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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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대신 닭은 안 되네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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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사랑했던 감정은 나만이 느끼고, 나만이 가슴속에 간직하게 된다. 말로 표현하자면 많이 사랑 했었다, 아주 사랑 했었다 하는 정도로밖에 말할 수 없다. 얼마만큼, 어떻게, 사랑 했었다는 얘기를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대부분 그런 경우 첫사랑의 감정이기 쉬우나 철없던 시절에 첫사랑이 가슴속 깊이 남아 잊혀 지지 않는 경우도 많고, 서로가 깊이 사랑을 했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결혼을 하지 못하고, 다른 상대를 만나고자 하나 첫사랑으로 인해 가슴속에 남겨진 사랑, 마음이 너무 커서 그 남겨진 가슴속의 사랑을 채워줄, 채워지지 않아 결혼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설령 결혼을 했다 해도 첫사랑의 자리만큼 차지하지 못해 평생 허전한 가슴으로 살아가야하는 경우도, 사랑했던 마음만으로 아릿한 아픔, 아릿아릿한 그리움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사랑이 싹트기 시작할 무렵 더러는 사랑하는 사람과 약속을 해 놓았으나 급하게 어느 한 쪽에서 일이 생겨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도 허전해서 다른 친구라도 만나볼까 약속은 하지만 막상 만나 봐도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열렬했던 가슴속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차 엷어지긴 해도 그 마음을 다시금 상기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잔잔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첫사랑을 원하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원한다고 하지만 결혼을 했다고 해서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 여자와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것 또한 가슴 속 사랑, 가슴 속의 무게는 본인만이 알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넛가게에서 일할 때 오는 손님 중에 70가까이 되어 보이는 빌이라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아내도 있고 손자 손녀까지 있는 사람인데 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남편이 있고 두 아이의 엄마인 37살 먹은 웃는 모습이 예쁜 엄마를 좋아 했었는가 보다. 


 손님이니 다정하게 해 주었던 것을 상대방에서는 자기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했는지, 밖에서 만나자고 하기도, 지하철 정류장에서 기다리기도 하였단다. 물론 그녀에게 주려고 300불씩이나 주고 귀고리까지 사 놓으셨다고 한다. 가게에 나오면 몇 시간씩 앉아 있으면서 지그시 쳐다보며 응시하고 있었을 터이니 젊은 엄마는 너무 무섭고 소름이 끼친다며 가게를 그만두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엔 그 할아버지가 내게 밖에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는 얘기에 아연실색할 지경이었다. 당연히 젊은 엄마와는 30년이란 나이 차이가 있고, 그때 나와는 10년 이상 되지만 밑져봐야 본전이란 생각도 없지 않았겠지만, 분명 젊은 엄마를 향했던 감정은 내가 대신 할 수 없으며, 젊은 엄마가 꿩이 아니듯, 나 또한 내가 닭은 아니건만 그녀를 향했던 마음이 나로 채워 질 수는 없다. 나는 그냥 나의 또 다른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 설 것이다. 


 무료하기 짝이 없던 노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동양 여자에게서만 느낄 수 있을 그런 분위기, 느낌이야 어느 만큼은 짐작은 할 수 있으나 빌의 가슴속을 누가 알 수 있으며, 설령 안다한들 그 마음에 같이 대응도 할 수 없음에야 말해 무엇할까. 


 
 갈림길


 가게에서 그런 일이 있고 보니 예전 우리 세 사람이 그와 유사한 감정이 아니었을까 어느 사이 그 시절로 돌아가 아련한 추억 속에 잠긴다.


 대학을 가정과에서 국문과로 편입을 해서 다니고 있을 때였다. 가정과에는 여학생뿐이었다면, 국문과로 가고 보니 문리대 내에서도 남학생이 꽤 많았다. 학교를 오가며 볼 수 있는 얼굴들은 말고라도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자주 볼 수 있는 얼굴들도 있었다. 


 그렇긴 했어도 다른 과 남학생과는 차라도 한 잔 할 수 있는 그런 기회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국문과에서는 과 단합대회니 답사차 가는 여행이나 남학생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그런 기회도 좀 있었다. 그 중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남자가 있다.


 가정과에서 국문과로 편입을 했을 때는 여학생이 네 명이었고 나머지는 남학생이었다. 몇 명이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개강을 하고 며칠 지나서였는지 과 단합대회를 한다면서 특히 편입생은 빠지지 말고 참석하라고 했다. 학교 앞 음식점으로 갔었다. 그 후 학교 앞 다방이나 시내 다방, 시내에 있는 낙지 집에서도 여럿이 같이 어울렸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과대표로 있던 H씨와는 시간을 조금 더 가질 수 있었다. 그는 학교 앞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그 하숙집에도 놀러 갔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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