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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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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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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그런데 자동이 아니라서 호되게 혼을 내준 기계가 이 집안에 버젓이 있었다. 자동제빙이 되지 않는 냉장고는 석 주일쯤 지나면 벌써 냉장고의 맨 위 냉동고(Freezer)에 얼음이 하얗게 덮이고 안에도 얼음이 차서 점점 저장면적이 좁아지게 된다. 나중에는 두껍게 낀 얼음이 제빙제의 효력을 차단해서 식품을 넣어도 얼지 않고 물이 뚝뚝 흐르거나 곧 상하게 되곤 했다.


 이사하고 한 달쯤 지나면서 매일같이 저걸 좀 어떻게 할 수 없냐고 짜증을 냈지만 그때마다 대답은 쉬웠다. 


 “놔 둬. 내가 언제 시간 내서 ‘디 프로스트’ 할게. 아마 얼음을 살살 떼어내야 할 걸.”


 하지만 나중에는 위 칸의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을 만큼 얼음이 두껍게 끼게 되어버렸다. 기다리다 못한 ‘숙’은 화가 치밀었다. 바쁘니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냉장고문을 열었다 닫았다 해야 되는 입장에선 비죽이 열려있는 냉동고문을 그대로 볼 수만은 없었다.


 ‘나라도 해야지 저 꼴은 정말 더 못 참겠어.’ 냉장고를 끄고 망치와 칼을 가져다가 바깥 위쪽부분에 있는 얼음부터 살살 뚜드려 깼다. 반드르르하게 윤이 나도록 얼어붙은 얼음은 웬만큼 살살해가지고는 깨어지지도 안았다. 


 사실 이 때까지 냉장고의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몰랐다. 물론 위는 가스로 차게 해서 그 찬 기운이 밑으로 작용하여 냉장이 된다는 상식이 전부였다. 


 반시간 쯤 걸려서 얇은 벽쪽 얼음을 대강 떼어낸 후 천장 한복판에 있는 두꺼운 얼음에 칼끝을 대고 망치로 두드렸다. 톡톡 튕겨 나가던 칼끝이 한 곳에 꽂힌다고 느낀 순간 피-익~. 하더니 하얀 가스가 분수처럼 솟는 게 아닌가. 


 혼비백산하여 얼른 냉장고의 전기코드를 잡아 뽑고 리빙룸에 앉아 놀고 있는 ‘영’의 손을 움켜잡고 밖으로 내달렸다. 


 옆집에 가서 ‘훈’에게 전화를 거는 ‘숙’의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덜덜 떨리고 목소리는 잦아들어서 잘 안 나오는데 그때도 전화를 처음 받은 사람은 ‘게일’이었다. 


 “‘수지’ 별로 위험한 가스는 아니니까 놀라지 말고 아이를 데리고 밖에서 기다려요. 아파트 사무실에 들러서 공원을 한사람 데리고 가도록 할 테니까요.”  ‘게일’은 낮은 음성으로 차근차근 이르더니 전화를 끊었다. 


 어떠한 경우이던 환자에게 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노련한 의사의 품위가 몸에 배어 있었다. ‘훈’이 오기 전에 옆집 여인의 전화를 받고 공원들이 서넛 먼저 와서 둘러보더니 큰 사고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하였다.


 “다음부터는 칼로 얼음을 뜯지 말고 큰 그릇에 뜨거운 물을 담아서 저 속에 넣어두도록 하세요. 물이 식으면 다시 뜨거운 물로 갈아주고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그날로 그들은 터진 냉장고를 실어가더니 다른 것과 바꾸어 주었다. 


 그 다음달 초에 집세를 내러갔던 ‘훈’이 잔뜩 기분이 나빠서 돌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 집세가 115불인데 80불의 냉장고 변상을 했으니 좋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 돈이면 새것 하나 살 수도 있겠다고 항의했더니 냉장고에선 위 콤파트먼트가 주니까 그렇다고 하더란다. 


 “하하하 80불짜리 공부를 했나? 혼나긴 천불어치도 더 혼이 났는데.” 미안해서 할 말을 못 찾던 ‘숙’이 어울리지 않게 큰 소리로 웃었다. 


 “그만하길 다행이야.” 할 수 없이 ‘훈’도 따라 웃었다. 집에 두고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건 없건 미국생활은 참으로 바쁘고 피곤한 가운데 조금씩 조금씩 적응되어 갔다. 


 엄마 이발사


 땀을 많이 흘리던 여름이 가고 날씨가 차츰 서늘해지면서 사람들의 모습은 마른 나뭇잎처럼 까슬까슬해 보였다. 이제 옷도 좀 따뜻한 걸로 갈아입고 외양도 다듬어야 될 때라고 피부로 느껴지는데 식구들의 모습은 그렇지가 못했다.


 제일 눈에 거슬리는 게 ‘영’의 귀밑까지 내려온 긴 머리였다. 한국을 떠나온 지 벌써 여러 달 지난 ‘영’의 머리는 자랄대로 자라서 눈을 찌를 지경이었다. 이발소이던 미장원이던 모두 예약제로 되어 있는 이곳이니 아무 때나 찾아갈 수도 없는데다 차가 없으니 갈 수도 없었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집에서 애들 머리를 깎는다는 미시스 ‘황’의 말을 듣고 이발 기계 한 세트를 사들고 왔다.

목욕탕에 의자를 놓고 앉힌 후 이불시트를 두르고 처음 이발을 하던 날은 장장 두 시간의 대판 씨름이었다. 


 전기 이발기계가 부~웅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영’의 머리는 무서워서 이리 도망가고 저리 흔들고 그러다가는 10분도 못돼서 그만하자고 칭얼거렸다.  한번 뜯어먹은 머리카락을 옆머리와 고르게 하려면 자를 수밖에 없고 층이 지는 머리를 다듬으려고 자꾸 자꾸 깎다보니 꼭대기에만 머리카락이 남았다. 


 도망치는 것을 붙잡고 어르고 달래고, 머리는 마음먹은 대로 예쁘게 되지 않고 나중에는 등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허리가 아파서 더 이상 할 수없는 지경이 되었을 때 아빠가 돌아왔다. 


 “아니! 꼭 솥뚜껑 씌어놓은 것 같잖아.” ‘영’은 그만 와-앙하니 울음보를 터뜨렸다. 엄마한테 받은 구박이 서러운데 머리까지 그 지경으로 해놨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슬플까. 미안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몰려오자 ‘숙’의 눈에서도 눈물이 줄줄 흘렀다. 


 미국생활은 고도로 발달된 기계문명 덕분에 모든 것이 편하고 쉬운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 기계를 움직이는 내 손은 수만리 바다건너에서 날아온 작은 손. 지극히 연약한 손인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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