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oonja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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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내게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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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은 받는 즐거움도 크지만 주는 기쁨 또한 그보다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남편에게서 받은 선물 가운데 몇 가지 잊지 못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교제할 때 우연히 명동의 양화점을 구경하다 마음에 쏙 드는 구두가 눈에 들어 왔다. 그 구두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즐겁고 자꾸 시선이 가는 굽이 높은 빨간 슬리퍼 종류였다. 그 구두가 마음에 들어 너무 예쁘다 너무 예쁘다를 연발했다. 집에 들어와서도 그 구두가 눈에 삼삼했다. 며칠이 지나 남편이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그 구두를 사 주는 것이었다. 


 내 지금 기억으로는 구천 원 인가하였는데 둘이 놀고 있는 처지였기에 그 돈은 그리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흔히 구두 선물은 하지 않는다는데 내가 너무 마음에 들어 하니까 남편은 내게 그 구두를 사 주었고, 우리는 오래지 않아 결혼을 하게 되었다. 


 40년이 넘는 지금까지 그 구두는 선명하게 내 기억 속에 그 때의 고맙고 즐거웠던 기분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결혼 후 어느 날도 동방 플라자가 새로 오픈을 했다고 해서 같이 갔다가 그 날도 빨간 단화를 하나 사 주었는데 그 구두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 후로도 구두는 몇 번 사 주기도 했는데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하나 더 사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교제하던 시절엔 나도 남편에게 선물을 이것저것 해준 기억은 있는데 오히려 결혼을 해서는 내가 남편에게 해준 기억보다는 받은 기억만 더 많다. 주로 서울엘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내 옷이나 핸드백 기내에서 화장품이나 어느 해엔 구찌시계를 하나 사 왔다. 


 결혼을 해서 살면서 나는 남편에게 별로 선물을 해본 것 같지 않은데 남편은 내게 잊지 않고 때마다 챙겨주었지 싶다. 그 중에서도 대리점 대표라는 직함과 함께 하얀 승용차를 선물해 주었던 것은 오래도록 고맙고 마음에 새기며 산다. 


 결혼해 살면서 늘 무엇인가 해 보고 싶어 하는걸 아는 남편이 대리점을 하나 더 하게 되면서 나를 대표로 해 주어 그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아이들 둘 낳고 키우면서 집에만 있다가 매일 출근이라고 하려다 보니 머리회전도 빠르지 않은데다가 옷차림도 어색하고 어설프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남편하고 따로 출퇴근을 해야 하니 난 주로 버스를 타야했다. 


 그런데 그 즈음 밍크코트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내가 코트가 사고 싶다고 하니 밍크코트를 입고 버스를 타고 다닐 거냐며 옷은 아무렇게나 입어도 차는 타고 다녀야 한다고 그래서 조그만 승용차를 하나 사 주었다. 오래지 않아 밍크보다는 여우 털 코트가 낫겠다고 여우 털 코트도 그때 하나 구입하게 되었으나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입어 봤을까. 


 돈이 있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고, 주고 싶어야 하는 것이 선물이다. 그즈음 듣는 얘기 가운데 차 한 대를 쓰는 경우 아내에게 키를 주기는커녕 만지지도 못하게 한다는 얘기도 듣곤 하였다. 그런 친구를 만날 때면 더더욱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또 한 가지 남편에게서 골프 신발과 골프채를 선물 받은 일이다. 이민 오기 전 남편이 캐나다에 들어왔다가 나오는 길에 내 골프 신발을 사 가지고 왔다. 그것도 내 발에 꼭 맞는 것으로 말이다. 골프채는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사서 내 키에 맞게 손을 봐온 것이라고 했다. 


 웬만해서는 남자들이 자기 것이나 하기 쉽지 아내에게까지 신경 쓰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골프 회원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둘이 골프를 즐길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남편의 구두 사이즈를 모른다. 내가 가서 사 보지도 않았지만, 들어도 이내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이랴. 와이셔츠 목 사이즈나 바지허리 사이즈도 모른다. 그것은 남편의 옷은 속옷까지 자기가 직접 다 사다보니 내가 무관심해지기도 해서 그리 되기도 했다. 게다가 가끔은 큰맘 먹고 옷이라도 사다 주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니 그래서도 우린 그런 분위기로 살아 왔다. 


 살면서 어찌 아프고 서운한 기억이 없을까마는, 고마웠고, 내가 받은 선물과 함께 그 마음을 떠올리다 보면 어느 사이 맺혔던 마음들은 저만큼 밀려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별로 원하지 않았어도 내게 베풀어준, 배려해준 마음 씀, 선물이 고마웠는가 하면 이젠 진정 받고 싶은 선물 아닌 선물이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남편이 건강만 해준다면 그 이상의 선물은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너는 내 아내니까, 아이들의 엄마요, 며느리라는 굴레에서 알게 모르게 나를 구속하고 억압했던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같이 있으되, 내 시간은, 내 임의대로, 쓸 수 있게 배려해 주었으면 한다. 


 젊었을 때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건만 해를 거듭할수록 건강 이상의 축복, 또 그 이상의 선물도 없을 것 같다. 자칫 둘 중에 누구 한 사람 건강에 문제가 있을 시는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그로 인해 침해당하고 빼앗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하기만 하다면 체력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아낌없이 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말이다. 


 내게 더 잘 해주고 싶어 이민을 왔다는 남자였는데, 남편은 내게 무엇을 그렇게 잘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남편은 내게서 받는 즐거움보다 주는 즐거움이 더 좋았는가 보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더 원하고 좋아 하는지 알고 주었더라면 아쉬움은 한결 덜했을 텐데, 너무도 일찍 나만의 자유 시간을 ‘듬뿍’ 선물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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