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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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마노구(色魔老狗)(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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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에 이어)
할아버지한테는 돈을 타내려 할 때나 잘 해드리는 척하지, 그렇지 않을 땐 진지도 제대로 해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엔 살던 집을 할머니한테 내어주고 할아버지가 다시 우리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런데 그 즈음 우리 집에 할머니 한 분이 부엌일을 거들어 주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그 할머니와 또 같이 사셨다. 그때 작은 엄마하고 명순 언니가(고모 딸이 집에서 살림을 도와줬다.) 그 할머니한테 할아버지가 ‘잠자리는 제대로 하시느냐’고 농 삼아 하던 얘기가 생각난다. 


나야 중학교를 들어가기 전후의 나이였으니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고 작은 엄마하고 명순 언니가 노인들, 작은 엄마에게는 시아버지요, 명순 언니에게는 할아버지가 그 연세에 성생활을 하실 수가 있는지 재미있기도 궁금하였던가 보다.


 작은 엄마와 명순 언니가 그 할머니한테 그런 말을 물었음은 정식으로 맞아들인 할머니가 아니었기에 좀 가볍게 보는 마음도 있어 그런 일이 있었지 않나 싶다. 할아버지가 그 할머니하고는 오래 사시지 않고 다른 할머니를 맞아 들여 옆 동네로 집을 장만해서 나가서 사셨다.


 난 방학이 되면 더운 여름 지루하고 한가하기 짝이 없던 차에 할아버지가 사시는 집을 놀러 가곤 했다. 그러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밭에 나갔다 들어오셔 저녁밥을 지어 주시기도, 집에 아무도 계시지 않을 때엔 난 집안을 휘 한 바퀴 돌기도하고 부엌을 들어가 가마솥을 열어 보면 찐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가 그릇에 담겨 솥 안에 놓여 있기도 했다. 


 새삼 돌아보니 그때 할아버지의 연세가 60전 후로 계산이 된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나보고 할머니, 남편보고 할아버지라고 할 나이에 혼자되어 성생활과 무관하게 살 수 있느냐고 반문해 본다면 두 가지 얘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남편 나이로 본다면 자식 눈치 크게 보지 않고 우리 할아버지처럼 할 수 있겠다 하는 얘기다. 여자인 내 나이로 본다면 경제력, 즉 혼자서도 살 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지금 역시도 그때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10대, 20대, 30대, 40대까지도 생각이나 이해할 수 없었던 환갑, 진갑 지난 노인이 성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고 예전처럼 묻는다면 남자는 검부러기만 잡을 수 있어도 성생활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내가 결혼 초였던 30대 초반이었다. 옆집에 새댁이 하는 얘기가 건너 방에 세를 들어 살던 할아버지가 새로 만난 할머니와 부부관계를 하신다는데 이해가 가느냐고 어처구니가 없고 우스워 죽겠다는 듯 옆집 새댁과 난 이해도 못하고 그냥 웃기만 했었다. 


 그 후 몇 년이 흘렀을 즈음 우리 집 이층에 세를 들어 살던 어린 새댁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새댁이 하는 얘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새댁은 아이를 하나 낳아 기르면서 중풍을 맞아 몸이 불편한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었다. 그 할아버지는 지팡이가 걸린 오른 팔은 힘없이 배 위로 올려놓고 왼팔은 이층에서 난간을 잡고 불편한 몸을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려오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60을 넘기셨을 그 연세에 수족도 원활하게 쓰지 못하시는 분이 성생활을 하실 것이라고 누가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시어머니도 계신다고 했는데 할아버지하고는 같이 살지 않으셨다. 


 어느 날 그 새댁이 하는 얘기가 시아버지 진지를 드리려고 방문을 연 순간 너무 놀랐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성기를 내놓고 주무르고 계시더란 것이었다. 새댁은 기겁을 해서 남편에게 그 얘기를 했고, 그 후로는 시아버지에게 목욕은 물론이요 식사도 새댁의 남편이 도맡아서 했다고 한다. 


 내가 그 얘기를 들었을 때가 30대 후반이었으니 나도 물론 젊었고, 할아버지는 말대로 늙고 볼품없는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어느덧 우리가 그 나이쯤이 되고 보니, 예전에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고 그냥 나이만 좀 먹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때의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도 역시 우리와 똑같았을 것이란 얘기가 된다. 


 인생은 다 살아봐야 알고 그 세대, 그 나이쯤 되어야 그 나이만큼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어린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혼인 전에도 나이든 아줌마, 아저씨도 엄청 멀게 느껴졌었다. 그러니 할아버지 할머니 하면 그야말로 ‘퇴물’ 쯤으로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할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을 것 같고 할머니들조차도 60넘어 70이 된 할머니도 잠자리가 하고 싶더란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가는 얘기였다. 


 우리네 유행어로 ‘형광등’이란 얘기가 있었다. 그것은 남이 얘기할 때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나중에야 알아듣는 사람을 일컬어 형광등이라고 비웃어 주기도 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 역시도 형광등에 속했던 여자였다. 그동안 살면서 나름대로는 정신연령도 높고 이해도 밝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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