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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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감취인 보화와 진주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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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마치 밭에 감취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 13:44-46)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에 관한 비유가 일곱 개 나타나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이고, 그 다음이 “알곡과 가라지 비유”이다. 이 두 비유에 관하여는 예수님이 그 의미를 직접 설명해 주신다. 


이어서 들려주시는 “겨자씨”와 “누룩” 비유는 처음 두 비유에 비해 상당히 짧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작고 미약하게 시작하여 한없이 크고 화려하게 성장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가 “감취인 보화”와 “진주” 비유인데, 둘 다 합해도 3절 밖에 안 되게 짧다. 내용도 천국이 어떤 곳인가를 말해주는 점에서는 같으나 각기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감취인 보화” 비유는 천국을 밭에 감추어진 보화에 비교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개인의 재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보관할 수 있는 제도와 기관들이 있으나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금융기관이나 은행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국가가 개인의 소유까지 책임지고 보살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평생을 모은 재산을 일시에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것이 당시의 실정이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금은보화와 귀한 것들은 땅 속에 묻어두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이 각자가 재산을 안전하고 지키고 보관할 수 있는 길이었던 것이다.


특별히 팔레스타인 지역 주민들은 이 방법을 많이 사용했다. 역사상 팔레스타인 지방처럼 많은 전쟁이 일어났던 곳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물을 땅에 묻은 이들이 그 장소를 혼자만 알고 있다 죽은 경우 보물은 영원히 묻혀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가끔 그 보물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우연히 그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었다. 오래된 집이나 방앗간, 또는 벼락 맞은 고목나무 구멍에서 아이들이 값비싼 보화를 발견하는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 사실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이 유대사람들에게 “감취인 보화” 비유를 들려주신 것이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누구였는지는 몰라도 땅을 파다 엄청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보화를 꺼내지 않고 흙으로 다시 덮는다. 그 당시 전통적인 유대 법은 찾는 자가 소유권을 갖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있는 땅이나 건물이 그의 소유여야 물건의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것을 알고 있었던 그 사람은 보물이 묻힌 땅을 사기 위해 전 재산을 판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서둘러 재산을 처분하는 것을 보며 의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겐 많은 보화가 감추어진 땅을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 그런다는 분명한 까닭이 있었다. 


이처럼 진정 귀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소유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해야 함을 이 비유가 말해주는 것이다.


그 다음 나오는 “진주” 비유도 2절 밖에 안 되는 짧은 것이다. 한 진주장사가 세상에서 제일 귀한 진주를 발견하고 그가 가진 것 전부를 팔아 샀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구약시대에는 진주의 가치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기독교가 태동하는 1세기에 들어서면서 진주를 소유해야만 부자라고 인정될 정도로 귀한 보석으로 인정받은 것이 진주였다. 


예수님 당시 홍해에서 얻을 수 있는 진주는 질이 별로 좋지 않아서 좋은 진주를 원하는 이들은 페르시아 만이나 인도까지라도 주저하지 않고 가곤 했다. 


진주 비유에 등장하는 상인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좋은 진주를 찾아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곳을 다니던 그가 마침내 한 곳에서 마음에 드는 진주를 찾는데 성공한다. 발견한 진주가 그가 그때까지 본 것 중 가장 좋은 것임을 확인한 진주장사는 그것을 사기 위해 자기 소유를 모두 처분한다. 보화가 있는 밭을 사기 위해 전 재산을 판 사람처럼 말이다.


진주장사가 그의 모든 소유를 처분하는 것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무척 놀라고 의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땅을 산 사람도, 진주를 매입한 상인도 그들이 하는 일이 일시적인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하여 내린 중대한 결정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결단은 지혜롭고, 현명하고, 용감하고, 올바른 결심이었다.


이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이 두 비유가 들려주는 교훈을 정리하면 그 첫 번째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결코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땅 속에서 보화를 찾은 사람은 그냥 그곳을 지나다 보물을 보게 된 것이 아니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땀 흘리며 열심히 땅을 파다 삽에 딱딱한 것이 부딪치기에 더 깊이 판 결과 보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크고 좋은 진주를 손에 넣은 상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는 제일 좋은 진주를 얻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여러 곳을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진주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수고의 땀을 흘리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진정한 행복이나 참된 만족 나아가서 보람된 인생의 열매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리리라.”(마 7:7)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이를 분명히 해주고 있다.


불굴의 인내와 피나는 노력의 결과 원하는 바가 눈앞에 다가오면 최후의 결단을 내려야만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두 비유가 말해주는 또 다른 교훈이다. 보화를 찾은 이도, 진주를 발견한 상인도 그것들을 그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 동안 축적한 모든 재산을 미련 없이 처분했다. 그 단호하고 지혜로운 결단이 그들에게 천국백성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준 것이다. 


여기서 “두 토끼를 쫓는 자는 한 마리도 못 잡는다.”란 격언이 뜻하는 바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유대인 관리가 영생에 이르는 길을 묻자 예수께서 “네가 지금까지 모든 율법을 지켰나니 한 가지 못한 일 즉 네게 있는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라.”하신다. 


그 말을 듣고 큰 부자였던 그는 슬픈 기색으로 자리를 떠나간다(눅 18:18-23). 그는 하나님의 나라와 재물 모두를 원했기에 하나도 얻지 못했던 것이다. 선택 자체를 못하거나 잘못하면 평생을 추구하던 인생의 목표도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땅 속에 숨겨졌던 보화가 무엇이었는지, 상인이 찾은 진주가 얼마나 크고 좋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보물과 진주 둘 다 그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들 이었음은 틀림없다. 그것들을 얻기 위해 두 사람 모두 그들의 소유 전부를 투자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과감한 선택을 보며 하늘나라를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위해서는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포기할 수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천국이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천국 백성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의 교부였던 이레노스와 어거스틴이 땅 밑에 숨겨졌던 보화와 상인이 찾은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말한 까닭이 여기 있다고 본다. 


두 교부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에 근거했기 때문이라 믿어지기 때문이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던 어부들과 민족의 반역자 취급을 받던 세리 출신 그리고 보잘것없는 주변인간들로 구성된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천국의 열두 진주 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위해 그들의 삶 전체를 희생하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믿는 자들을 가장 악랄하게 탄압하고 억압한 초대교회 최대의 적이었다. 그는 기독교를 핍박하고 말살시키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인생의 사명이라 믿었다. 그러기에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벗어난 성도들까지 잡아 죽이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 예수님을 만난다.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비쳐오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괴롭히느냐?”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그는 기독교 박멸운동에 매진하던 그의 과거를 청산하고 예수님께 그의 삶을 바치기로 결단한다. 


그 결과 그가 믿는 자들을 억압하고 괴롭히던 몇 배의 핍박을 받으며 복음증거에 앞장섰으며, “나는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내게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합니다. 내가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입니다.”(빌 3:7-9)라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가장 닮은 사도로서 누구보다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한 충성된 사도가 되었다. 열두 제자들과 사도 바울 그리고 순교의 피를 흘리며 복음전선에서 싸운 수많은 믿음의 용장들은 모두 하늘나라를 얻기 위하여 하나뿐인 목숨을 버렸다.


용감하고 현명한 선택이요, 가장 지혜로운 투자였다. 그들과 같은 원칙과 정신으로 선택하고 투자하며 사는 우리들 되어야 할 줄 안다. 그래야만 영원하고 찬란한 하늘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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