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kim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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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설교-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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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 하느니라 하리라.”(마 7:21-23)

 

 

 산상수훈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지녀야 할 품성인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켜야 할 인생의 지침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산 위에서의 말씀을 끝내시면서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넓은 문”을 버리고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명령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으며, “거짓 선지자들에게 현혹당하지 않아야” 생명의 길로부터 벗어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관문을 통과하는 최종심사에 합격하기 위한 두 가지 필수적인 조건을 말씀해 주시니 그 첫째가 “말씀에 순종”(마 7:21-23)이며, 둘째가 “말씀대로 행함”(마 7:24-27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과 “행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천국백성의 자격을 획득하는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며, 후자는 말씀을 깨닫는 데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나 실질적인 면에서는 구분되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에 절대적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은 천국시민이 될 수 없음을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을 “주”라 불러야만 구원받는 자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네가 만일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니라.”(롬 10:9-10)로부터 확실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는 것은 단순히 주님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우리의 구주이심을 공개적으로 서약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라 부름으로 그들이 주님의 제자임을 밝히면서 “주님,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몰아내고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라며 그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행한 일들까지 보고하는 자체는 얼마든지 사실일 수 있다. 그 시대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기적과 권능을 행하면서 사람들을 미혹시켰으며(마 24:24),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도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를 고치는 기적을 행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주”라 부르며, 자기네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일들을 자랑스럽게 아뢸 수 있을 지는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른다.”며 물리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어째서일까? 


 우선 예수님은 그들의 주장에 관한 사실여부를 정확하게 알고 계시다는 것부터 깨달을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전능하시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오래되어 우리들 자신조차 기억 못하는 우리들의 모든 행적들을 알고 계시며,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지 않게 은밀히 행하는 우리의 모든 악하고 추한 행위들을 낱낱이 보고 계신 것이다.(시 139;2)


 예수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란 선고를 받은 이들은 입으로는 하늘나라의 진리를 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며 올바르고 정의롭게 살았다고 주장하더라도 하나님이 갖고 계신 그들의 삶의 기록부엔 그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그의 가르침대로 행한 기록은 없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 아닌 자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며 습관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위선적인 언행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기만하는 인생을 산 그들에게 최후의 심판관 예수께서는 불합격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언도 하고,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자랑하는 이들은 구원은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 어떤 인간도 “완전”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행위”을 통해 구원 행 열차에 탑승할 수는 없다.(롬 3:20, 27-28) 그러므로 그들이 살면서 달성한 업적을 당당하게 나열하는 이들에게 천국 문이 쉽게 열릴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나?”(눅 6:46) 반문하시며 천국문 앞에 몰려든 사람들을 돌려세운 사실이 지닌 의미는 크기만 하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내세우며 천국행 비자를 발급해 달라는 이들을 향해 예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하시면서 “불법을 향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명하신 것이다. 이는 심판 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바친 희생적인 봉사와 헌신과 충성 그리고 그들은 그네들 나름대로의 선하고 의로운 삶을 보고하지만 예수님은 그네들이 행한 일들을 “불법”으로 판정하심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째서 평생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움 없이 살았다고 자부하는 그들에게 그런 충격적인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간단히 말하여 그네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라 시인하며, 사람들의 눈에는 올바르고, 정의롭고, 바람직한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이 평가하는 그들의 인생은 형식과 위선과 거짓으로 얼룩진 추한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그들은 자기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엄청난 불법을 행한 것이다. 만물보다 부패한 마음을 지닌 인간들은 이런 부끄럽고 더러운 죄악으로부터 해방된 적이 없었으며, 오늘날에도 이 같은 슬프고 가슴 아픈 일들을 우리들 주위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땅 끝까지 달려가며 내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하며 수많은 빛의 사자들이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찾아가 천국복음을 외치고 있음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복음의 횃불을 들고 사리사욕을 취하는 이들도 적지 않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수께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 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마 11:11)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복된 것인가를 일러주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중요하고 축복된 사명을 수행하는 주의 종들을 인위적으로 생산해내는 영리단체들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사실 또한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몇 달 자취를 감추었다 “목사”가 되어 나타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며, 그들 중에는 박사학위증까지 지닌 사람들이 허다하다. 그들이 소지한 목사자격증과 박사학위에는 가격표가 붙어있다는 사실도 알려진 비밀이고 말이다. 그런 식으로 주의 종들을 양성하여(?) “박사”라는 권위까지 부여한 이들이 “주님, 저희들은 많은 주의 일꾼들을 훈련시켜서 그들이 주의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자격과 권위를 부여했습니다.”라 보고하면 예수께서 무엇이라 답변하실지 궁금하다.


 예수님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라고 세 번이나 명하셨다. 예수님의 양을 치려면 연약한 양들을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며, 주님의 양떼들이 풍성한 생명을 얻도록 자신을 희생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양의 옷을 입고 우리에 들어가 양들이 가진 것을 빼앗는 거짓 목자들도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있으니, 이들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말로써 얼마든지 사람들을 기만할 수 있으며, 그럴듯한 행위로 그들의 환심을 사기도하며, 그들의 인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도 전능자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 보시며,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어떤 의도로 하는가를 전부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시 139:2; 갈 6:7))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을 살아야만 최후의 심판날 예수님의 영접을 받으며, 우리를 위해 마련된 영원한 고향집에 입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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