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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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추(老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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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한 번은 대학교 3학년 때 편입을 해서 남편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때였다. 그런데 1학년 신입생 중에 남편을 노골적으로 따라다니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런 사정을 아는 우리 과 여학생이 내게 그냥 두고 볼 것이냐면서 따끔하게 충고 한 마디쯤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더 못마땅하고 불안하게 보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난 그 여학생에게 한 마디 말도 한 적이 없고 지금 생각해도 질투 같은 것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은 그 여학생이 나보다 더 예쁘다, 못하다 하는 그런 외형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경우 선택권, 결정권은 남자한테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상대가 현실적으로 눈앞에 있는 두 명의 여자, 혹은 대학 내에서 볼 수 있는 여자들을 물망에 올린다 해도 그것은 남편의 권한이요, 남편 자신도 마음 가는 대로 할 수밖에 없겠다고 보았다. 내가 옆에서 나선다고 해봐야 그 남자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없기에 쓸 데 없는데 신경 쓰고 싶지 않았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언젠가도 난 친구와 도서관을 올라가고 있었고 그들은 나오다가, 남편과 그 아이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친구도 옆에 있는데 남편의 팔짱을 끼는 것을 보기도 하였으나 시샘하는 질투 같은 감정도 일지 않았던 것 같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남편이 야구장을 간 것을 알고는 그 여학생이 야구장까지 남편을 찾아가기도, 밤늦게 전화를 해서 불러내기도 했었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과연 남자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흐를까 볼만하기도 하겠네 하는 생각은 했었다. 


 그 후 몇 번 그 아이의 소식을 듣기도 했지만 남편도 더 이상 그 애에 관해 언급도 나 역시 물어본 것 같지 않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나도 옷 꽤나 차려 입고 미니스커트도 뒤지지 않게 입었다 싶었는데, 그녀와 난 거의 2, 3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음에도 확실히 나이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예쁘지도 않은 얼굴이다 싶었어도 나보다 치마 길이가 더 짧기 때문이었는지 그 애가 더 생기발랄해 보였다. 또한 난 내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다 싶었는데 그 애는 무척이나 적극적이었다. 


 난 한 번도 남편에게 그 애에 대한 감정이나 어느 만큼의 사이였느냐고 물어 본 것 같지도 않다. 마음을 졸이고 끓이며 그리했던 것이 아니고 철저하게 내 감정의 소관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즈음이었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여배우와 감독 사이에 신인 젊은 여배우의 염문설이 끼어 들었다. 끝내는 그 젊은 배우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둘이나 낳았다는 소문이 현실로 받아들여질 즈음 나이든 여배우의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내가 어린 시절엔 그토록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게 보이던 그 배우도 나이가 들었음을 영화 화면을 통해 보고 느끼며 아무리 절세미인이라 해도 ‘세월’ 앞에는 누가 따를 수 있겠나 싶어, 내가 남자라 해도 그 젊은 여배우한테 ‘마음’까지 빼앗길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이제야 이만큼 살고 보니 어찌 보면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기도, 신은 더더욱 공평한 것이 아닌가 싶어, 가는 세월대로 마음을 비우고 순리대로 살아감이 현명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 젊은 여배우가 다른 여자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가정을 깨도, 자식까지 낳고 사니 잠시나마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득의만만 함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 역시도 나이를 먹게 되고, 평생 가슴 한 켠의 죄의식은 지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자식들 또한 적자들이 갖게 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감정이 아니라, 소실의 자식이라는 조금은 떳떳하지 못한 감정도 평생을 잠재의식 속에라도 남아 있을 것이다.


 남자 역시도 그 젊은 여자와의 불 같은 사랑이 영원할 것 같았겠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사랑한다는 감정도 점점 퇴색되어 감을 알고, 느끼게 될 것이다. 세월이 한참 지나 제정신이 돌아 와 뒤를 돌아보고 주변을 둘러볼 때 그 동안 처자식한테 어떻게 했었는가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전처의 가슴도 식을 대로 식어 냉랭하기만 한 상태이니 본처한테 돌아간다 해도 환영 받지 못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그때는 이미 남자 나이도 꽤나 들었을 테니 그때는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기도 하니 자승자박이요, 자업자득,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도 할 수 있게 된다.


 세월은 그렇게 저렇게 흘러 너도 가고 나도 가게 된다. 사랑도 미움도 시들해지고 빈 가슴만 남아 있는 것 같은 허전하고 스산한 감정이 감돌 때가 더 많아진다. 과연 한 세상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스친다.


 그래도 다행이고 고마운 것은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고 고맙고 세상 헛 살았다는 허무한 중얼거림을 하지 않아도 됨은 다시 왕룽의 마지막 순간을 보면서 하게 된다. 


 왕룽이가 죽어서는 ‘본부인’ 곁에 묻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그것은 왕룽, 자신을 위해서 평생을 살아 온 여자이기 때문이요, 자식을 낳아 주었음이요, 자신이 소실을 들였음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있어 그리하지 않았겠나 싶다. 


‘노추’, 어쨌거나 남자로 태어나 늙어감보다 여자로 태어나 늙어감이 더 서글프고 아릿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모두가 자연의 이치이지 싶으니 마음이 그냥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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