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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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이 더 좋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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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과 친구는 묵을수록 좋고 물건은 새것이 좋다고 한다. 술이 묵을수록 좋은 것은 숙성이 잘 되어 맛이 순하고, 향기가 은은하며, 마시고 난 다음 뒤끝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또한 오래된 친구가 좋다 함은 이미 친구를 오래 사귈 정도가 되면 서로 마음이 맞고 통해서 서로의 성격이나 취향도 알고 있어 얘기하기 편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그만큼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물건이 새 것이 좋다 함은 물건 자체가 새 것이니 좋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새 것을 쓸 때 마음이 새롭기 때문이다. 마음, 기분이 새롭다 함은 마치 집안 공기가 답답하다 싶을 때 창문을 열면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하고 단 공기를 마실 때와 다르지 않다. 그 단맛 또한 창문을 살짝 열었을 때 들어오는 공기의 맛과 문 전체를 열었을 때 들어오는 공기와 아예 밖으로 나가서 마시는 공기의 느낌도 다를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가을걷이를 끝내고 들판에 서있을 때 느껴지는 황량함이나, 모를 심고 나서 바라보는 기분과, 벼가 무럭무럭 자랄 때, 곡식이 익어갈 때, 추수할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이 각기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런 비유를 들자면 수도 없겠지만 물건을 새 것을 쓸 때는 우선 그 마음, 느낌이 물건에 따라 다르며 그 새로운 느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엄마가 예쁜 분홍색 이불을 새로 장만해 놓고 덮지를 않아 나는 며칠을 뜸을 들이다가 내가 그 이불을 덮으면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선뜻 내어 주시어 폭신하고 따뜻하게 덮고 자며 며칠 지나 엄마가 도로 달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 했던 적이 있었다. 


 대학교 때는 방에 가구들을 수시로 바꾸며 새로운 기분에 살려고 변덕쟁이가 되기도 하였다. 집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꾸기는 쉽지 않고, 나는 나 필요한대로 살림을 장만했던 터여서 심심하고 새로운 것이 없으면 이 궁리 저 궁리하다가, 방안 분위기라도 바꾸어 볼까 하는 마음이 일기 시작하면 밤 몇 시가 되든 상관 않고 살림을 이리 저리 놓아 보며 극성을 부리기도 하였다. 


 내 방엔 살림이 꽤나 많아 책상 책장 화장대 전축 반닫이 등나무 의자 두 개와 탁자, 여름이면 돗자리까지. 안방을 나 혼자 쓰기도 했지만 겉치레보다 내면의 멋이나, 안에서의 여자다움, 생활 속에서 새록새록 피어나는 즐거움을 찾느라 그랬을 것이다. 


 언니와 동생은 겉모양은 꽤나 신경을 써도 집안의 살림이나 청소는 별로 하지 않았다. 난 그런 언니와 동생이 마음에 들지 않기도, 똑 같은 분위기 속에서는 너무 따분하다 싶으면, 방의 가구 바꾸는 것으로 싫증이 나면 안방과 마루까지 도배를 나 혼자 하기도 하였다. 


 오죽해야 낮잠을 자더라도 방을 깨끗이 치우고 요를 다시 깔고 공주처럼 자곤 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 갔다 올 시간이면 마루에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그러면 그 시간에 낮잠도 자고 싶기도, 그 시간을 그렇게 흘려버리기 아까워 한복을 입고 밥상을 내다 놓고 책을 보다가 엎드려 잠을 자곤 했다. 그러는 사이 해가 뉘엿뉘엿 기울면 그제야 한복을 벗고 하루 해가 기울어짐을 아쉬워하며 저녁을 맞곤 했다. 


 가을이면 새빨간 홍옥을 까만 턱이 있는 도자기처럼 생긴 그릇에 수북하게 담아 놓고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와서 누구라도 내 방에 들어왔다가 나간 흔적이라도 보이면 난리 법석을 부리곤 하였으니 그 별난 성격은 고모들까지도 유난스럽다고 입을 모으시기도, 나를 나 하는 대로 인정을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별스러웠기에 지금도 미안한 추억이 한 가지 있다. 


 고종 사촌 오빠가 결혼을 해서 살림을 났는데 짐을 풀고 며칠 지나지 않아 고모 두 분과 엄마 나 이렇게 그 집에 모이게 되었다. 고모님들이 “너 이런 거 잘 하지? 언니 찻장 좀 정리해 줘라”하시는 거였다. 그 즈음엔 결혼을 하려면 대부분 장롱과 화장대 차단스는 기본이어서 그 차단스 안에 그릇들을 나보고 예쁘게 넣어보라는 것이었다.


 올케언니가 나중에 바꾸기야 했겠지만 언니가 워낙 무던한 사람이어서 그렇지 따지기 좋아하고 까다로운 여자 같았으면 언짢은 기색이라도 보였으련만 웃으면서 나보고 예쁘게 정리 좀 해달라고 하던 언니 모습이 잊혀 지지 않는다. 


 그 후 결혼을 해서 살면서 살림을 이리 저리 옮기다 시큰둥해지면 작은 부엌살림 하나라도 사야 마음이 시들지 않고 새로운 기분에 젖어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살림 정도 사는 것 가지고 양이 차지를 않고 마음속에서 바글바글 올라오는 욕망을 채울 길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 주기가 4, 5년은 되지 싶다. 그러면 다시 또 새 집이나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끈질기게 나를 쫓아다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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