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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생활경제칼럼
유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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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돈 이야기(9)-빚을 만드는 은행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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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That’s easily defined - It’s Other People’s Money. (Peter Drucker) 

 

 2016년 미국정부의 채무액은 19.8조 달러로 GDP의 106%가 된다. 한편2015년 미국기업체들의 빚, 즉 남의 돈(Other People’s Money, OPM)이 6.6조 달러로 연 운영 수입의 세배가 된다. 또한 개인의 빚은 3.6조 달러로 연 개인 소득의 1.5배가 넘는다. 이 천문학적인 빚은 신용으로 은행을 통해 얻은 종이돈이고 복리로 계속 늘어난다. 


 고대 은행


 은행의 역사는 4000여 년전 중동을 거처 고대희랍 로마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바빌로니아에 세워진 이기비 은행은 금전을 안전하게 보호하기위해 사원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3750여년 전 인도, 2200여년 전 중국의 은행역사도 살펴볼 수 있다. 


 바빌로니아 은행은 주로 곡식이나 생필품을 거래하기 위해 자본가의 은화, 가축, 농작물을 융자받고 역사상 최초의 복리이자를 가산하여 빚을 되갚은 기록을 갖고 있다. 


 사원기사단은행(KNIGHTS OF TEMPLAR BANK)


 십자군전쟁(1095-1291년) 시대에 예루살렘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119년 휵스 드 패인에 의해 생긴 사원기사단 군자금 준비목적으로 파리와 예루살렘에 사원기사단은행(1118-1314년)이 세워졌다. 그들은 전쟁 중에 약탈한 전리품 금 은 등으로 치부하여 융자를 해주고 이자대신 임대료를 받아 최초의 모기지제도를 만들었다. 


 사원기사단은행은 200년간 800개의 성곽을 이루는 토지를 소유했고, 로마 교황을 포함한 유럽국왕들에게 필요한 융자를 해주며 번창할 수 있었다. 성경은 이자를 받지 말라고 했고 융자를 이용하는 재산축적을 금했지만 교황이나 왕들이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편법적인 은행사업을 할 수 있었다.


 불행하게 영불전쟁에 필요한 전비충당을 독점하기위해 1314년 프랑스왕궁은 마지막 기사단장 작스드몰래이를 화형시키고 재산을 몰수하여 기사단은행은 막을 내렸다. 

 

 

 

 메디치 은행(MEDICI BANK, 1397-1494)


 사원기사단은행 몰락이후 유럽은 암흑시대를 거치며 은행업무는 유태인들이 소규모 전당포 형식의 융자사업을 퍼뜨렸다. 단기융자는 최고 연 60%의 이자를 물었다. 성경의 가르침과 대조적으로 유대교는 유태인들에게 돈을 꾸어줄 땐 이자를 받지 말고 타민족에게는 이자를 받으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교황청의 통제를 피하며 지하금융경제를 일으켰다.


 성경 가르침에 제한받는 귀족들만의 은행사업도 이자대신 임대료를 받고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경제가 커지고 무역사업이 번창해지자 은행사업의 기회를 포착한 플로렌스의 코시모 디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 1464)는 가문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메디치은행을 번창시켜 유럽 전체 대도시나 도시국가에 지점을 개설하여 최초로 유럽의 금융경제를 완전 장악했다.


 메디치 가문은 세 사람의 로마교황을 낳았고, 유럽 정치 경제 군사에 영향력을 미쳤다. 코시모는 돈이 필요한 로마교황청이나 유럽 국가들에게 융자를 해주고 이자대신 토지 등기 등의 대행업무를 맡아 유럽전역의 행정비를 받아냈고 가장 신용있는 금융기관으로 성장 시켰다. 


 또한 미켈란젤로, 도나텔로, 레오나드다빈치 등의 명장들을 재정적으로 도와 문예부흥을 일으키는 사업에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메디치가는 유럽의 왕족들과 결혼하여 가장 영향력 있는 왕족재벌이 되었고, 메디치 가문의 피는 아직도 유럽 귀족후예들에게 흐르고 있다.

 

 


 은행을 일으킨 남의 금(돈)


 17세기 말까지 은행은 메디치같은 부호 은행가들 자본에 의해 운영되었다. 그 당시 금세공(GOLDSMITH)들은 고객들의 금이나 금화를 녹여 새로운 금화로 만들어 주고 수수료를 받았다. 따라서 고객들의 금을 보관하는 금고를 안전한 장소에 설치하였고, 고객들은 금을 금세공에게 맡기고 보관증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며 고객들은 금화대신 보관증을 교환하며 통상거래를 시작했다. 자기앞 수표가 돼버린 보관증사용이 편리하여 금을 찾아가는 고객이 거의 없게 되고, 금고의 숫자가 늘자 한 금세공은 찾아가는 금과 보관된 금의 통계를 잡고 돈이 필요한 고객들의 신용이나 토지를 담보 잡고 보관된 남의 금을 이용하여 융자를 해주고 이자를 받아냈다.


 의심하는 고객들에게는 금고를 보여주며 고객의 금은 항상 찾아갈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금세공이 융자이자로 큰 부자가 됐다는 소문이 퍼지자 금을 맡긴 고객들이 이자분배를 요구하여 금세공은 이자의 일부를 보관증 소유자에게 분배하게 되었고, 18세기 접어들면서 남의 금(돈)으로 경영하는 은행의 시조가 되었다. 

 

 

 

 결론


 은행 자본은 총자산의 5-10%로 각국 은행법 통제를 받고 있다. 90% 이상이 남의 돈이다. 은행뿐 아니라 제반 사업체도 남의 돈이 필요하다. 국가도 개인도 빚으로 생활한다. 


 소비나 투자목적으로 얻은 융자금과 그에 따르는 이자를 미래의 수입으로 갚을 수만 있다면 남의 돈은 경제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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