힘을 얻기 위해 끌어들인 그들은 그 힘의 괴악한 역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두뇌를 빌리는 이 차별대우의 보상이 뒷날 또 어떤 역행으로 나타날지 누가 아는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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